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71화 (71/263)

< 71 :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4) >

영화가 모두 끝났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스테이지에 남아있었다.

눈앞에서 위대한 락스타의 일생을 지켜보았고, 그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멋진 영화를 본다는 것. 그 영화 속에 나온 관객이 된다는 것. 영화 속에서 산다는 것.

모두 이 자리를 떠난다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누가 박수를 쳤고, 사람들은 오늘 모두가 만든 노래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박수는...

"어, 이거 we will rock you인데?"

we will rock you의 박자로 변해있었다.

[we will rock you!]

그때 누군가가 외친 we will rock you의 후렴구.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떼창.

반주도, 영화도 없이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광경이지?'

그리고 주과장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영국에서 락 밴드의 공연을 보고 공연사업본부에 입사한 주과장. 음악이 좋아서, 공연이 좋아서 뛰어 다녔던 젊은 시절들.

그의 마음 속에 꺼져있던 열정이 다시 깨어난다.

'그래, 사람들은 스토리가 있는 음악에 열광하지.'

두근거리는 가슴과 다르게, 머리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멋진 상대와의 대결. 패배.

그리고-

'영화 상영이라. 다음 페스티벌에 적용해 볼 수 있겠어.

성장.

*

"과장님! 블라인드 도착했습니다!"

그때 드디어 블라인드가 도착했다. 주과장이 한록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무대에 올리겠습니다. 객석 정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공연은 지연된 상황. 공연사업본부와 영화사업본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스테이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퀸'의 상영이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블라인드'의 공연을 위한 준비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스탠딩 존에서 퇴장한 사람들을 다시 펜스 앞으로 넣어주고, 무대를 설치하고 나니 30분 정도가 지난 상황.

이제 [블라인드]가 무대에 오르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아직도 사람들은 퀸의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거 [블라인드]가 밀리는 거 아냐?'

주과장이 초조하게 입술을 씹으며 생각했다.

자그만치 20년만의 내한이다. 관객들의 반응이 엄청나리라 예상했고, 실제로 [블라인드]를 기다리는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퀸에게로 관심이 쏠려버린 상황이었다.

그 분위기를 느낀 것은 한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과장님."

상황을 지켜보던 한록이 주과장에게 말했다.

"걱정 마시고,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그리고 한록이 건넨 조언.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주과장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한록이 예상했다는 듯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누구라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말을 했다.

"저 이한록입니다."

*

무대에 오른 [블라인드]. 블라인드의 등장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아까 <퀸>의 떼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사람들을 지켜보는 [블라인드]의 보컬 데이먼. 그가 발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더니 입을 열었다.

[To night, I'm gonna have my self...]

그렇게 시작 된 *Don't stop me now.

*<퀸>의 엔딩곡

"와아아아아!!!"

그리고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사람들은 미친것처럼 뛰고, 펜스를 흔들기 시작했다.

"김대리! 이거 찍어!"

"네!"

사람들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CK직원들과 취재를 나온 기자들.

주과장은 귓가에 울리는 셔터소리와 함성 소리에 확신했다.

'올해는 CK페스티벌 역대 최고의 흥행이 될 거다.'

'이 페스티벌을 반드시 살려주겠다'던 한록의 약속.

그 약속이 사실이 된 것이다.

*

블라인드와 함께 <퀸>의 엔딩곡인 Don't stop me now를 부르는 사람들. 유선은 두 손을 꼭 쥐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망부석처럼 아무 움직임 없이 관객만을 바라보는 유선. 한록이 유선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유선씨, 무슨 일 있어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왜 그러고 있어요?"

유선이 쑥쓰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너무 좋아서 보고 있었어요."

3만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노래. 그 노래를 만들어준 영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과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사실 싱어롱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그 모든 걸 만들어낸 한록.

한록이 싱어롱 상영을 처음 들고 왔을 때, 유선 역시 싱어롱이 완전히 잘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록은 모두가 반대하던 아이디어를 결국 실현시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은 락 페스티벌 자체를 성공시켰다.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한록을 볼때마다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이 더욱 강하게 끓어올랐다.

"유선씨 덕분이에요. 고생 많았어요, 유선씨."

"제가 뭘 했다구요."

"유선씨가 왜 한 게 없어요. 아이디어도 열심히 냈고, 이것도 유선씨가 했잖아요."

유선의 앞에서 박수를 치는 한록. 유선이 1차 상영 때 마이크 앞에 박수를 친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거는 제가 생각해도 잘 하긴 했는데...그래도 너무 사소해서요."

한록의 말에 뿌듯하게 웃으며 같이 박수를 치는 유선. 한록은 유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절대 사소하지 않다.'

유선의 박수. 하대리가 메모리 테잎을 섭외하자고 한 것. 현차장이 사람들의 불만을 달랜 것. 주과장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하정엽이 자신의 말을 믿고 <퀸>을 맡긴 것.

한록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록과 뜻을 함께 했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유선씨, 우리 다음에는 더 잘 해봐요."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유선이 한록을 바라보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잘할게요!"

다음, 그 다음에도 자신과 함께 해 줄 동료의 말. 그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이과장님."

그때 누군가 한록과 유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정엽의 비서인 오비서였다.

"사장님이 찾으십니다."

오비서가 말했다.

*

"야, 존나 재밌다. 진짜 재밌다. 최고야! 짜릿해!"

"너 아까는 안 보고 숙소 돌아간다며?"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지!"

<퀸>의 상영을 보고 나와 친구에게 말하는 한 남자. 남자는 펜스 가장 가까이에서 상영 내내 소리를 지른 후였다.

"아까 영화관에서도 똑같이 따라 부를 수 있댔지?"

열정적으로 말하던 남자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쉬운 듯 말했다.

"개봉 2주나 남았네."

"지금 예매 되나?"

"아직 상영시간표 안 떴어. 아, 언제 기다려!"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말하는 남자. 남자뿐만이 아니라, <퀸>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중인 많은 사람들이 남자와 같은 반응이었다.

"내가 이거 보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다."

"보길 잘했지?"

"당연하지. 5만원 더 낼 수 있을 거 같아."

[오늘 CK락페 완전 대박이었음 프레디 머큐리 전기 상영영화 한 대서 그냥 재미삼아보러감 이때 아님 언제 락페에서 영화보겠음? 사람들도 다 그 생각했는지 티켓 줄 ㅈㄴ길더라 근데 티켓 없어도 볼 수 있는 거였음 ㅋ암튼 계속 기다리는데 무대가 갑자기 메인 스테이지로 바뀐거임 그래서 아 이거 대박나겠다 했는데 와 시작부터 메모리 테잎이 축하공연 하고ㅋㅋㅋ]

[실시간 CK락페 상황.MUSIC

반주 다 꺼졌는데 돈스탑미 떼창하고 난리남ㅇㅇ]

[퀸?? 라인업에 없는데??]

[ㄴ블라인드 지각해서 그 전에 퀸 영화 틀어줌]

[영화 재밌었음 좀 울었다]

[진짜로 라이브에이드 와 있는 줄]

[이건 <전설>이다]

[나도 있었음 ㅎㅎㅎㅎ]

하나둘씩 올라오는 인터넷 후기들. 거기에 잔디밭에 누워 퀸의 노래를 중얼거리는 사람들까지.

마치 정말 퀸이 페스티벌에 다녀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최경준과 하정엽은 영화사업본부의 부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경준은 하정엽이 중간에 숙소로 돌아가기라 예상했으나, 하정엽은 10시까지 현장을 지켰다. 그리고 부스에 남아 결재가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해결했다.

오늘 하루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뛴 하정엽. 그런 하정엽에게 최경준이 물었다.

"직원들이 일하는 걸 직접 지켜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습니다. 현장에 자주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조하게 답한 하정엽이 입을 다물었다. 최경준은 하정엽이 오늘 하루를 떠올리고 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생각에 잠긴 하정엽.

'싱어롱 상영은 좋았다.'

현장에서의 사람들 반응도, 그게 예매로 이어지리란 것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최윤일 이 아니라 이한록에게 프로젝트를 맡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페스티벌 자체는...'

블라인드의 공연 지연. 거기에 아무런 대비가 안 된 공연사업본부. 그리고 그 결과-

'성공했지.'

엄청나게 성공한 오늘의 공연.

'전부 이한록이 한 일이다.'

<퀸>으로 블라인드의 펑크를 대체한 것.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 분위기를 블라인드에게 바로 넘겨준 것. 모두 한록이 한 일이었다.

'이한록을 데려가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이다.'

최경준의 조언이었던 '최윤일과 이한록을 모두 데려가라'는 말. 그게 정답이었다는 걸 하정엽은 오늘 깨닫고 있었다.

"사장님, 본부장님."

그때 한록이 도착했고, 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장님이 자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시네."

최경준의 말에 하정엽에게 다가간 한록.

하정엽은 한록을 보며 말했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잘 처리했군요. 오늘 페스티벌을 이끈 건 이과장이었습니다."

하정엽은 건조하게, 그러나 한록의 성과를 명확하게 짚어서 칭찬했다.

"이번에도 특별 인센티브가 있을 겁니다. 그 외에 포상휴가도 있을테니, 마음껏 사용하세요."

프로젝트의 성공, 상사의 인정, 인센티브, 거기에 휴가. 직장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낸 상황.

그러나 한록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한록이 하정엽에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한록이 저렇게 나올 때는 언제나 허를 찌르는 말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정엽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세요."

"오늘 현차장이 관객들의 불만을 달랠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대리는 메모리 테잎을 섭외하자고 했고, 김유선 사원은 공연의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공연사업본부 주과장은 제 제안을 받아들여서 블라인드에게 퀸의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오늘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을 말하는 한록.

"이들에게도 사장님께서 칭찬하셨다고 전달하겠습니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이 사람들도 있다는 걸 기억해라.'

그런 뜻을 담은 한록의 말.

그 말에 하정엽은 오늘의 페스티벌을 떠올렸다.

싱어롱 상영. 메모리 테잎의 축하 공연과 <퀸>으로 블라인드의 펑크를 대체한 것.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 분위기를 블라인드에게 바로 넘겨준 것. 모두 한록이 한 일이다.

하지만 한록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다.

실망스러운 대처를 보였지만 결국 한록의 말을 따라서 상황을 잘 마무리한 공연사업본부.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싱어롱 상영을 만든 영화사업본부.

그들 역시 오늘을 위해 열심히 뛰어 온 사람들이었다.

너무나 뛰어난 한록의 활약에 잠시 잊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떠올린 하정엽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록에게 말했다.

"네, 그렇게 전하세요."

*

하정엽과의 대화가 끝난 후, 한록은 다시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다. 이미 <퀸> 상영은 끝난 후인데도 GV팀이 아직 자리에 남아있었다.

"유선씨, 이제 돌아가세요. 뒷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한록의 말에 유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오늘 공연사업본부 일 다 끝날 때까지 돕다가 가려구요."

"안 그래도 돼요."

"아니에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일을 좀 배우고 싶어요."

한록의 만류에도 유선은 의욕적으로 답했다.

"제가 언제 락 페스티벌에서 기획에 참여하겠어요. 지금 온 김에 배우고 가야죠."

유선의 눈에 열정이 반짝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한록은 불과 몇시간 전 들었던 노래를 떠올렸다.

[친구여, 넌 어린 소년이야.]

[얼굴엔 흙탕물을 묻히고 수치를 무릅써.]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질러.]

we will rock you의 가사. 그 가사를 듣는 내내 떠올랐던 사람.

"그러면 언젠가 과장님처럼 될 수 있겠죠?"

간절함과 열정이 담긴 유선의 말과, 오늘 한록의 말을 듣고 하정엽이 했던 말.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될 거야.]

'그 김유선이란 사원, 저번에 발표했던 사원 맞습니까.'

한록이 유선을 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럼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네가 어느새 대단한 사람이 됐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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