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68화 (68/263)

< 68 :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1) >

영화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스테이지를 채우는 관객들.

현차장이 스테이지를 보고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얼추 이천명은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앞자리는 이미 다 채워져서 사람들이 잔디밭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아마 상영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더 모일 것이 분명했다.

첫날은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도 이미 충분히 관객이 모인 상황.

"제가 사람 많을 거라 했잖아요. 락페에서 퀸 영화 최초 개봉한다는데 락덕후들 다 모이죠."

어쩐지 뿌듯한 얼굴로 말하는 하대리.

"잠시만요. 돗자리 조금만 옆으로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만 옆으로 이동해주세요. 죄송합니다."

GV팀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GV팀의 노력 덕분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고, 시간은 드디어 8시가 되었다.

"시작합니다."

엔지니어의 말에 한록이 얼른 답했다.

"잠시만요."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올라가는 한록.

"관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CK ENM의 이한록 과장이라고 합니다."

한록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록을 알아보던 부산 영화제에 비하면 시큰둥하기 그지없는 관객들의 모습.

'잘됐군.'

그러나 한록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자리의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그건 삼일의 삶이나 지구특공대와는 달리,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마저 <퀸>을 보러 왔다는 뜻이었다.

"<퀸>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 최초로 개봉합니다."

한록의 말에 이제야 박수가 나온다. 한록이 박수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오늘 상영은 노래나 대사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상영입니다. 일반 영화관처럼 조용히 관람하는 게 아니니, 아는 노래가 나오시면 따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

'진짜 그래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무대 아래에 있는 하대리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간다. 하대리의 생각보다 반응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래. 이런 반응일 건 예상했다.'

아직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영화를 본다.' 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아마 첫 상영은 싱어롱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영화 후반부가 되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생길...'

그때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짝!

we will rock you의 박수소리.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유선이 마이크를 앞에 두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유선의 박수소리가 들리자 다시 박수를 치는 사람들. we will rock you의 박자에 맞는 박수였다.

싱어롱 상영이란 말에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 사이에 다시 뜨거운 분위기가 흐른다.

한록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재밌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더욱 커진 박수소리. 박수는 한록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죄송해요, 과장님. 지금 딱 분위기 띄우기 좋은 것 같아서..."

한록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유선이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 현차장이 자신에게 왜 그렇게 다정한 얼굴로 칭찬을 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준 것도 없는데 어느새 훌쩍 성장해온 부하. 그 부하를 보면서 드는 감정.

"잘했어요, 유선씨."

유선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한록의 칭찬에 유선이 활짝 웃더니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

박수와 함께 시작된 영화.

사람들은 꽤나 영화에 집중했다. 중간에 일어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영화의 중반부 we will rock you 공연 부분이 나오자 박자에 맞게 함께 박수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라이브 에이드: 1985년 퀸이 출연한 락 페스티벌.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오자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야...진짜 같이 부르는구나."

한록의 옆에 선 현차장이 사람들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좀 감동이네요."

조용히 말하는 하대리.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수천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걸 기획한 자신들. GV팀은 모두 뿌듯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록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따라 부르고 있지만 일반 락 페스티벌에서 보이는 열광적인 떼창은 아니다. 지금은 그냥 노래를 흥얼거리는 정도.

거기에 *라디오 가가로 이어지자 노래 소리는 조금 줄어들었다.

*라디오 가가: 퀸의 노래

'역시 가사를 모르는군.'

퀸의 팬들은 가사를 다 알고 있으나, 친구를 따라오거나 신기해서 구경을 온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이 영어 가사를 다 외우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떼창이 나오는 것도 한록이 미리 영상을 공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일은 가사를 몰라도 음으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유도해야겠어.'

오늘은 사람들이 싱어롱에 익숙해지기 위한 예비 순서. 그리고 GV팀에게는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다.

'진짜' 싱어롱 상영이 시작되는 건 사람들이 영화의 내용을 파악하고 싱어롱이 뭔지 익숙해진 후.

바로 내일이었다.

*

영화가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소리.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엔딩 스크롤을 감상했다. 그리고 엔딩 스크롤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과장님! 대성공이에요!"

"아직이에요. 내일 상영 전에 영상을 몇 개 더 공개해야겠어요. 상영시간 문자 보낼 때 같이 링크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메모리 테잎'이랑 미팅 좀 잡아주세요."

잔뜩 신이 난 유선에게 지시를 하는 한록.

GV팀은 오늘 관객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것 같았지만, 한록은 이미 내일의 상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기, 아까 무대에 있으셨던 분이죠? 이거 내일도 하는 거 맞죠?"

그리고 한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록에게 다가와 질문을 하는 사람들.

한록뿐만이 아니라 관객들 역시 오늘보다 내일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싱어롱이란 게 원래 영화와 노래에 익숙해질수록 재밌는 상영이기 때문이었다.

"네, 맞습니다. 내일 같은 시간에 여기서 진행합니다."

사람들에게 대답을 해 준 한록이 GV팀을 보고 말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몇 배는 반응이 좋을 거예요. 미리 준비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 말에 유선과 하대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

부스로 돌아온 한록. 거기선 네 명의 남자가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과장님! 하대리님!"

한록과 하대리를 부르는 노랗게 탈색한 머리에 가죽자켓을 입은 네명의 남자. 3일차 헤드라이너이자 인기 락밴드 '메모리 테잎'이었다.

"안녕하세요, 상진씨."

한록이 메모리 테잎의 보컬인 상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영 일정이 결정된 후 하대리가 조심스레 내놓은 아이디어.

'근데 3일차에 오는 '메모리 테잎'이 퀸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활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싱어롱 상영에 중요한 것은 결국 분위기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띄우기에 딱 맞는 사람의 등장.

하대리의 말에 한록은 '메모리 테잎'을 섭외하기로 결정했다. 내일 '메모리 테잎'은 싱어롱 상영 직전 퀸의 노래를 몇 곡 부를 예정이었다.

공연사업본부가 반대하리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주과장은 한록의 결정에 동의 했다.

'대신, 메모리 테잎의 역할이 공연을 하는 정도에서 끝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싱어롱 상영 중에도 메모리 테잎에게 마이크를 주세요. 메모리 테잎이 분위기를 이끌 겁니다.'

싱어롱 상영을 통해 '내일 메모리 테잎의 공연이 이만큼 재밌을 것이다'라고 홍보하겠다는 주과장의 계산.

그 제안에 한록이 씩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말이 잘 통하네요.'

영화사업본부는 메모리 테잎의 덕을 보고, 공연사업본부는 싱어롱을 이용한다.

한록이 그렇게나 말하던 경쟁하되 방해하지 않는 회사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노래가 영어다보니 가사를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메모리 테잎. 시원스러운 대답에 한록이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프로다.'

한록의 가장 큰 걱정이자 싱어롱 상영이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부르지 못한다'라는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벤트 티켓을 받아간 사람들에게 도착한 문자.

[<퀸> 한국 최초 개봉, 그 두 번째 상영이 내일 저녁 8시 시작됩니다.

선공개 영상: '보헤미안 랩소디'

선공개 영상: '라디오 가가'

선공개 영상: '위아 더 챔피언.]

영화에 나온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위아 더 챔피언을 편집한 영상이 미리 사람들에게 도착했다.

*

그리고 다음날.

페스티벌 2일차이자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시기였다.

"내가 죽기 전에 '블라인드'를 한국에서 보는구나."

"펜스 잡으려면 지금부터 가야겠지?"

"야, 근데 오늘 뭐 영화한다는데? 그거 보고 갈까?"

흥분한 얼굴로 얘기를 주고받는 관객들. 아직 한낮인데도 벌써 맥주를 마시고 취한 사람들과, 잔디밭 한가운데서 멋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객 모두 다가올 밤을 기대하는 상황. 그러나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CK 직원들은 즐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블라인드]가 아직 도착을 못했다고?"

"네. 드럼이 일본에서 오는데, 지금 기상상황이 안 좋아서 출국도 못하고 계속 묶여 있대요."

초조한 얼굴의 주과장.

2일차 헤드라이너이자 페스티벌에서 가장 신경을 쓴 외국 밴드 [블라인드]의 멤버 한 명이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리허설 전에 올 수 있는 거 맞아?"

"공연시간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 씨..."

자칫 잘못하면 공연이 펑크날 수도 있는 상황.

[블라인드]의 스케쥴이 모두 채워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섭외를 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앞 타임 '이매진'한테 공연 좀 더 길게 할 수 있냐고 물어봐. 그리고 다른 밴드들한테 혹시 공연 한 번 더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큰 위기를 맞이한 공연사업본부. 공연사업본부 사람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영화사업본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 티켓이요. 다음 분한테 슬로건이랑, 야광봉, 티셔츠도 받아가세요."

2일차부터는 이벤트 용품을 준비한 GV팀.

유선과 현차장이 열심히 이벤트 티켓을 찍어냈고, 한록과 하대리가 *슬로건과 야광봉, 그리고 <퀸>의 포스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슬로건: 밴드의 로고가 있는 긴 타올 형식의 응원도구.

이벤트 물건이 준비되자 확실히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퀸>의 포스터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퀸의 슬로건을 목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

"와, 이거 제대로네. 진짜 콘서트 같다."

"저거 뭐야? 어디서 주는 거야?"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한다고?"

부스를 기웃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들.

"아니, 퀸이 오는데 세컨드 스테이지가 말이 되나?"

어느새 <퀸>은 락페스티벌의 주요 라인업이 되어 있었다.

"너도 티켓 받아와."

"메모리 테잎이 축하 공연한다는데? 그것도 볼까?"

"숙소 가서 쉬지 말고 그냥 영화도 보고가자."

"락페까지 와서 영화를 봐야겠냐?"

"그냥 보는 게 아니고 따라 불러도 된대. 야. 니가 살면서 퀸 노래 떼창할 기회가 더 있을 거 같아?"

"이 새끼 진짜 맞는 말만 하네."

이제 페스티벌 어디에 가든 퀸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보였고 싱어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거 뭐야? 이 분위기 뭔데? 왜 진짜 퀸이 오는 것처럼 구는 거야?'

그 분위기 속에 당황한 김준.

[준. 저 통역 좀 해주세요. 지금부터 찍어야겠어요. 준. 어디가요? 준!]

멋진 그림이 나올 생각에 들뜬 카메라맨.

그리고...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군요."

페스티벌에 도착한 하정엽과 최경준.

*

시간은 흘러 오후 두시.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블라인드]는 도착하지 못한 상황.

"아예 못 온대?"

"출발은 했대요. 10시쯤에 올 것 같은데...세 시간이나 비어요"

"'이매진'은 뭐래."

"한 시간 이상은 안 된대요. 이 다음엔 중국 일정이 있어서 컨디션 유지해야 한다고."

"다른 밴드들은?"

"안 한대요. 블라인드 대타를 한다는 게 부담이 큰가 봐요."

2일차의 헤드라이너 [블라인드]. 사람들이 모두 [블라인드]만 기다리는 상황.

아무리 페이를 더 준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무대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진짜 미치겠네..."

주과장이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아무도 무대에 서려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두 시간 동안 무대를 비워놔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주과장.

그의 눈에 비친 <퀸>의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한록.

그 순간 주과장의 머리에 든 생각이 하나 있었따.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주과장은 갈등하기 시작했고, 주과장의 시선을 느낀 한록이 주과장에게 다가왔다.

"아직 [블라인드] 도착 못 했습니까?"

"네."

주과장의 말을 들은 한록이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과장이 하는 생각과 똑같은 말을 했다.

"주과장님,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록이 진지한 목소리로 주과장에게 말했다.

"오늘 <퀸> 싱어롱 상영, 메인 스테이지로 옮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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