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호스라고 해야하나(2)
*
“앉으세요.”
회의실에 도착한 하정엽과, 그 뒤의 최경준.
둘은 회의실 책상 맨 끝에 앉았다.
하정엽의 앉으라는 말에도 모두가 움직이지 앉고 하정엽이 자리에 앉기까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두가 자리에 앉기 위해 의자를 끄는 그 짧은 순간.
“이대리님, 멋있네요.”
한록의 바로 곁에 앉은 최대리가 속삭였다.
‘...뭐지?’
한록은 얼굴을 찌푸리고 최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최대리는 여전히 생글
생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분명 오차장에 대한 말이다.’
최대리의 말은 한록이 오차장을 오과장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더 한록을 혼란스럽게 했다.
오차장 밑에서 일하는 최대리. 그러나 오차장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최대리.
‘이 녀석은 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최대리의 알 수 없는 정체에 혼란스러워하기도 잠시. 회의가 곧장 시작되었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보고 바랍니다. 이벤트 팀장.”
“네, 보고 드리겠습니다.”
앉자마자 명령하는 하정엽과,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를 하는 이벤트 팀장.
미사여구 없이 바로 진행되는 회의.
모두가 영화제에 진검승부로 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gv팀장.”
하정엽의 부름에 현과장이 움찔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섭외 및 무대 설치 계획 완료되었습니다. 이상사항은 없으며, 모두 예정대로
진행중입니다.”
“알겠습니다.”
단 두줄. 그러나 어젯밤 하루종일 연습한 대사다.
자신의 차례가 지나가자 현과장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보고는 순서대로 진행되었고 짧은 시간 안에 간결하게 끝났다.
보고를 들은 하정엽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하정엽의 말에 모두가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인다.
“gv에 알렉산드로 로게즈가 방문합니다.”
알렉산드로 로게즈.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은 헐리웃의 거장 영화감독.
그리고...
‘삼일의 삶을 발굴한 사람이다.’
한록이 책상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한국영화는 아직 멀었어요. 괜찮은 건 ‘식물’이나 그 외 몇 개 정도죠.]
[아, 하나 더 있다. 제 한국친구가 직접 번역을 해서 보여준 영화가 있어요.]
[한국 영화 중 최고는 <삼일의 삶>이죠.]
회귀 전 삼일의 삶을 세계적인 영화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그의 말 하나로 절판된 삼일의 삶은 영화계에 전설로 남게 되었다.
말 한마디로 영화 하나의 운명을 바꾸는 거장. 알렉산드로 로게즈.
그가 영화제에 방문하는 것이다.
‘회귀 전에는 알렉산드로가 영화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섭외를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로는 하루종일 저와
함께 움직일 예정입니다.”
그건 아마 하정엽이 개인적으로 추진한 일 같았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바라보는 하정엽.
“난 이번 영화제에 기대가 큽니다. 그러니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
있다면...”
하정엽의 말에 회의실에 앉은 모두의 눈빛이 변한다.
“아마 큰 보상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모두는 생각했다.
‘그건 내가 가져간다.’
*
삼일의 삶을 극찬한 알렉산드로 로게즈.
그리고 영화제에서 gv가 예정된 삼일의 삶.
모든게 짜맞추기라도 하듯 완벽한 상황이었다.
‘반드시 알렉산드로 로게즈가 gv를 보러 오게 해야한다. 반드시.’
만약 알렉산드로 로게즈가 삼일의 삶을 본다면. 그리고 회귀 전처럼 삼일의
삶에 대해 언급해준다면.
‘삼일의 삶은 100만, 200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가 될 거야.’
'그리고 영화제는 삼일의 삶이 가져갈 거다.'
삼일의 삶의 명성을 찾아줄 기회.
영화제를 모두 삼켜버릴 기회.
거기에, 오차장을 완전히 날려버릴 기회.
이건 일생에 다시 없을 기회였다.
“회의 마치겠습니다.”
하정엽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모두 기립해 하정엽과 최경준이 나갈 때까지 고
개를 숙였다.
“와, 나 죽는 줄 알았다...”
현과장의 깊은 한숨. 그러나 한록은 대답 대신 하정엽이 사라진 문을 계속 바
라보았다.
‘이건 삼일의 삶의 운명을 바꿔줄 기회다.’
이 기회를 잡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
그날 점심, 구내 식당.
“내가 어. 사장님이 계시는데. 걱정마십시오. gv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
다! 딱! 그렇게 말했지!”
“정말요?”
“사실 이 정도는 아니고..gv는 예정대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아...정도.....”
오늘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현과장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의 하대리.
그러나 한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드시 알렉산드로를 gv로 데려와야한다.’
삼일의 삶, 그리고 한록에게 엄청난 기회나 다름없는 알렉산드로 로게즈의 방문.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사장님과 함께 움직인다.’
알렉산드로는 하정엽이 개인적으로 섭외해 온 사람이다. 거기에 하정엽과 함
께 움직이는 사람에게 한록이 gv에 오라마라 지시를 할 순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한록이 고민에 빠져있는 그때.
“헉?!”
누군가가 gv팀의 곁에 앉았고, 현과장이 놀라 소리를 쳤다.
“나도 부산에선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테이블에 식판을 내려놓고 웃는 남자는 바로 최경준이었다.
간부. 그것도 사장과 깊은 연이 있는 간부가 구내식당에 출동했다.
현과장뿐만이 아니라 구내식당의 모두가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경준을 본 순간 한록은 직감했다.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데려올 사람은 이 사람 뿐이다.’
“본부장님.”
“이한록. 자네마저 나보고 다른 테이블로 가라는 건가? 너무하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
테이블 앞에 앉은 본부장. 그런 본부장을 앞에 두고 조금도 놀라지 않고 말을
거는 한록.
‘미쳤나?’
‘서울 놈들은 다 저러나?’
‘와, 저 사람이 소문의 이한록이구나.’
경악에 빠진 부산 지사의 사람들.
‘또 무슨 짓이지?’
‘본부장님이랑 대화라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건가?’
한록에게 위기 의식을 느끼는 tf팀.
그 모든 시선 속에서도 한록은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데려와야 한다.’
*
“그래, 할 말이 뭐지?
점심시간이 끝나고, 임원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최경준이 던진 질문. 그에
대해 한록도 바로 응답했다.
“알렉산드로 로게즈가 gv에 방문했으면 합니다.”
“...하하하!”
한록의 당돌한 말에 최경준이 잠깐 놀랐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한록. 자네는 너무 욕심이 많아.”
한참 웃다가 말을 잇는 최경준.
“자네가 열심이란건 알고 있네. 아주 좋아. 하지만 알렉산드로 로게즈라니.
그 사람은 내가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 아냐.”
오너 일가인 하정엽이 꽤나 공을 들여서 모셔온 세계적인 감독.
최경준 역시 마음대로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한록도 아는 사실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장님께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최경준이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이한록. 사장님이 사석에선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단 사실을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 그런 말을 했겠지.”
한국 영화계의 기반을 닦은 최경준.
권위적인 성격의 하정엽마저도 밖에선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결국 나는 직원일 뿐이라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존경의 문제다.
“알렉산드로는 사장님이 어렵게 데려온 사람이야. 사장님이 이미 하루 일정을
정하신 상황에서, 자네 gv를 봐야하니 일정을 바꾸라고 말하다니. 그건 내게
도 어려운 일이라네.”
당연한 얘기다. 아니, 그나마 최경준이기에 ‘어려운 일’로 끝나는 것이지 사
실상 불가능한 얘기.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한록이 예상한 대답이었다.
“알고 있으면 왜 이런 얘기를 한 거지?”
“본부장님이 제게 약속 하셨으니까요.”
“무슨 약속을-”
한록에게 묻던 최경준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한록을 바라보았다.
“아하.”
한방 먹었다는 표정의 최경준.
“날 사용하게 해준다던 그 약속 말이지.”
“예, 맞습니다.”
‘딱 한번. 날 사용하게 해주지.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네.’
일주일 전 한록에게 약속했던 그 말.
그 말이 곧장 돌아온 것이다.
“이한록. 자네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고...”
최경준이 피식 미소를 짓더니 한록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선 재미, 기대,
그리고...약간의 적개심이 느껴졌다.
“무서운 녀석이군.”
그 말에 한록이 담담하게 답했다.
“자주 듣습니다.”
“하하하!”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린 최경준.
최경준이 턱을 괴고 한록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최경준은 이제 한록을 설득하려는 태도였다.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데려와봤자 아무 쓸모 없어. 그가 삼일의 삶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나?”
폭력적인 b급 영화를 다루는 미국의 거장 알렉산드로 제롬 로게즈. 그리고 회
사원과 어부의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삼일의 삶.
최경준은 그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경준만이 아니라 모두가 할 만한 생각이었다.
“네. 좋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록은 미래를 보고 온 사람. 알렉산드로 로게즈는 삼일의 삶을 보고
‘한국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최경준의 단호한 거절.
“본부장님. 저를 믿지 않으십니까?”
한록의 대답.
그 말에 최경준이 한동안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자네의 능력을 믿지. 이한록 아닌가.”
“그러면 부탁드립니다. 이게 제 한 번의 부탁입니다.”
그러나 최경준은 여전히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사장이 직접 초청한 감독의 일정을 바꾸라 한다. 다시 말해, 사장의 결정을
바꾸라고 하는 것이다.
‘난 알렉산드로 로게즈가 <삼일의 삶>을 좋아할 걸 알고 있지만, 최경준은 모
르니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겠지.’
거기에 그 이유가 완전히 납득되지도 않는 상황.
그 상황에서 최경준은 사장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네를 믿지만, 과연 사장님도 자네를 믿으실까? 자네는 그저 사장님을
설득해달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나는 아니야.”
“그 부분 역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장님은 제가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사장님한테 자네를 소개시켜달란 건가?”
“네. 사장님께 GV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만 주시면 됩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TF팀과 함께여도 좋습니다.”
"모두 함께 기회를 준단 말이군. 그랬다간 오차장이 알렉산드로를 데려갈 수
도 있을텐데. 그럼 자네가 위험해질 거야."
최경준의 말처럼 알렉산드로 로게즈는 양날의 검이었다.
한록이 잡는다면 오차장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단이 될 것이고, 오차장이 잡는
다면 한록에게 반격할 수단이 될 사람.
그러나 한록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어째서?"
"결국 사장님은 저를 택하실테니까요."
한록의 말에 최경준은 아주 오랜 고민에 잠겼다. 한록은 조용히 최경준의 답
을 기다렸다.
5분, 10분.
한마디도 없이 생각에 잠긴 최경준.
그리고 한록을 탐색하기라도 하듯 한록의 발밑을 맴도는 최경준의 선.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선을 보며, 한록은 과거 프레젠
테이션의 기억을 떠올렸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한 한록이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제가 높이 올라가길 바라신다고 말씀하셨죠.”
“그래.”
-한록이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을 때 한록의 몸을 휘감던 최경준의 실.
‘한 번의 기회를 주겠네.’
-한록에게 보이는 최경준의 기대와 흥미.
그 모든 걸 종합했을 때, 최경준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
“그럼 저를 더 큰 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래야 본부장님과 함께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기대감이다.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눈을 감고 말했다.
“이한록. 자네를 보면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거만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실력.
이제는 최경준에게서 사라진 모습.
“대체 어떤 상사가 자네를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더욱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최경준의 실이 다시 뻗어나와 한록의 손목에 닿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손목
을 칭칭 감았다.
“그래. 사장님께 얘기해보지.”
최경준이 말했다.
*
그날 저녁, 부산지사의 사장실.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하정엽이 그를 보고 인
사를 했다.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최경준이었다.
하정엽이 최경준에게 말했다.
“선생님, 부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별 말씀을요. 회의는 어떠셨습니까.”
“일 얘기가 하고 싶으신거군요, 본부장님.”
“예, 맞습니다.”
일 얘기란 말에 하정엽의 ‘선생님’이란 호칭이 순식간에 본부장으로 바뀐다.
거기에 날카로워진 태도.
“경쟁부문의 영화 파워가 약한 게 거슬리는군요. 내년에는 책임자를 바꾸도록
하세요. 단편선과 해외부문, 고전 영화 부문은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경쟁부문. TF팀 전체가 매달린 영화제의 가장 핵심 부분이다.
반면 단편선. 해외부문. 고전 영화부문. 오차장과 최대리 등 개인의 기획안이
었다.
하정엽의 표정을 눈여겨보던 최경준이 말했다.
“사장님께서 추진하신 GV는 어떠십니까.”
많은 뜻이 담겨있는 최경준의 말.
그 말에 하정엽이 생각에 잠겨있다 말했다.
“신인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더군요.”
“예, 맞습니다.”
“내가 기껏 준 기회를 그런데 쓰고 있다니.”
하정엽의 무자비한 말.
“어떤 꼴이 날지 기대됩니다.”
그 속에 담긴 기대.
‘좋아. 됐다.’
그걸 감지한 최경준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사장님.”
“예.”
“이한록을 기억하십니까. GV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사원입니다.”
“예, 기억합니다.”
“젊고 뛰어난 직원이죠.”
“아직 애들 장난입니다.”
한록이 ck에서 아무리 대단한 사원이라 해도, 하정엽은 ck그룹 전체를 책임지
는 오너 일가.
그러나 하정엽이 한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수확이었다.
“사장님,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경쟁부문이 아닌 다른 곳에도 데려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부족합니다. 알렉산드로는 이틀간 경쟁부문을 지켜보고 바로 출국한
다고 했습니다.”
“경쟁부문은 하루만 보고, 다른 프로그램에 시간을 분배하면 됩니다.”
“본부장. 경쟁부문에만 초청하기로 한 건 본부장과도 이미 얘기가 된 사안일
텐데요.”
다소 무거워진 하정엽의 말투.
사장이 내린 결정을 바꾸라고 한다. 심지어 그 결정이 세계적인 유명인과 엮
여있다.
최경준이 아니면 제안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경준은 하정엽의 차가운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때는 비경쟁 부문 프로그램이 완성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신 겁니까?”
“오늘 회의를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비경쟁 부문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소규모 영화들입니다. 알렉산드로 로게즈를 데려갈만한 규모가 아
니에요.”
“소규모인만큼 ck의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이죠.”
하정엽의 말에 단 한번도 물러나지 않는 최경준.
하정엽이 결국 최경준에게 다시 물었다.
“선생님,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이 뭡니까? 어느 프로그램에 알렉산드로 로게
즈를 데려가고 싶으신 겁니까?
그 말에 최경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사장님이 직접 고르셨으면 합니다.”
“이미 말했습니다. 비경쟁 부문이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지만 알렉산드로를
데려갈만한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장님을 설득할 수 있도록 프레젠테이션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최경준의 전략.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ck에서 가장 훌륭한 직원들이 이번 영화제를 위해 노
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시킬테니, 사장님께서 그 중
한명을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케팅 업계의 꽃이라 말할 수 있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한 회사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여러 마케팅 회사가 입찰 형식으로 프레젠테
이션을 하는 것.
단편선. 해외 영화부문. 고전 영화부문. 그걸 만들고 있는 영화사업본부의 엘
리트들.
최경준에게 하정엽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최경준의 말에 하정엽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없다.’
영화제가 2주 남은 상황. 하정엽은 직접 움직이는 오너였고, 영화제까지 처리
해야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런 상황에서 또 부산에 내려와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알렉산드로와
의 일정도 조율해야 하는 상황.
‘거절해야 한다.’
아버지이자, ck회장인 하우석에게 배운 것.
‘너는 회사의 사장이다. 사장은 항상 냉정한 결정을 해야한다.’
“사장님. 그때 이한록의 프레젠테이션을 기억하십니까.”
“예, 기억합니다.”
“재밌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회사에 그렇게 뛰어난 직원들이 있다는 게, 그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
는게, 심장이 뛰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에 하정엽은 -
“네, 재밌었습니다.”
아직 너무 젊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맡은 회사. 최고의 직원들. 모든 걸 쏟아부은 프로젝트.
젊은 사장의 마음이 강하게 움직인다.
“선생님.”
“네, 사장님.”
“선생님은 참 무서운 분이십니다.”
오늘 최경준이 한록에게 했던 말.
그 말과 함께 하정엽이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합니다.”
*
그날 밤. 한밤중에 TF팀 모두에게 도착한 문자.
[긴급 공지.]
[3일 후 경쟁 프레젠테이션 실시.]
[사장님 참관 예정.]
갑작스러운 사장의 방문 소식에 각자의 방에서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오차장. 최대리. 이벤트 팀장. 경쟁부문 팀장. 그리고 한록.
그 문자를 받은 모두가 생각했다.
-이게 부산에서의 마지막 승부가 될 것이다.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이긴 사람이 사장님이 말한 ‘보상’을 가져갈거다.’
TF팀 팀장들의 생각.
‘이게 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모든게 끝이다.’
오차장의 생각.
마지막으로-
“으아...이대리. 프레젠테이션 내가 아니라 이대리가 하는거 어때?”
“네, 좋습니다.”
“괜찮겠어? 아니...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투네?”
“네.”
문자를 받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현과장. 그러나 현과장과 달리 한록은 아
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저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져 본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