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41화 (41/263)

오차장의 사람들(4)

[정말 죄송합니다. 대리님, 제가 잠깐 미쳤나 봅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는

걸로-]

“지금 대표님이 저한테 제안하실 상황입니까?”

순간 말문이 막힌 k필름의 대표.

‘그냥 서른살 애송이가 아니다. ck 간판이라고 불리는 이한록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록을 무시하던 생각을 고친 k필름의 대표.

k필름의 대표는 이제 완전히 저자세로 굴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을 생각해주세

요. 그간의 정을 봐서, 한번만 넘어가주시면, 그러면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

다. 부탁드립니다.]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은 한록.

k필름은 절대 오차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정황 증거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한록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오차장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한록을 노려보고 있었다.

k필름의 대표처럼, 오차장 역시 한록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고는 예

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 말에 k필름의 대표가 애걸했다.

[대리님, 제가 어떻게 누구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까....그것만은 절대 못 합

니다.]

[같은 ck분들끼리 싸움이 나면, 대리님께서도 곤란하신 상황이...]

그 순간.

“대표님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고, 말을 한 사람이 있긴 한 거군요. 우리 ck쪽

직원이고요. 잘 알겠습니다.”

대표의 말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낸 한록.

[!!]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이 일은 내부규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한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싸늘해진 사무실의 분위기. 모두가 한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구과장 때와 똑같은 상황. 그러나 다른 생각들.

‘구과장님이 너무하네. 그래도 이대리님도 적당히 하지.’

한록을 동정하면서도 귀찮아하던 사람들의 시선.

그러나 지금은...

‘와...이대리님 진짜 무섭구나.’

‘잘했네. 저런 데는 한 번 잡아줘야지.’

‘k필름 진짜 짜증났는데...고마워라.’

‘앞으로 이한록한테는 개기지 말아야겠다.’

‘멋있다...’

‘속이 다 시원하네. 멋지다.’

이제는 모두가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한록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록.”

한록의 뒤에 서 있던 정부장이 한록의 어깨를 두드린다.

“잘했다.”

*

점심시간.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며 한록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

어떤 날은 구설수로, 어떤 날은 무용담으로 주목받는 한록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시선이 조금 달랐다.

“이대리. 속이 다 시원하더라.”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고 가는 박과장.

“오늘 냉면 먹으러 갈래? 내가 살게.”

엄지를 치켜드는 송과장.

“대리님. 많이 화나셨어요? 이거 드세요.”

초콜렛을 남기고 가는 유선.

그리고 한록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가는 사람들.

k필름이 워낙 마케팅부서의 속을 썩여오던 거래처였기 때문에, 다들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나 대신 악성 거래처를 잡아주는 동료.

오늘 한록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동료였다.

“이한록.”

모두가 밖으로 나갔을 때, 정부장이 한록을 불렀다.

[점심시간에 보자.]

정부장의 메시지를 보고 정부장을 기다리고 있던 한록.

한록은 정부장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

“오늘 일 말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이 행동할 겁

니다.”

“그게 죄송한 태도냐?”

정부장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록을 나무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k 필름은 잡을 때가 됐지. 누가 하려나 했는데, 다들 눈치만 보던 걸 이한록

이 했네. 그건 잘했어.”

정부장은 오늘 한록의 대처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록이 오늘 k필름과의 일을 끝까지 파헤친 이유.

-최경준과 윗선이 오차장의 녹음 파일에 대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 일이 그걸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최경준은 오차장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회귀 전 최경준은 정말 이 일에 대해 몰랐는가.

-내가 녹음을 공개한다면, 최경준은 오차장을 날려버릴 것인가.

한록이 생각해오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올 차례였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덮자.”

“...누가 한 짓인지 아십니까?”

“뻔하지. 오차장이야. 널 누르고 싶었겠지.”

“그런데 왜 덮자고 하십니까?”

“오차장은 버리기엔 아까운 사람이야. 나는 네가 이걸 이용했으면 한다. 이건

오히려 기회야.”

“아직도 오차장님과 저라는 라인을 못 버리셨습니까?”

한록의 정확한 지적. 그 말에 정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최경준이 알까?’

한록의 의문.

그러나 문제는 최경준이 아니었다.

정부장. 그가 모든 일을 알았고, 덮었다.

회귀 전에도 정부장은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한록. 우리는 오차장의 약점을 잡은거야. 높이 올라가려면 이런 일을 다루

는 법을 알아야 해.”

“누가 우립니까.”

한록이 정부장의 말에 반박했다.

한록과 연결된 정부장의 실.

이 실이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유는 명백했다.

“저는 그런 사람과는 일 안합니다. 신뢰할 수 없어요.”

“그래도 아깝잖아. 오차장의 라인은 쓸모가 있어.”

사람을 쓸모로만 보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잘 생각해 봐. 어차피 이 일은 본부장님이 덮을 거야.”

“해보기 전엔 모르죠.”

“그간 좀 영리해진 줄 알았는데 똑같이 구는군. 이한록. 너도 알잖아.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어? 정치라는 건-”

“부장님.”

한록이 정부장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말했다.

“부장님의 부패에 대해서 변명하지 마세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발언.

하지만 정부장은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오차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해보기 전엔 모른다는 것.

자신이 변명을 하고 있다는 것.

전부 맞는 말이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하고는 일 안합니다.”

“그래서 어쩌려고. 나가기라도 하려고?”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코웃음을 쳤다.

과거 누명을 써서 회사에서 쫓겨났던 한록.

“제가 회사를 왜 나갑니까? 나갈 사람은 따로 있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일에 가담된 모든 사람이 나갈 겁니다.”

한록은 칼을 갈았고,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장님.”

한록이 자신과 정부장의 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목에 연결된 부분이 거의 풀려가는 실.

“똑바로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복수에 예외는 없었다.

*

할 말을 하고 회의실을 나가버린 한록.

“이한록...”

정부장은 회의실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한록 덕분에 상황은 잘 끝났다. 오차장한테는 경고를 주고, 이한록한테 힘

을 실어주려했어.’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한록.

한록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였다.

‘변명하지 마십시오.’

오차장처럼 타락하진 않았으나, 그만큼 많은 일을 눈감아온 정부장.

그가 자신의 직장생활을 돌아보았다.

그간 해 온대로 할 것이냐.

혹은 한록을 선택할 것이냐.

이제 정말로 선택해야할 순간이 왔다.

*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정부장이 한록에게 다가와 말했다.

“본부장님께 말씀드렸다.”

그 말에 한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넌 잘 모르겠지만, 난 많은걸 걸은 거다.”

오차장. 그간 자신이 직장생활을 대하던 태도. 부하를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

“그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아니, 그럴 가치가 있는 건 너지.”

정부장은 그 모든 걸 한록과 바꿨다.

*

본부장실.

그곳에는 최경준과 오차장이 있었다.

오차장이 최경준의 라인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정부장은 최경준에게 오차장에 대해 보고했고, 최경준은 그 즉시 오차장을 불

렀다.

“이한록이 자넬 찔렀어.”

정부장이 올린 파일을 넘겨보는 최경준.

그는 한동안 파일을 바라보다가 오차장에게 물었다.

“오차장. 우리가 안지 몇 년이나 됐지.”

“16년입니다.”

“그래,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최경준.

오차장과 그의 인연은 웬만한 우정보다 길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느라 힘들진 않나.”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려서 오히려 기쁩니다.”

16년간의 인연이자, 고향도 부산으로 같은 최경준.

‘이번 일은..넘어가겠군.’

오차장은 최경준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최경준이 자신을 호출할 때부터 정부장이 한록을 선택한 것을 눈치 챈 오차장.

위기였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차장이자, 그동안 최경준의 손발이 되어서 일해왔던 자신. 그리고 대리 한록.

‘그 둘 사이에서 나를 고르신 거야.’

한록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입사 4년차의 대리.

‘순진하게 날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나,’

이번 일로 한록은 그 오만한 자존심을 꺾어야 할 것이다.

“오차장. 나는 사실 자네가 어떤 식으로 일하든 신경 쓰지 않아.”

파일을 내려놓고 말하는 최경준.

“이런 일은 대부분 잘 덮이니까 말이야.”

그 말에 오차장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때-

“그리고 그건 들키지 않았을 때 얘기지.”

최경준이 표정을 싹 바꾸고 말했다.

최경준은 싸늘한 얼굴로 오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경준의 시선에 오차장이 숨을 멈췄다.

구과장, 남과장을 말 한마디로 제압하던 오차장. 오차장 역시 어디가서나 리

더의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눈 앞에는 진짜 거물이 있었다.

최경준이 한동안 오차장을 바라보다가, 읽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언젠가 오차장이 한록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했다.

“주워.”

*

오차장이 했던 행동과 말을 똑같이 하는 최경준.

오차장이 굴욕감에 이를 악물었다.

법조계 집안. 명문대 출신. 외국계에서 탄탄대로로 출세를 하다가 ck로 거액

의 연봉을 받고 스카웃 되었다.

오차장은 누군가에게 단 한번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어떤 반박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남자, 최경준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자신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간부.

오차장이 굴욕적으로 허리를 굽혀서 서류를 주웠다.

“부산 영화제 때문에 지금 당장 자네 목을 날리지 못하는게 아쉬울 뿐이야.”

허리를 숙인 오차장에게 말하는 최경준.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들키다니. 그 자체로 무능하군.”

자신과 구과장이 직원들에게 해오던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오차장.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고만장하긴.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보지. 오차장. 자네는 그

저 ck를 등에 업고 추태를 부린거야. 그리고 그걸 대리한테 들켰지.”

“이한록처럼 진짜 잘난 놈이 나오면 어쩌려고 이런 짓을 했나. 하긴, 그 생각

을 못했으니 이한록에게 덤볐겠지.”

“오차장. 난 자네를 좋아했네. 하지만 그건 자네보다 더 나은 놈이 나오기 전

까지야.”

끝없이 이어지는 폭언.

“자네가 아직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를 아나.”

“...영화제를 성공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차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주 퇴물이 된 건 아니군.”

그 말에 최경준이 싸늘하게 답했다.

“그래. 거기가 자네 재판장이 되겠지.”

오차장이 처음부터 손을 댄 영화제.

부산 영화제를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굴욕이 오차장을 기다

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굴욕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목숨이 달려 있다.’

오차장 역시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바닥을 기어서 나갈지 지켜보겠네.”

최경준의 말에 오차장이 고개를 숙였다.

한록의 데뷔 무대가 된 부산 영화제.

그곳은 동시에 자신의 단두대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일은 어떻게 책임질 거지?”

“...k필름 쪽에게 상황을 마무리하라고 제안을...”

“아니. 구과장한테 덮어씌우고 내보내.”

“본부장님.”

오차장이 뭐라 말하려 했으나 최경준이 단칼에 자른다.

“추태를 부렸으니 손 하나 정도는 잘려야지.”

“본부장님. k필름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

“입 닥쳐. 자네가 좋아하는 말이지?”

그 말에 오차장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공포와 불쾌함이 덮인 오차장의 얼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한록과 똑같이, 최경준에 대한 의문과 공포가 발끝부터 피어오른다.

“이 일은 구과장이 한 걸로 처리하고 내보내.”

그러나 최경준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네는 6개월 감봉. 그리고...”

“과장으로 강등이야.”

최연소 차장. 마케팅부서 유일의 차장. 마케팅부의 실세. ‘오차장’.

그 명성이 단 한순간에 무너진다.

자신이 그렇게 무시하던 현과장과 같은 위치가 되어버렸다.

징계가 발표되면 나올 사람들의 반응. ‘오과장’이라는 호칭 그 자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치욕이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그러나 오차장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가서 이한록 불러. 당장 회의실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굴욕적인 심부름에도 그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

그게 한록을 건드린 대가였다.

*

본부장실에서 내려온 오차장은 한록에게로 향했다.

한록의 뒤통수가 보이자 숨이 가빠온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뒤통수를 잡아채서 책상에 처박고 싶다.

‘참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록에게 손찌검을 한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흠이 잡힌다면.

최경준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오차장이 이를 악물고 한록에게 다가갔다.

“이한록. 본부장실로 가라.”

한록이 싸늘한 눈으로 오차장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한록이 오차장을 지나가며 말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차장님.”

*

-쾅!

회의실.

오차장이 발로 의자를 걷어찼고, 의자가 땅에 나뒹굴었다.

오차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핸드폰. 화이트 보드. 유리컵.

회의실의 모든 것을 부순 오차장.

“구철웅. 1420호 와서 치워.”

한참을 씩씩거리던 오차장이 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구과장을 기다리며 피가 흐르는 손을 바라보던 오차장. 그리고 오차장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

그간 오차장이 해왔던 것처럼, 한록을 치워버릴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능력만 좋을 뿐이지 멍청하게 굴던 이한록. 그놈이 왜 저렇게 변했는지 도저

히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이 엄청난 위기라는 것.

부산 영화제에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아니, 한록을 잡지 못한다면.

자신의 회사 생활은 여기서 끝이란 것 뿐이었다.

*

“앉게.”

한록이 본부장실에 도착하자 최경준이 웃으며 한록을 반겼다.

‘오차장은 최경준의 사람이다.’

‘과연 최경준은 이 일에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과연 최경준은 어떤 사람인가.’

한록의 의문. 그리고 최경준의 답은-

“잘했네, 이한록.”

칭찬이었다.

“이번에 아주 큰 일을 했더군. 그냥 넘어갔다가 공론화라도 되면 더 큰 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어. 회사도 자네한테 은혜를 입었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하하. 겸손이 과하군. 그 당연한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걸.”

최경준의 연이은 칭찬. 웃고 있는 얼굴.

“이번 달 인센티브도 기대해 봐도 되겠어.”

그러나 한록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차장에 대해 알고 있다.’

최경준의 태연한 태도가 뜻하는 것.

바로 오차장의 비리를 알고 있으며, 오차장의 쓸모가 다하면 언제든지 내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보상을 주고 싶군. 뭐가 좋을까.”

여전히 웃으며 한록을 바라보던 최경준.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사용하게 해주지. 딱 한 번만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 한 번, 언제든 나한테 부탁할 기회를 주겠다는 거네. 어떤 부탁이든 수락

하겠네.”

오차장의 비리를 고발하기 직전에 나온 최경준의 제안.

나쁘지 않은, 아니 꽤나 유용한 카드였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고마운 건 나지. 바쁜 사람을 잡아뒀군. 이제 가보게.”

최경준의 말에 한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최경준이 말했다.

“이한록.”

“네, 본부장님.”

“자네가 위로 올라갈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군.”

‘야망이 있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

그에 한록 역시 명쾌하게 답했다.

“네, 있습니다.”

“왜지?”

“오늘 있었던 일은 전적으로 관리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꼴도 보기 싫습니다.”

“하하. 면목이 없게 만드는 말이군.”

그러라고 한 말이었기에 한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이번 영화제에서 잘해보게.”

말을 꺼낸 것은 이번에도 최경준이었다.

“오차장이 차장이 된 지 5년이던가. 마케팅부서가 오차장의 손 안에 있었지.

이번 영화제가 그 판이 바뀌는 시점이 될 수도 있을거야.”

한록의 편에선 유대리. 곧 회사를 떠날 구과장. 한록을 선택한 정부장. 오차

장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차장의 곁을 떠나는 지금.

오차장의 지난 5년. 그리고 한록이 만들 미래.

“나는...”

“영화제에서 이기는 사람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네.”

그리고 오차장의 마지막 사람, 최경준.

최경준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모든 건 영화제에서 결정될 것이다.

“네,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한록은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

최경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한록.

엘리베이터 앞에는 오차장이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차장의 손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이한록.”

오차장의 말을 무시하는 한록.

“이한록.”

오차장이 다시 한번 한록을 불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록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순간 오차장이 말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바닥으로 쳐박을 거다.”

한록은 오차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했다.

“그럴 능력이 되신다면 말입니다.”

한록의 말에 오차장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오차장이 엘리베이터로

달려 들었으나, 문은 거의 닫혀가는 상황.

한록이 닫혀가는 문 사이로 오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판이 바뀌었습니다, 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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