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차장님 잡고 갑시다(4)
“...삼일의 삶이 일등이라구요?”
“그래!!”
한록을 자기자리로 데려가는 정부장.
정부장의 컴퓨터를 보니, gv 투표가 떠 있었다.
그 결과.
[삼일의 삶-42%]
[도둑-14%]
[친절한 은주씨-12%]
.
.
삼일의 삶이 1위. 그냥 1위도 아니고, 과반에 가깝게 1위였다.
“너 돈 풀었냐? 이 사람들이 삼일의 삶을 다 보긴 한거야? 그리고 전체 투표
수가 왜 이리 많아? 부산 영화제 관객수보다 많겠다!”
도저히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정부장.
“아마 삼일의 삶을 본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을 동원했을 겁니다. 그걸 노렸으
니까요. 그래도...꽤 높게 나왔네요.”
“꽤 높게가 아니야. 42%라고. 이러면 다른 영화로 절대 못 바꾸잖아!”
“그럼 해야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한록.
정부장이 얄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이 놈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는거지?’
이건 그냥 마케팅을 잘한다 수준이 아니다. 사람을 완전히 들었다 놨다, 자기
가 원하는대로 몰고간다.
한록을 노려보던 정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너 원래 이렇게 짜증나는 놈이었냐?”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 말까지 얄밉네. 가봐라.”
정부장의 패배선언에 한록은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키는 한록.
정부장에겐 장난스레 말했지만, 한록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건 나도 예상 못한 일이다. 잘해봐야 2위 정도일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누가 조작했나?’
구글 폼을 켜서 응답을 확인하는 한록.
‘대부분의 응답이 9시 이후네.’
9시 이후, 삼일의 삶에 대폭 몰린 투표수.
[장감독님도 불러주세요~~~]
[장감독님 인스타 보고 왔습니당]
그리고 gv에 바라는 점이란 질문에 남긴 투표 참여자들의 답들.
‘아, 알겠다.’
감이 잡히는게 있다.
장감독의 인스타에 들어간 한록. 그리고 예상은 적중이었다.
[directorjang. 부산영화제에서 GV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제가 진행했던 감독
GV 형식인데요. 꼭 보고싶은 무대가 있어 응원의 글을 남깁니다. (자세히) #
삼일의 삶.]
아주 열심히 적은 글.
아마 이 글 때문에 사람들이 삼일의 삶에 투표를 한 것 같았다.
한록은 바로 장감독에게 문자를 남겼다.
[감독님, ck 이한록 대리입니다. 인스타그램 보고 연락드립니다. gv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 나실 때 전화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이대리님,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대리님. 제가 그렇게 gv 또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왜 저한텐 연락이 없으
셨..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황급히 말을 멈추는 장감독.
그 말에 웃음이 나올뻔 했다.
“죄송합니다. 지구특공대 gv와 부산영화제는 관객이 많이 겹칠 것 같아서 그
랬습니다. 이미 봤던 분들이 많을거라서요. 대신 지방 gv 추친 중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이해를 안 할 수가 없죠.”
‘감독은 영화로 말한다!’던 장감독의 변화.
“제가 사실 말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기회가
있을때마다 꼭 불러주세요.”
한록은 결국 작게 웃고 말았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나저나 감독님. 삼일의 삶 gv가 보고 싶으신가요? 그럼
gv때 감독님 자리를 하나 빼둘까 해서요.”
“아...네. 바다 옆에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삼일의 삶이 이대리님
이 미는 작품 맞죠?”
“투표 결과가 중요하지만, 일단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긴 합니다.”
“삼일의 삶이 보고 싶은 것도 보고싶은건데, 대리님이 원하시는거 같아서 글
올려봤어요. 대리님이 저 많이 도와주셨으니 저도 보답해야죠.”
“...감사합니다.”
‘장감독이 나를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록은 장감독의 말에 살짝 놀랐다.
영화 마케터에게 감독이란 거래처. 그리고 잘나가는 감독이란 ‘클라이언트’.
한마디로 갑이었다.
영화가 잘되면 자기가 명작을 만든 덕분. 영화가 망하면 마케팅이 망했기 때문.
그게 여태까지 한록이 보아왔던 감독들이었다. 그런데 장감독은 지구특공대
개봉부터 지금까지 쭉 한록에게 감사해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이런 인연이 가능하구나.’
망하기 직전의 감독과 대리. 어쩌면 그 둘이기에 가능한 우정.
한록은 장감독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사하실건 없어요. 저도 삼일의 삶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기대
되거든요. 이대리님이 이거 가지고 또 어떤 그림을 만들까.”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 말하는 장감독.
“지금 생각해보니까, 사실 그게 가장 큰 이유 같네요. 이대리님이 생각하는
gv 저도 관객 입장에서 보고싶습니다.”
“그것도 감사하네요.”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살짝만 말해주시면 안 됩니까?”
“안됩니다.”
“예...”
금방 꼬리를 내리는 장감독. 장감독이 아쉽다는 듯 한록에게 물었다.
“그래도 재밌겠죠?”
그리고 한록의 답.
“네, 재밌을 겁니다.”
“제가 만든 거니까요.”
*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대리님.”
“네, 감독님. 좋은 하루 되세요.”
한록과 전화를 끊은 장감독.
그는 한록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네, 재밌을 겁니다. 제가 만든 거니까요.’
한록의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실제로 만드는 능력.
“쓰읍...”
장감독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씨, 좀 멋있는데..?”
*
“다들 주목.”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정부장이 부서 전체에 말했다.
“부산영화제 GV는 삼일의 삶으로 결정됐다. 딱히 다른 팀이 할 건 없지만, 혹
시 업무협조할 거 있으면 잘 도와주고.”
“네.”
대답을 하는 몇몇 차장들.
“그리고...중요한건 이거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정부장.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한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 일이다.’
마케팅부서를 뒤흔들고, 오차장이 강력한 파워를 얻은 그 사건. 현과장이 회
사에서 나가야했던 그 사건이 지금 시작되는 것이었다.
“부산영화제 단편선 중 하나가 계약문제로 상영을 못하게 됐다.”
한록의 예상은 적중했다.
단편선. 단편 영화를 모아서 상영하는 부산영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이는 부산영화제의 하이라이트인 동시에, 오차장이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이었다.
“지금 영화 하나가 빈 상황이야. 최대한 빨리 교체 해야해. 팀마다 계약문제
없는 영화 하나씩 가져와라. 본부장님 특별 지시니까 각별히 신경 써.”
단편영화 ‘오후’의 저작권 분쟁. 그로 인해 최대한 빨리 다른 영화를 수급해
야하는 상황.
“네, 알겠습니다.”
각팀 팀장들이 대답했다.
[단편영화도 하나 정해야하니까 이따 2시에 회의하자.]
그리고 현과장의 메시지.
[과장님, 생각하고 계신 영화는 있으십니까?]
[응. 팀원들 얘기 들어 보긴 해야하는데...]
[나는 일단 '식물' 생각 중이다.]
*
옥상에 올라간 한록.
한록은 의자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일단 ’식물‘ 생각 중이다.’
모든게 과거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식물. 그리고 오차장과 현과장.
한록은 과거를 떠올렸다.
*
회귀 전의 마케팅 부서.
사실 한록은 구과장을 때리고 회계부로 발령이 난 후라, 전해들은 얘기들이긴
했다.
그때도 똑같이 영화를 하나 채워넣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때 현과장이 가져간 것은 바로 ‘식물’의 초기버전인 단편 영화.
반면 오차장이 가져온 것은 주감독의 단편 영화였다.
주감독.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중에 한명.
그가 5년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오랜만에 내놓은 단편을 오차장이 가져온 것
이다.
그 둘이 최종 후보에 올랐고, 내부 시사회 결과 상영작은 ‘식물’로 결정되었다.
‘와, 신인감독이 주감독을 이겼어?’
‘어. 근데 그럴만했어.’
의외의 결과. 하지만 다들 납득할 정도로 ‘식물’의 단편버젼은 센세이션 했다.
하지만 오차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과장! 이거 계약 문제 없다며!’
상영작이 식물로 결정되고, 일처리가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제작사에서 해외독점 얘기 들어본 적 없다잖아! 얘기 안했어?!’
식물 제작사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계약이 꼬이기 시작한 상황.
현과장이 수습하려 했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갔고, 결국 영화는 오차장의
영화로 교체되었다.
‘계약 문제 없는걸로 가져오랬잖아. 그런데 또 똑같은 일을 만들어?!’
‘죄송합니다, 부장님..!’
크게 화가 난 정부장과 입장이 곤란해진 현과장.
‘됐어. 적당히 끝낼거니까 당분간 조용히 지내.’
정부장은 마케팅 부서의 잘못을 축소하려 했고-
‘김성훈. 너 이거 어떻게 처리한거야?’
그 잘못은 현과장과 함께 일을 처리한 법무팀 막내에게로 돌아갔다.
‘김유선. 식물 쪽이 계약 조항 못 들었다잖아. 제대로 전한거 맞아?’
그리고 계약직인 유선에게도.
'꼬리 자르기다.'
사장이 지켜보는 프로젝트에서 실수가 터졌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
과장급을 함부로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 계약직과 어린 막내에게 화살이 돌아
간 상황.
‘제 잘못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나가겠습니다.’
현과장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회사에서 물러난 것이다.
*
그리고 같은 법무팀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영도의 말.
‘형. 내가 성훈이랑 친해서 얘기를 들었는데...’
‘이거 오차장이 한 짓 같대.’
‘형. 그 사람 조심해야 해.’
*
과거를 떠올리던 한록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오차장은 주감독한테 뇌물을 받았겠지. 식물 제작사 쪽에도 뇌물과 협박을
동시에 썼을 거고.’
그간 보아왔던 오차장의 모습. 그리고 주감독과의 관계. 그 모습들을 보면 상
황은 뻔했다.
그리고 지금 현과장은 과거와 똑같이 ‘식물’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상황.
‘가만히 내버려두면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난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는 와중에, 한록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윤감독이었다.
“네, 감독님. CK 이한록 대리입니다.”
“대리님. 문자 보내주신 것 봤습니다. 삼일의 삶이 GV 결정됐다고 하셨죠?”
“네. 말씀드린 대로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리님. 제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니...”
한록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윤감독.
부산영화제는 하정엽이 신경쓰는 프로젝트이자,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된 행사.
특히 이번 해는 홍보를 위해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을 초청했다.
거기서 삼일의 삶을 선보인다는 것. 다시 말해 윤감독에겐 엄청난 기회를 의
미했다.
“대리님, 그런데...”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하던 윤감독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삼일의 삶이 GV로 선택돼서...대리님이 곤란한 일은 없으신거죠?”
‘오차장에 대한 얘기군.’
오차장에게 ‘이한록의 제안을 거절하라’는 협박을 받은 윤감독.
그는 그 즉시 한록에게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록이 또 자신 때문에 오차장과 엮일까봐 걱정이 된 것이다.
“...이건 저희 회사문제니까요. 감독님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리님, 제가...”
윤감독이 어렵게 입을 연다.
“제가 사실, 그날 이후로 항상 녹음기를 가지고 다닙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
기면 바로 녹음할 수 있게요. 물론 오차장님이 다시 부르신 적은 없지만...혹
시 모르니까요.”
자신이 없는, 그러나 진심이 담긴 목소리.
“대리님.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시면, 꼭 저한테 연락주세요.”
“저는 대리님 편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한록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매듭이 지어진 윤감독의 실.
윤감독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란 뜻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한록 역시 윤감독에게 진심으로 답했다.
*
전화를 마친 한록은 현과장의 호출에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현과장과 유선, 그리고 하대리가 있었다.
“일단 GV는 삼일의 삶으로 진행하면 될 것 같고. 그리고 오늘 부장님이 말씀
하신 단편 영화말이야. 넣고싶은 영화 있는 사람?”
아무도 답이 없자 현과장이 다시 말한다.
“잘됐다. 나는 ‘식물’ 넣고 싶거든.”
“아! ‘식물’ 좋죠. 작품성도 좋고, 재밌기도 하고. 특히 외국인들한테 진짜
인기 많을거예요.”
현과장의 말에 하대리가 열정적으로 동의한다.
“그치? 나 이거 좀 제대로 진행해보고 싶어. 요즘 이대리한테 자극을 받았거든.”
아주 의욕적인 현과장의 모습.
‘이대로 가면 현과장님은 또 '식물'을 추진하겠지. 그리고 오차장님한테 똑같
이 당할거고.’
아니, 오차장은 현과장을 노리고 있다.
'대가는 현주훈이 치르게 될 거다.'
아마 회귀 전보다 더 악독한 수를 쓸 오차장. 이번엔 정말 현과장과 유선을
다 날려버릴수도 있었다.
'말려야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이 일을...이용할 수 있다.’
주감독의 영화를 영화제에 넣기 위해 오차장이 벌인 일들. 뇌물. 협박. 떠넘
기기. 당연히 회사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만약 오차장을 <삼일의 삶>으로 이기고, <식물>도 성공시킨다면.'
'거기에 오차장이 여태 저지른 비리까지 엮어서 고발할 수 있다면...'
완전히 오차장을 보내버릴수도 있다.
한록은 이미 오차장의 속내를 다 알고 있는 상황.
이 정보를 이용하기만 한다면, 오차장을 회사에서 제거하고 식물은 아무 문제
없이 상영 할 수도 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다만 걱정인 것은 한록이 이런 일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록은 천천히 자신이 가진 카드를 점검했다.
‘저는 대리님의 편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오차장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윤감독.
‘너 하나 보내버리는 건 쉬워. 그리고 현주훈은 더 쉽지.’
오차장과의 대화녹음.
‘자네가 원하는대로 해보게.’
오차장이 아닌 자신을 택한 최경준.
그리고...
“이대리. 이대리 생각은 어때?”
자신의 손목에 연결된 실들.
*
자신을 바라보는 현과장, 유선, 그리고 하대리.
한록은 생각했다.
‘살다보면 승부를 걸어야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한록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오차장님이 지금 주감독님의 영화를 담당하고 있
는데, 제가 알기로는 두분의 사이가 꽤 각별합니다.”
“응. 주감독님 신인때부터 오차장님이 담당했다고 들었어.”
“그래서 오차장님이 주감독님의 영화를 단편선에 내려고 하신다 합니다. 원래
도 단편선에 포함시키려 했는데, 제작이 늦어져서 못 넣었다고 들었어요.”
“...하. 일이 어렵게 되네. 오차장님 앞마당에서 오차장님이랑 싸워야 하는거
잖아.”
부산영화제의 하이라이트이자, 오차장이 담당한 프로그램인 단편선.
그 곳에 식물을 넣어야하는 상황.
“...이거 좀 어려울수도 있겠네.”
“네. 저희가 생각한 것 이상일수도 있습니다.”
“이대리. 뭐 들은거라도 있는거야?”
오차장에게 ‘널 보내버릴 수도 있다’란 말을 들은 현과장.
현과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고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을 몇 개 들었습니다. 오차장님은 절대 주감독님 영화를 포기하지 않을
거고, 생각보다 일이 커질 수 있어요.”
한록의 말에 하대리의 표정이 굳는다.
하대리도 한때 오차장의 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하대리 역시 오차장의 본
색을 지켜봐왔던 사람.
한록이 말한 ‘생각한 것 이상’이 단순히 일의 규모를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사
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오차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GV 때문에 오차장님과 틀어진 상황에서 식물까지 추진하면...저희 위험할 수
도 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두.
“하지만 동시에 큰 기회일수도 있죠.”
한록과 오차장이 대립을 하고 있는 건 회사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오차장의 앞마당에서 오차장보다 좋은 영화를 가져온다면.
그리고 그 영화를 성공시킨다면.
한록의 팀이 오차장을 누르는 걸 보여준다면...
“영화제는 오차장님께 아니라 우리 몫이 되는겁니다.”
판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오차장님이 그걸 두고 보진 않겠죠.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 막으려
고 들 겁니다. 우리한테 협박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반대
하면, 식물을 진행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둘러보는 한록.
“저는 좋습니다.”
하대리의 동의.
“이대리. 어차피 오차장님하고 붙는건 예정된 일이야. 단지...내가 이걸 컨트
롤 하긴 어려울거 같아. 이대리가 맡을 수 있겠어?”
“네, 알겠습니다.”
현과장의 동의.
“그리고...유선씨.”
마지막으로 한록이 유선에게 물었고-
“저를 믿고 따라와 줄 수 있겠어요?”
유선이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네, 당연하죠.”
“이대리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모두의 동의 아래 회의실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오차장이 무슨 수를 쓰려는 걸까?’
‘내가, 아니 우리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까?’
‘만약 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들의 감정은 두려움, 의아함. 그리고...
‘만약 이기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거지?’
기대.
*
그들을 바라보며, 한록은 과거를 떠올렸다.
-멍청하군.
-그러니까 고발을 당하는 거라네.
회귀 전 오차장이 했던 말.
그 말을 돌려줄 순간이 온 것이다.
*
“결정했습니다. 우리 팀은 식물로 오차장님과 붙습니다.”
한록이 말했다.
작가의말
이대리님이 드디어 정치를 시작합니다.
*6월 1일 서울시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지구를 지켜라’를 상영합니
다! 재개봉을 보고 오실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