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9화 (29/263)

저를 고르시겠죠(2)

오차장이 한록을 바라보았고, 한록 역시 오차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의 오차장.

오차장도 흥분한게 분명했지만, 아직은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 같았다.

‘아직은 부족하다.’

한록은 주머니에 숨긴 녹음기를 떠올렸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오차장의 본모습을 끌어내야 한다.

“본부장님이 널 선택하실 거라고?”

“네.”

“어째서?”

“이런 일로 본부장님을 들먹이는 사람을 원하진 않으실테니까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회의실.

오차장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한록에게 다가왔다.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큰 키의 오차장이 한록을 내려다본다.

“이한록.”

“예.”

“내가 이 바닥에서 너같은 놈 몇 명을 보내버렸는지 아나.”

“모릅니다.”

한록의 대답에 오차장이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접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거기까지 세더니 한록을 바라보는 오차장.

“아홉. 이한록.”

자신의 이름이 불렸지만, 한록은 여전히 당당했다.

“열. 현주훈.”

그러나 현과장의 이름이 나왔을땐 표정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주위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것. 전형적인 오차장의 수법이자, 예전이었다면

한록도 충분히 흔들렸을 말이었다.

오차장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한록에게 말했다.

“부산 영화제에 자리 하나가 빌 거다.”

오차장이 얘기하는 것은 차후 마케팅부서에 파란을 가져올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회귀 전 현과장이 회사를 자기 발로 나가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거기에 삼일의 삶을 넣어주지.”

오차장의 파격적인 제안과 이어진 말.

“이한록. 너 하나 회사에서 내보내는 건 쉬워. 그리고 너보다 현주훈을 보내

버리는 건 더 쉽지.”

삼일의 삶을 영화제에 넣어주겠다는 달콤한 회유. 그리고 현과장을 공격하겠

다는 협박.

절대 거절할 수 없을만한 제안을 가지고, 오차장이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

고 다시 한번 말한다.

“말했지, 이한록.”

“주워.”

삼일의 삶과 현과장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한록이 오차장을 바라본다.

“차장님.”

한록이 입을 열었고...

“이제 저한테 이런 방식은 안 통합니다.”

오차장의 볼펜을 걷어찼다.

*

오차장이 아주 천천히 바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한록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오차장의 등뒤에서 수많은 실들이 뿜어져 나왔다.

한록의 온몸을 조르는 오차장의 실.

아마 지금 칼이 있었다면 한록을 찔러버렸을 수도 있을 법한 분노였다.

그러나 한록은 차분하게 말했다.

“gv는 제가 가져갑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등을 돌린 한록.

‘얻을 건 다 얻었다.’

한록은 오차장을 남겨두고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

“차,차장님. 부르셨습니까?”

한록이 나간 회의실에 구과장이 얼른 달려온다.

“그, 저, 제 지방발령은...”

“입 닥쳐.”

오차장의 말에 구과장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없이 책상에 앉아있는 오차장.

구과장이 보았던 그 어느때보다 화가난 모습이었다.

‘이한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오차장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구과장.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차장님.”

5팀의 남과장이었다.

남과장은 오차장의 또 다른 라인 중 한명. 남과장의 등장에 구과장이 한번 더

움츠러들었다.

오차장의 앞에 나란히 선 구과장, 그리고 남과장.

오차장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구과장.”

“예.”

“주워.”

“...예!”

볼펜을 뜻하는 오차장의 말에, 구과장이 얼른 다가가 몸을 숙였다.

-콰직!

그리고 구과장이 바닥으로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볼펜을 구두로 밟아 부

숴버린 오차장.

아마 구과장이 조금만 느렸으면 구과장의 손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한록 하나 처리를 못해서 이 사단을 내는군.”

“죄, 죄송합니다, 차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구과장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몇 번이나 사과를 했으나, 오차장은 싸늘한 눈으

로 구과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오차장이 시선을 거두자 구과장은 볼펜의 잔해를 주워모아 얼른 몸을 일으켰다.

“남과장.”

“예, 차장님.”

오차장은 이제 구과장은 완전히 무시한 채 대화를 시작했다.

“gv를 가져오는데엔 시간이 걸릴거다. 준비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이한록 주위 사람한테 작업 시작해.”

“...그 녀석도 데려가시는 겁니까?”

남과장의 질문에 오차장이 남과장을 바라보았다. 남과장이 아차, 하는 표정으

로 얼른 고개를 숙였다.

오차장이 일어나서 남과장과 구과장의 앞에 섰다. 그리고 둘을 내려다보며 말

했다.

“그래, 데려간다. 그게 아니면...”

볼펜을 부숴버렸던 것처럼, 바닥에 뒷굽을 강하게 누르는 오차장.

“제 발로 나가게 한다.”

그 속에 담긴 분노에 구과장이 몸을 움츠렸다.

*

회의실에서 나온 한록은 화장실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이어폰을 연결해보니, 다행히 모든 내용이 똑똑히

녹음 되어 있었다.

‘윤감독님이 얘기해주셔서 준비할 수 있었지.’

오차장이 자신을 호출했다는 것을 한록에게 알려준 윤감독.

그 말을 들은 이후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녹음기였다.

‘분명 오차장은 손을 쓰기 시작할거다.’

한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록은 오차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오차장은 여기서 물러날 성격이 아

니다.

또 더러운 방식으로 한록에게서 gv를 뺏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과거 마케팅 부서에서 한록을 고립시켰던 오차장. 그가 사용했던 방법...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겠군.’

이미 모두 짐작이 가는 상황.

그러나 이제 한록에게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 녹음을 공개할 순 없어. 이것만으로는 오차장을 내보낼 수 없으니까.’

녹음기에는 오차장이 한록을 협박한 것. 그리고 현과장을 제거하겠다는 내용

이 똑똑히 녹음되었다.

하지만 오차장의 말처럼 오차장은 최경준에게 총애를 받는 인물이다.

‘이 녹음으로 입지가 조금 줄어들지는 몰라도, 오차장을 완전히 물리칠 수는

없어.’

시간이 필요하다.

오차장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아주 천천히, 상대를 함정에 빠뜨려

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녹음을 공개할 순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오차장이 gv를 위해 손을 쓸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생각

은 없었다.

‘오차장, 현과장. 그리고 마케팅 부서 사람들.’

자신의 계획. 그 속의 등장인물.

‘완벽하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던 한록이 마침내 화장실을 나섰다.

*

며칠 뒤 마케팅부서.

재개봉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gv도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정부장의 표정.

정부장이 한록을 부르더니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gv팀 지원자다. 현과장, 김유선 제외하고 5명. 다 사원이다. 오차장이랑 송

과장이 gv맡고 싶다고 했고.”

이게 바로 오늘 정부장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였다.

gv팀의 지원자가 너무 없을뿐더러, 실무의 핵심인 대리급은 전혀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횐데, 다들 지원을 안해.”

약간 짜증이 담긴 정부장의 말.

“신규 팀으로 신설될지, 기존 팀은 유지하고 gv업무만 추가 될지 모르는 상황

이니까요. 기존 팀이 유지되는 상황이면 업무가 너무 늘어나는게 부담스럽겠죠.”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지원자 수가 적은데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오차장이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록은 그 사실을 정부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리급이 필요해. 이대로 가면 너 혼자 일하게 된다.”

“그럼 기존 팀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gv팀을 신설시켜 주시면 됩니다.”

“본부장님한테 말은 드렸어. 생각해보신다고 하네.”

뜨뜻미지근한 대답.

아마 이 역시 오차장이 먼저 수를 쓴게 분명했다.

점점 꼬여가는 상황. 그럼에도 한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장님.”

“어.”

“제가 본부장님께 한번 말씀드려보면 안되겠습니까?”

대리가 본부장을 찾아가 면담을 하겠다는 말이다. 한록의 말에 정부장의 얼굴

이 크게 찌푸려진다.

하지만 잠시 후 정부장의 손목이 반짝 빛난다.

‘그래. 이한록인데 뭐.’

“말씀은 드려볼게.”

아니나 다를까, 정부장은 허가의 말을 건넸다.

“네, 감사합니다.”

정부장에게 인사를 한 한록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현과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과장님.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어~]

흔쾌히 응답하는 현과장.

‘좋아.’

최경준. 현과장. 그리고...마케팅 부서의 사람들.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마.’

이제는 되돌려줄 시간이 온 것이다.

*

점심시간. 현과장과의 대화를 위해 옥상으로 향한 한록.

옥상에선 박과장의 1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록을 발견하지 못한 듯 멀리서 한록에 대한 얘기가 들려온다.

“너 gv팀 지원서 썼냐?”

“안 썼어. 쓰면 뭐하냐. 어차피 현과장님이랑 그 계약직이 들어갈텐데.”

“그치. 이대리가 고르는거니까 그렇겠지.”

“와, 이대리님이 뽑는다는거 사실이에요? 저는 지원서 썼는데...안되겠네요.”

“그놈 아니면 누가 뽑겠냐.”

1팀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가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이건 들은 얘긴데, 이한록이 팀장 될 거 같다더라.”

“뭐? 진짜? 대리가 팀장이 된다고?”

“지금 날라다니잖아. 팀장 달아주고, 승진 시키려고 하는거 같대. 그 녀석이

팀장 자원했다더라.”

“아씨, 내가 2년 선밴데...”

“난 3년이다.”

한록의 팀장설.

gv팀의 지원자 수가 적었던 이유. 그리고 오늘 한록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였다.

한록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거짓말이지. 팀장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어.’

한록은 한 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근데 누가 그래?”

“남과장님이.”

오차장이 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담배를 피우던 1팀의 대리가 신경질적으로 꽁초를 밟아 끄며 말한다.

“그 녀석 진짜 꼴보기 싫지 않냐?”

역시나 한록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방식일 줄 알았지.’

“그 녀석 우리 후배야. 근데 그 녀석이 팀장을 한다고? 본인이 자원을 해서?”

“아, 이건 좀 아니지...”

한록이 하지도 않은 일과 거짓 정보를 흘린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한록

의 이미지를 망치고, 고립시켜 간다.

이전과 똑같은 수법이었고, 이전의 한록은 이 수법에 완전히 무너졌다.

수십명의 사람 앞에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해명해야하는 것.

‘예전의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한록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정부장, 영도와 연결된 실.

그리고 유선과 연결된 실.

‘대리님. 그...계약직들 사이에서 소문이 조금 돌고 있는데...대리님이 이번

에 새로 팀장이 되실 거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전해주던 유선.

그리고...

“이대리. 무슨 일이야?”

현과장과 연결된 실.

“과장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한록은 현과장에게 얘기를 시작했다.

*

“현과장님. 지원서 봤습니다.”

벤치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한록. 그 말에 현과장이 당황한 표

정을 지었다.

“어...근데 날 불렀다는 건...안 된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저도 현과장님과 같은 팀을 하고 싶습니다.”

한록의 말에 현과장이 안도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그럼 같이 하는거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사람들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한록의 말에 현과장이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을 현과장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가 승진을 위해 팀장을 자원했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습니다.”

“음...이번에 이대리 퍼포먼스가 워낙 좋았으니까. 그래서 그런 소리가 나오

는거야. 너무 신경쓰지마.”

사람들처럼 한록을 비난하기는커녕 위로하는 현과장.

자신의 ‘계획’이 잘 통하리라는 것을 파악한 한록이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다들 오해하고 있고, 그래서 gv팀 지원자 수도 많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현과장님이 팀장이 되시고 그저 팀원으로 활동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

렇게 돼서...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드물게 보여주는 한록의 솔직한 모습.

거기다가, 자신을 팀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까지.

현과장의 마음이 점점 약해진다.

“그래, 진짜 곤란하겠네.”

그러더니 입을 달싹거리는 현과장.

아마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조용히 묻어갈 것이냐.

-아니면 곤란한 상황에 처한 동료를 구해줄 것이냐.

윤감독을 설득하던 날 그랬던 것처럼, 그 사이의 기로에 놓인 현과장.

하지만 한록은 그때처럼 아주 미약하게 빛나는 현과장의 실을 발견했다.

‘성공한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한록이 입을 열었다.

“현과장님, 어떻게 해아할까요?”

10초. 20초. 30초.

망설이던 현과장이 드디어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대리, 내가 도와줄게.”

작전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

그날 저녁, ck enm 근처의 고깃집.

거기선 박과장과 송과장, 그리고 현과장이 저녁 겸 술을 먹고 있었다.

안주거리는 당연히 gv팀 신설에 대한 얘기.

“송과장, 지원서 썼더라?”

현과장이 묻자 송과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왜. 쓰면 안돼?”

“에헤이. gv 내가 맡던거잖아. 송과장이 그러면 안 되지.”

“어차피 이대리가 현과장 데려갈거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써봤다.

우리 팀 애들도 gv해보고 싶다잖아.”

현과장이 gv팀에 포함된다는 걸 당연하게생각하는 듯한 송과장의 말. 그 말에

박과장이 눈을 찌푸린다.

“근데...이거 좀 아니지 않냐?”

“왜?”

의아한 듯 묻는 송과장. 그리고 조용히 눈치를 살피는 현과장.

“부장님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 녀석이 과장들 사이에서 사람을 고른다

잖아. 송과장은 기분 안 상해?”

“뭐...이대리가 기획한거잖아.”

그렇게 말하는 송과장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다.

세상 어느 누가 ‘대리가 과장을 뽑는다’라는 말을 듣고 기뻐할까.

박과장이 송과장의 대답에 조금 더 열을 내며 말했다.

“아니, 들어봐. 그 녀석 지가 팀장하겠다고 말했대. 현과장. 잘 생각해 봐.

현과장 gv 들어가면 그 녀석 밑에 들어가는거야. 족보 완전히 꼬이는거라고.”

“그건 확실히 선 넘었지.”

“그냥 넘은게 아니지. 아주 지랄을 하는거지. 우리팀 애들한테 절대 가지 말

랬다. 거기가면 니 커리어 말아먹는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소주를 들이키는 박과장.

그러나 박과장의 얼굴에 떠오른건 분노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누군 2년째 차장 승진 짤렸는데, 누군 대리단지 1년만에 과장 얘기 나오고...”

박과장이 소주를 한 잔 더 따르며 말한다.

대리, 과장급들이 한록의 팀장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었다.

한록이 과장이 되면 지금 대리급들의 과장 승진은 한자리씩 밀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과장급들은 새파랗게 어린 한록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

한록을 절대 좋게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근데 말이야.”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현과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대리가 나랑 얘기했거든.”

“어. 뭐래? 자기 밑으로 들어오래?”

“아니. 자기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낫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

그 말에 다시 잔을 따르던 박과장의 손이 멈춘다.

“...뭐?”

“자기는 애초에 나를 팀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대. 그게 당연한거고. 근데 어디

서 갑자기 팀장 얘기가 나왔다고, 그래서 곤란하다고 하더라.”

“...그걸 믿냐, 현과장.”

“이대리가 약한 소리 하는 타입 아니잖아. 근데 진짜 힘들어 보였어.”

술자리에 맴도는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송과장이었다.

“하긴. 이대리가 그렇게 승진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그치? 이상하다니까. 박과장. 이대리 얘기 어디서 들은거야?”

“...남과장이랑 구과장이 얘기하던데.”

“어유, 진짜. 구과장이 또 이대리 잡으려는거 아냐?”

구과장의 얘기가 나오자 송과장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자 현과장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왔다.

“아, 구과장이 얘기한거야? 어쩐지. 믿을만한 얘기는 아니네.”

“아니야. 남과장도 얘기했다니까?”

“남과장도 구과장한테 들었겠지.”

“...그런가?”

현과장의 바람잡이에 박과장이 망설이기 시작한다.

“박과장.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이대리가 구과장 때문에 고생한 거 알면서

그런 말을 믿냐. 동생일 잊었어?”

송과장이 핀잔을 주자, 박과장이 다시 머쓱해져서 잔을 든다.

‘...그러고보니, 이한록이 본인이 팀장을 하겠다고 할 놈은 아닌데...’

언제나 일 생각만 하는 한록. 거기다가 최근에는 사람이 조금 유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박과장도 일적으로 한록의 도움을 받은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일지도 모르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자신은 그 소문을 믿었다.

‘...좀 미안한가?’

현과장의 얘기를 들으며, 여전히 갈등에 휩싸인 박과장.

박과장의 귀에 현과장과 송과장의 얘기가 들려와 박힌다.

“근데 부서에 아마 소문 다 나있을텐데. 이대리 또 고생하겠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 나오면 편이나 들어줘야지.”

“나도 그래야겠네. 오해해서 미안하다.”

한록을 두둔하는 둘의 대화를 들은 박과장이 드디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

었다.

“그래, 내가 오해한 것 같다.”

“그치?”

“어. 나도 우리 팀 애들한테 다시 말해둬야겠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현과장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

다음날 오후, 마케팅 부서.

tf팀 미팅을 끝내고 마케팅부서로 출근한 오차장은 분위기가 변했음을 눈치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이한록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어, 이대리님. 혹시 이것 좀 봐주실 수 있어요?”

한록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사람들.

“대리님. 이거 부장님이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한록의 책상에 쌓이는 gv팀 신청서.

“이대리. 오늘 시간내줘서 고마워. 다음에도 식사 한번 하자.”

거기에 한록과 밥을 먹고 온 듯한 박과장까지.

[차장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팀 애들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과장의 메시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한록.’

이한록이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걸 막는 걸 넘어 사람들

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있다.

‘막아야 한다. 지금 당장.’

오차장은 바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이한록.”

그리고 오차장이 한록을 부른 순간, 정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한록. 본부장님이 부르신다.”

“알겠습니다.”

정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한록이 오차장의 곁을 스쳐지나가며 속삭였다.

“말씀드렸죠, 오차장님.”

“이제 저한테 안 통한다고요.”

작가의말

점 찍고 돌아온 민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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