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1화 (21/263)

이 일을 하길 잘했다(3)

“아직 gv 만족도 분석 안 했지?”

“네.”

“오늘 해서 가져와. 퇴근 전까지.”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업무. 거기에 퇴근 전까지 가져오라는 말.

회사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건 갑작스럽게 주어진 업무가 아니라...

“제대로 끝내자. 아마 너한테 엄청난 기회가 될 거다. 그리고 나한테도.”

하늘에서 떨어진 기회니까.

*

“유선씨.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요? gv만족도 분석을 오늘 끝내야해서. 바쁘

면 저 혼자 할게요.”

“오늘 시간 괜찮습니다! 몇시쯤 예상하고 계세요?”

“3시요.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요. 오늘 한가했어요!”

한가지 걱정했던 것은 유선.

이 일이 늘 마감에 쫓기다보니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난다고 해 주었다.

“그럼 3시에 회의실에서 봐요.”

“네!”

‘오늘 한가했다니 다행이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30분 정도 지나자, 현과장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결재를 요청하는 ‘띠롱’ 소리

가 들린다.

-띠롱.

“유선씨, 이걸 벌써 끝냈어?”

-띠롱.

“이것도 끝냈네. 오늘까지만 해서 주면 되는건데.”

-띠롱.

“..유선씨?”

-띠롱.

“유,유선씨. 오늘 반차였나?”

-띠롱.

“이건 다음주 마감인데?!”

그리고 3시.

열정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유선과, 어쩐지 피곤해보이는 현과장이 회의

실에 도착했다.

“유선씨가 왜 갑자기 일을 빨리 하나 싶었는데...역시 이대리였구만...”

유선은 오늘 한가한게 아니라 만족도 조사를 위해 시간을 내준 것이다.

6시까지 끝내기로 한 업무를 3시만에 끝내버린 유선과, 유선에게 시달린 현과장.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현과장님.”

“에잇. 죄송은 무슨. gv 만족도 분석 한다며? 나도 같이 보자.”

그러더니 회의실에 앉는 현과장.

그렇게 한록과 유선, 현과장은 gv만족도 분석을 시작했다.

*

마케팅의 꽃, ‘설문조사’.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보는 설문조사지만, 그 설문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엄

청난 노력과 검증이 들어간다.

기존에 있던 설문지와 고객 반응을 참고해 설문지 초안을 만들고, 초안 설문

지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려서 설문지에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의 소리를 파악한다.

이처럼 설문 조사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하는게

마케팅의 정석.

“엑셀은 돌렸죠? 만족도는 몇점이나 나왔어요?”

“4.7 점이요!”

5점 만점으로 표시되는 gv의 총 만족도 점수. 실제로 사람들이 gv를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를 드러낸다.

“영화관 사업부 기존 gv점수가 3.5점이니까...잘 나왔네요.”

일단 총 만족도는 합격이다. 한록은 유선이 준 엑셀 결과를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객관식.

Q.‘지구 특공대’ gv를 관람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영화가 재미있어서

2)감독을 좋아해서

3)gv를 보고 싶어서

4)기타

가장 답변이 많이 나온 것은 ‘영화가 재밌어서.’ ‘감독을 좋아해서.’ 두 개가

50%, 30%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객관식 문항을 하나하나 분석해나가다보면, 어떤 사람들이 gv를

보러왔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돌아갔는지를 알게 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직장은 사무직. 평소에 좋아하는 장르는 독립영

화고, 주 2회는 영화를 보네요. 지구특공대를 재밌게 봐서 gv도 보러왔어요.

gv가 열리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영화 사이트래요. 보통은 sns를 통해서 알게

되는데, 영화사이트를 통해서 먼저 알게 됐다는게 특별한 점이네요.”

“그건 왜 그런거죠?”

sns담당자인 유선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sns를 통해서 정보를 안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중요해요. gv에 오는 사람들

이 구독하고 있는 sns에는 gv에 대한 얘기가 안 올라왔단 거죠.”

보통 사람들이 이벤트나 전시회를 접하는 방식.

본인이 구독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에 홍보가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게 대부분이다.

분명 gv에 온 사람들도 sns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sns를 통해 정보를

접했단 관객이 많지 않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사실이 있다.

한록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겨있던 현과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gv에 온 사람들이 볼만한 sns가 없다?”

“네, 맞아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보고 있는 sns 계정이 없다는거죠. gv에 오

는 사람은 영화를 깊게 보는 마니아층이고, 보통의 sns는 가볍게 영화를 즐기

는 일반 대중을 위한 거니까요. 거기서 나오는 차이일 거예요.”

대부분의 홍보를 위한 sns는 매니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한다. 파

급효과를 위해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gv에 올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sns를 구독하지 않

는 것이다.

“아..! 맞아요. 제가 올리는 sns도 전부 그런 타입이죠. 데이트하러, 친구만

나러, 가볍게 오는 사람들을 노리고 써요.”

“그게 정석이죠. 그래도 이런 사람들을 노리는 채널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네

요. 이 부분은 제가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sns 말이죠?”

“네. 그런게 하나 있으면 앞으로 프로젝트들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씁...이대리. 괜히 마케팅을 잘하는게 아니었네...데이터를 진짜 잘 본다.”

한록의 말을 듣고 있던 현과장이 혼잣말을 한다.

Q.지구특공대 gv를 접하게 된 경로는?

그 질문 하나로 현재 sns 마케팅의 구조와, 문제점까지 전부 파악한 한록.

그런 한록에게 새삼 대단함을 느낀 것이다.

“이대리 마케팅이 항상 특이하잖아. 그래서 나는 감이 좋은 줄 알았는데...알

고보니까 분석이 더 대단하네. 솔직히 우리 회사에 이만큼 할 수 있는 사람

없을거야.”

현과장의 말은 정확했다.

사람들은 흔히 마케팅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천재적인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고 생각하지만, 한록은 다르게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건 데이터다.’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 관객이 이 영화와, 장르와, 감독과, 시대에

게 무엇을 바라는가. 그게 가장 먼저였다.

“까고 말해서 나는 만족도 조사 대충하는 편인데. 좀 반성해야겠다. 아니, 반

성해도 이대리처럼은 안 될거 같긴 하다.”

솔직히 말한 현과장이 설문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주관식도 다들 열심히 써줬네? 엄청 재밌었나 봐.”

이제 설문지의 꽃, 주관식을 볼 차례였다.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본인의 생각을 써야하는 만큼 귀찮아서 넘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성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아주 강력한 의

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Q.지구 특공대 gv의 개선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대답들.

[객석을 늘려주세요ㅠㅠ~표가 없어서 친구 버리고 혼자 왔어요.]

[퇴근하고 오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주말로 시간을 옮겨주세요.]

[음향이 너무 작음.]

[사회자가 있었으면 합니다.]

[없어요 너무너무 재밌어요~멋쟁이 샤로떼 엔터테인먼트 직원분들 백감독님

이번 영화도 gv해주세용 제발용]

[지구 특공대를 보고 바로 gv도 볼 수 있게 시간대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없음! 계속 해주세요!]

[내 자리 잡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그거 외에는 완벽합니다.]

“객석 늘려달란 얘기가 엄청 많네요?”

“응. 이건 사실 개선점이 아니라 재밌게 봤단거지.”

현과장의 말처럼 객석을 늘려달란 호평이 가장 많았지만, 눈에 띄는 얘기들도

몇몇 있었다.

[지구 특공대를 보고 바로 gv를 볼 수 있게 시간대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케팅에 힌트를 주는 보물같은 의견.

[음향이 너무 작음.]

[사회자가 있었으면 합니다.]

실제 불만사항.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답이 하나 있다.

[없어요 너무너무 재밌어요~멋쟁이 샤로떼 엔터테인먼트 직원분들 백감독님

이번 영화도 gv해주세용 제발용]

“에헤이. 샤로떼는 무슨! 우린 ck enm이라고!”

한록이 손에 쥐고 있는 설문지를 본 현과장. 현과장이 혀를 찬다.

샤로떼 엔터테인먼트. 영화계에서 ck enm과 라이벌인 회사다.

그런데 둘을 헷갈렸다는 것은...

“관객들은 이 gv가 어디서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고 있단 말이네요.”

“어..그렇지. 관객들은 그런거 모르지. 관객이 신경쓰는건 극장 정도니까.”

현과장이 말하는 게 사실이었다. 관객은 ‘영화’를 보러오는거지, ‘어느 회사’

의 영화를 보러오는게 아니니까.

그나마 ck enm은 ck 영화들 특유의 ‘설탕 감성’으로 유명해진 정도.

관객들은 ck가 아닌 다른 회사의 이름은 기억도 하지 못한다. 그나마 시네필

들이 모이는 gv기에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문제가 되나? 다들 gv는 좋다잖아.”

“...네. 맞습니다.”

현과장의 말이 맞았다.

gv의 반응은 좋다. 음향이나 사회자, 홍보 채널 정도만 손 보면 더 말 나올

구석이 없는 정도다.

하지만 은근히 파고드는 찝찝함...그게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와, 마케팅부 만족도 조사 중에 4.5점 넘는거 처음 봤다. 대박 났네.”

“4.5점 넘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그치. 4점까진 잘 주는데, 5점 주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 그건 돈 낸거 보다

더 재밌어야지 주는 점수같아.”

“그럼 gv는 돈값 이상을 했단 거네요?”

“그렇지. 티켓값 더 올려도 될 거 같은데? 이거 봐. [티켓값이 너무 쌉니다.]

이런 말도 있네. 부장님 겁나 좋아하시겠다.”

gv의 대호평에 만족하는 유선과 현과장.

그러나 한록은 계속 아까의 ‘찝찝함’의 정체를 찾는 중이었다.

“들어간다.”

그리고 그 때 들려온 노크소리.

“어, 부장님!”

정부장이 회의실을 방문한 것이었다.

*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정부장의 등장에 유선이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의

현과장.

“무슨 일이십니까?”

“gv만족도 조사 중이지? 보러왔다.”

“아, 네. 반응은 좋습니다.”

현과장이 대답했지만, 정부장은 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록의 굳은 표정에

서 무언가를 읽은 정부장이 말했다.

“이한록은 걸리는게 있는 모양인데?”

“...네. 이 부분은 정리를 좀 하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뭔지 알거 같아. 이거 읽어봐.”

그리고 정부장이 내민 것은 종이 한장.

“저번에 본부장님이 주신 수정방안이다.”

바로 최경준이 gv에 방문해서 적어주고 간 수정방안이었다.

“본부장님꺼라고?”

“대리님, 빨리 읽어보세요!”

한록은 종이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좋으나 대체되기 쉬운 아이템임.

-카피 프로젝트가 나오지 않도록 *브랜드 로열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음.

*브랜드 로열티-해당 브랜드에 고객이 가지는 충성도.

‘아.’

최경준의 메모를 본 한록은 작게 감탄했다.

계속 한록을 괴롭히던 ‘찝찝함’의 정체가 단번에 밝혀진다.

시장의 법칙 같은게 있다. 한 제품이 성공하면, 경쟁사에서는 바로 우수수 비

슷한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그걸 물리치고 선두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 그게 선두회사가 해야할 일이며,

마케팅이 해야하는 일이기도 했다.

“브랜드 로열티. 나도 생각못했다. 근데 중요해.”

브랜드 로열티. 쉽게 말해 이런거다. ‘나이키 매니아는 나이키만 산다.’ ‘조

던은 디자인이 예뻐서가 아니라 조던이라 수집하는거다.’ 한 마디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보고 구매하는 고객.

그런데 브랜드 로열티가 없다.

“내용은 좋아. 감독 gv, 고품격 아이템이지. 근데 샤로떼 놈들이 똑같이 따라

하면 그만이야. 만약 샤로떼가 더 유명한 감독 섭외한다. 그럼 관객들은 샤로

떼 걸로 보러가겠지.”

[샤로떼 엔터테인먼트 멋쟁이!]

그건 관객들이 이 프로그램이 어느 회사의 프로그램인지도 모른다는 것. 곧,

카피 프로젝트가 나오면 바로 관객을 뺏길거란 뜻이었다.

‘브랜드 로열티라...’

한록은 한 영화만을 담당하는 영화 마케터니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브랜드’

자체가 없으니까. 그러나 사업 전체를 다루는 최경준은 신경쓸 만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어. 이건 우리가 gv를 얼마나 잘 만드냐가 문제가 아니

야. 감독이 얼마나 내용을 잘 준비해오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잖아. 회사

측에서 제품의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는거지.”

이번엔 정부장의 의견. 제품의 품질을 높이자는 의견이다.

확실히 위치마다 보이는 게 다른 모양이다. 한록은 최경준과 정부장의 지적을

주의깊게 메모했다. 그리고 정부장에게 물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개선을 바라십니까?”

“우리만의 특색을 넣어야해. 샤로떼 놈들이 못 베낄만한 걸로.”

그렇게 말한 정부장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자기가 말하고도 무리한 요구라

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말이야 쉽지. 브랜드 로열티 못 만들어서 망하는 회사도 있는데, 이걸

한달 안에 만드는 건 불가능해.”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현과장.

“일단 사업화를 하고 나서 개선하면 모를까, 지금 당장 아이템을 만들기는 어

려울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이 만족하지 못하실거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gv를 날려버리진 않

으시겠지.”

“날려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뭐?”

한록의 말에 정부장이 눈을 크게 뜬다.

“본부장님이 내신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gv 사업화는 어려울 거라 말씀하

셨습니다. 그 ‘숙제’가 아마 브랜드 로열티 같습니다.”

“하...”

한숨을 내쉬는 정부장.

“이한록, 할 수 있겠냐? 생각나는게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그렇지만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록의 대답에 정부장이 한록을 노려본다. 한록을 가늠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잠시 후 정부장이 입을 열었다.

“2주 줄게. 그때까지 짜와 봐.”

“네, 알겠습니다.”

“대신, 최대리 돌아오면 최대리한테도 얘기해둘거다.”

최대리. 오차장과 정부장이 재개봉에 붙여주려했던 마케팅부 최고의 엘리트다.

2주 안에 처리를 못하면 최대리를 gv에 투입시키겠다는 말.

gv가 한록의 기획이든, 말든, 정부장 입장에서는 gv를 성공시키기만 하면 그

만이라는 뜻이었다. 그나마 2주의 유예기간을 주는게 한록에 대한 신뢰를 보

여준 것이다.

“2주 안에 끝내. 못하면 최대리한테로 넘긴다. 할 수 있어?”

정부장의 선전포고에 한록이 대답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gv. 그러나 당당히 말하는 한록.

정부장이 한록의 자신감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래. 믿는다.”

그 말과 함께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

정부장이 나간 회의실에 남겨진 한록과 유선, 현과장.

‘우리만의 특색이라...’

최경준이 말한 ‘생색’.

이제 그게 뭔지 대충 감이 잡힌다.

오차장이 프로젝트를 뺏어가지 못하도록. 샤로떼가 카피 프로젝트를 내놓지

못하도록.

‘이 프로젝트는 내가 만들었고, 내가 해야지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다. 당신

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프로젝트를 보러와야 한다.’

이 사실을 알릴만한 부분이 부족하단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인데.’

하지만 이 부분을 잘 해결한다면 차후 회사생활에서도, 마케팅을 할때도 유리

한 점들이 생길게 분명했다. 어쨌든 ‘이름’을 각인시킨다는 건 마케팅의 최종

목적이니까.

‘생색 내기라. 어떻게 하는거지?’

한록은 마케터로서 성장하기 위한 고민에 잠겼다.

*

오차장은 사무실의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문조사함을 들고 밖으로 향하는 한록.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유선과 현과장.

아마 gv의 만족도 조사를 하러 가는게 분명했다.

그리고 30분 정도 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정부장.

“이한록 어디갔어?”

“잠깐 회의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종이를 챙기더니 밖으로 향한다.

‘gv회의를 지켜보러 갔다.’

최근 정부장은 한록을 총애하고 있으며 지구특공대 gv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정도는 마케팅부서, 아니 회사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구특공대는

지금 회사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였으니까.

하지만 오차장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개봉이라.’

정부장이 영화관 사업부의 목을 베고 가져온 gv.

정부장은 gv를 사업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심지어 본부장이 관심을 가지

고 이를 지켜보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한록이 재개봉을 같이 진행한단 말이지.’

정부장이라면 gv에 집중하라고 으름장을 놓아야할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장이

재개봉을 수락했다는 건, 정부장이 설득당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화 속 미로>군.’

그리고 그건 아마 정부장의 아픈 손가락인 <동화 속 미로>가 분명했다.

‘이한록이 <동화 속 미로>를 재개봉 프로젝트에 넣어서 정부장을 설득했군.

그 이유는 아마도...’

한록이 지금 맡고 있는 영화. 삼일의 삶.

‘본인이 담당하는 영화가 웹개봉으로 추락했으니 어떻게든 살리고 싶겠지. 거

기에 딱 이한록이 좋아하는 영화군.’

한록이 <삼일의 삶>을 살리기 위해 재개봉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오

차장은 단번에 파악해냈다.

‘재개봉이 잘 끝난다면 정부장과 이한록의 사이는 더 긴밀해질게 분명하다.’

정부장이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만들었던 <동화 속 미로>. 그걸 한록이 다시

살려준다면, 정부장은 한록의 사이는 아주 가까워질게 분명했다.

‘그 전에 손을 써야한다.’

재개봉이 실패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되도록이면 한록이 좌절할만한 방식으로.

오차장은 한록의 ‘삼일의 삶 홍보방안’을 클릭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창을

켜자마자 확연히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웹개봉의 경우 오히려 작품의 이미지를 훼손하여 재개봉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재개봉을 위해 웹개봉 홍보를 최대한 자제.]

[해당부분은 감독과의 협의가 필요함.]

-감독과의 협의.

그 문장을 본 오차장이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감독님. ck enm 오정욱 차장입니다.”

윤감독이었다.

*

“오차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날 밤. 오차장의 부름에 ck enm을 찾아온 윤감독.

“네, 이쪽으로 오시죠.”

오차장은 윤감독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오차장을 따라 회의실에 앉은 윤감독. 분명 한록이 안내한 곳과 같은 회의실

인데 한층 분위기가 무겁다.

한록과 있을때면 긴장되고, 걱정이 되긴했지만 두렵진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오차장과 단 둘이 있자...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몸을 짓누른다.

“<삼일의 삶> 마케팅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 평범한 대화를 하는 중인데 마치 취조라도 당하는 듯한 기분이다. 윤감

독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록 대리가 웹개봉때는 마케팅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네. 설명 들었습니다.”

“만족하십니까?”

바로 치고 들어가는 오차장.

“그게 무슨...”

“재개봉을 해봤자 상영을 할 수 있는건 최대 60번입니다. 반면 웹개봉은 상영

기간 내내 수만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대리는 지금 그 기회

를 날려버리겠다고 감독님께 제안한겁니다.”

“하지만 이대리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내용입니다.”

“감독님께서 반대하신다면 수정 가능합니다. 제가 지시하겠습니다.”

오차장의 말에 윤감독의 눈이 잠깐 흔들린다. 오차장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

고 말했다.

“이대리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60번 열리는 재개봉에서도 만족할만큼 성과를

얻어낼만한 사람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웹개봉도 잘 진행하겠죠.”

오히려 한록의 능력을 띄워주는 오차장.

그 말에 윤감독은 더욱 혼란에 빠진 듯 했다.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러는거지?’

윤감독의 마음에 떠오른 의문. 그리고 오차장은 그 의문에 돌을 던졌다.

“이대리는 제가 신뢰하는 부하입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직원이죠. 그

러다보니 요즘 맡은 일이 많습니다.”

“...네.”

“지구특공대는 보셨겠죠. 그 영화도, 지구특공대 gv도 이대리가 담당하고 있

습니다. 지금은 gv를 사업화하려는 프로젝트도 진행중입니다. 거기에 재개봉

까지 같이 맡고 있습니다. 일이 너무 많은 상황입니다.”

지금 가장 유명한 영화인 지구특공대. 그 영화를 한록이 맡고 있다는 사실을

듣자 윤감독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나한테 신경을 쓸 수 있을까?’ 라는 마음

이 느껴지는 듯한 얼굴이었다.

영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욕망. 한록의 능력에 대한 윤감독의 신뢰. 그리

고, 자신의 영화에 대한 불안.

충분한 재료가 마련되었다.

이제부터는 오차장의 무대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대리가 <삼일의 삶>에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짓말.

“하지만-”

“오늘은 이 부분을 조율해보고자 감독님을 부른 겁니다. 감독님의 의견을 들

어보고, 웹개봉 마케팅을 원하시면 이대리한테 제가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주도권 잡기.

“하지만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이대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입장입

니다. 그러니 감독님이 정확히 의견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강요.

그리고...

“감독님. 이대로 웹개봉이 망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협박.

말로 사람의 목을 조르는 오차장. 윤감독이 오차장의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시선과, 어찌할 줄 모르는 손. 그리고 달싹거리는 입까지.

오차장의 미끼에 걸려든 사람들이 짓는 표정이었다.

‘됐다.’

오차장은 여유롭게 윤감독의 입에서 나올 항복 선언을 기다렸다.

“오차장님.”

마침내 윤감독이 입을 열었고, 말했다.

“저는 이대리님을 믿습니다.”

한록에 대한 믿음을.

작가의말

Q.설문조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A.설문조사에 참여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다들 설문조사를 보면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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