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4화 (14/263)

대리님처럼 되고 싶어요.(2)

유선의 실이 환한 빛을 내뿜는다.

유선이 한록을 도와줄 때 몇 번 실이 반짝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눈부실 정

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실이 감긴 손목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따뜻함과 빛을 본 순간 한록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에 대답이라도 하듯, 풀릴 듯 말 듯 유선의 손목에 몇 번 감겨

있던 실.

그 실의 마지막 부분이 리본 모양으로 단단한 매듭이 지어졌다.

저 매듭이 풀리지 않는 한, 이 사람은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될 것이다.

한록에게 그런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리님. 제가 이 회사에 남아있는 한, 최대한 대리님을 도

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선은 계속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더 고마운 것은 한록이었다.

‘내가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결국 다들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니는 회사. 그런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니.

이전 생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고마움.

그런 감정을 유선씨로부터 알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이런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다니...’

한록은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지 않다.

그런데 온통 싫은 인간밖에 없는 회사에서 이런 인연이 생기다니. 신기한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유선씨.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요. 선배

들은 그러라고 있는거니까.”

“..대리님...”

그 말에 유선이 또 울컥한다.

“저는...대리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러더니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 입을 여는 유선.

“일 잘하고, 능력있고,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싶어요. 그런데 전 잘하

는 것도 하나도 없고, 아무리 해도 정규직은 못 될 거 같고...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아는데, 어떻게 더 열심히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한록은 잠자코 유선의 말을 들었다. 아마 많은 신입사원이 하는 고민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제는...그냥 열심히 하고싶지도 않아요. 다 그만두고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드는 마음.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 정확히 말하자

면, ‘이제 더 못버티겠다’싶은 마음. 한록 역시 잘 아는 마음이었다.

“제가 너무 나약한걸까요? 다들 이러고 사는데, 저만 못 버티는걸까요?”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까지.

유선은 정말 과거의 한록을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유선이 대답을 바라는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우리 회사가 힘든 편이긴 하죠. 일이 워낙 많아서 사람들이 예민하니까. 저

도 힘들 때 있어요. 유선씨가 부족한 게 아니에요.”

“...제가 능력도 안 되는데 여기 들어와서...욕심을 부린건가 싶기도 해요.”

유선의 뉘앙스를 읽은 한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혹시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어요?”

답이 없는 유선. 맞다는 뜻이다.

‘불안정한 계약직에, 상사들은 미친 꼰대에, 일은 많지. 나도 그만두고 싶었

어. 한서 병원비 때문에 못 그만둔거지.’

“그것도 나쁘지 않죠. 한 번 잘 생각해봐요. 정규직으로 다른 곳에 입사해서

이직하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

한록은 솔직하게 말했다. 유선의 계약이 연장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

런 상황에서 ‘조금만 참아라’라는 희망고문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만두는게 낫다는..말씀이신가요?”

“유선씨가 원한다면요. 유선씨도 부모님의 귀한 딸이잖아요. 이런 대접 받으

면서 참지 말아요. 전 여기보다 좋은 회사도 많다고 생각해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치만 이건 유선씨가 힘들면 그만두는 것도 괜찮다는 거지, 유선씨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기엔 너무 일러요.”

“어떤게 이르다는 말씀이신가요?”

“아직 8개월 밖에 안 됐잖아요. 자기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기는

너무 이른 시기예요. 그런건 2년은 지나봐야 알죠.”

유선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한록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유선씨가 벌써 그렇게 생각하면 좀 아까울 것 같아요. 왜냐하

면...”

한록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의 유선.

“나는 유선씨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유선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유선씨?!”

“대리님...”

회사를 그만둘까 싶을 정도의 힘든 하루. 그런 날 들은 존경하는 사람의 ‘잘

하고 있다’는 말.

그게 드디어 유선씨의 눈물을 터뜨린 것이다.

“유선씨, 화장실 가서 정리하고 와요.”

“네, 죄송합니다...”

여기는 회사1층. 다행히 아직 점심시간이 아니라 사람은 없었지만, 보는 사람

이 있을수도 있다.

한록의 말에 유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유선을 보낸 한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사 8개월의 신입사원.

그 신입사원이 대기업의 sns를 담당하고 있고, 부서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협

업하며 일을 돕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유선은 정말로 잘 하고 있다. 한록은 항상 유선이 글을 잘 쓴다고 생

각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노력과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다들 자기 일하기도 바쁘니까. 나도 그랬지.’

과거에는 한록 또한 자신의 팀이 아닌 이상 부하들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

했다.

회사란 게 그렇다. 당장 나도 힘드니, 남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라도 좀 달라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유선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거라 했다. 그러나 유선은 금방 자리로

돌아왔다.

‘많이 운 것 같지도 않고...’

거기에 차분한 얼굴이다.

유선은 한록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선이 다시 한록의 앞에 앉았다. 유선의 눈빛이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유선

이 진지한 얼굴로 한록을 보며 말했다.

“대리님, 저는 정말 대리님처럼 되고 싶어요.”

아까와 같은 말. 그러나 늘 말하던 존경이나, 부러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꼭 그렇게 되겠습니다.”

다짐과 야망 같은 느낌이다.

‘어라.’

한록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자신 역시 유선을 잘못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서툴지만, 열심히 하고 가능성도 있는 신입사원. 지켜봐주면 잘할 수 있

는 사람.

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유선은 생각보다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에게 목표가 생겼다.

‘...이 사람이랑 일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sns업로드 정도를 부탁하는 일이 아니라. 한록의 아이디어를 유선이

발전시켜주는 그런 그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팀...

어쩌면 그런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네, 지켜볼게요.”

어떤 ‘계획’이 그려진다.

*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한록은 파일을 들고 정부장을 찾았다.

“부장님. <지구를 지켜라> 방송국 소개 멘트와 재개봉 홍보 문구들 가져왔습

니다.”

한록이 준 파일을 넘겨보는 정부장. 아침부터 내내 찌푸려져 있던 얼굴에 조

금 미소가 돈다.

“좋아. 마음에 들어. 속도가 꽤 빠르네. 그래도 인원 필요하면 말해.”

“필요합니다.”

“누구?”

한록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한록의 아이디어를 멋진 글로 발전시켜줄 수 있

는 사람. 큰 예산을 쓸 수 없는 재개봉을 적은 비용으로 온라인에 알려줄 사

람. 한록과 신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딱 한명이다.

“김유선씨가 도와줬으면 합니다.”

한록의 말에 정부장이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김유선은 도움이 안 될 거야. 최대리가 곧 복귀하니까, 최대리랑 같이 해.”

최대리.

오차장과 함께 해외 출장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람이다.

유학파에, 경영전략실 소속. 지금은 차기 임원으로 꼽혀서 전 부서를 돌며 근

무를 하는 중.

마케팅 관련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한록.

차기 임원으로 교육받는 중인 최대리.

그 둘을 한 팀으로 붙이겠다는건 정부장이 정말 이번에 큰 일을 내보겠단 뜻

이었다.

그러나 한록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기획은 다 잡아둔 상태입니다. 저는 같이 기획을 할 사람이 아니라 보

조가 필요합니다.”

“그럼 계약직 중에 다른 사람 골라. 김유선 오늘 하는거 봤잖아.”

이럴 줄 알았다. 아무래도 유선에 대한 정부장의 신뢰는 바닥인 듯 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놨지.’

“부장님, 아까 드린 홍보 문구들 마음에 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잘했어. 그게 왜?”

“그거 다 유선씨가 쓴 문구들입니다.”

작은 반전에 정부장이 다시 한번 파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 어쩐지 이한록이 글을 잘 쓴다 했다.”

“네. 저는 기획을 할 사람이 아니라, 제 부족한 점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

다, 저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닙니다. 그러니 유선씨가 제격입니다.”

“또 사고치면?”

“제가 커트하겠습니다. 그게 최종 담당자가 해야할 일이니까요.”

구과장에 대한 뼈가 담긴 한록의 말.

그 말에 정부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건 구과장 잘못도 있지. 이한록은 그런 잘못을 할 놈이 아니고.”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 정부장.

그러나 한록은 정부장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래, 김유선이랑 해봐.”

“걔가 글은 잘 쓰니까.”

유선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한록이 기쁜 목소리로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정

부장이 한록을 불렀다.

“이한록.”

“네, 부장님.”

“사람 보는 눈도 괜찮네. 앞으로도 주위 잘 살펴봐.”

거기서 끝.

그러나 한록은 정부장의 말이 포함하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한록이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걸 정부장은 벌써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더 높이 봐라.’ ‘더 멀리 봐.’ ‘팀을 꾸릴수도 있다.’

몇 년 후 생길 한록의 팀.

한록, 유선, 어쩌면 현과장. 그리고 어쩌면.....정부장.

지금이 그 시작일 수도 있었다.

*

<지구특공대>의 개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영화관 사업부 유현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케팅부서 이한록 대리입니다. <지구 특공대> 특별 티켓 제작

완료됐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영화관에 배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포토존

말인데요.”

“네. 어렵다고 말씀하셨죠?”

“부장님한테 다시 말씀드려서 허가 받았습니다. 서울에 10곳, 경기 8곳, 지방

마다 1곳씩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통과가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부장님도 기대가 크시더라구요.”

굿즈 관리. 현장이벤트 관리.

“아, 유작가님. ck enm 이한록 대리입니다. <지구 특공대> 소개 내용 메일로

보냈습니다.”

“네, 이대리님. 확인했어요. 문장만 약간 다듬어서 방송 하면 될 것 같아요.

메인으로 바로 보낼게요.”

주말 영화 소개 프로그램 대본.

“이대리님, 안녕하세요. 신나균씨 소속사 오매니저입니다. 오늘 ‘연예가 좋

다’ 쪽에 인터뷰 참고 내용 미리 보내주셨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인터뷰 잘

끝났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신나균씨가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으신데..핵심 포인트를 너무 잘 잡아주셨더

라구요. 리포터 질문이 괜찮아서 인터뷰도 잘 나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촬영보고 다들 놀라셨어요.”

“별 말씀을요. 제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연예 프로그램 인터뷰 참고자료.

개봉직전엔 늘 그렇듯 일이 끝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일이 많은 와중에도 즐거운 일들이 있다면...

“유선씨. 이거 sns들에 업로드 좀 해줘요.”

“그...저...대리님!”

“네?”

“스위처는 홍보 내용을 바꾸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위처는 다른 sns들이랑

약간 감성이 달라서요..! 친근하고 재밌는 걸 좋아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주는 유선.

구과장과 일하던 때와는 달리,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말할

줄 안다. 한록이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것이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네. 스위처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요. 유선씨가 다듬어서 올려줘요.”

유선의 발전은 한록마저 흐뭇하게 만들었다.

“오빠, 이러다 오빠가 쓰러지겠다!”

무엇보다 기쁜건 한서가 퇴원을 하고 아무 후유증없이 건강하단 것. 다만 일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서 미안했다.

“형! 무슨 일이 이렇게 많냐아! 집에 좀 가라!”

뭐, 영도는 신경 쓸 필요 없고.

*

개봉 5일 전. 언론 시사회 당일

[유태혁 평론가: 한국sf의 시작. 그리고 미래.]

[오은상 작가: 아주 좋네요. 이번 달 개봉 영화 중 하나를 꼽자면 <지구특공

대>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올해의 영화를 뽑자면 <지구특공대>를 뽑겠

습니다. 예고편에서 줬던 엄청난 기대감을 영화가 그대로 충족해냅니다.]

[한지태 기자: 사실 마케팅이 너무 좋아서 좀 걱정했습니다. sf영화치고 엄청

난 관심을 받았잖아요. 세련되고 트렌디한 마케팅을 b급 영화가 소화할 수 있

을까 걱정했는데...충분하네요. 별점은 5개입니다.]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리님, 대박이에요!”

“아직이에요. 중요한건 관객들 반응이니까.”

하지만 <지구특공대>는 언제나 평단의 평가가 좋았다. 다만, 관객들의 반응이

늦게 왔을 뿐.

‘진짜 승부’는 언제나 관객을 만나는 자리다.

“조금 더 지켜봅시다. 유선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감동받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지구특공대> gv 홍보 포스팅 작성했습니다. 더 시키실

건 없으신가요?”

“어제 부탁했는데 벌써요? 어떻게 이렇게 일찍 끝냈어요?”

“집에서 미리 생각해왔습니다. 혹시 더 시키실 건 없으신가요?”

“없어요. 얼른 퇴근해요.”

“네! 가보겠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씩씩하고 열심히인 유선. 그 모습을 보고 놀란건 한록만이 아

닌 모양이었다.

현과장이 퇴근 하는 유선을 보고 말했다.

“유선씨가 요즘 진짜 열심히 하네.”

“그러니까. 아, 서은씨도 좀 열심히 해줬음 좋겠다. 난 덕분에 맨날 야근이

네. 현과장 유선씨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난 한거 없는데...이대리?”

현과장이 송과장과 얘기하다가 한록을 바라본다. 그걸 본 송과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유선씨가 요즘 이대리 엄청 따르지. 이대리 보고 배우나보다. 유선씨는

좋겠네. 저런 선배도 있고.”

“이대리, 일만 잘 해. 알았지? 유선씨 우리 팀이다.”

현과장이 괜히 겁을 줬지만 한록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유선이 현과장 역시

얼마나 따르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이만 퇴근해보겠습니다.”

“이대리, 다음엔 서은씨도 교육 좀 시켜주라.”

“어우, 난 언제 집에 가냐..”

“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한록이 가방을 챙겨서 나오니, 유선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잡아놨습니다! 같이 가요!”

힘찬 목소리. 거기에 예전보다 자신을 편하게 얘기는 듯한 말투.

지금이 타이밍인가 싶어 한록은 계속 생각해오던 질문을 던졌다.

“유선씨.”

“네?”

“요즘 회사는 어때요?”

그 말을 들은 유선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힘들어요.”

“네, 항상 그렇죠.”

그리고 이어진 대답.

“그래도 요즘은...재밌어요.”

유선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 말투를 듣자니 한록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록이 다시 한번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씨. 지구 특공대 잘 될까요?”

“그럼요!”

“정말요?”

“네. 대리님이 담당하신 영화잖아요.”

아부 같은 건 조금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

그 말에 한록은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니까, 뭔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예감이 좋았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개봉 당일.

오후 두시. 한록은 개봉이 가장 빠른 광명 ckv로 향했다.

-영화의 가장 빠른 반응을 보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바로 개봉 당일 극장의 엘리베이터, 카페, 화장실로 가면 된다.

한록이 늘 기대작의 반응을 보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원래는 반차를 쓰고 오는데, 오늘은 정부장이 특별히 외근으로 잡아줬다.

한록은 극장 내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보는게 뭐라고?”

“지구 특공대. 나 sf 안 보는데 이건 재밌어 보이더라.”

“아, 신나균 나오는거? 나도 그거 예고편 봤어. 재밌어 보이더라.”

평일 오후의 한산한 극장. 대부분이 <지구 특공대>를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평일 오후에, 가장 빨리 개봉하는 관에 영화를 보러 올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

는 사람들.

입소문이 중요하고, 안목이 높은 한국 영화계.

어쩌면 이들이 한국 영화의 진정한 마케터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지구 특공대>의 반응은 이들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입장했고, 한록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삼십분 후.

한시간 후.

한시간 반 후.

그리고...두시간 후.

영화관을 나와서 화장실로 가는 사람들.

그리고....

“야. 한 번 더 봐야겠는데?”

됐다.

작가의말

모든 회사원 화이팅!

한번 더 봐야겠는데?

“야, 한번 더 봐야겠는데?”

“바로 다음 타임 주세요.”

“자기야, 이거 gv열린대. 그것도 예매하자.”

“와씨..와...와..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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