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3화 (13/263)

대리님처럼 되고 싶어요.(1)

*

자리에 돌아온 한록은 손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긴장했다.’

회의도 아니고, 고작 면담이다.

애초에 한록은 그저 재개봉을 설득하기 위해서 간 것뿐이었다.

그런데 한록의 속을 모두 파악해버린 정부장.

그리고 그런 정부장이 한록에게 한 말...

‘내가 책임질테니까.’

누군가가 원하는 걸 알아내고.

그 마음을 얻는 것.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뤄내는 것.

예전의 한록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

‘크게 봐라, 이한록. 그리고 더 높이봐.’

정부장의 그 말. 어쩐지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

그러나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늘은 <지구 특공대>의 장감독과 gv

를 위한 미팅을 하는 날이었다.

‘사실상 장감독님은 돈으로 꼬신거지.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겠군.’

gv의 퀄리티는 사실상 장감독이 얼마나 준비해오냐에 달린 상황. 오늘은 장감

독이 gv에 우호적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일단 <지구 특공대> 예고편 반응이 좋았던 걸로 분위기를 풀고...gv에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고 해야겠지.’

한록이 계획을 짜는 사이 누군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한록은 조금 긴장한

채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등장한 장감독은-

“지금 당장 gv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엄청..들떠있었다.

*

“지구 특공대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오늘 보니까 유뷰트 조회수가 10만입니

다. 그 히어로 영화가 30만이었는데, 지구특공대가 3분의 1입니다. 사람들이

댓글로 결말을 예상하고 있더라구요. 이게 사실 영화가 스토리가 전부가 아닌

데 말이에요. 흔한 반전 영화로 비춰지면 어떡하죠? 아무래도 gv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방 gv는 안하나요?”

장감독은 속칭 ‘뽕’에 취해있었다. 무명 감독의 영화가 10만 조회수를 찍고

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한록은 웃음을 겨

우 참으며 말했다.

“네, gv는 한번만 계획중입니다.”

“아...그렇군요. 아쉽네요.”

‘저는 영화로 말합니다.’라던 고집 쎈 예술가.

그런 사람이 세상의 관심에 들떠 있는 모습을 보는게 마냥 즐거웠다.

“gv 컨셉은 잡으셨나요?”

물론, 장감독을 어르고 달래고 해야할 일이 대폭 줄어든 것 역시 기뻤다.

“네. 컨셉만이 아니라 내용도 다 짜왔습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실 예정인가요?”

“‘평행 세계’를 얘기할겁니다.”

“..평행세계요?”

“네. 각 등장인물의 선택이 달라졌다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그

과정을 관객들한테 설명할겁니다. 그러면 관객들이 영화의 반전이 아니라 등

장인물들의 선택에 집중하겠죠.”

‘...생각보다 더 괜찮다.’

정부장의 ‘실’을 봤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한 감각이 등을 타고 올라온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기대감이다.

지금 가장 관심을 받는 영화. 그 영화의 감독이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를

풀어준다니.

영화팬이라면 안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장이 이걸 미리 예상했군.’

감독들. 하고싶은 말이 무궁무진하고, 그 말을 꼭 이야기로 전달하고 싶은 사

람들.

그 사람들로 gv를 진행하는 것이니 재미는 보장된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부장은 한록의 gv 얘기를 듣자마자 이를 간파했다.

‘확실히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일단 나도 궁금하고.’

정부장의 예상이 맞았다. 한록 역시 지금 당장 그 gv를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주 좋은 기획 같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내용은 어느정도 준

비 되셨습니까?”

“gv가 3주 남았죠? 절반 정도는 대본도 썼습니다. 뒷부분은 아직이고요.”

“그럼 앞부분 줄거리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저번에 전화드린 현

과장님도 같이요.”

“현과장님이요? 물론이죠.”

“네. 일이 있으시면 못오실수도 있습니다.”

장감독의 허락을 받은 한록은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큰 기대없이 현과장

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뭐야, 이대리. 이 시간에 전화하지마! 아무것도 시키지마!]

지금 시간은 5시 40분. 칼퇴를 원하는 현과장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현과장님. 장감독님이 오셨습니다.”

[엉. 근데 왜? 그 인간 또 gv 안한대? 몰라 몰라, 내일 얘기해!]

“아뇨. gv를 준비해오셨는데, 현과장님이랑 같이 얘기를 들었으면 해서요. 저

혼자 해도 되는데, 궁금하실까봐 전화드렸습니다. ”

[아, 난 또 뭐라고. 근데 나 퇴근할건데..]

일을 시키는게 아니라니 현과장의 목소리가 한껏 누그라진다. 그러더니, 살짝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서 뭘 해 왔다는데?]

“영화와 다른 ‘평행세계’의 결말을 얘기할거라고 하십니다.”

[.........]

침묵.

[.......아, 궁금해 죽겠네! 왜 그렇게 잘 짜왔대?! 나 지금 내려간다!]

그리고 수락.

‘이럴 줄 알았다.’

한록은 웃음을 겨우 참으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현과장님 곧 오신다고 합니다.”

*

“아우, 우리 장감독님.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현과장님.”

현과장이 넉살좋게 인사를 건네자 장감독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장감독

은 한록과 현과장을 앞에 둔 채로 gv의 내용이 될 ‘등장인물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벌어질 결말’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대리.”

장감독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던 현과장이 한록의 팔을 툭툭쳤다. 그리고 a4용

지 구석에 끄적인 글씨를 가리켰다.

<이거 매진이겠다.>

그걸 보고 한록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gv 앞부분 리허설을 마친 한록과 현과장, 장감독.

한록과 현과장은 장감독을 배웅하기 위해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더 준비할게 없을까요? 추가할 내용이라든가...너무 시시하진 않나요?”

“어우, 충분하고도 남죠. 그치, 이대리?”

“네, 맞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좋아할겁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한록의 든든한 말에 장감독이 얼핏 웃음을 보였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gv에

대해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봉이 2주밖에 안 남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장감독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거의 반응이 없던 첫 번째 마케팅.

한록이 그걸 극적으로 바꿔서, 이렇게 영화가 기대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현과장이 한록의 팔을 툭 쳤다. 돌아보니, ‘이대리가 대답해’라는 눈빛이다.

비록 현과장이 상사지만 <지구 특공대>의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한록이니

까. 자기가 그 공을 받지는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한록은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럴때면 무언가 찡한 기분이 든다.

영화. 수많은 사람들이 몇 년동안 인생을 바쳐 만든 작품.

영화 마케팅. 영화를 사람들에게 닿게 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장감독.

...어쩌면 이런 순간을 위해 오차장과 구과장 같은 인간들을 견디고 회사를

다니는게 아닐까.

“네.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한록은 진심으로 답할 뿐이었다.

다소 진지한 인사를 한 장감독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2주 뒤에 꼭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리고 회사 밖으로 향했다.

*

“지구 특공대가 이주 남았구만. gv는 삼주 남았고. 우리 목숨도 삼주 남았구만.”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 현과장이 말했다. 한록이 물었다.

“걱정되십니까?”

“당연하지. gv 망하면 부장님이 우리를 가만두겠어?”

그렇지만 현과장의 얼굴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에 차 있었다.

“근데 저거 안 망해. 지구 특공대도, gv도.”

그 말과 함께, 현과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다소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한 한록.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영도가 한록을 보자

마자 물었다.

“형, 오늘 지구 특공대 감독 왔다며? 그거 개봉 언제야? 같이 보러가자!”

들뜬 목소리의 영도.

‘근데 저거 안 망해. 지구 특공대도, gv도.’

단호한 현과장.

‘기록 세우겠네.’

정부장의 말.

그 모든 말을 떠올리며 한록은 영도의 차에 올랐다.

2주.

이제 2주 후면 <지구 특공대>가 개봉한다.

*

다음날 11시. 마케팅 부서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정부장과, 그 앞에 불려간 유선 때문.

“김유선. 오늘 너 때문에 전화가 몇 통 온지 알아?”

“...죄송합니다.”

“120통 왔어.”

그러니까, 오늘 상황은 이랬다.

유선은 케이스북, 인별, 스위터 같은 마케팅 부서의 sns를 관리하고 있다.

sns에 영화의 홍보를 올리고, 이벤트 등을 진행하는게 유선의 업무.

그런데 어제 유선이 올린 게시물이 문제가 된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소방관이 주인공인 영화.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 기대작이다.

그런데 그 영화의 포스터를 올리면서....

“가성비?”

홍보 문구를 잘못 달아버렸다.

[영화 한 편이면 대배우들 한 번에 볼 수 있는 가성비 팬미팅 >.

실제 사건을 우습게 여기는거냐고 인터넷에 논란이 일었다. 그 결과 오늘 부

서에 직접적으로 걸려온 전화만 120통.

‘아마 유선씨가 관리하는 sns엔 더 많이 욕이 올라왔겠지.’

그리고 유선은 그걸 전부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잘못된 마케팅은 욕을 먹어야한다. 그게 맞는거다. 한록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유선씨 잘못은 아닌데.’

이번 영화는 구과장이 담당하는 영화였다. 한록은 며칠전 들었던 구과장과 유

선의 대화를 생각했다.

[아, 유선씨. 가성비 얘기 꼭 넣으라니까. 배우들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안

넣을거야?]

[그치만 과장님, 이게 좀 민감한 소재라서...]

[유선씨. 나 입사한지 13년. 유선씨 몇 년?]

[...알겠습니다.]

유선은 반대하는 것을 구과장이 억지로 진행시킨 것이다.

보통 마케팅 논란이 날 때는 이런 경우가 많다. 실무자들이 안 된다고 하는걸

위에서 억지로 강요하는 것.

그렇지만 여기서 어떻게 ‘구과장님이 시켰어요’라고 하겠나.

약아빠진 구과장은 쥐새끼처럼 눈치를 보고 있고, 유선이 대신 모든 걸 뒤집

어쓰고 있었다.

한록도 나서지는 않았다.

이건 구과장과 유선의 프로젝트. 여기서 직접적으로 나서면 유선씨만 더 곤란

해진다.

“기사로도 나온 걸 간신히 지웠어. 일이 더 커졌으면 회사 자체의 논란이 됐

겠지.”

“....정말 죄송합니다.”

마케팅이란 건 사람들을 대면하는 직업. 그러다보니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일개 회사원이 회사의 이미지 자체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정부장이 저렇게 화가 난 것도 이해는 간다.

“김유선.”

“네.”

정부장의 부름에 유선이 얼른 대답한다. 목소리가 벌써 떨리고 있었다.

“일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지내.”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계약직 사원인 유선씨.

그런 유선씨에게 ‘한번만 더 실수하면 다음 계약은 없다’라고 통보한 것이다.

‘여전하군. 사람 약점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과거 한록이 정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 실적 앞에서 사람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모습. 피도 눈물도 없는 전략가.

정부장은 또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선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유선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정부장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다.

어정쩡하게 정부장의 옆에 서 있는 유선.

무슨 벌을 세워둔 것도 아니고, 유선은 거기에 어쩔줄 모르고 서 있었다.

‘지적했으면 됐지, 이건 너무하군.’

피도 눈물도 없는 정부장의 모습에 한록은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어쩐지 저번에 현과장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유선씨한테 잘해줘. 유선씨가 이대리를 되게 존경해.]

한록은 유선과 정부장에게로 이어진 손목의 실을 바라보았다.

한록이 오차장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 했던 생각.

‘이 회사에 내 편이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유선의 모습은 꼭 과거의 한록 같았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한록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정부장에게로

향했다.

“부장님.”

“뭐야.”

정부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사무실 모두가 정부장의 목소리에 움찔

했다.

이 사무실에서 평온한 사람은 한록 한 명 뿐이었다.

“어제 말씀드린 재개봉 기획안입니다.”

“벌써?”

재개봉이란 말에 조금 누그러진 정부장의 목소리.

“가져와 봐.”

정부장이 간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고, 한록이 정부장의 곁에 다가갔다. 그

리고 유선에게 살짝 눈짓했다.

“...!”

그 모습을 보고 유선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향한다.

‘이대리님이 유선씨 구했구나.’

사무실의 모두가 안다. 심지어 정부장마저도.

하지만 정부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을 넘은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선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가차없는 사람.

그게 바로 정부장이었다.

“잘했어, 이한록. 이대로 진행해. 같이 진행할 사람 정해지면 누구든 붙여줄

테니 걱정말고.”

그리고 한록은 정부장의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

*

“화장실..다녀오겠습니다.”

정부장에게서 풀려난 유선이 조용히 말하고는 밖으로 향했다.

여자 화장실에 도착한 유선이 향한 곳은 맨마지막 칸.

“흡...”

화장실 문고리를 잠그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화가 난다.

자신이 시켜놓고 가만히 있던 구과장의 모습을 보는 것도.

창피하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혼이 난 것도.

불안하다.

이제 계약연장은 불가능할 것 같은 점도.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너무나 힘들었다.

입사 8개월. 이 화장실에서 운 게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8개월이나 됐는데 회사에 적응도 못하고. 내가 잘하는게 뭐지?’

‘난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내가 대체 뭘 위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이게 내가 원하던 회산가.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인가.

정규직 취직도 못하고. 매일 회사에서 혼만 나며. 잘하는건 아무것도 없는.

‘...이게 내가 원하던 어른인가?’

그런 생각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울고 있을 수도 없다.

[유선씨..이제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ㅠㅠ]

동료가 보낸 카톡을 확인한 유선은 얼른 눈물을 닦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해야 한다. 그게 회사원이니까.

유선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

화장실에서 돌아온 유선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자리에 구과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어, 유선씨. 포스팅 삭제 됐으니 우리 문구 다시 짜야지. 지금 할까?”

자기가 지시한 일이면서 뻔뻔하게 구는 구과장의 모습...

그걸 보는 유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무나 화가 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선씨, 잠시만요. 급한 거라서요.”

그때 한록이 유선에게 말을 걸었다.

“어, 대리님..?”

유선이 한록을 돌아보자 구과장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대리. 유선씨 지금 나랑 얘기중이잖아. 나중에 해.”

“죄송합니다. 오늘 안에 부장님한테 결재를 올려야하는 건입니다.”

한록은 단호한 말에 구과장의 얼굴이 잔뜩 구겨진다. 감히 자기 말을 가로채

다니.

하지만 상대가 한록이라니 어쩔 수 없다. 구과장은 정부장의 자리를 흘끔 바

라보더니 한록을 스쳐지나간다.

“빨리 끝내. 나도 바쁘니까.”

드디어 구과장이 물러났다. 그러자 유선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아마 많이 참

고 있던 모양이었다.

한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유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유선씨. 지구 특공대 페이스북 이벤트 때문에요.”

“아, 네, 네.”

“음..이거 사운드를 좀 들어야 하는데. 1층 카페가서 얘기해요. 노트북 가지

고 내려갑시다.”

“네? 어...네!”

한록이 먼저 자리를 나섰다. 유선은 잠시 당황했다가, 얼른 노트북을 들고 한

록의 뒤를 따랐다.

*

1층 카페에 도착한 한록은 커피 두잔을 시키고, 한잔을 유선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북을 열고 유선에게 말했다.

“자, 저는 지금부터 장감독님 gv 손 볼 거예요. 점심시간쯤 되면 끝나겠네요.

유선씨 붙잡아 둔 거 미안해서 밥 사준다고 할거니까, 점심시간은 편하게 보

내요. 시간 두시간 정도 남았네요. 가보세요. 밥 먹을 사람 없으면 다시 오고.”

“...네?”

유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록을 바라본다. 한록이 왜 이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마음 정리하라고 부른거니까, 두시간 동안 편하게 있다오라구요. 시간 더 필

요하면 말하고.”

한록의 말을 들은 유선은 답이 없었다. 그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한록이 자신을 달래주기 위해 데려온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록은 아무 말 없이 유선을 기다렸다. 유선이 한참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대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기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사람. 유선.

그리고 오차장 때문에 누명을 썼던 자신...

한록은 그 마음을 알기에 유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한록이 일부러 가볍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혹시 알아요? 저한테도 이런 일이 생길지. 유선씨도 다음에 저한

테 이런 일 있으면 도와주면 돼요.”

가볍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유선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한록의 말에 유선

이 고개를 들어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꼭 그럴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 순간, 유선의 실이 한번도 본 적 없는 빛을 뿜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힘내요 유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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