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 하룻밤이 지나고 (4)
왕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병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왕자를 보고 놀라긴 했으나, 그건 왕자가 생각 이상으로 일찍 와서였지 등장 자체는 아니었다.
왜냐면 알버트 왕자가 데이브를 만난 뒤에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아뢰옵기 송구하나 이 도시에 아직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상관없네. 목숨을 걸고 구해준 이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면 왕실의 명예가 서지 않으니.’
대부분 결정은 왕실 비서와 수행원단의 뜻에 따라주던 착한 왕자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고, 놀랍게도 왕자가 승리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비록, 왕실이 기나긴 시간 동안 타협과 협상을 통해 실권을 내려놓았다고 해도, 왕실은 왕실. 그 이름 자체에는 감히 거스르기 힘든 힘이 있었다.
그래서 왕실 비서와 수행원단으로 찾아온 드루이드, 중앙의회 의원, 각종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등 수백 명의 사람이 왕자의 뜻에 따라 란다에 기약 없이 남아 있어야 했고,
같은 이치로 먼저 병문안을 온 아카이브 멀린, 중개인이자 사업가인 포레스트, 선택하는 사람의 마리, 투자자 제인, 파이터 크루 조, 시 내무부 장관 카버, 마탑 교수 케빈 등등 란다에서 한가락 하는 이들 모두 존중을 보이며 병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학파에 관해서는 언제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우르르. 병실 밖을 나오는 와중 내무부 장관 카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카버가 말한 학파란 다름 아닌 마탑에 세울 흑마법 학파. 브라이트 학파로, 이에 관계자인 케빈과 포레스트가 반응했다.
해당 사안을 마탑 대표를 맡은 젊은 홍인(紅人) 마법사, 데이브와 동업 중인 늙은 중개인.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대답했다.
“당장 해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시(市)의 장관과 중개인, 마탑의 아웃사이더 교수.
따로따로면 모를까 이렇게 셋이 한꺼번에 만날 조합은 아니었다.
올리버란 첨가제가 있기에 가능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아는 근처 카페로 가 가볍게 서두만 떼볼까요? 제가 다음 업무가 있어서. 또 파테르교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요.”
케빈과 포레스트 모두 동의했다. 현재 시(市) 관계자들은 란다의 혼란과 피해를 수습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랐으니.
그렇게 세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동했고, 몇몇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마탑 쪽 사람인 언너, 야렐리, 데릭과 재개발 연합 쪽 사람인 마리, 조, 알.
그들은 각자 이유는 달랐으나 브라이트 학파에 관한 내용을 듣기 위해 각각 케빈과 포레스트의 수행원을 자처했다.
뭐 실제로 수행원으로 온 거나 다름이 없었고. 그렇게 나머지 인원인 멀린과 로스번, 제인은 덩그러니 복도에 남게 되었다.
다소 쓸쓸해 보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멀린은 이런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로스번과 제인은 부외자였으니.
그런데, 그런 제인이 갑자기 소리높여 떠나는 일행을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크고 선명하나, 거슬리진 않는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에 카버, 케빈, 포레스트 일행이 멈춰 섰다.
제인에게 쏠린 여러 개의 눈동자.
그중 포레스트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머리가 핑크긴 해도 여러분 따라가겠다고 떼쓸 생각은 없으니까요.”
제인이 한 가지 사실을 못 박은 뒤 사람들을 살펴봤다.
가운데 있는 내무부 장관 카버, 양 영에 선 케빈과 포레스트, 그 뒤에 있는 언너와 야렐리, 데릭, 마리, 조, 알.
제인은 그들 중 한 명을 향해 손가락을 콕 짚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
‘음, 뭐지?’
올리버가 생각했다.
갑자기 깨어나 간신히 상황을 파악하던 중 왕자가 들어왔고, 반사적으로 ‘안녕하십니까. 왕자님.’이라 인사하자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나갔다.
덕분에 올리버는 왕자와 왕실 비서. 이렇게 단 셋이 함께 병실에 남게 되었다.
도대체 이게 뭔지.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이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 올리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고, 왕자 역시 올리버를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해당 공간 안을 점거해 가던 중, 누군가 그 침묵을 깨줬다.
왕실 비서였다.
“왕자께 예의를 갖추시오.”
왕자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딱 서 있던 그가 위엄있게 말했다.
아직 부상의 후유증을 회복하지 못한 올리버는 그제야 머리가 작동. 아차 하더니 침대 위에서 일어나려 했다.
“윽.”
일어나려는 순간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탓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모습을 본 왕자가 올리버를 만류했다.
“난 괜찮으니 앉으시게. 밀러. 그대도 그만해.”
왕자의 근엄한 명에 왕실 비서가 고개를 숙였고, 왕자는 다시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곤 입을 열었다.
“······자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왔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빨리 오셨군요? 방금 막 일어났는데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왕실 비서들은 유능하거든. 어떠한 정보든 빨리 가져오지.”
왕실 비서는 의기양양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바로 떠났어야 했으나, 날 구해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기다렸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는 내 몫이지. 그대 제자가 날 보호해 준 덕분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까.”
“제자요?”
“뉴젠틀맨 소속인 파이터 크루 조. 자네 제자 아닌가?”
“아······. 제가 흑마법을 좀 가르쳐드리긴 했죠.”
올리버가 은근히 돌려 제자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조셉에게 거둬지고, 란다로 와 지금까지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스승, 주인이란 단어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영 부담스러웠다.
“어쨌건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그 말에 왕자는 올리버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혹시, 바라는 바가 있나?”
“예?”
“바라는 것. 단순히 감사 인사로 끝낼 생각은 없네. 자네는 피리 부는 사나이로부터 왕자인 날 구해줬고, 연합 왕국의 땅을 지켜줬으니까. 이미, 통신장치를 통해 왕실에 자네의 공을 알렸고, 돌아가서 상세히 보고할 거네. 당연히 거기에 걸맞은 상을 내릴 거고. 그러니, 혹시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하게.”
이치를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나, 올리버는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생각 자체를 안 한 거였지만.
올리버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바라는 거라.
“음······. 없습니다.”
“없다고?”
“예.”
짧고 간단한 문답. 왕자는 혼란이란 감정을 빛냈다.
“겸양은 미덕이긴 하나, 솔직함도 미덕이네.”
“죄송하지만, 겸양이 아니라 정말 없습니다. 이미, 란다 시(市)에서 원하는 걸 다 얻었거든요.”
올리버는 흑마법 학파를 세우는데, 란다 시(市)와 마탑의 지원을 받기로 한 사실을 설명해 줬다.
“아······. 확실히 나쁘지 않은 보상이군. 그래도 다른 건 없나?”
“예, 없습니다. 왕자님.”
같은 대답을 거듭해 들은 왕자는 난감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뒤를 돌아 왕실 비서에게 명했다.
“밀러. 잠시 밖으로 물러나 주게.”
“왕자님? 그게 무슨······. 전 왕자님의 곁을 지켜야 합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괜찮으니 잠시 물러나 주게. 여기서 내게 위험할 일은 없지 않은가?”
“하오나-”
왕실 비서는 왕자의 뜻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왕자를 걱정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명을 받은 듯했는데, 그의 진짜 업무가 보호인지, 감시인지 약간 헷갈리기 시작했다.
왕자와 비서가 계속해 말을 주고받았고, 결국,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밀러 씨?”
올리버가 왕실 비서의 이름을 불렀다.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제 몸이 안 좋아서요.”
“그게 무슨-”
왕실 비서 밀러가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올리버의 몸. 정확히는 그림자에서 중압감이 뿜어져 나와 그를 잠시 압박했기 때문.
중압감을 발산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덕분에 왕실 비서는 드루이드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환자다 보니.”
올리버가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하자, 비서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정중히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의외라는 듯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런 재주도 있었나?”
“좋아하진 않습니다. 다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 듯 해서요······.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올리버가 말을 마치자 왕자는 평소 쓰던 근엄한 가면을 살짝 벗고는 주변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은 나이대에 걸맞은 소년의 모습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닌 것 같았다.
단순히 소년이라 하기에는 짊어진 짐이 너무나도 많았다.
“솔직히 말해 좀 당황스럽네.”
“무엇이 당황스럽습니까?”
“자네의 모든 행동이······. 약간 의심이 들 정도야.”
올리버는 침묵한 채 왕자의 말에 경청했고, 왕자는 계속해 말했다.
“신대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땐, 자넨 고용된 몸이었지. 임무도 성기사를 도운 게 전부였고.”
“예,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네. 내 목숨을 구해줬어. 왕국의 왕자를. 그런데,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 고맙기보다는 곤혹스러워.”
“왜 곤혹스러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왕자이기 때문이야. 도움을 받으면 그에 걸맞은 상을 내려야 하고. 상을 내리지 않으면 그건 빚이 돼.”
왕자는 올리버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지금 상황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올리버는 왕자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추측해 봤다.
아마 개인의 성품보다는, 환경 탓일 가능성이 컸다.
그는 왕자였으니까.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인 척 계속해 연기해야 하고, 속내를 숨긴 채 접근해 오는 사람들의 심계를 읽어야 하는.
올리버가 잠시 고민했다.
“왜 그러나?”
“왕자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해도 될지 망설여져서요.”
“편하게 하게. 보는 눈도 없으니.”
왕자가 기꺼이 허락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왕자님을 도와드린 이유는 딱히 왕자님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왕자님께 위해가 발생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 건 알았지만, 꼭 왕자님이라 도와드린 건 아닙니다.”
왕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올리버의 말을 의심하고 있는 거였다.
“그럼······. 도운 이유가 뭔가?”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 도와드린 겁니다. 도울 수 있어서요. 보통 그러지 않습니까?”
상상과 상식을 초월한 대답에 왕자는 뭐라 반응하지 못했다.
세계 최강국 연합 왕국의 왕자이자, 제2왕위계승자를 도와준 이유가 아는 사람이라, 도울 수 있으니 도왔다니.
궤를 아득히 벗어난 대답에 왕자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허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 왕자님께서는 십 대 초반의 소년······. 보통 소년을 도와주고 뭘 바라진 않지 않습니까?”
왕자가 따지려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난 왕자야.”
“압니다. 하지만 아직 소년이시기도 하죠.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왕자님을 존경하니까요. 전 왕자님처럼 못할 것 같거든요.”
올리버가 그동안 봐온 왕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변의 수많은 관심과 압박. 그 속에서 자기 책무를 다하려던 모습. 올리버는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조금 도와드렸다고 뭔가 나중에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 부디, 신경 쓰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
왕자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기쁨, 낯섦, 당혹, 희망, 의심, 부담 등. 여러 감정이 뒤엉켜 왕자의 심장은 물론, 뇌에도 혼란을 줬다.
올리버 역시 그런 왕자의 감정과 생각이 보였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냥 이대로 내보내도 문제는 없을 듯했으나, 이미, 많은 부담감을 떠안은 소년에겐 좀 그랬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 올리버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슈욱- 탁.
올리버가 몸 안에 남은 마력을 이용. 병실 한쪽에 있는 자신의 소지품. 가죽케이스를 가져왔다.
올리버는 손안에 들어온 가죽케이스를 열어 안에 든 빅마우스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는 몸체와 돋아나는 눈알과 팔다리.
처음 보는 광경이었는지 왕자는 피부에 소름이 돋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꾸룩?”
완전히 일어난 빅마우스는 왕자를 보며 몸통을 갸웃거렸고, 올리버는 그런 빅마우스에게 부탁했다.
“빅마우스. 그거 좀 꺼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거’라는 추상적인 단어. 허나, 빈 시티에서 수많은 먹보주머니를 먹고, 쓰러트린 빅마우스는 한껏 성장한 지능을 이용해 그게 뭔지 단번에 알아맞혔다.
“꾸에에에에엑!”
“으어.”
빅마우스가 올리버가 앉아 있는 침대 위에 카드를 한 장 게워냈다.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참지 못하고 새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빅마우스가 꺼낸 카드를 집어 들어 왕자에게 내밀었다.
“이건······.”
“왕자님께서 제게 주셨던 보상입니다. 랜드은행의 비밀 금고 권리증요.”
“기억나. 신대륙.”
“저 대신 해당 금고에 이 종이를 넣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모르게요.”
올리버가 가죽케이스에 넣어둔 공간 술식이 새겨진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해당 종이를 한번 본 적 있는 왕자가 되물었다.
“어째서?”
“제가 넣고 싶긴 한데, 수도를 언제 방문할지 몰라서요. 혹시, 어렵겠습니까?”
“그건 아니야······. 남들 모르게?”
“예,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제가 지금 원하는 게 이것뿐입니다.”
진심이 전해졌는지, 왕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올리버가 내민 카드와 종이를 고이 품 안에 넣어놓을 뿐.
“유모한테 부탁하면 남들 모르게 해줄 거야······. 이런 부탁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올리버와 왕자의 대화는 일단락됐다.
왕자는 꿈이라도 꾸다 일어난 듯 믿기지 않는 감정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슬슬 가봐야 해서······. 그건 그렇고 다시 염색할 건가?”
“염색요?”
“그래, 머리카락이······.”
왕자가 말꼬리를 흐리며 머리 한쪽을 가리켰고, 올리버는 공기 중의 수분을 마력으로 응집시켜 얼음 거울을 만들었다.
얼음으로 만든 거울 속에는 염색했던 머리가 다시 새하얗게 탈색된 것도 모자라, 그 범위가 늘어나 있었다.
***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나요?”
크로스로드 호텔 식당. 그곳에서 제인이 말했다.
디저트가 유명한 호텔답게 테이블 위에는 쿠키,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호텔의 대표 디저트가 가득 쌓여 있었다.
“예, 그때도 이렇게 많이 주문해 주셨지요.”
제인의 맞은편에 앉은 마리가 그때를 떠올렸다.
올리버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분홍빛 머리의 그녀가 나타나 합석. 디저트를 사주었다.
“아, 죄송하네요. 그땐 제가 너무 멋대로 굴었지요?”
“별말씀을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마리가 다소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로 까칠하게 대꾸했다.
하나, 마리만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포레스트를 따라 올리버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손을 조금이라도 보탤 예정이었건만, 갑자기 제인의 요청으로 이곳에 끌려왔으니.
심지어 제인과 마리는 그렇다 할 친분도 없는데.
제인도 이 사실을 인지하는지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마리 씨에게 꼬옥 여쭤봐야 할 게 하나 있어서요.”
“뭐죠?”
“데이브를 어떻게 생각하죠.”
멈칫.
마리가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며, 민감한 질문이었기에.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저는 데이브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진심으로요.”
“······.”
“그런데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요. 슬프게도요······.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저보다 아는 게 많고 마음 맞는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요.”
“······원하는 게 뭔가요?”
“데이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죠. 제 여자로서의 감이 마리 씨는 많이 알 거 같다고 하거든요.”
“그러는 그쪽은 그분에 대해 얼마나 아시죠? 아무것도 모르면 할 수 없는 질문인데.”
“무슨 왕자라는 건 들었어요. 손가락에게 납치당했을 때요······.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