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29화 (629/633)

629. 하룻밤이 지나고 (2)

바닥, 벽, 천장이 구별되지 않는. 허공과 같은 이형(異形)의 공간.

그곳에 두 남자가 마주 본 채 앉아 있었다.

“······.”

“······.”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침묵한 채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주 아주 긴 시간 동안.

체감상 족히 며칠은 된 것 같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올리버는 가만히 앉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도, 눈앞에 놓인 쿠키도 먹지도 않은 채, 그저 눈앞의 남자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를.

그렇게 길고 긴 침묵이 이어지다 마침내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남자였다.

“쿠키가 입맛에 맞지 않니? 아이야.”

남자가 손도 대지 않은 쿠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탓에 시선을 읽을 수 없었으나, 최소한 올리버는 그렇게 느꼈다.

올리버는 말없이 그림자를 바라보다 손을 뻗어 쿠키를 한 조각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우물. 우물. 우물. 꿀꺽.

“맛있네요.”

맛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마치, 올리버 입맛에 맞춘 듯해 안 맛있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옛날처럼 당기지는 않았다.

지금 먹은 이유도, 챙겨준 눈앞의 남자를 배려해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지만 일단 그게 예의였으니까.

그 탓이었을까? 올리버는 앞에 그득 쌓인 쿠키가 다소 부담스러웠고, 앞으로 슬쩍 내밀어 같이 먹을 것을 권했다.

“선생님께서도 좀 드시지요.”

“난 됐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단호함마저 느껴졌다.

“옛날에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젠 질리거든.”

“신기하네요. 저도 비슷한데요.”

올리버가 반쯤 먹은 쿠키를 접시 위에 올리려다 잠시 고민하더니, 도로 입에 넣어 우유와 함께 삼켰다.

그리고 나서야 쿠키 접시에서 완전히 손을 털어버렸다.

“질렸다면서?”

“먹던 걸 올리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해서요. 그러니 이것만 먹고 그만 먹겠습니다. 챙겨주신 마음은 감사합니다.”

그 말에 눈앞의 남자는 몸을 살짝 들썩였다.

어째 웃는 거 같았다.

“원하는 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남자와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의자에 앉아 가만히 남자를 관찰했다.

어차피 이곳은 꿈속.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건 제한됐으니까.

물론 꿈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과거 남자가 말하길 올리버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으니, 올리버는 그냥 꿈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그러니 저절로 깰 때까지 가만히 앉아 남자를 관찰할 생각이었다. 계속해 바라보다 보면 얼굴이 보일지도 모르니.

그때,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 조용하구나. 원래는 이것저것 말이 많았던 거 같은데.”

“글쎄요······. 질문해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이야. 난 대답해 줬단다. 그저 네가 제대로 듣지 못한 거뿐이지.”

올리버는 남자가 과거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으나, 제대로 듣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들을 수 있죠?”

“글쎄, 그건 네가 귀를 열어야겠지.”

“이것 보십시오······.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지 않습니까?”

남자의 대답을 들은 올리버가 바로 반박했다. 마치, 따지는 듯, 혹은 짜증 내듯.

보통의 대화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흐름이긴 했으나, 최소한 올리버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올리버 역시 스스로에게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허나, 그에 반해 남자는 생각 이상으로 담담했다.

올리버의 짜증에 그 어떤 불쾌감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해해주듯.

그 모습을 본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근래, 피곤해- 아니, 그냥 제가 잘못했습니다.”

올리버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는 대신 그냥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흑마법 학파의 건립 시도, 오염구역 청소, 드루이드와 피리 부는 사나이 등.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남자의 반응은 괜찮았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라. 니콜······. 아니다. 피리 부는 아이에게 꽤 혼났나 보구나.”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을 아십니까?”

“난 대부분의 일을 다 알지. 거기 그 아이도 포함되어 있고······. 왜? 억울하더냐? 그토록 강한 존재가 있는 게.”

“아뇨.”

올리버가 고개를 저으며 즉답했다.

“저보다 강한 사람이 있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니까, 딱히 억울한 건 없습니다.”

“그래?”

“예, 애당초 제가 흑마법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 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한 것.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 강한 분이 있다고 억울해할 건 아니죠.”

“좋은 태도구나. 그래, 성취는 타인을 보는 게 아닌 자신을 보고 하는거지.”

“다만. 피리 부는 사나이 님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긴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름도 아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정확히는 과거 그 아이가 버린 이름을 아는 거지. 아쉽게도 난 말해줄 수 없구나. 주인이 버린 이름을 알려주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니.”

동의하는 바라 올리버는 억지를 부리지 못했다. 더 궁금한 것도 있었고.

“그럼, 피리 부는 사나이 님께서 왜 그토록 화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올리버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리며 물었다.

평범한 키와 체격. 낡았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의복과 머리. 뱀처럼 예리한 눈과 한때 미소 지었을 것 같은 얼굴.

그는 얼핏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보였으나,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을 통해 그의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분노는 바다처럼 넓고 깊었으며, 덕분에 다른 감정은 모조리 저 아래 집어삼켜졌다.

분노에 삼켜진 자라 해도 무방.

올리버는 개인적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왜 그토록 분노한 건지 알고 싶었다.

이유는 본인도 몰랐다. 그냥, 다른 사람보다 그의 감정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좀 더 공감이 가는 그런 느낌.

“소중한 것을 잃었기 때문이지.”

올리버는 침묵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기에.

원리를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분노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임을 직감했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째 안타까움이 깃든 것 같았다.

“원래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됐지만.”

“예?”

“그 아이는 원래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거라 했다. 본인만 원했다면.“

“아······.”

올리버는 탄성을 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러던 중 예상 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그러지 않았지. 태어난 것만으로 모든 축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고통받지 않을 자격을 가졌음에도 말이야.”

“······.”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태어난 것만으로 축복을 누리고, 고통을 받지 않을 자격이라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라. 다만, 따지기도 뭣해 아무 말도 안 했다.

“왜, 이상하니?”

“아뇨,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 님 말씀하시는 것 맞으시죠?”

“······그래.”

남자가 올리버를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뭔가 걸렸지만, 올리버는 캐묻는 대신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고통을 받으시게 됐습니까?”

“스스로가 그런 선택을 했거든. 맞지 않는 가죽을 뒤집어써 자신을 부정하고, 순리를 거스르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려 했지. 그리고 소중한 걸 잃었고.

“그게 잘못된 겁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잘못된 거라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상에는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이라는 게 있단다. 내가 정원사인 것처럼.”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따졌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 지쳤거든. 다만, 정원사 직위는 유지하고 있다. 이 자리는 비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정원사가 등장할 때까지 내가 지키고 있어야 해.”

다음 정원사라······.

올리버는 이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음에도 생각됐고, 추측하고 싶지 않음에도 추측됐으며, 묻고 싶지 않음에도 묻고 말았다.

“혹시, 그다음 정원사라는 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예?”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네 앞에서 순리니, 역할이니 말하긴 했지만 이미 나부터가 거스르고 있으니······. 그러니 방금 내가 했던 말은 잊어버려도 돼.”

방금까지 모습도 감정도 읽을 수 없던 남자가 갑자기 감정을 드러냈다.

그의 감정에는 극심한 피로와 죄책감, 고통, 미안함 그리고 애정이 빛났다. 올리버를 향한 애정이.

“원래 입바른 말은 하기가 쉽지, 행하는 게 어려운 거고. 난 네게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 너 역시 선택할 자격이 있으니.”

“무슨 자격 말씀입니까?”

“태어난 것만으로 모든 축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고통 따위 모를 자격. 애당초······.”

남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와 동시에 올리버는 남자의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흡사.

“······크으윽.”

올리버가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처음에는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뒤이어 온몸에 격통이 몰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덮치는 고통은 올리버의 뇌를 직접 때려 사고에 혼란을 줬고, 뒤이어 ‘삐이이이······.’ 고막 너머로 잡음이 낀 수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어요! 깨어났다고요······!”

“어르신 불러! 어서!!”

“오, 신이시여······! 천만다행이군.”

“깨어나신 건가요?”

“괜히, 걱정시키고 있네.”

환희, 놀람, 안도, 감사, 걱정 등. 주변에서 온갖 감정이 폭죽처럼 빛났다.

허나,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탓인지, 흐릿한 사고 탓인지 올리버에겐 한순간 성가시게 느껴졌다.

“괜찮나?”

갑자기 몰아닥친 각종 외부 자극에 올리버가 괴로워하던 중 반들반들한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르신?”

“다행이군. 내 두피를 보고 대답했어. 괘씸하지만, 평소랑 똑같아.”

멀린이 올리버의 반응을 보고는 아무 문제 없다고 진단 내렸다.

도대체 뭐가 뭔지······. 올리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때, 욱신거리던 통증이 칼날처럼 사방으로 파고들었다.

갈비뼈, 척추, 목덜미, 내장, 근육 사이사이 전부.

어지간한 고통에 내성이 있는 올리버도 한순간 숨을 멈출 정도.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 위에 누우려던 찰나, 양쪽에서 누군가 올리버를 받쳐주었다.

마리와 제인이었다.

“대표님.”

“데이브.”

“······안녕하세요?”

고통 탓에 순간 숨을 헐떡이던 올리버가 인사했다. 어째 오랜만에 본 기분이었다.

아니, 마리와 제인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포레스트, 알, 조와 그 동료들, 내무부 장관 폴 카버 그 외에도 마탑에서 온 케빈과 야렐리, 언너, 데릭 등등이 있었다.

무슨 모임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다들 무슨 일입니까?”

올리버가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물었다.

이에 포레스트가 대표로 대답해 줬다.

“모두 자네 병문안 왔네.”

병문안이라······.

그 단어를 듣고 나서야 올리버는 이곳이 병원이고, 자신이 온몸에 붕대를 두를 정도로 다쳤다는 걸 인지했다.

그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은-”

“-쫓아냈네.”

“누가요?”

“자네가.”

“예?”

올리버가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쫓아냈다는 단어의 뜻이 기절한 사이 바뀐 것인가 싶었다.

“일단, 그렇게 발표됐네. 자네가 누워있는 시간이 좀 길었거든.”

그 말을 듣자 올리버는 자신이 긴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몸의 생체시계가 애매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뭐, 큰일은 아니다만-

“-잠깐만요.”

뭔가를 떠올린 듯 올리버가 주변을 살펴봤다. 없었다.

“왜 그러나?”

“혹시, 제 쿼터스태프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

그때, 누군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여기요.”

고개를 돌리자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볼 수 있었다. 캔트에게서 받은 쿼터스태프.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쿼터스태프를 잡았다.

“아, 감사합······. 로스번?”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내민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년이 안도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예······. 정신 차리셔서 다행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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