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27화 (627/633)

627. 피리 소리 (6)

붙잡힌 오른팔.

꺼지는 백염(白炎).

주먹을 휘두른 피리 부는 사나이.

뒤이어 올리버의 얼굴과 목, 상체가 오른쪽으로 크게 꺾이며 삐이━! 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가득 메웠다.

“······!”

정신이 아득해지는 위력. 올리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으나,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으며 반격하려고 했다.

“디지즈━”

━━꽝!!

곧바로 이어진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먹에 바로 막히고 말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의 오른팔을 붙잡은 채, 한쪽 손만으로 올리버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얼굴, 복부, 옆구리, 어깨, 팔 등. 부위를 가리지 않았으며,

올리버는 그때마다 끊어질 것 같은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아 반격을 시도했다. 시도하는 족족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반격하기에는 속도, 힘, 술식, 형세 무엇하나 우위인 게 없었으니.

그리고 그것은 올리버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불타버린 오른팔이 막힌 시점에서 올리버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가 의식을 부여잡은 이유는 오직 하나.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왕자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리고 멀린이나 성기사가 지원 와줄 시간을 벌기 위해.

다행히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를 바로 끝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적당히 패주기만 하였다.

그 ‘적당히’라는 게 주먹으로 갈비뼈를 부수고, 발로 다리를 밟아 부러트리며, 오른쪽 어깨를 내리쳐 팔을 못 쓰게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의 숨통을 끊진 않았다.

퍼억.

올리버는 그 점을 이용 피리 부는 사나이가 오른쪽 어깨를 내리친 순간, 왼손을 주먹 쥐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얼굴을 후려쳤다.

부러진 다리와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 탓에 주먹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봤을 때, 힘이 들어갔든 안 들어갔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전혀 통하지 않는군.’

올리버가 미동도 없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마치, 단단한 벽이나, 허공을 때린 느낌이었다.

정반대되는 성질이었지만, 주먹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올리버는 지금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서 그러한 감각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올리버는 이를 한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불타버린 자와 비슷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을 거 같다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무력감.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다만, 불타버린 자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올리버를 대하는 태도였다.

“애쓰는군.”

무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한번 올리버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고.

올리버는 얼굴이 한쪽으로 크게 꺾이며, 핏방울은 허공을 비산, 의식이 끊어지려고 했다.

아마, 이번에는 의식이 끊어졌을 터였다. 올리버 자신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싹······.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먹을 맞느라 너덜너덜해진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네버랜드에서 한 번 느꼈던 그 감각.

그 감각과 동시에 올리버가 간신히 잠재운 그림자가 깨어나더니, 다시 한번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크기를 확장하려 했다.

지평선을 향하듯 쭉 뻗어나가는 그림자.

잠시 후, 바닥에 구속된 그림자는 솟구쳐 올라 수백 개의 겹쳐진 눈을 떴고, 피부가 곤두설 정도로 가지런한 이빨을 쩌저적 벌려 공기를 들이켰다.

언어, 문자, 그림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난해하고 기괴한 모습은 보는 이로부터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부족함이 없었으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당황하긴커녕 호기심이 깃든 눈으로 올리버의 그림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듯.

그때, 올리버가 쥐어짜듯 말했다.

“내 명을······따르십시오!”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쓰러진 올리버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의식을 부여잡은 채, 그림자에게 자기 뜻을 전했다.

진정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고.

놀랍게도 방금까지 자기 뜻대로 움직이던 그림자는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자 멈칫거렸다.

올리버의 뜻에 억눌려진 것.

섬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운 크리처라는 걸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신력이든, 통제력이든, 뭐든.

그런 올리버를 향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물었다.

“이대로면 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자를 진정시키는 올리버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물었다.

그의 말은 조롱도, 오만도 아니었다.

올리버에게 있어 그림자는 억눌러야 하는 불길한 것이긴 했으나, 동시에 지금 유일한 방어 수단이기도 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손에 두들겨 맞은 육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으며, 정신 역시 술식을 발동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오히려 이 와중 그림자를 억누르고 있는 게 기적이었다.

그림자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림자가 없다면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건 확실했다.

요컨대, 지금 그림자를 억누르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

올리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자신의 그림자를 억눌렀다.

가급적 죽고 싶지 않은 올리버가 목숨 이상으로 지키고 싶은 게 있다는 증거였다.

저벅.

힘이 다해 바닥에 엎드린 올리버 앞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가 다가왔다.

당장 다리를 들어 내리찍으면 올리버의 머리를 부술 수 있는 위치.

그러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러는 대신 먼발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듣는 이로 하여금 여러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질문.

그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 대답했다.

란다에서 배운 대화법으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왜 이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전 란다 T구역 30번의 해결사. 데이브······. 전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해결사인 건 맞았으나, 왕자를 지키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없는 올리버가 그리 대답했다.

적당히 둘러대는 말.

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를 따지지 않았다. 올리버가 실제로 그런 의뢰를 받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올리버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였는지였다.

란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

혜성처럼 등장해 순식간에 다크호스로 올라, 살아있는 해결사계의 전설을 제물로 삼으며, 순식간에 하나의 구역을 제 영역으로 삼고, 마탑에 자신의 학파를 세우려는 조금 대단한 인간.

올리버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했다.

“어이가 없군. 자기 피가 특별하다는 것도 알고, 그림자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겨우 그 정도로 소개하다니 말이야.”

대답을 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반응했다.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무덤덤했으나, 미세하게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공감과 동정.

비록 오랫동안 처박아놓은 장난감처럼 낡디낡은 상태였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에게 감정을 보였다.

올리버는 그런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반응에 방금까지 맞은 주먹보다 더 큰 고통이 느껴졌다.

“후욱······. 후욱······.”

얻어맞은 부위에서 통증이 점점 올라오며 올리버는 숨을 몰아쉬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런 올리버를 돌처럼 딱딱한 눈으로 말없이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도래했고, 잠시 후,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공격을 포기한 것.

올리버는 그런 피리 부는 사나이를 향해 손을 뻗어 발목을 붙잡았다.

“놔.”

“어디 가시는 겁니까?”

숨쉬기도 힘든 와중 올리버가 질문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대답했다.

“일······. 약속은 지키자는 주의거든.”

그 일이 뭔지 예상 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처음 나타났을 때 노린 상대는 다름 아닌 알버트 왕자였으니까.

“퍼펫 님이 시키신 겁니까?”

“그게 중요할까?”

피리 부는 사나이가 가볍게 발을 움직여 올리버의 손길을 뿌리치며 답했다.

“상대가 필요한 걸 해주고, 대신 원하는 걸 받는다. 간단한 이치잖아?”

올리버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봤다.

그는 양손을 들어 위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무언가부터 벗어났다는 듯.

그게 뭔지 개인적으로는 궁금했으나, 올리버는 그보다 더 급한 용무를 꺼냈다.

“아무리 일이라지만, 어찌해 그런 힘을 가지고서 아이를 납치하려는 겁니까?”

시간을 끌 목적도 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멀린, 불타버린 자와 결이 다르긴 했으나, 올리버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서 격이 다른 힘을 느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이를 마주한 듯한 형용하기 힘든 감각.

한데, 그런 힘을 가지고 하는 게, 아이를 납치하는 거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올리버의 물음을 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반응했다. 예상치 못한 형태로.

“하······. 하, 하.”

웃었다.

아주 낮고 음산한.

평범하면서도 평범과 거리가 먼.

도덕, 윤리, 법, 신념, 용기, 인간성. 모든 걸 비웃고 조롱하듯 피리 부는 사나이가 웃었다.

지독한 기시감.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신이 웃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

대신, 아이들을 납치해 숲에 유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인 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더 개인적인 거야······. 유일한 낙이거든.”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말했다. 아이들을 납치해 숲에 유기하는 것이 삶의 낙이라고. 허나, 곧이어 정정했다.

“아니다. 진통제에 더 가까우려나.”

낙(樂).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재미.

진통제. 통증을 제거하거나 경감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

두 개의 다른 개념을 통해 올리버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하는 행위가 뭔지, 그 원인이 뭔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자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다.

피로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올리버가 눈을 감은 이유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약간이나마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감각한 올리버가 지금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노괴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한 거였다.

올리버가 아주 힘겹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콰악!

올리버가 채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손을 뻗어 올리버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방금까지 올리버에게 어떠한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금 올리버에게 분노라는 감정을 빛냈다.

“함부로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야.”

“······커억.”

“넌 자신의 세상이 부서지는 게 어떤 건지 모르잖아? 알고 싶지도 않을 테고. 그래서 그림자를 진정시킨 거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손아귀에 힘을 줬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올리버의 숨통. 그러나 귀는 잘 들렸다.

“물론, 비웃는 건 아니야. 이제 와 보니 우습긴 하지만 이해해. 나 역시 한때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외면하면 괜찮을 거라는.”

무심하고, 무감각하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목소리에 미세하게 감정이 스며들었다. 슬퍼 보였다.

“그러니 더더욱 입을 조심해야지. 너의 세상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한 반자 쉬고 다시 말했다.

“······내가 너의 세상을 부숴줄까?”

━촥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질문에 올리버가 왼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함께 목이 붙잡혀 공중에 떠 있던 올리버는 땅 위로 내려왔으며, 피리 부는 사나이의 손에는 찰과상이 생겨났다.

아주 얕디얕은 상처. 그 상처 사이로 붉은 피가 방울방울 돋아났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눈은 아주 살짝 커졌다.

흥미가 피어오르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눈.

당장 꺼질 듯 흐릿해지는 올리버의 눈.

당장이라도 의식이 사라지려는 그때, 올리버가 왼손에 갑자기 나타난 핏빛 칼로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겨눴다. 칼은 올리버의 피와 분노로 이뤄져 있었다.

“내 본명은 올리버······. 고아이자, 광산 노동자이며, 운 좋게 흑마법을 배워, 해결사 데이브가 되고, 마탑의 제논이 된······. 그냥 운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

“그냥 운 좋은 사람······. 제가 그리 정했습니다. 그러니 일을 계속하시려거든 저부터 먼저 해치우십시오.”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리버가 스스로를 정의했다.

모든 의견을 수용하며 받아들이던 올리버가 가장 선명하고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 모습에서 올리버가 목숨을 걸었다는 걸 인지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어 왕자를 지켜주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시하다니.

이타심과 이기심. 정반대되는 개념이 혼합되어 있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긴, 저 문제는 이성, 합리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긴 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고.

하아. 하아. 하아······.

올리버가 실낱처럼 가늘어진 숨을 내쉬는 와중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거래할까? 너도 약속은 중시할 테니.”

올리버가 반응을 보였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면 더는 왕자를 쫓지 않고 물러나 주겠다고 뜻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원하는 건 올리버도 바라는 바였다.

자신에게 상관하지 말라는.

갑자기 나온 너무나도 좋은 조건. 허나, 함정 따위는 없어 보였다.

육체, 정신 모두 한계에 다다른 올리버는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쓰러진 올리버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나오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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