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 피리 소리 (5)
콰화화화화화하하하하하항항━━━━!!!!
수많은 마천루가 즐비한 란다의 중심부. 그곳에 때아닌 대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규모가 어찌나 큰지 도시 곳곳에 쥐 떼가 출몰하고, 시체가 되살아나는 다급한 순간임에도 불구. 사람들은 화재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은 상류층 거주지에 사는 시의원도, 중산층 거주지에 시공무원도, 하류층 거주지에 사는 한 복지단체의 원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재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으니.
흡사,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만든 신분의 고하와 재산의 유무 따위는 한순간에 재로 만들, 접근조차 불가(不可) 하는 재앙.
허나, 그 재앙 한가운데 두 명의 남자가 있었고, 그중 하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와 같은 목소리와 억양으로 질문했다.
“다시 묻는다. 너 뭐냐?”
그 모습에 올리버는 조용히 경악했다.
감정과 마력을 뒤섞은 복합 술식인 [탐화(貪火)]에 숲을 통째로 장작으로 삼았건만,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이는 농담도, 비유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닿지 않았다.
그 증거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아무런 애를 쓰지 않음에도 화염 속에 멀쩡히 서 있었다. 옷자락 하나 그을리지 않은 채.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과 같은 모습.
최소한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줄줄 알았건만······.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올리버는 곧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통제권 아래에 있는 검은 화염. 탐화(貪火)를 조종하는 것.
올리버는 영향력을 발휘해 탐화(貪火)가 주변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고, 대신 화염을 내부로 응축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
억지로 화염을 압축시키자 내부의 밀도가 높아지며, 화염의 열기와 압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술식을 발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력과 감정마저도 불살라 버릴 수준.
덕분에 화염 내부에서는 어떠한 술식도 발동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올리버가 걱정스레 생각했다. 과연 이것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막을 수 있을지.
허나, 고민만 할 수 없었다.
올리버는 지층처럼 압축된 화염을 계속해 눌러 피리 부는 사나이의 행동을 제약하는 동시에, 화염의 일부를 짐승의 이빨과 손톱으로 변화시킨 후,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게 했다.
탐욕스러운 성정의 탐화(貪火)는 굶주린 짐승처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난자했으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보이지 않는 방벽을 만들어 이를 별 어려움 없이 막아냈다.
올리버는 그나마 화염에 내성이 있고, 탐화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 버티는 거였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냥 막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
그런 올리버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말을 걸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군. 뭐, 상관없어.”
뭔가를 결정한 듯한 목소리. 올리버의 피부에 흠칫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며, 어김없이 피리 부는 소리가 울렸다.
퐈━━━악!
피리 소리가 울리자 공기······. 아니 공간 자체를 찢는 소리가 울리며 탐화가 산산이 조각났다.
올리버가 가진 비장의 술식 중 하나가 순식간에 무력화된 것.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채 인지하기도 전에 저 멀리 있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눈 깜짝할 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답하게 만들면 되니까.”
무심한 한마디. 피리 부는 사나이가 팔을 휘둘렀다.
파하하항━!!!
주먹을 휘두르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올리버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은 것뿐.
그러나 그 가벼운 동작에 공기가 찢어지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렸고,
올리버는 아까 전 사방에 흩뿌린 공간 술식이 새겨진 나무 막대기 중 하나를 발동해 거리를 벌려 피해야 했다.
그만큼 피리 부는 사나이의 힘은 위협적이었다.
살기가 깃든 주먹이 아닌 그저 붙잡기 위해 팔을 휘두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거리를 벌린 올리버를 단번에 찾아 고개를 돌리더니, 접근하는 대신 피리를 입에 댔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피리가 흑마법의 발동을 도와주거나,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거라면 몰라도, 피리에서는 어떠한 기운도 발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리를 불다니.
그러나 올리버가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피리 소리는 울렸고, 그 직후 올리버 주변 풍경이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이이이······!
이미 폐허가 된 대지가 요동쳐 갈라지고, 언덕이 생기며.
건물은 재조립돼 크라켄의 다리 같은 형태로 지면을 마구 내리쳐 땅을 흔들리게 했다.
악몽과 같은 기괴한 광경.
그 요동치는 도시의 풍경 사이로, 온몸이 검게 물든 좀비 떼들이 수십 개의 섬광처럼 번뜩이며 올리버 주변을 포위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좀비를 강화한 것으로, 좀비들의 손에는 아까까지는 없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시체······. 시체를 가공해 만든 무기다.’
살점과 뼈로 이뤄진 무기를 보며 순간 올리버는 그 정체를 간파했다.
카가가가가각!!!
주변을 포위한 좀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기를 휘둘러 올리버를 공격했다.
살점으로 이뤄진 거대한 낫과 삼지창, 장검, 철퇴 등이 서로 맞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질병이 퍼지고, 바닥에서는 뼈로 된 가시가 솟구쳤다.
다행히 올리버는 좀비들을 확인하자마자 공간 술식을 발동해 간발의 차이로 피할 수 있었지만.
“캬햐햐햐햐학!!”
“크르르르르륵!!”
“크하핫━━!!!!”
안도하기는 일렀다.
올리버가 피하자마자 좀비들은 원한이 뒤섞인 괴성을 지르며 바로 뒤쫓아 왔다.
뒤이어 세기도 힘든 무수한 좀비 떼가 가세해 올리버를 둘러싸 포위했다.
도시에 갑자기 생긴 망자의 군대.
올리버는 공간 술식이 새겨진 나무 막대기를 연속해 사용해 좀비들로부터 도망쳤고, 좀비들은 그때마다 강화된 육신을 이용해 추격해 왔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이 술래잡기하는 모습과 같았다.
빛이 맞부딪힐 때마다 강력한 충격파와 푸른 마력광, 검은 연기가 연이어 터졌고, 좀비들은 파괴되고, 불살라져 흩날렸다.
올리버가 접근해오는 좀비들을 파괴해 차근차근 그 숫자를 줄인 것.
허나, 올리버가 좀비들의 숫자를 줄이기 무색하게 그때마다 새로운 좀비들이 등장해 올리버를 압박해 왔다.
도대체 이 도시에서 오늘 몇 명이나 죽은 건지.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좀비와의 추격전이 지속됨에 다라 흩뿌린 나무 막대기가 차근차근 소모돼 점점 회피가 제한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리 부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주변 지형도 올리버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콰과곽!
생각하기 무섭게 지형이 뒤틀리며 거대한 벽이 생겼고, 올리버가 이동 중이던 공간 술식 경로를 흩트려 버렸다.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속도. 이에 좀비들은 괴성을 지르며 올리버에게 돌진해 왔고.
파바바박!!
올리버는 지체 없이 품 안에서 대량의 종이를 꺼내 던져, 좀비들의 몸에 박아 넣은 뒤 공간 술식을 발동시켰다.
위이이잉······!!
벌레의 날갯짓처럼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울리며, 보랏빛 포털이 형성. 접근해오던 좀비들을 그대로 토막 냈다.
“크아아아아악!!!”
“구어어어엉!!”
“크르르르르르르르━!”
그러나 끝이 없는 좀비들을 계속해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올리버도 이제 병력이 생겼으니까.
“캬아아아앗!!!”
“따닥-! 따다닥-! 따다닥-!”
“크흐흐흐흐······!”
종이에 깃든 보랏빛 포털 속에서 올리버가 그동안 만든 송장인형들 대량으로 튀어나왔다.
차일드들이 깃든 송장인형이 아닌, 연습용으로 만든 송장인형들로, 해당 송장인형들은 모두 [메모리 오브 블러드(Memory Of Blood)]로 만든 크리처-피인형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피에 축적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송장인형을 조종하는 크리처 피인형.
올리버가 소환한 송장인형들은 제각기 총기를 들어 가까이 다가온 좀비들에게 화력을 퍼붓는가 하면,
몸에 숨긴 전기톱을 꺼내 좀비들을 토막 냈고,
피에 깃든 마력을 이용해 좀비와 박투를 벌이거나, 마법, 흑마법을 사용해 좀비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죽은 자들의 전쟁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광경.
올리버가 시체들을 이용해 술식을 전개하려는 찰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크라켄의 다리처럼 재구축된 건물이 지면을 마구잡이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거대한 질량이 내리찍자 대지의 표면은 뒤엎어지고, 내부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거렸다.
올리버는 간신히 이를 피했으나, 전투를 벌이던 좀비와 송장인형 무리는 그럴 수 없었고, 결국, 압도적인 질량에 초인과 맞먹는 시체들은 개미처럼 짓밟혀 허무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전쟁터가 순식간에 폐허가 되고 만 것. 그 폐허 사이로 피리 부는 사나이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이상하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주먹을 휘둘렀고, 올리버는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촤악━━━━━!
공기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먹을 간신히 상쇄할 수 있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계속해 한 손만 휘둘러 올리버를 공격했다.
올리버는 그때마다 단검을 휘두르며, 각종 공격 술식을 난사해 피리 부는 사나이의 공격 궤도를 비틀어야 했다.
충격, 열기, 냉기. 방어하기 위해 공격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 와중 피리 부는 사나이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 혹시, 부정하고 싶은 건가? 자기가 누군지?”
“······.”
“뭐, 이해해. 나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긴 했으니까.”
아차 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공세 속. 올리버는 수많은 공격 중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말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 정말 괜찮아질 줄 알았지.”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정 맞군.”
멋대로 결론 내린 피리 부는 사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올리버는 주변에 흩뿌렸던 공간 술식을 새긴 나무 막대기를 모조리 발동시켰고,
술식은 술사의 명에 따라 자신의 공간 범위에 있는 모든 것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콱!!
그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리버 필살의 유인 덕분에 여러 공간 술식이 겹친 지점에 서 있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사방으로 자신을 당기는 힘에 처음으로 멈춰 섰다.
공간 그 자체를 움직인 것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원래는 압박이 아닌 찢어버리려고 한 거였지만.’
필살의 공격이 잠시 발목 잡는 수준이 됐지만, 올리버는 실망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하려 했으나, 바로 그때, 땅이 흔들리며 주변 지형이 움직이려고 했다.
공간에 몸이 구속된 상태임에도 불구. 피리 부는 사나이가 주변 지형에 통제력을 발휘한 것으로.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지형 자체를 뒤틀면 나무 막대기가 박힌 지점(좌표)도 뒤틀어질 테니 자연스럽게 구속을 풀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현상에도 당황하지 않고, 원리를 파악해 대응한 것.
그렇게 피리 부는 사나이가 육체의 자유를 얻으려는 그때, 주변에 널브러진 좀비와 송장인형 중 몇몇 개가 손뼉을 착 마주치곤.
············!!!
비명인지 기도문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백조왕자가 사용한 인신 공양 술식 [통곡(慟哭)]으로, 올리버가 흉내 낸 것인데 해당 술식이 발동하자 주변의 지형이 움직임을 멈췄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통한 것.
올리버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육체와 술식을 제압한 그 찰나, 왼손에 쥔 단검을 고쳐잡아 그대로 휘둘렀다.
목표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목.
스치기만 해도 수천수만 가지의 질병에 노출되는 단검의 날은 핏빛 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목표물에 적중하는 순간 멈춰섰다.
와지지직······. 파앙!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자신을 구속한 공간을 기어코 깨고 올리버의 손을 붙잡은 거였다.
“이게 네 마지막 수냐?”
강력한 악력에 올리버가 단검을 놓치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물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뇨.”
동시에 올리버는 붕대를 두른 오른팔을 휘둘렀다. 붕대는 미리 만져놓은 덕분에 흐트러져 있었는데,
흐트러진 붕대 틈 사이로 극심한 화상을 입은 피부가 드러났고, 그 피부 위로 새하얀 화염이 맺히더니, 번쩍 거대한 백염(白炎)이-
치이이익!!
터져 나오려던 찰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올리버의 오른팔을 붙잡아 화염을 꺼트려 버렸다.
악마의 화염을 말이다.
그 경악스러운 광경에 올리버가 멈칫거리자, 곧이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먹이 올리버의 얼굴을 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