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피리 소리 (4)
찌직! 찌지직!! 찍······! 찍찍!! 찌직-!
전쟁터나 다름없는 도로.
기묘한 피리 소리가 울리자 폐허가 된 도로 틈새 사이로 토실토실한 쥐 떼들이 쏟아져 나왔다.
쥐들은 하나같이 검은 털을 가졌는데, 그런 쥐들이 뭉쳐 움직이자 흡사 살점으로 이뤄진 강줄기를 연상케 했다.
꿈틀. 꿈틀. 꿈틀.
그 소름 끼치는 광경에 현장에 있는 수백 명의 무장병력은 하나같이 눈은 커지고, 동공은 쪼그라들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개개인 강약 여부를 떠나, 인간의 근본적인 거부감을 자극한 것.
허나, 문제는 단순히 혐오스럽고 소름 끼치는 게 아니었다.
피리 소리에 맞춰 나온 쥐 떼들은 물리적으로도 충분히 위협이었다.
그 증거로 범람하는 강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쥐들은 찍찍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전투 중 다친 부상자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흐, 흐엑? 으아악!!”
타박상(打撲傷), 자상(刺傷), 화상(火傷), 찰과상(擦過傷). 부상의 수준 따위는 상관없었다.
얼마나 다쳤든 쥐들은 공평하게 몰려들어 상처 부위를 물어뜯었다.
“씨발! 아파! 씨발!”
“이거 떼줘! 빌어먹을 떼달라고!!”
“으아아아악!!”
이에 부상병들은 욕설과 비명을 지르며 쥐들에게 저항했다.
두두두두!
방위군 군인은 납탄을 쏴 다가오는 쥐들을 터트렸고,
촥! 촤악! 촤아악!!
보안국 요원은 마력을 담은 냉병기를 휘둘러 주변의 쥐들을 쓸어버렸으며,
파지직! 화르륵!
신(新) 계급에 소속된 마법사는 화염과 번개를 만들어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쥐들을 바싹 혹은 노릇하게 구워버렸다.
허나, 계속해 쏟아지는 쥐 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뭐라고 할까. 마치, 흐르는 강줄기를 손바닥으로 막으려는 거처럼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를 증명하듯 끊임없이 쏟아지는 쥐 떼들은 끈질기게 몰려들어 부상병들의 상처 부위를 물었고, 아킬레스건을 끊어내며, 내장이 파먹거나, 귀를 갉아 먹었다.
“아악! 아━악!!”
“끄에에에엑!!”
“엄마! 엄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처절한 단말마.
고통뿐 아니라 시각적 공포도 가미된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쥐에게 뜯어 먹혀 숨이 끊어진 사람들은 그대로 누워있는 게 아닌, 온몸이 검게 물든 채 좀비(Zombie)로 되살아났다.
“그어어어어어어······.”
“우우우우우우우······!”
“끄으으으으······.”
되살아난 시체들은 쥐들의 군세에 합세해 주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좀비들의 공격에 당한 사람들은 상처 부위가 검게 물들더니 기침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쿨럭······!”
쥐들은 그런 사람들 파먹어 다시 좀비로 만드는 등 죽음의 선순환이 그려갔다.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올리버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보여준 그림자 인형극을 이해했다.
연합왕국, 갈로스, 대륙 중앙 소왕국 등 여러 국가가 합심해 만든 연합군이 어찌해 피리 부는 사나이 하나를 쓰러트리지 못했는지.
이는 홍수, 태풍, 해일, 지진 등 자연재해를 군대로 막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오히려 많은 수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먹이를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팬스 오브 플레임(Fence of Flames)]
[디바인 프로텍션(Divine Protection)]
[홀리 라이트(Holy Light)]
[라이트닝 샤워(Lightning Shower)]
허나,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쌓은 성취로 재해에도 맞서는 초인들.
그들은 쏟아지는 무수한 쥐 떼를 상대로 나름대로 저항하려고 하였다.
방위군 소속 종군 마법사는 부대를 재편해 거대한 화염의 벽을 만들어 방위군을 둘러싸 접근해오는 쥐 떼들을 막아냈으며,
보안국 요원은 파테르교의 성법 아이템으로 성스러운 방어막과 빛을 만들어 쥐들을 차단,
전통 묠니르 학파 출신 신(新) 계급 마법사는 주변의 가로등을 매개로 전류를 소나기처럼 쏟아 쥐들을 무차별 사살할 뿐 아니라, 쥐들이 나오는 구멍 자체를 강력한 전류로 튀겨 버렸다.
그렇게 각 초인은 저마다 필사적으로 전선을 구축해 쏟아지는 쥐 떼를 막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 끌기에 불과해.’
올리버가 흑마법사의 눈으로 란다 전역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지금 올리버가 서 있는 이곳을 기준으로, 촉수가 뻗어나가듯 도시 곳곳에서 쥐들이 출몰하고, 시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흑마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실로 경이로운 범위라 할 수 있었다.
왕자를 내놓지 않으면 란다에 사는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는 게 허언이 아니란 증거.
피리 부는 사나이. 그는 정말로 모두를 죽일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한 소년을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올리버는 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재앙 취급받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후퇴한다!!”
“후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이 꼴 보고 감이 안 오나?! 저놈 멀쩡하잖아!!”
“젠장······. 진짜 멀쩡하잖아······!”
쥐 떼들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지 이들이 언성을 높여 싸우더니, 누군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가리켰다.
쥐 떼가 출몰한 덕분에 포격이 멈췄고, 그로 인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볼 수 있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 그는 수많은 크레이터가 겹친 지면 위에 고고히 서 있었다.
그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옷 끝자락이 그을리긴커녕, 흙먼지조차 묻지 않은 채 여유롭게 피리를 불고 있었다.
“미친, 말도 안 돼.”
“오, 맙소사······.”
“진짜냐고.”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조용히 절망했다.
그도 그럴 게, 방금까지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쏟아붓던 포격은 군대 단위의 화력.
즉, 국가 단위의 폭력이었다. 그런데, 통하지 않았다? 그 말은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좀비를 만드는 쥐 떼와 포격조차 통하지 방어력.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어쩌면 정말 란다가 한 개인에게 멸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두 눈은 흔들리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며, 손과 다리는 떨려왔다.
공포의 전조.
놀랍게도 공포는 정말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바로 옆 사람에게 퍼져 단숨에 그 세를 확장. 서로에게 영향을 줘 거대한 군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몰랐다. 공포는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 잘 느껴야 하고, 잘 퍼져야 했다.
물론, 이번에는 그 경우가 달랐지만.
━━━━━━━━━━!
피리 소리가 급격하게 변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음률. 성난 것 같으면서도, 비명처럼 들렸고, 또 곡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알 수 없고 난해한 음률과 함께 검고 흐릿한 음파가 사방으로 퍼져, 군집을 이룬 공포라는 감정을 자극해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우욱······.”
처음 반응을 보인 것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잘 대응하는 이들로 그들은 현기증과 멀미, 두통을 호소했다.
이 정도는 꽤 괜찮은 편.
문제는 다음이었다.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겁먹은 사람들은 눈이 뒤집히며 게거품을 물었고, 일부 연약한 이들은 그대로 절명(絕命)하고 말았다.
나머지 제정신을 유지하기에는 약하고, 죽기에는 강한 이들은 침을 질질 흘리더니 일어나 주변에 있는 아군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작계열 흑마법 중 하나인 [광증(Wahnsinn)]으로, 해당 흑마법이 무서운 점은 피아식별할 지성은 사라지나, 무기와 술법은 다룰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우우우웅······!
“자, 잠깐만!!”
“이 녀석-!”
파아아아앙······!!
덕분에 쥐 떼와 좀비 떼를 피해 진형을 이룬 이들 한가운데서 거대한 마력광이 빛나더니 폭발과 참격이 연이어 터져 커다란 피해가 발생,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찌지지지직!!
이 기회를 놓칠세라 주변을 미친 듯이 맴돌던 쥐들이 다시 돌격했고.
그어어어어어억······!
검게 물든 좀비 떼들 역시 쥐들의 물결에 합세해 자신의 질병을 퍼트렸다.
크아아악! 죽어라! 죽어라!!
거기에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광증에 빠진 사람들까지.
조작계열 흑마법의 정수라 할 솜씨였다.
허나. 여기서 더 경악스러운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실력 이전에 그가 보이는 특성이었다.
그 특성이란 다름 아닌 성법 아이템마저 무시하는 점.
기이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흑마법은 분명 마력도, 자연의 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흑마법임에도 불구하고 성법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현상. 다만, 짚이는 구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불타버린 자······.’
올리버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불타버린 자, 악마가 떠올랐다.
성법을 말 그대로 무시한 존재. 세상 바깥 존재.
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말이 안 되는 거긴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올리버는 그 말도 안 되는 가능성에서 자그마한 희망을 느꼈다.
마치 올리버를 노리던 재앙이 비껴간 기분이랄까?
그 때문인지 올리버는 압도적인 힘 차이를 겪었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올리버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첫 번째 일에 돌입했다.
그 첫 번째는 다름 아닌 광증을 간신히 견딘 돌주먹 아서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것으로, 올리버는 흑마법 [어웨이크(Awake)]를 사용. 아서의 정신을 다잡아줬다.
“크윽······! 머리가 깨질 거 같군······!!”
광증은 견뎠으나,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아서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올리버는 그런 아서에게 말했다.
“아서 씨.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틈을 만들 테니, 그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데리고 후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을 상대로 숫자는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올리버의 부탁에 아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지를 가득 메운 쥐 떼, 그 가운데 있는 좀비, 광증에 걸려 아군을 위협하는 초인 등. 아서가 보기에도 숫자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흑마법을 쓴 단 몇 분 만에, 이 꼴이 났으니. 당연한 것.
아서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아닌 비슷한 수준의 개인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런 사람이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해결사 데이브의 실력은 란다에서도 최고긴 하나, 아까 전 피리 부는 사나이를 상대로 술식 싸움에 패한 것으로 볼 때 맞상대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렇게 아서가 의문을 빛내는 찰나-
-촤악!
올리버가 핏빛 단검을 뽑아 자기 손바닥을 그었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아서는 멈칫했고, 올리버는 여세를 몰아 피와 감정을 뒤섞어 질병계열 흑마법을 발동했다.
[이터널 패믄(Eternal Famine)]
[카니발리즘(Cannibalism)]
올리버가 영창하자 손바닥 위로 흐르는 피와 추출한 감정이 뒤섞여 검붉은 빛을 띠는 연기로 변화. 지면을 따라 퍼져 쥐들을 훑고 지나갔다.
사아아아.
불길한 소리가 울리자 성난 쥐 떼가 잠시 멈춰 서더니, 곧, 서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찌쥑!!
찌지직······!
수천수만 마리의 쥐 떼가 서로를 잡아먹는 광경이 펼쳐졌다.
전쟁터와 뒷골목에서 커리어를 쌓은 초인들마저 질겁하게 할 광경.
올리버는 그 광경을 향해 손을 뻗어 쥐들이 내뿜는 광기의 감정을 추출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대량의 나무 막대기를 꺼내 사방을 향해 투척했다.
나무 막대기는 부여된 마력에 따라 제각기 바닥, 벽, 하늘을 향해 날아갔고,
올리버는 뒤이어 반대 손에서 추출한 대량의 공포와 광증, 포식, 피식의 감정을 손가락 한 마디로 응축해 피리 부는 사나이를 향해 겨눴다.
극한까지 응축된 감정의 탄환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찰나, 올리버는 방향을 살짝 틀어 허공을 향해 쐈다.
퇑━!!
말도 안 되는 밀도를 가진 흑탄(黑彈)이 검은 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허공에서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박살 났다.
흑탄이 박살 난 허공은 굴절되듯 일그러지더니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동시에 크레이터에 서 있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쥐 떼를 소환했을 때 흑마법을 사용, 사람들의 시야를 속인 것으로, 하마터면 올리버도 속을 뻔했다.
그나마 흑마법사의 눈이 좋아져 간신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재앙을 일으키고도 알버트 왕자를 쫓아가려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멈춰 서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거기서 올리버는 어떠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왜냐면 재앙을 일으키고도 어떠한 환희도 만족도 느끼지 못한 피리 부는 사나이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빛이 돌아왔으니까.
올리버에게 관심이 생긴 거였다.
그 사실이 올리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상기.
피리 부는 사나이 앞 바닥에 꽂힌 나무 막대기에 새겨진 흑마법 술식을 발동. 그 가속도를 이용해 자연의 힘으로 강화한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콰앙━━!!
피리 부는 사나이가 행여 다시 왕자를 찾으러 가지 못하게 다리를 잡을 겸. 보통의 술식으로 공격해 봤자, 역으로 파훼 당할 것이 자명했기에 한 시도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처음 올리버를 상대했을 때처럼 한 손으로 이를 가볍게 잡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긴 했지만, 그래도 꽤 충격적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얻은 괴력, 자연의 힘을 통한 육체 강화, 공간 술식을 이용한 가속도까지 다 더했음에도 막히다니.
피리 부는 사나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알 때도 됐을 텐데.”
“압니다.”
올리버가 대답하며 육체 강화를 위해 몸에 때려 박았던 자연의 힘을 단번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숨결]
올리버가 드루이드의 주술을 발동하자 선명한 녹색 자연의 힘이 올리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바로 그때 하늘 위로 던진 나무 막대기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자연의 힘을 받아들였다.
두두두두두두두!!!
공간 술식이 깃든 나무 막대기는 단순한 도구에서 다시 나무로 돌아가 땅을 파고들어 대지를 뒤엎으며 단숨에 거대한 거목(巨木)으로 성장해 나갔다.
생명의 태동에 미친 듯이 요동치는 대지.
콘크리트 대지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갈라지며, 뒤틀렸고, 그 틈새 사이로 새로운 나무들이 현현해 신선한 흙과 푸르른 풀, 꽃을 자라나게 했다.
광활한 녹색 수림이 회색빛 란다에 갑자기 창조됐다.
마법과 흑마법 술식 싸움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면 아예 자연의 힘을 써 술식 싸움을 막으려 한 것으로.
올리버는 그 상태로 숲에 통제권을 발휘해 나무를 움직여 피리 부는 사나이를 사방에서 압박하고, 자연의 힘이 깃든 녹색 나뭇잎과 풀잎으로 난자하고자 했다.
그러다 상처가 생기면 흑마법 [패러사이트(Parasit)]로 못을 박으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다시 한번 피리 부는 소리가 울렸다.
심지어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를 들고 있을 뿐 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흑마법 아이템은······. 아닌데?’
흑마법사의 눈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를 본 올리버가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피리였다.
그러는 사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연의 힘마저 통제권 싸움을 걸어 올리버에게서 숲의 통제권을 가져갔다.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중과부적.
피리 부는 사나이를 압박하기 위해 움직였던, 거목과 면도칼보다 날카로운 나뭇잎, 풀잎은 올리버를 향했다.
드드드드득······!!
숲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올리버를 압박해 왔고, 올리버는 사방에 실드를 둘러 이를 막아냈다.
대량의 감정과 올리버의 컨트롤 솜씨 덕분에 제법 잘 막았으나, 방대한 숲이라는 체급 차 탓에 실드는 점점 좁혀져 왔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 하지만 괜찮기도 했다. 아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 증거로 올리버는 한 손에서 이미 감정과 마력을 추출해 한데 뒤섞은 상태였다.
“너 뭐냐?”
하나로 합쳐진 탐욕의 감정과 마력. 검은 불꽃이 타오른 그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대뜸 물었다.
돌처럼 차갑고 무감각한 그의 눈에 아주 희미하게 빛이 깃들어 있었다.
원숭이들의 세계에서 사람을 만난 듯.
꾸구구구구구······!
곧 부서질 것 같은 실드 가운데서 올리버가 대답했다.
[탐화(貪火)]
[본파이어(Bonfire)]
마력과 감정의 복합 술식. 거기에 자연의 힘을 장작으로 삼는 술식을 동시 발동했다.
올리버의 손에 피어난 자그마한 검은 불꽃은 숲에 톡 떨어지자마자 나무와 풀. 그 안에 깃든 방대한 자연의 힘을 먹어 치우며 그 크기와 화력을 극단적으로 키워나갔다.
콰화화화화화하하하하하항항━━━━!!!!
회색빛 도시를 밝히던 녹색 숲은 한순간에 도시를 불태울 흉흉한 검은 재앙으로 변모해 숲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당연히 주변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화력에 주변의 건물은 말라비틀어진 진흙처럼 쩍쩍 갈라지고 가루가 돼갔으며, 철근과 유리는 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은 물론 근처에도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불타버린 자 덕분에 화염에 내성을 받은 올리버.
그리고 지금 눈앞에 유유히 서 있는 피리 부는 사나이 둘 뿐이었다.
그 피리 부는 사나이가 다시 물었다.
“다시 묻는다. 너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