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24화 (624/633)

624. 피리 소리 (3)

충격.

눈앞의 상황은 그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다만,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호텔이 무너져서가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분명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재앙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초인이 날뛰고, 비양심적인 건설업체가 있는 란다에선 그리 보기 드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볼꼴 못 볼 꼴을 다 봐온 수백 명의 무장 병력과 초인들이 충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올리버 때문이었다.

란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 데이브 말이다.

당연한 거였다. 데이브는 란다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란다 뒷세계에 홀연히 나타나 단 몇 년 만에 최고의 해결사가 된 존재.

그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전설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단신으로 파이터 크루를 집어삼키고,

크라임 펌과 담판을 지어 동맹 관계를 구축하며,

시(市)와 비공식 동맹관계를 이루고,

앞서 전설이던 엔조이먼트 소속 드루이드 셰이머스를 살해,

그 누구도 손대지 못하던 X구역까지 개발해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

어디 그뿐이랴?

이제는 마탑 내에 흑마법사 학파를 세워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상식 밖의 도시인 란다에서도 눈에 띄는 정신 나간 행보.

자기 힘과 공훈을 과시하지 않고, 먼저 폭력을 쓰지 않는 온건한 성향 탓에 티가 나지 않을 뿐. 이미 란다 내에 있는 누구도 올리버를 쉬이 보지 못했다.

그것은 란다의 지배계층인 시의원과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산가, 마법사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눈앞의 광경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해결사 데이브가 한쪽 무릎을 꿇다니 말이다.

모두의 시선은 올리버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남자를 향해 갔다.

뱀처럼 예리한 눈을 가진, 얼핏 웃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정작 그는 주변에 관심 없었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는 무릎 꿇은 올리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좀 버티는구나······. 힘이 좋아.”

올리버는 경악했다.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얻은 용과 맞먹는 괴력이 힘이 좋다는 수준이라니.

문제는 올리버가 여기에 질병-강화계열 흑마법까지 썼다는 사실이었다.

‘가급적 쓰고 싶지 않았는데.’

올리버가 속으로 생각했다. 힘을 엄청나게 증폭시켜 주지만, 대신, 육체에 피해를 주니까.

블랙 슈트(Black Suit)를 만든 이유가 애당초 그거 때문.

허나,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질병-강화계열 흑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한 덕분에 살아남은 거였으니까.

만약, 호텔이 무너질 때 쓰지 않았다면 지금 올리버의 몸은 박살 나고 말았을 터였다.

그 증거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근육이 툭 툭 끊어지고, 뼈에서 끼기긱 소리가 울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손에 힘을 약간 더 주는 것만으로 말이다.

그렇게 점점 한계에 부닥치는 올리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제안했다.

“왕자를 내놓으면 물러나 주지.”

“왕자님을 데려가······.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깊은 숲에 버린 후, 굶주림과 갈증, 병마에 시달리다 죽는 걸 볼 거야.”

피리 부는 사나이가 평범하게 끔찍한 소리를 했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흑마법사의 눈을 떠 피리 부는 사나이의 감정을 읽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차분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분노에 다른 감정이 가려져. 마치, 저 아래 심해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의심하지 마. 죽이고 데려갈 수도 있는데, 뭣 하려고 거짓말하겠어.”

진심. 감정을 읽을 수 없으나, 올리버는 저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올리버가 간신히 버틸 만큼만 힘줬다.

하고자 한다면 이대로 올리버를 벌레처럼 짜부라트려 죽일 수 있었다.

“······그럼, 왜 안 하시는 거죠?”

“난 살인을 즐기지 않거든. 그래서 대답은?”

“제 대답은······. 거절입니다.”

올리버가 뜻을 밝혔다.

그 순간 아직 일부 형체가 남은 호텔 최상부층에서 묵직한 푸른빛 마력 파장이 넓게 퍼져 나갔다.

슈우우우우웅!!

파장의 기운에 호텔이 요동쳤고, 곧이어 푸른 빛줄기가 상공 위로 날아가 사방에 요란한 소리를 흩뿌렸다.

하늘을 꿰뚫는 파공음.

심상치 않은 기운에 넋 놓고 있던 주변의 무장 병력은 뒤로 물러났고, 바로 그때, 구름 낀 밤하늘 사이로 대량의 마력을 머금은 쿼터스태프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타겟팅(Targeting)], [스트렝슨(Strengthen)], [헤빌리(Heavily)], [액셀러레이션(Acceleration)] 등등. 올리버가 미리 걸어둔 술식이 발동한 것.

쿼터스태프 앞부분이 붉게 빛나며 피리 부는 사나이 위로 떨어졌다.

콰앙━━━!!!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눈 뜨기도 어려운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단 한 번으로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

허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를 누르는 자세 그대로 멀쩡히 서 있었다.

반대 손으로 떨어지는 쿼터스태프를 붙잡았기 때문.

대지에 상흔을 남기는 공격을 맨손으로 붙잡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힘이 세야 저런 게 가능한지······. 아니, 단순히 힘이 센 것만이 아니었다.

괴력으로 버틴 거라면 디디고 있는 지면이 어느 정도 내려앉아야 했건만, 피리 부는 사나이가 서 있는 지면은 멀쩡히 있었다.

쿼터스태프의 힘을 이해하고 이를 분산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언제나 올리버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던 일격이 이리도 쉽게 막히다니.

혹시 몰라 보험 들어놓길 잘한 거 같았다.

[격뢰(激雷)]

피리 부는 사나이가 쿼터스태프를 잡자 올리버는 추가로 영창했다.

쿼터스태프가 날아올랐던 밤하늘이 요동쳤고, 구름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그 속에서 검은 번개가 뱀처럼 요동쳤다.

쿠르릉······! 쿠르르릉······!!

하늘이 요동치자 묵직한 중압감이 대지를 짓눌렀고, 곧이어 대량의 검은 번개가 쿼터스태프를 쥔 피리 부는 사나이를 향해 일제히 떨어졌다.

수십, 수백 개의 번개가 원뿔 형태의 진을 이루며 피리 부는 사나이 한 점을 향해 떨어졌고, 그 순간 올리버는 왕자를 끌어안아 보호했다.

번쩍!

세상이 검은빛에 물들며, 올리버 앞에 강렬한 열기가 피워 올랐다.

수백 개의 격뢰가 한 점에 모인 결과물로서, 바위도 녹일 수준이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손을 거뒀고, 올리버는 그 상태로 내달렸다. 일단, 왕자부터-

-오싸악.

올리버의 목덜미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성이 아닌 감각에 기인한 것. 올리버는 그 감각이 시키는 대로 머리가 채 판단하기도 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이동 방향을 틀었다.

그 직후 수백 개의 검은 번개가 응축된 한 줄기 빛이 올리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갔다.

예상치 못한 일격.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봤다.

그는 수백 개의 격뢰에 집중포화 당했음에도, 멀쩡히 서 있었다.

육신은 물론, 옷 끝자락 하나 그을리지 않은 채 멀쩡히.

떨어진 격뢰를 막는 걸 넘어, 오히려 통제권을 빼앗아 올리버에게 던진 거였다.

그 믿기지 않는 광경에 올리버는 한가지 결론을 내리며 소리쳤다.

“조!”

어떠한 순간에서도 언성을 높이지 않던 올리버가 목소리를 높이자 수백 명의 병력 사이에 서서 멍하니 지켜보던 조가 정신을 차렸다.

“······예! 데이브!”

“왕자님 데리고 도망치십시오!”

올리버가 짧고 단호하게 외치며 알버트 왕자를 조에게 냅다 던졌다.

양해를 구하지 않아 미안하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틈이 없었다.

알버트 왕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아갔고, 조는 타고난 운동 신경과 몸에 두른 블랙 슈트를 이용해 왕자를 받아내 저 멀리 도망쳤다.

쉬익!

조가 움직이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공간을 접어 올리버 옆을 지나갔다.

올리버가 멀린을 통해 해당 술식을 보지 못했다면 놓칠 뻔했다.

다행히 올리버는 해당 술식을 멀리을 통해 한번 봤고, 대지에 마력을 투여해 거대한 벽을 만들어 피리 부는 사나이의 경로를 막아냈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서 있는 지면을 늪으로 만든 후, 벽을 움직여 그를 압사시키려 했다.

그뿐 아니라 피리 부는 사나이를 집어삼키는 늪과 벽에 상대의 술식을 방해하는 방해 술식,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질병 계열 흑마법 패러사이트(Parasit)를 가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만 걸리면 어지간한 술사는 저항다운 저항도 못 했는데.

갑자기 피리 소리가 울리며, 대지가 올리버를 삼키기 시작했다.

푹 들어가는 올리버의 두 다리와 어느새 올리버 앞에 다가온 벽.

피리 부는 사나이가 올리버가 사용한 술식을 빼앗은 거였다.

통제권 싸움에서 올리버가 패한 것.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한 올리버는 어떻게든 저항해 통제권을 되찾으려고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그렇게 올리버가 대지 아래로 사라지려는 그 찰나.

콰아앙━!!

저 멀리서 포격이 날아와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강타했다.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건물 위에 거대한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게 보였다. 방금까진 없었건만.

다름 아닌 보안국이 권한을 사용해, 공간 마법으로 포대를 건물 위로 소환한 후 설치해 발사한 거였다.

“란다 방위부가 마탑과 함께 개발한 최신 기술이지.”

거대한 포탄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강타한 순간 보안국 소속 돌주먹 아서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골렘 의수로 올리버를 삼키려던 벽을 부수고, 늪을 얼려 올리버를 끄집어냈다.

“정말 오랜만이구만!”

“오랜만입니다.”

오염구역 청소 때 만나고, 시외(市外) 임무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아서에게 올리버가 말했다.

퇴역 군인인 그는 해결사로 일하다, 시외(市外) 임무 직후 시(市)의 스카우트를 받아 보안국에 들어갔었다.

이후로 만난 적 없었으니 말마따나 정말 오랜만이었다.

“저 남자는 누구야? 널 이렇게 밀어붙이다니.”

만난 것은 오랜만이나 보안국 소속답게 올리버의 활약을 들은 아서가 물었다.

란다 최고 해결사인 올리버를 이토록 밀어붙이다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 님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아서가 멈칫했다.

검은손의 손가락 중 하나······. 라고는 하나, 대륙 중앙에서만 활동하기에 이곳 셀랜드에서는 그냥 괴담 같은 존재.

그런데 그런 존재가 지금 란다에 대뜸 나타났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허나, 이미 상식 밖의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 터라, 아서는 당황하는 대신 골렘 의수에 장착된 통신 기기를 사용해 화력 증강을 요청했다.

[치칙! 라저!]

아서가 지원을 요청하자 지하 아래에 있는 세계수에서 강렬한 마력이 포착됐고, 뒤이어 주변 고층 건물 위로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거대한 포대가 나타났다.

세계수를 이용한 공간 마법.

마탑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중 하나로, 란다 시(市) 보안국이 지금 사용하였다.

“초인이 날뛰는 이 미친 도시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시(市)의 노력이지.”

아서가 기세등등하게 말하자, 주변을 포위한 포대가 불을 뿜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사방에서 타격했다.

콰과과과과과과!!!

수십 문의 포대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그때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서 있는 지면이 뒤엎어지며 거대한 불기둥과 흙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소이탄과 쇠 탄환을 섞어 사용한 것으로, 포격으로 인한 충격과 열기가 점점 응축돼 포격 지점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단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비상식적인 광경.

허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본 이들은 이 비정상적인 광경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손가락이라도-”

[-귀찮으니까. 내가 파격적인 제안 하나 하지.]

옆 사람 말도 들리지 않을 극한의 환경 속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의 또렷한 전음이 들렸다.

뇌에 대고 직접 말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면서도 또렷이 들렸다.

[내가 원하는 건 방금 그 아이 하나. 그러니까 그 아이만 내 앞에 데려와. 그러면 그냥 물러나 주지.]

숨쉬기도 힘든 포격 속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귀찮다는 듯 제안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발언. 허나, 다음에 나온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대신, 거절하면 이 도시 전부를 죽여주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알버트 왕자를 내놓지 않으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거대 도시의 모든 사람을 죽여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악명높은 손가락이라 해도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오만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협박.

너무나도 거대한 그 말에 누구 하나 반응하지 못했다. 딱 한 명 올리버만 빼고.

그러는 사이 포격이 한층 더 거세게 쏟아졌고, 이를 대답으로 해석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그 대답 직후, 피리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소리가 퍼지자 폐허가 된 주변의 바닥과 벽 사이로 대량의 쥐들이 쏟아져나왔고, 쥐들은 틈새를 갉아먹어 더 많은 쥐를 불러 모았다.

곳곳에 쓰러진 시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일어났고, 그 재앙은 서서히 란다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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