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피리 소리 (2)
브으으으으으~
어둠으로 물든 알 수 없는 공간.
어딘가에서 어설픈 하모니카 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오게 된 건지 기억나지 않았으나,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짙은 어둠 속이라 그런지 발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걷고, 걷고 계속해 걷자 이윽고 불빛 앞에 다다랐다.
한 허름한 뒷골목으로 그곳에는 각종 쓰레기와 쥐새끼, 낡은 천막, 잡탕 스튜를 끓이고 있는 모닥불. 그리고 거지들이 있었다.
‘와하하하! 하모니카, 실력이 훨씬 좋아졌는데?! 대단해요!’
붉은 코가 인상적인 한 뚱보가 술병을 요란하게 흔들며 칭찬했다. 캔트 거지패의 일원인 빨간 코로, 그의 칭찬에 다른 거지들도 하모니카를 칭찬했다.
칭찬을 들은 금발의 소년 하모니카는 특유의 헤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빛냈다.
아, 기억났다. 이는 올리버의 기억이었다.
처음 캔트를 만나 그의 거지패에 합류하고 나서 보낸 날 중 하나.
그 증거로 저기 구석에 올리버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
뭐랄까. 어째 기분이 묘했다. 자기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는 게.
허나, 올리버는 이 기현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왜냐면 꽤 즐거웠던 기억이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악취가 나고, 잠자리도 불편하며, 음식이라고는 채소 자투리, 통조림 햄, 딱딱한 빵 등을 한데 뒤섞어 끊이는 잡탕 스튜뿐이긴 했어도 올리버에겐 꽤 즐거운 기억이었다.
요안나의 조언대로 세상 밖으로 나왔으나, 정작 어디 가야 할지 모르는 와중, 캔트를 만나 처음 머문 곳이었으니까.
요컨대 올리버가 처음으로 세상을 배운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그 외에도 가장 마음이 편한 시기기도 했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호기심만 해소하면 됐으니. 걱정거리 없이 말이다. 지금과 다르게.
그렇기에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올리버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올리버가 공연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하모니카를 보며 생각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분위기 메이커인 빨간 코가 벌떡 일어나 퉁퉁한 자기 배를 쓰다듬었다.
‘캔트! 스튜는 다 됐어? 배가 등짝에 달라붙는다고!’
‘좀 더 끓여야 해. 그래야 육수가 우려져 맛있어지거든.’
모닥불 앞에 앉아 잡탕 스튜를 맛본 캔트가 그리 대답하고는 국자로 스튜를 휘휘 다시 저었다.
빨간 코가 아쉽다는 듯 물었다.
‘끙······. 얼마나?’
‘아주 조금?’
‘그렇단 말이지······. 이봐 신입! 넌 뭐 장기 같은 거 없나?’
빨간 코가 구석에 앉아 있는 올리버에게 대뜸 물었다. 그러자 거지패의 시선이 모두 올리버에게 쏠렸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진 올리버는 신입답게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고아원과 광산에서 살아남는 게 제1 목표였던 올리버에게 하모니카 같은 멋진 장기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빨간 코는 예상했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노래라도 한 곡 뽑아 보지 그래!’
‘노래요?’
‘그래, 노래! 부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잘 부르진 못해도 상관없어! 이제 같은 식구인데 친해져야지!’
‘음······. 아는 노래가 없습니다.’
‘아는 노래가 없다고? 인생 헛살았네! 그럼 내가 한 곡조 먼저 뽑아 볼 테니, 어디 한 번 따라 해봐. 나만큼은 잘 부르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빨간 코는 자신감 있게 나불거리더니 이내 술병을 좌우로 흔들며 멋들어진 노래를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사람에겐 뭐든 재주가 있다더니, 거지패는 익숙하다는 듯 노래를 감상했고, 올리버 역시 이를 감상했다.
당시 올리버는 빨간코가 왜 저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거지패에 적응하지 못하는(최소한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올리버를 배려해 친해지게 될 계기를 마련해주려는 일종의 배려였다.
그래서 캔트도 가만히 있는 거였고.
올리버는 잠시 잊었던 그때의 기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타닥타닥!
빨간 코가 노래를 마치자 올리버는 모닥불 앞에 섰고, 올리버는 빨간 코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올리버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들리던 쥐와 벌레 소리는 한순간 사라졌고, 거지패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올리버의 노래에 감탄한 것.
노래를 다 부르자 박수 소리가 울렸고, 캔트 역시 올리버를 칭찬해 줬다.
올리버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릴 긁적였고, 그때 캔트가 뜨끈뜨끈한 스튜를 내밀었다.
올리버가 그 스튜를 받으려 하자 캔트가 말했다.
‘노래 솜씨가 좋군. 여기 계속 있으며 부르는 게 어떻-’
-번쩍!
올리버가 눈을 떴다.
실로 편안하고 즐거운 꿈. 허나, 마지막의 캔트답지 않은 말에 올리버가 이질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올리버는 기절했다 깬 것처럼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으나, 곧 차근차근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왕자를 해하려는 음모. 올리버는 그 음모를 방해하고자 포털을 타고 넘어와 왕자를 해하려던 신(新) 계급을 제압했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려는 찰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들려준 피리 소리가 들렸다.
슬프면서도, 쾌활하고, 불규칙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피리 소리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올리버는 아까 전 꿈을 꾸고 말았다.
조작 계열 흑마법의 한 계통이었다. 주변을 살펴보자 올리버 자기만 당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화를 피하고자 회장 구석에 최대한 붙어 있던 사업가와 자본가들은 모두 흰자위를 보인 채 환각 상태에 빠져있었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조작계열 중 가장 익히기 어려운 것은 살아 있는 생물을 조종하는 거였으며, 그중 인간을 조작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저항이 없는 시체, 그림자와 다르게 살아 있는 생물은 흑마법에 본능적으로 저항했고, 지성이 높은 인간은 그중 가장 심하게 저항했다.
재능이 없는 자는 평생 수련한다 해도 사람 하나를 조종하기 힘들었으며, 설사 재능이 있다 해도 각종 매개체와 고문을 이용해야 했다.
그 탓에 조작계열 흑마법사 중 살아 있는 사람을 조종하는 이는 없다시피 했다.
유용하긴 해도 성공 가능성도 낮고, 들어가는 코스트도 너무 많았으니까.
올리버가 란다로 와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음에도 사람을 직접 조종하는 흑마법사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 소리를 매개로 이 많은 사람을 모두 환각 상태에 빠트렸다.
사업가, 은행가, 초인 등. 모두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대단한 부분. 인육 요리사, 팬과 구분되는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상황 파악과 감탄을 마친 올리버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왕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왕자는 환각에 빠지지 않았으나, 대신, 그의 앞에 한 남자가 다가가 서 있었다.
그는 평범한 키와 평범한 체격을 가졌으며, 낡았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망토, 여행복, 장화를 신고 있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그가 피리 부는 사나이란 걸 알아차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왕자를 향해 손을 뻗었고, 올리버는 그 다급한 상황에 걸맞게 바닥에 떨어진 쿼터스태프도 줍지 않은 채, 피리 부는 사나이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아쉽네. 좋은 꿈이나 꾸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올리버가 손을 붙잡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말했다.
그는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뱀처럼 예리한 눈, 한때 능청스러운 미소를 머금었을 것 같은 텅 빈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버가 착각한 게 아니었다.
차분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분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
불타버린 자와 같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분위기.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단 하나. 이 남자가 위험하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판단을 마친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콰악-!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말도 안 되는 괴력을 얻은 후, 이 정도로 힘줘본 건 손에 꼽을 정도.
용의 그것과 맞먹는 올리버의 손아귀가 피리 부는 사나이의 팔을 파고들어 갔다. 올리버는 이대로 팔을-
“-너구나? 헨젤 그 아이를 죽인 아이가.”
너무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올리버가 숨긴 사실을 알아냈다.
당황한 올리버가 손에 더욱 힘을 줬으나, 피리 부는 사나이는 팔을 휘둘러 올리버의 손을 단숨에 뿌리쳤다. 너무나도 가볍게.
그리고는 뿌리친 팔을 올리버의 얼굴을 향해 뻗었고,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왼팔을 뻗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손을 붙잡았다.
서로 깍지 낀 손. 올리버와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시에 힘을 줬다.
꽈아악······!!
천천히.
쿠구구······!
천천히.
쿠구구구구구······!
천천히.
인간의 육신에서 나올 수 없는 괴력에 주변 공기가 무겁게 눌렸고, 그 여파로 호텔 건물 전체가 요동쳤다.
힘 싸움이 지속됨에 따라 올리버의 몸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으며, 서 있는 바닥에 서서히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올리버가 힘에서 밀리는 거였다. 인육 요리사의 힘이, 용의 힘이 말이다.
쩌저적······!
실금이 가던 바닥에서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울리며 크게 갈라졌다. 내구성에 한계가 온 것.
올리버는 한 손으로 자신을 찍어 누르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올려다보곤 겁먹은 왕자에게 소리쳤다.
“왕자님.”
“······어? 예?!”
“절 붙잡으십시오.”
차분하지만 힘이 들어간 올리버의 목소리에 알버트 왕자는 반사적으로 올리버의 품에 안겼다.
그와 동시에 올리버가 서 있는 지면. 더 나아가 호텔 한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흙먼지와 굉음을 내며. 순수한 물리적 힘에 의해.
***
“이런 정신 나간 새끼들-!!”
“여기 감히 누가 있는 줄 알고, 이 지랄을 벌이는 거야!”
“지원군은 아직인가?”
“다시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버텨! 뚫리면 안 돼!!”
“죽어라! 이 개새끼들아-!!”
“끄아아아악!!!”
그레이엄 호텔 앞.
지금 그곳엔 수많은 목소리가 한데 뒤엉켰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호텔 앞에는 타다다당-! 거리는 총성과 콰과광!! 거리는 폭음이 연달아 울려 털이 곤두서는 죽음의 오케스트라가 연주 중이었다.
오케스트라가 길어질 때마다 시체가 늘어났으니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원인은 다름 아닌 호텔에 있는 왕자 알버트 때문으로, 더 정확히는 도시 한복판에서 왕자를 노리는 미친놈들 때문이었다.
호텔을 지키는 방위군과 일부 신(新) 계급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건지.
“저기 바주카포요!!”
바리케이드에 의지해 호텔 방어선을 지키는 방위군 중 하나가 재개발 연합의 이사이자, 신(新) 계급 중 하나인 조에게 말했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방독면을 쓴 뚱보가 척 보기에도 거대한 바주카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왔다.
기존 바주카를 블랙 마켓의 기술로 마개조한 물건인 듯했는데, 이를 설명해 주듯 바주카포 안에 엄청난 양의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단번에 박살 내고,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방어선을 무너트릴 수준.
확인을 마친 조는 데이브가 가르쳐준 블랙 슈트를 몸에 몇 겹씩 두른 후 불필요하게 두꺼워진 장갑(裝甲)을 압착했다.
취이이이익-!
몸에 두른 장갑(裝甲)은 연기를 내뿜으며 압축됐고, 밀도는 극한까지 올라갔다.
조는 그 상태로 다리에 두른 블랙 슈트의 형태를 초식동물의 그것으로 변형시켜 대지를 찼다.
쾅-!
콘크리트로 포장된 지면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날렸고, 조는 보통의 사람은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돌진. 단숨에 괴한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
압도적인 속도에 습격자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애당초 조가 호텔 밖으로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속도와 방어력, 공격력. 단순하지만 그만큼 직관적이고 위력적인 힘 덕분에 치고 빠지는 형태로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조는 괴한들이 방어막으로 세운 개조 차량을 정면에서 부수며 바주카포를 조작하는 뚱보를 향해 달려갔다.
획-!
거의 코앞까지 이른 그 순간, 뚱보가 바주카포의 총구를 바꿔 조를 향해 겨눴다.
단순히 힘 좋은 거너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숙련된 마력사용자인 듯했다.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공격 방향을 바꾼 뚱보는 방아쇠를 당겨 마력을 꽉꽉 담은 탄환을 조에게 날렸고,
조는 자신의 두른 장갑(裝甲)을 믿고 돌진해 주먹을 내질렀다.
조가 주먹을 내지르자 충격파가 중첩돼 터지며 조가 서 있는 지면을 뒤엎어버렸다.
주먹의 형태를 한 폭탄. 그 폭탄은 뚱보가 쏜 바주카포 탄환의 폭발을 둘로 갈라버리며 뚱보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콰직!
수박이 부서지는 듯 축축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렸고, 이 일격을 본 주변의 모든 습격자는 얼어붙고 말았다.
압도적인 힘이 가진 장점으로, 조는 그 여세를 몰아 몸에 두른 장갑 중 일부를 양팔에 집중해 구(球) 형태로 가공, 양옆으로 투척했다.
단단한 블랙 슈트를 뭉쳐 투척하는 지극히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위력은 상상 그 이상.
조가 던진 구(球)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된 듯 이동 방향에 있는 모든 걸 박살 내버렸다.
무장 병력, 초인, 자동차, 나무, 건물 가리지 않고.
덕분에 습격자들의 진형에는 큰 구멍이 생겼고, 조는 그 상태로 적들 사이를 헤집으며 최대한 피해를 줬다.
그 모습을 지켜본 란다의 방위군은 과감하게 바리케이드에서 튀어나와 혼란에 빠진 적들을 타격해 밀어내 버렸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포위망 중 하나를 뚫은 셈.
일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건지, 조가 있는 방어선이 적을 밀어내자 뒤이어 경찰 특수부대와 란다 방위군, 보안국이 연이어 도착했다.
그들은 그레이엄 호텔을 포위한 습격자들을 역으로 포위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소탕해 나가기 시작했다.
안과 밖. 도넛 형태로 포위된 습격자들은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했고, 그렇게 미친놈들의 반란이 막을 내리려는 그 찰나.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귀가 떨어지다 못해, 뼈와 살이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다른 방어선에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왜냐면 소리의 근원지가 호텔이었으니까.
심상치 않은 기운에 방위군도, 습격자들도, 지원군도 한순간 싸움을 멈추며 호텔로 시선을 옮겼다.
믿기지 않게도 고층 건물인 호텔은 한쪽이 무너져 내려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흡사, 포크로 케이크 한 면을 자른 듯한 모습.
폭탄이 터진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듯한 모습에 가까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란다의 최신 건축술로 지어진 최신식 호텔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다니.
어쨌건 그 심상치 않은 기운에 호텔을 둘러싼 수백 명의 병력은 싸움을 멈춘 채 흙먼지가 요동치는 호텔을 바라봤고. 잠시 후, 잦아드는 흙먼지 가운데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왕자를 품에 안은 채 질병 계열 흑마법으로 자기 육신을 강화한 올리버와 그런 올리버를 힘으로 무릎 꿇린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정체불명의 사내가 올리버에게 말했다.
“너 좀 버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