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21화 (621/633)

621. 방해꾼 (2)

쏴아아아아악-!

“이런 곳으로 부르면 어찌합니까?!”

“야이 나쁜 놈아!!!”

셈 강 아래에서 갑자기 나타난 후크 선장과 이완이 소리쳤다.

모두 올리버를 비난하는 내용.

그러나 정작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도 그럴 게, 갑자기 강에서 거대한 해적선이 나타났으니.

그 엄청난 시각적 충격 덕분에 감각이 발달한 초인들조차 그들의 말을 놓치고 만 것이었다.

하긴,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주어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덕분에 올리버를 향해 말하는 거라고는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었으니까.

여하튼, 후크와 이완의 첫마디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갑자기 제3의 세력이, 그것도 배를 타고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란다 한복판에 해적선이 등장한 어이없는 광경에 짧지만, 긴 적막이 흘렀고.

“침몰시켜!”

곧이어 드루이드들이 그 적막을 깨버렸다.

가히 훌륭한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아군이 아니면 적뿐. 피아식별이 되지 않는다면 일단 공격하고 봐야 했다.

누군가 판단을 내리자 드루이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윌레스를 포위한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변수를 침몰시키기 위해.

드루이드들은 녹색 빛 자연의 힘을 내뿜으며 제각기 주술을 발동.

자연의 힘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하고, 거목을 만들며, 그 거목을 몽둥이로 가공, 아예, 나무를 사람 형상으로 엮어 골렘처럼 조종해 배를 박살 내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드루이드의 지원으로 온 마력사용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칼과 도끼 같은 냉병기뿐 아니라, 소총, 바주카포 같은 화기에 마력을 때려 박아 큰 한 방을 준비했다.

부피가 큰 상대에게 걸맞은 효율적인 대응. 허나, 이번에는 그 상대가 나빴다.

“사격 개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셈 강의 강물을 뒤집어쓴 후크가 레이피어를 뽑아 들며 외쳤다.

철컥. 철커덩. 촤르르르-탕!

후크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웬디 호 측면에 갑자기 수십 개의 대포가 튀어나오고, 기관총이 솟아났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전쟁 병기의 집합.

정상에서 벗어난 그 광경에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는 한순간 멈칫했고, 웬디 호의 선원들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화력을 퍼부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수십 문의 대포와 수십 정의 기관총, 수십 개의 개인 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자 뭐라 형용하기 힘든 굉음과 진동이 울렸다.

마치 벼락이 내리치고, 땅이 흔들리는 듯했는데, 그 위력은 벼락과 지진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 증거로 웬디 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달려들었던 수십 명의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이 그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역으로 쓸려나갔다.

거대한 포탄에 드루이드의 거목을 부러지고, 그 뒤에 숨은 드루이드의 몸통이 산산조각났으며,

포도탄의 쇳조각과 기관총의 납탄은 마력사용자들을 말 그대로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압도적인 화력에 선착장은 흔적도 없이 박살 났으며, 찢긴 팔다리가 허공에 흩날리고, 대지는 붉은 피로 덧칠됐다.

실로 당연한 결과였다. 웬디 호의 무수한 강점 중 가장 대표되는 강점이 순간 화력이었으니까.

그 위력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방금까지 윌레스와 그 부하들을 몰아넣어 승리감에 도취한 드루이드들은 한순간 패닉에 빠져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것이 압도적인 화력의 강점이었다. 직접적인 공격뿐 아니라 시각과 청각으로도 상대를 무력화할 수 있었으니까.

수십 년간 해적으로 바다를 누빈 후크는 이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손님들을 모셔와라!”

후크가 소리치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크의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폐허가 된 선착장으로 상륙. 백병전에 돌입했다.

강력한 화력에 큰 피해를 입어 사기가 꺾인 드루이들와 마력사용자들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이내 반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다행히 선원들 하나하나는 드루이드에게 미치지 않는 수준. 드루이드가 두세 번 팔만 휘둘러도 머리가 박살 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후크의 선원들은 웬디 호에 기반해 만들어진 크리처.

박살 난 선원들은 얼음처럼 녹아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웬디 호 간판에서 솟아올라 다시 상륙해 드루이드를 향해 끈질기게 덤벼들었다.

웬디 호를 구성하는 생명력과 감정이 다 소모될 때까지 선원들은 무한히 살아날 터.

흡사, 불사의 군대.

압도적이진 않지만, 끈질긴 공세에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은 도저히 밀어내지 못하고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후크가 절망적인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백병전으로 발이 묶인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에게 다시 한번 화력 공격을 지시했다.

문제가 있다면 후크의 선원들도 휩쓸릴 수 있다는 점.

그러나 이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앞서 설명했듯 후크의 선원들은 크리처인 데다, 심지어 웬디 호에 묶여 있는 크리처였다.

큰 피해를 입는다 해도 웬디 호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건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이라는 이야기.

압도적인 화력이 머리 위로 떨어지자 발이 묶인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은 육편이 되었고, 그렇게 윌레스를 포위한 드루이드는 도망친 자들 외에는 전부 다진 고기가 되고 말았다.

획-!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윌레스가 올리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올리버 역시 윌레스의 눈을 봤고, 둘의 뜻은 통했다.

눈으로 대화를 마친 윌레스는 동료들을 데리고 난생처음 보는 후크 선장을 향해 뛰어갔으며, 후크의 선원들은 이를 엄호해 주었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드루이드와 마력사용자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두 차례의 포격으로 기가 꺾일 대로 꺾인 데다 다가가 봤자 죽지 않는 선원들과 대포만이 반겨 줄 뿐이었으니,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아, 딱 한 명만 빼고.

“내가 앞장설 테니, 엄호해 주시오!”

올리버와 같이 이동하느라 한 발짝 늦게 도착한 피어스가 올리버에게 요청했다.

그는 웬디 호의 화력과 죽지 않는 크리처-선원을 보고도 임무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올리버의 도움을 받아, 한점만 노린다면 최소한 ‘납치당한’ 드루이드는 도로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거였다.

아니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던가.

“이보시오?! 설마 손 놓고 있을 거요?!!”

생각에 빠진 올리버를 향해 피어스가 닦달했다. 그 말에 올리버는 일단 움직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일단 돕는 척은 해야 했으니.

만약, 거부한다면 일부러 놓쳤다는 둥 나중에 귀찮을지도 몰랐다.

뭐, 이미 윌레스와 후크 선장에게도 미리 언질을 준 터라 문제는 없었다.

적당히 최선을 다하는 척하다 윌레스의 화염과 정령, 후크의 포격에 밀려나는 척 연기를 하면 아무 문제 없을-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올리버의 개인 통신장치가 울렸다. 신호음을 봤을 때, 재개발 연합에서 온 것.

올리버는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 멈춰 서며 통신장치를 받았다.

이에 일분일초가 급한 피어스가 송곳니를 보이며 으르렁댔다.

“지금 무슨······.”

비록, 올리버가 입술 위에 손을 올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낯빛이 허옇게 변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올리버가 갑자기 내뿜는 중압감에 압도된 거였다.

더 정확히는 올리버가 억누르고 있던 그림자의 기운에 압도된 거였지만.

올리버의 그림자가 네버랜드와 팬의 그림자를 먹은 후부터 알 수 없는 중압감을 내뿜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챈 올리버는 이를 억눌러왔었다.

덕분에 란다에 돌아왔을 초반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신경이 다른 데 팔리면 이내 중압감이 다시 흘러나와 주변에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즉, 지금 올리버가 정신이 팔릴 일이 생겼다는 거였다.

올리버에게 순간 겁먹은 피어스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그 사이 윌레스와 납치된 드루이드 페델름, 윌레스 휘하 켈자유독립군 여덟 명은 후크 선장의 배 위에 올라탔다.

손님을 태운 후크 선장은 배는 앞으로 크게 기울더니 그대로 갈색빛 셈 강 아래로 잠수. 부글부글 물거품을 내며 사라졌다.

“잠깐?! 난 란다로 돌아갈-꼬르르르륵!”

캣틀링 건으로 화력을 보태던 이완이 비명을 지른 듯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살아남은 드루이드들은 바로 코앞에서 목표를 놓쳤다는 사실에 절망하느라 바쁘고, 올리버는 통화하느라 바빴으니까.

“······.”

“······.”

윌레스를 완전히 놓쳐버리자, 열 명 이하로 줄어든 드루이드는 모두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특히, 한순간 올리버에게 겁먹은 피어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통신을 계속했고, 이내 짧지만, 긴 통신을 마쳤다.

피어스가 조심스럽게 뭐 때문에 그런 거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올리버가 대뜸 입을 열었다.

“지금 왕자님이 참석한 모임에 괴한들이 습격했다고 합니다.”

조에게서 들은 소식을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는 드루이드의 감정을 읽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

피곤하다.

연합 왕국의 왕자이자 제2 왕위 계승자인 알버트는 지난 몇 주 동안 생각했다.

피곤하다고.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란다에서 아주 아주 피곤한 시간을 보냈으니.

란다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구경꾼과 플래시 세례를 받았고, 이후에는 숨 쉴 틈 없는 행사를 대접받았으니까.

참전용사 행사, 여성회 행사, 기업인 행사, 행사, 행사, 행사······.

그 수많은 일정을 떠올리자 알버트는 멀미가 일 것 같았다.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따라붙던 수많은 시선, 그 시선에 담긴 각종 감정이 떠올랐기에.

뭐, 불평할 생각은 아니었다.

인류의 황금기인 마법과 산업의 시대를 이끄는 연합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자신에겐 그건 당연히 짊어져야 할 의무였으니까.

다만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저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에 비할 바는 아닌 걸 알았지만, 그래도 알버트는 가끔씩 피곤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특히,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올 정도로 장시간 미소 짓거나, 등의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마음에도 없는 대사를 읊을 때마다 말이다.

혹시, 자신이 어리광을 피운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망나니던 형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데, 고작 이 정도로 피곤하다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이었다. 버티다 보면 괜찮아질 거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알버트는 마지막 일정에 참석했다.

란다 경제 총괄 모임이라던가? 피곤해 행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으나, 여하튼, 란다의 꽃인 수많은 경제인이 모여 교류하는 자리였다.

특이한 점은 전통적인 자본가와 사업가들 외에도 신(新)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층도 참석한다는 거였다.

마력사용자, 흑마법사, 길거리 마법사로 이뤄진 초인들로, 무력을 이용해 자본을 얻은 새로운 자본 계층이라 했다.

‘신(新) 계급은 이름 그대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란다의 새로운 계층입니다, 란다에서조차 이질적인 존재라 그런지 기존 자본가들과 섞이지 못하고 있지요. 란다 측에서는 이번 행사에 왕자님께서 참석해 그 두 계급이 화합할 수 있게 도와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알버트가 비서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어떻게?

하지만 곧 알버트는 그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 해도 연합 왕국의 왕자 앞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을 테니까.

흔한 일이었다. 왕실의 권위를 빌려 억지로나마 화합을 이뤄보려는 건.

그리고 실제로 알버트가 행사에 참석하자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왕자가 참석하는 자리라 그런지 전통 자본가도 신(新) 계급도 불참 없이 모두 참석했고, 서로 으르렁 대지도 않았다.

그저 물과 기름처럼 둘로 나뉘어 알버트와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눌 뿐.

수많은 행사에 이골이 난 알버트조차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한 시간이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술이 가미되자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최소한 란다 측에서 기대한 만큼은.

그렇게 자기 역할을 마친 알버트가 슬슬 떠나려 할 때 사건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무장병력이 발견됐다는 보고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호텔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총으로 무장한 괴한 무리가 발견됐다는 것.

부와 폭력의 도시라는 이명에 걸맞게 처음엔 다들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응했다.

거대 도시 란다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만큼 미친놈들도 많았으니까. 이 정도는 그저 평범한 일로 간주했다.

오히려 몇몇은 괴한이 오면 자기가 처리해 준다고 뻥뻥 큰소리치기까지 했다. 신(新) 계급 출신이 한 말이니 허풍은 아닐 터였다.

바로 그 직후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한 블럭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행사장 안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는데, 뒤이어 다수의 무장병력이 이곳을 향해 강행 돌파를 시도했다.

비웃음은 사라지고,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개중에 몇몇은 도대체 보안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욕설 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불만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웬 괴한들이 호텔 정문을 돌파하려고 해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을 노리는게 명백해졌다.

일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왕실 비서와 행사주최인 란다 측 인사가 반대했다.

지금은 이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곧 란다 경찰과 란다 방위군, 보안국에서 올 테니 진정하라고 하였다.

알버트 역시 상식적으로 그게 옳다고 판단했으나, 이는 실수였다.

왕자가 참석한 행사에 괴한이 습격 시도한 것 자체가 이미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위였으니, 상식적인 판단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이곳으로 지원을 오던 경찰, 방위군, 보안국이 웬 괴한들에 의해 발목이 붙잡혔다는 사실로 증명됐다.

덕분에 지원군만 기다리던 행사 호위 병력은 급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고.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자본을 얻었지만, 그 뿌리는 초인인 신(新) 계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란다의 지배층이 자본가. 무엇보다 란다의 귀빈 중의 귀빈인 알버트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파티에 참석한 란다의 신(新) 계급은 최소 인원만 남기고 호텔 밖으로 나갔고, 직후 안의 호위를 맡은 신(新) 계급 인사 몇몇이 행사장의 다른 경호원들을 살해하며 알버트에게 달려들었다.

“건방진 애새끼. 죽어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꿈 같은 상황.

바로, 그때 알버트의 품속에서 빛이 났다.

왼쪽 안 주머니 안에 넣어둔 종이가 빛난 것으로, 이 종이는-

“-괜찮으십니까?”

보라색 포털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 란다의 최고 해결사 데이브가 알버트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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