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18화 (618/633)

618. 드루이드의 의뢰 (2)

비록, 소년이긴 하나 책임감이 강한 알버트 왕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올리버와 헤어진 후, 알버트 왕자는 본인이 말대로 란다 내 이곳저곳의 행사와 단체에 불려 가 수많은 사진을 찍고, 수많은 연설을 했다.

기업가들의 모임, 여성회, 구역 모임, 퇴역군인회, 자선단체, 종교기관 같은 곳 말이다.

알버트 왕자가 움직일 때마다 수백 명은 될 법한 기자들이 따라붙으며 쉴 새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눌렀댔다.

알버트 본인은 별거 아닌 일이라고 했으나, 올리버가 볼 땐 아니었다.

최소한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그랬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올리버에게 있어 알버트가 하는 일은 아주 힘들고 곤욕스러워 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발걸음 하나, 말 한마디까지 모조리 기록되는 게.

재밌는 건 올리버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듯한 말 한마디조차 신문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확대해석한다는 점이었다.

가령, 왕자가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하면, 샐러드는 싫어하는 게 되어 버린다든가.

물론, 신문을 주기적으로 구독하고 있는 올리버는 해당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아는 사람을 통해 접해보니 또 그 느낌이 달랐다.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느껴진다고 할까?

여하튼, 왕자가 하는 일은 참 힘들어 보였다. 만약, 올리버 자신이었다면 도망쳤을 정도로.

허나, 놀라운 점은 아직 열 몇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년이 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왕실은 란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사실을 사진, 연설을 통해 은근히 내비쳤고, 란다의 신문사는 이를 잡아내 기사에 실었다.

그렇게 알버트 왕자가 란다에 방문한 지 며칠 만에 란다는 왕실에 우호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올리버는 알버트의 말대로 지금 드루이드와 만남을 가졌다.

마탑 행정타워 접견실, 이곳에서.

탁-!

올리버의 대답을 들은 녹색 머리 거구의 남성이 두꺼운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품위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분노를 드러낸 것으로, 처음 봤을 때와 비슷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눈앞의 드루이드는 올리버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과거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제안대로 재개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찾아온 개혁파 드루이드 피어스로,

당시 그는 답답한 생활과 가혹한 수련에 지쳐 도시로 도망친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를 도로 그린랜드로 끌고 가기 위해 란다를 방문했었다.

비록, 약간의 사건으로 인해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보다는 엔조이먼트 드루이드였던 고깃덩어리들을 더 많이 데려갔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는 보직을 변경됐는지 원래 임무였던 드루이드 양성 대신, 알버트 왕자의 수행원이란 신분으로 란다를 다시 방문해 올리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피어스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맹수 같은 생김새처럼, 그의 목소리는 짐승이 낮게 으르렁대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날 놀리는 것이오, 데이브.”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행정타워의 주인인 버크가 끼어들어 양해를 구했다.

“아아. 잠시만 실례를······.”

평소 마탑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외부와 접촉이 잦은 버크는 능숙하게 양해를 구하며 옆에 앉은 올리버를 끌어당겨 귓속말했다.

흑마법 학파의 건립을 위해 협력하다 보니 나름 친분이 생긴 듯 한결 편하게 말했다. 최소한 올리버는 그렇게 느꼈다.

“미쳤나?”

그 마음에 화답하고자 올리버는 솔직히 답했다.

“안 미쳤습니다.”

“근데, 그따위로 이야기하나?”

“······‘싫은데요?’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무슨 애도 아니고, 이런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어딨나?”

“아······.”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아무래도 실패한 듯했다. 사실, ‘싫은데요?’라고 말한 건 아무 생각 없이 한 게 아니었다.

포레스트의 조언에 따라 나름대로 고심해 준비한 대답이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정말 제대로 사업을 할 생각이면, 가끔씩은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올리버라면 평소 하지 않을 언쟁도 해야 하고, 때때로 억지도 부려야 한다고.

일을 보조하기만 했던 과거의 올리버였다면 하지 않았을 조언이었으나, 올리버가 학파를 세우려는 등 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포레스트는 고심 끝에 해당 조언을 했다.

‘물론, 어지간한 건 내가 다 할 생각이야. 애당초 내가 공동대표 자리를 차지한 것도 그 이유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난 오히려 이런 일 좋아하기도 하고······. 다만, 내가 나서지 못하는 자리도 있을 거야. 그때는 데이브 자네가 해야 하네.’

포레스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지금 이 자리.

그래서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강력한 의사를 보여주기 위해 싫은데요 라고 대답했다.

근데, 실수였던 거 같다.

“그래, 실수야.”

올리버의 설명을 들은 버크가 다시 못 박아줬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대답. 그러나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았다.

싫은데요 라고 대답한 이유가 강한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드루이드가 찾아온 진짜 이유는 자연의 힘 사용 때문만이 아닌 것도 있었다. 그것은 그저 명분일 뿐 진짜 용건은 따로 있었다.

이를 증명해주듯 피어스 옆에 앉아 있던 여성 드루이드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말실수하신 듯한데, 그래도 이쪽 요청을 거부하시는 건 매한가지 같군요······. 제가 귀가 좋아서요.”

올리버와 버크가 바라보자 여성 드루이드를 말했다.

마법을 이용해 대화 소리를 차단했건만 그걸 듣다니. 하지만 이상하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각각 자연의 힘과 마력을 다루는 초인들. 이 정도 재주는 당연한 거였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자연의 힘과 주술 등. 드루이드의 힘은 계속해 사용할 생각입니다. 지금 하는 일에 필요해서요.”

“자연의 힘과 주술은 드루이드의 것인데, 드루이드도 아닌 분이 그걸 멋대로 사용하는 건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접견실 내 있는 드루이드와 버크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저는 자연의 힘과 주술이 드루이드의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드루이드는 자연의 힘과 주술을 다루는 사람일 뿐이죠. 바람과 태양에 주인이 있다고 하진 않잖습니까?”

드루이드들의 눈썹이 꿈틀댔다.

아무래도 올리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뭐, 그럴 수도. 드루이드는 자연의 힘을 아주 긴 시간 동안 독점해 왔으니까.

그 탓인지 자연의 힘은 드루이드의 힘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인지(認知)가 사실(事實)을 덮어버린 것.

허나, 올리버에겐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상한 거였으니까.

자연의 힘을 처음 사용하는 법을 발견한 건 드루이드가 맞을지 모르나, 자연의 힘은 태초부터 있었던 거였다.

그런 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거였다.

자연의 힘은 드루이드 것이 아니었고, 드루이드란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불과했다.

“그 말은 마법사도, 흑마법사도 예외가 아닐 텐데요?”

“아, 물론-”

“-흠, 흠. 그건 지금 주제와 맞지 않는 이야기군요.”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순간 행정부장인 버크가 끼어들었다.

“드루이드 여러분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습니다. 무슨 심정인지 대충 이해하고요. 다만, 저희 마탑 역시 그쪽 요청에 바로 대답해 드리기 어렵다는 말씀을 정중히 전하는 바입니다.”

방금까지 올리버에게 미쳤냐고 물었던 버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빈틈없고, 공적인 태도를 보였다.

수십 년 동안 행정부에서 일하며 얻은 능력일터.

이에 드루이드가 항의하자 버크는 능숙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여러분의 요청을 바로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제논이 익힌 드루이드의 주술은 란다에서 활동하던 엔조이먼트 출신 드루이드를 통해 익힌 것이고, 지금 제논이 키우는 약초 역시 그린랜드에서 키우는 약초가 아닌, 동쪽에서 가져온 종자를 개량한 것. 솔직히 이런 요청을 받은 것 자체가 의문이긴 합니다. 무엇하나 범법의 여지가 없는데······. 무엇보다 자연의 힘을 드루이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지금 중앙 의회에서-”

“-유감스럽지만, 여기는 란다입니다. 자유도시 란다. 중앙 의회의 법은 저희와 크게 상관없습니다.”

버크는 부드럽게 타이르는 듯하다가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판단하자마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 모습에 드루이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개인적 감정과 별개로 버크의 논리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으니까.

자연의 힘을 드루이드만 사용하라는 법 따위는 없었다. 애당초 그런 법이 있었다면 마법도 같은 취급을 받아야 마땅했으니까.

허나, 당연히 그런 법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 흑마법 역시 다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드루이드들이 이러는 건 특유의 폐쇄성과 학습의 어려움 탓에 드루이드들이 자연의 힘을 오랫동안 독점해 왔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저 올리버의 등장으로 그 독점적 위치가 흔들린 것뿐이었다. 앞의 마법사들이 그러하듯.

버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실로, 합리적인 주장. 또, 설사 드루이드만 자연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법이 생겨도 이곳이 자유도시 란다는 예외라는 점을 지적해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도 방지했다.

싸한 침묵이 접견실 내부를 적셨고, 드루이드 피어스가 입을 열었다.

“이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소.”

“동의합니다.”

버크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다만, 정말 드루이드의 의견을 들어주려는 거는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끌고, 상대를 지치기 게 하기 위한 란다 특유의 음흉한 수법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라는 건, 다른 문제도 있다는 거군요.”

“그렇소.”

피어스가 대답했고, 올리버는 속으로 역시나라고 대답했다.

요청받아 이곳 접견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올리버는 드루이드들이 다른 볼일이 있어 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감정이 이를 말해주었기 때문.

한때,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를 잡아가기 위해 온 피어스는. 이번 두 번째 방문 역시 비슷했다.

“제논. 아니, 해결사 데이브에게 의뢰할 것이 있어 왔소. 켈 반군이 우리 드루이드를 하나 납치했고, 지금 란다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찾는 걸 도와주면 좋겠소.”

***

알버트 왕자를 보좌해 란다를 방문한 피어스와 드루이드들은 올리버에게 비밀 의뢰를 하였다.

켈 반군이 납치한 드루이드를 찾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올리버는 물었다. 왜 그런 의뢰를 하는 건지. 차라리 시(市)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이다.

해결사로서 올리버가 유능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 해도 해결사였다.

해결사에게는 보통 숨기고 싶은 구린 일을 맡기는 게 보통이고.

이 같은 경우에서는 올리버보다 시(市)의 공권력을 빌리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

합리적인 길을 가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이에 관해 질문하자 피어스는 드루이드 내부적인 이유라고 둘러댈 뿐 제대로 된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만큼 보상은 제안했다. 올리버가 자연의 힘을 쓰는 데 항의하지 않겠다는. 왕실과의 친선도 생각해.

실제로는 주는 것 없이 일을 시키는 셈이었으나, 올리버는 이를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루이드가 항의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 올리버는 일단 의뢰를 수락해 조를 찾았다.

“하수도 뱀이 아직 있냐고요?”

“예. 아직 X구역에 있습니까?”

하수도 뱀. 과거 올리버가 한번 접촉해 본 X구역의 갱단 중 하나였다.

흑마법사 가일이 이끄는 갱단으로, 란다로 도망친 도망자들을 숨겨주는 사업을 하는 이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과거 그들은 란다로 숨어든 켈 자유독립군 중 일부를 숨겨준 전적이 있었다.

“예, 아직 X구역에 있습니다. 다른 갱들과 달리 우리 쪽에 협조적이었거든요. 왜 그러십니까?”

“찾을 분들이 있어서요.”

“글쎄요······. 제가 알기로 그쪽 사업은 손 뗀 거로 알고 있습니다. X구역이 재개발되면서요.”

“그래도 한번 만나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모르니까요······. 아, 혹시 바쁜 일이 있으신지요?”

“시(市)에 요청받는 일이 있긴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누굴 찾으시려는 건지요?”

“켈 자유독립군 윌레스 씨요. 그분이 다시 란다로 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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