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 보고 (2)
버크에게 지원금을 받은 후 올리버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오염구역을 청소하고, 오염구역에 사는 난민들에게 임시 거주지와 일, 임금을 지급해주며, 재개발 연합인 선택하는 사람들과 파이터 크루 사람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올리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지금 생활과 생각을 물으며, 바라는 꿈이나 목표가 뭔지 알기 위해.
그리고 일부에겐 개인적으로 흑마법도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령, 머피의 동생일 마일로나, 로렌스, 조, 마리와 같은 이들에게.
그 이유는 각자 달랐다.
마일로는 올리버에게 흑마법을 배우길 원해 이것저것 선택하는 사람들을 도와준 게 있어 그 보답으로 가르쳐줬고.
마리를 짝사랑하는 로렌스에겐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어서 가르쳐줬다.
조는 재개발 연합의 기둥이라 가르쳐줬으며,
마리는 재개발 연합의 기둥인 이유에, 고유 흑마법을 쓰지 못하게 한 미안함이 있어 더 열심히 가르쳤다.
여하튼 올리버는 바쁘지만 하루하루 충실하게 시간을 보냈다.
차근차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올리버 자신이 갈 방향을 정하며, 오염구역 청소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진행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올리버는 멀린과 따로 약속을 잡았다. 보고할 것이 있어 말이다.
***
“보고할 것?”
“예, 어르신.”
란다 A구역 한 공원. 올리버가 벤치에 앉은 채 대답했다.
올리버의 옆에는 멀린이 앉아 있었고, 그 두 사람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멀린이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물었다.
“음, 맞춰보지······. 오염구역에 관해서인가?”
“맞습니다.”
올리버가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그 태도가 멀린의 호기심을 끈 것 같다.
“반응이 심심한데?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같은 질문 안 하나?”
“이미 어르신께서 아셨을 거라 생각해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면 어르신은 아카이브이지 않습니까? 아카이브는 다 알고 계시고요.”
“하······. 틀린 말은 아니군. 아카이브는 다 알고 있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왠지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군.”
“이미 받았습니다. 아이스크림요. 맛있네요.”
올리버가 멀린이 사준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자 멀린은 하! 하고 짧게 웃었다.
“농담이 늘었군······. 보고하고 싶은 게 뭔가?”
아이스크림이 선물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으나, 올리버는 굳이 정정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중요한 이야기라 계속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오염구역 보고서에 제가 누락한 정보가 몇 개 있습니다.”
보고서 누락. 심각하게 다룬다면 심각한 문제. 그러나 멀린은 담담할 뿐이었다.
“뭘 누락했나?”
“오염구역 지하로 침입한 이들 비소속 갱단 외에 더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핵심이고, 비소속 갱단은 잡역부에 불과합니다.”
“그럼, 진짜 침입자는 누구지?”
“핑크맨입니다.”
핑크맨. 사설 경비업체지만, 실상은 고도화된 용병 회사로, 란다는 물론 연합 왕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다수의 초인이 직원으로 있었으며, 이들을 받쳐줄 조직화한 수천 명의 단원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정치인, 자본가 등 높으신 분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리고 정치인들과 더 사이가 친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잘 알고 있구만. 익숙지 않게.”
“저도 들어서 아는 겁니다. 어쨌건 그 핑크맨에서 비소속 갱단을 이용해 오염구역 지하를 습격한 것 같습니다.”
“음······. 약간 이상하군. 핑크맨이 나설 정도면 제법 중요한 사안일 텐데, 거기 뭐가 있다고 간 건지. 비싼 실험도구나, 마탑 연구자료 등은 이미 진작에 다 털렸을 텐데.”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멀린은 그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느 쪽이건 올리버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악마와 관련된 연구와 거래 흔적을 캐러 온 것 같습니다. 오염구역 지하에서 마법사들이 행한 거요.”
쏴하하하하.
올리버가 말을 마치자마자 바람이 불며, 잠시 침묵을 불러들였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멀린은 콘을 우적우적 씹어먹고는 올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았나? 같은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멀린은 예상 밖의 질문을 했다.
“누가 의뢰한 거 같나?”
“예?”
“누가 핑크맨에게 의뢰한 거냐고 물었어. 핑크맨은 잘 훈련받은 이들이지만, 그 근본은 심부름꾼. 시킨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자네는 누구 추측 가는 사람 있나?”
당연히 있었다.
아마, 왕실일 터였다.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나, 최소한 올리버는 왕실일 거라 추측했다.
가장 큰 이유는 현 왕세자인 에드워드 10세가 악마를 숭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시외(市外) 임무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허나,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번 의뢰를 받은 게 핑크맨인 것도 한몫했다.
그도 그럴 게 핑크맨의 가장 큰 고객은 왕실이었으니까.
최소한 포레스트가 알려준 논리에 따르면 그랬다.
자본뿐 아니라 정치적 커넥션도 신경 써야 하는 핑크맨은 자본가와 정치인이 맞붙을 때 정치가의 편을 든다고.
그 논리대로면 핑크맨의 최대 고객은 왕실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가도 영원히 군림하는 왕실에 비하면 한낱 꽃에 불과했으니까.
그 증거로 신대륙에서 왕실 사람의 신변 보호를 맡았던 게 핑크맨이었다.
그 외에도 올리버가 왕실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더 있었다.
신대륙의 채굴회사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인수한 게 그중 하나였다.
아마, 단순히 경제적 이유로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인수한 건 아닐 터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랬다. 경제적 이유라면 에디스에게서 3배 가격을 주고 주식을 사는 행위는 하지 않을 테니.
아마, 프로메테우스 사(社)에게 원하는 다른 게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프로메테우스 사(社)는 홍인을 압착기로 쥐어짜 마석을 만든 회사였으니까.
어쩌면 프로메테우스 사(社)에 악마와 거래하는 비법이나, 촉매가 있을지 몰랐고, 왕실이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인수한 건 그 때문일지 몰랐다.
이런 정황에서 핑크맨이 오염구역 지하에서 악마의 흔적을 캐간 것은 올리버로서 한가지 추측밖에 할 수 없게 했다.
왕실이 지금 악마와 거래하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다는.
참으로 소름 끼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평화롭건만 그 아래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인류의 황금기인 지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연합 왕국의 꼭대기인 왕실에서 악마를 숭배하고 있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다음 올리버 자신의 행동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핑크맨에게 이런 일을 시켰는지요.”
올리버는 멀린에게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뭐, 솔직히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연합 왕국의 지배자인 왕실을 고작 추측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해당 추측 모두 증거는 없고, 올리버 머리에만 있는 사실.
하지만 올리버가 진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두려워서였다. 자칫 잘못 입에 담았다간, 멀어지려는 것에서부터 멀어지긴커녕 오히려 가까워질 것 같아. 그래서 올리버는 모르는 척했다.
어쩌면 큰 사달이 날지 모르지만,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올리버는 도망치고 싶었다. 원치 않는 것으로부터.
막상 일이 터진다 해도 그건 그때 가서 노력해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러니 그전까지만 피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올리버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자신의 욕망에 따른 것.
그래도 알량한 양심 탓인지, 다른 사실을 꺼냈다.
“다만, 배후에 퍼펫 님도 관여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추측이 아닌, 확언이군.”
“물었고, 대답해 주셨거든요. 전(前) 전통 가이아 학파 마법사님에게요.”
올리버는 오염구역 지하로 내려가 전통 가이아 학파 마법사를 만나는 과정과 특징을 멀린에게 설명했다.
“정령을 마력으로 구속하고, 정령의 힘 일부를 육신에 억지로 이식했습니다. 거기서 퍼펫 님의 솜씨인 걸 알아채고 물어봤는데, 마법사님께서 맞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쉽게?”
“예, 저에 대한 존경심과 호의라고요.”
“누군지 아나?”
“아뇨, 다만, 남성이고, 어르신을 알며, 노력과 성취를 중요히 여기시는 분 같습니다. 퍼펫 님과 손을 잡을 정도로요.”
설명을 들은 멀린의 눈빛이 변했다. 누군지 알아챈 듯했다.
다만, 올리버는 그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딱히, 알고 싶지 않았고, 숨기는 게 있는 와중 멀린에게 뭔가를 캐묻는 게 좀 불편해서.
그래서 올리버는 질문도 하지 않고, 멀린이 말하길 기다렸다.
짧은 침묵이 흐르자 주변머리만 남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줘서 고맙구만. 아이스크림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야. 사실 사주는 게 아까웠거든.”
“······이유는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뭐가?”
“제가 왜 마탑에 해당 사실을 누락해 보고서를 올렸는지 같은 거요······.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혼란을 야기할까 봐 아닌가? 핑크맨에 전(前) 전통 가이아 학파 마법사가 오염구역 내 악마와 관련한 연구를 가져갔다는 건 적잖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테니. 그래서 나한테 따로 이야기한 거 아닌가?”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흑마법사의 눈으로 봤다.
저번에 한순간 미세하게나마 멀린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지만, 말 그대로 한순간. 지금은 멀린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 탓에 올리버는 지금 멀린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둘러대 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맞습니다. 좀 더 빨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건, 그랬어. 앞으로 더 빨리 보고하도록.”
“약속 시각을 빨리 잡으려고 했지만, 늦추신 것은 어르신이신데요?”
“원래 스승이 잘못해도 제자가 비는 법이지. 그것이 올바른 사제 관계이네.”
멀린은 허허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뭐, 임시라곤 하나 스승인 멀린을 어르신이라고만 부르는 올리버도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올리바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갈 때쯤 멀린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오염구역 청소는 어떻게 돼가나? 마탑에서 제법 관심을 가지던데.”
“속도가 문제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일손도 확보했고, X구역 재개발 때 쓰던 중장비와 골렘이 있어, 해체 작업도 순조롭거든요.”
“지반이 많이 약해져 위험할 거란 이야기가 있던데?”
멀린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의 말대로 전(前) 전통 가이아 학파 마법사와의 전투 탓인지, 오염구역의 지반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오염구역은 비밀 지하 연구실이 많아 가뜩이나 아래가 튼튼하지 못하고, 거기에 정령을 이용해 억지로 뒤틀기까지 해, 당장 지반이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긴 했다.
“괜찮습니다. 자연의 힘으로 나무를 조종해 지반을 지탱하고 있거든요.”
“힘만으로 가능한 게 아닐 텐데?”
맞는 말이었다. 건축물이나, 지반이나 커다란 기둥을 하나 심는다고 되는 게 아닌, 적절하게 하중을 나누는 게 핵심이라, 무식하게 나무만 만든다고 무너지는 지반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에 올리버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느 부분을 지탱하면 버틸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알거든요. 마탑 도서관에서 건축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봐서요.”
마탑 도서관 대부분의 책을 읽은 올리버가 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마탑에서 빌린 책을 읽은 덕이었다.
“거기다 이브도 도와주거든요.”
“이브가?”
“예, 오염구역에 있는 세계수에 제가 통제하는 나무를 접촉시킨 후, 자연의 힘으로 세계수와 나무를 연결해주면 이브가 나무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올리버가 혹시나 싶어 실험해 본 일화를 이야기했다.
올리버가 자연의 힘으로 계속 연결해주고 보조해줘야 했지만, 세계수 속의 이브는 나무를 통제해 현실 세상에 물리적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때, 이브는 연결된 나무를 통해 오염구역 전체 구조를 파악. 무너지지 않게 기초 토대를 잡아주었다.
해당 소식을 들은 멀린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런 걸 뭐 그리 별거 아닌 듯 설명하고 있어?”
“······사실 제가 엄청난 걸 발견했습니다.”
“늦었어.”
“그런가요?”
“숨겨뒀다가 나중에 모이라이 학파와 거래할 일이 생기면 그때 꺼내 봐. 그럼,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이거 재밌는 소식을 들었으니 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겠는데?”
“예?”
“나도 재밌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뜻이야. 그렇다고 너무 영양가 있어서는 안 되고.”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하네요.”
비꼬는 게 아닌 진심이었다. 멀린의 입장에서 재밌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멀린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란다에 왕자가 온다고 하네. 제2위 왕위 계승자 알버트 왕자가.”
***
연합 왕국의 제2 왕위 계승자 알버트.
공교롭게도 올리버는 신대륙에서 그 소년을 만난 적 있었다.
소년은 왕실을 대표해 프로메테우스 사(社)를 차지하러 왔으며, 의도치 않게 팬이 소환한 불타버린 자로 인해 큰 곤욕을 치렀다.
도시 사분의 일이 타는 대화재를 겪었으니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허나, 의외인 점은 당시 소년은 왕자로서 자기 일을 잘 수행했다는 점이었다.
직접적으로 불을 끄진 못했어도, 왕자라는 신분에 맞춰 식민 도시인 퍼스트 스텝의 치안을 진정시키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의외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알버트 왕자가 그냥 소년이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소년이었다. 10대 초중반의 소년.
보통의 소년들보다 옷차림과 위생 상태, 머릿결, 피부 등이 좋긴 했으나, 딱 그 정도일 뿐 그는 그냥 여느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대화재에서 차분한 모습을 보여 도시 사람들의 혼란을 최대한 줄였다.
이는 대단한 거였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런데 멀린은 그 소년이 곧 란다를 방문한다고 했고, 이는 사실이었다.
멀린과의 만남 이후 며칠이 지나자 왕실에서 란다로 알버트 왕자를 보낼 거라는 공문을 보냈고, 또 며칠이 지나자 왕자가 방문했다.
비록 올리버는 일을 하느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수만 명이란 인파가 모였습니다. 왕자가 방문하는 도로 주변에 말이죠.”
올리버와 달리 알버트 왕자가 방문한 행렬을 직접 보고 온 조가 말했다.
다 구경한 후 돌아와 올리버와 대련하는 바람에 현재 온몸에 칭칭 붕대를 둘렀지만 말이다.
마리의 자세를 교정하며 흑마법을 가르쳐주던 올리버가 되물었다.
“수만 명요?”
“예, 발 디딜 틈도 없더군요. 도시 방위군도 쫙 깔려있고요. 축제와 재난이 동시에 일어난 것 같은데, 이상하진 않습니다. 왕실에서 란다를 직접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그랬다. 대재앙으로 기존의 란다가 폐허가 되고, 다시 재건돼 자유도시가 된 이후로 왕실에서는 란다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했다.
왕실은 자신의 땅이 아니게 된 란다로 가기 꺼려졌으며, 란다 역시 왕실이 오는 걸 반기지 않았다. 란다는 자유도시였으니까.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거였다.
“모인 군중들은 대부분 흥미와 관심 탓에 모였지만, 일부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빛냈습니다.”
조가 흑마법사 눈을 통해 본 사람들을 이야기했고, 올리버는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에게 왕자는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겠지만, 일부에겐 경계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
자유도시 란다에서 성공한 이들이 그 대표로, 조도 그중 하나였다.
“혹시, 왕자가 란다를 방문한 이유를 아십니까? <노크레딧(NO Credit)>, <라이어(Liar)>, <지브리쉬(Gibberish)>, <뷰글러(bugler)> 같은 신문에서 왕자가 란다를 방문한 게 란다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서라는 둥, 숨겨진 음모가 있다는 둥, 왕실이 란다를 인정한다는 둥 이상한 이야기만 해서요.”
“아마, 망각의 해와 마탑 건 때문일 겁니다.”
올리버가 멀린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이유는 멀린도 확신하진 못했으나, 일단 공식적으로 알버트 왕자가 란다로 찾아온 이유는 망각의 해, 마탑. 이 두 가지였다.
대서양의 중간 경유지 역할을 하던 망각의 해를 아카이브가 되찾음으로써 현재 소유가 불분명해진 상태였는데, 이에 관해 란다와 조율하기 위해 찾아왔다. 동시에 마탑과 관련해서도 볼일을 보러 왔고.
“마탑엔 구체적으로 무슨······?”
“박람회 초대일 겁니다. 왕실에서 마법 기관을 세우려 하는데, 그 일환 중 하나죠. 또, 저 때문일 겁니다. 정확히는 드루이드의 주술 때문이지만요.”
이를 증명하듯 란다를 방문한 알버트 왕자의 수행단 중에 드루이드도 있었다.
놀랄 것은 아니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사업을 하려 한다면 드루이드들이 항의할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
그저 왕자와 함께 올 줄은 몰랐을 뿐.
오염구역의 핑크맨을 몰아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실. 그것도 왕자가 직접 온 게,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올리버는 당장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그렇게 마리의 흑마법을 계속해 봐주던 와중 조와 같이 올리버와 대련하던 오언이 다가왔다.
거구의 덩치가 다가오자 올리버 머리 위로 그늘이 생겼다.
“대표님.”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슬슬 마리의 훈련도 다 봐준 올리버가 대답했다.
오언은 뭔가 긴가민가하듯 망설이더니, 이내 올리버에게 뭐라 귓속말했다.
속닥속닥.
오언은 덩치에 비해 목소리가 작았지만, 올리버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올리버는 양해를 구한 뒤 바로 오언을 따라갔다.
오언이 안내한 곳에는 작은 골목이 있었고. 그곳에 후드를 뒤집어쓴 웬 소년. 아니, 알버트 왕자가 서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데이브. 아니, 제논인가?”
얼굴까지 가리는 후드를 벗으며 십 대 초중반의 소년이 올리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