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15화 (615/633)

615. 보고 (1)

팔랑. 팔랑. 팔랑.

마탑 행정부. 부장사무실.

그곳의 주인인 버크 포스트는 평상시처럼 오늘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마탑 행정부는 내부적으론 자잘한 행정을 책임지지만, 외부적으론 마탑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기에 좋든 싫든 외부 소식에 귀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좋은 수단은 다름 아닌 신문이었다.

“효율적이거든. 비록, 저 밑바닥 내막까지는 파악할 수 없어도, 사건의 발생 여부와 대략적인 개요는 알 수 있으니. 그것도 동전 몇 푼으로.”

버크는 다 읽은 신문을 접으며 이른 아침 찾아온 손님을 향해 말했다.

그 손님은 다름 아닌 올리버였다.

“그렇군요······. 눈이 가는 소식은 있으십니까?”

“많지. 대륙 중앙이 혼란스럽다더군. 덕분에 난민이 적잖게 발생했고, 그중 흑마법사도 꽤 있어 골치 아프다는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기에 올리버는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올리버 역시 매일 신문을 읽어 해당 기사를 보았고, 무엇보다 아르망 추기사제와 선택하는 사람 갈로스 지부 등 현지 소식을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밌는 건 왜 혼란스러운지는 자세히 안 적혀 있다는 거야. 이유를 알겠나?”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행정부장님께선 아십니까?”

“글쎄? 대륙 중앙이잖나? 거기는 늘 혼란스럽지.”

버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다소 지역 차별적인 발언이었으나, 한편으로 동의했다.

버크의 말대로 대륙 중앙은 늘 혼란스러웠다.

연합왕국이나 갈로스 같은 거대 국가 대신 수많은 소왕국으로만 이뤄져 국가의 행정력이 미약한 게 첫 번째 이유요, 산업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한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산업화하기에는 자본이 너무나도 부족하고, 마법사 역시 대부분 떠나 그 수와 수준이 떨어졌다.

그 탓인지 대륙 중앙의 소왕국들은 대부분 봉건적인 형태를 띠었고, 마법사 대신 흑마법사들이 많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대륙 중앙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가난, 낙후, 위험이지. 혼란스러운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그렇군요.”

“다만, 조금 진지하게 접근하자면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할 순 있지.”

가벼운 태도로 일관하던 버크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다.

“보통의 국가처럼 대륙 중앙의 소왕국들 역시 자기 백성이 나라를 떠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뜩이나 작은 나라가 잘못하면 붕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도망치려는 자가 있으면 필사적으로 막지. 여차하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통해 뭘 추측할 수 있겠나?”

“군대보다 더 무서운 일이 생겼다는 건가요?”

“맞아. 더 나아가 흑마법사들조차 도망쳐야 할 만큼 무서운 일이 발생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지.”

“일리 있군요.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왜 신문에서는 그 이유가 안 실려있는 거죠? 좋은 기삿거리인 것 같은데요.”

“좋은 지적이야. 여기서도 추측할 수 있지. 아직 파악이 안 됐거나, 누가 통제하고 있거나.”

“통제요?”

올리버가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하나의 신문사가 아닌 여러 개의 신문사를 통제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힘의 영역이 아닌 영향력, 정치의 문제였다.

“추측이야. 추측. 자세한 이유가 안 나왔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아니면, 대륙 중앙이 너무 험해 못 알아낸 걸 수도 있겠지.”

버크는 다시 어깨를 으쓱이며 적당히 둘러댔다.

마탑 내외적으로 수많은 일을 하는 사람다운 태도라 할 수 있었다.

모든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능글맞게 흘려버리는.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기사가 많구만. 되찾은 망각의 해 소유권 분쟁, 왕실에서 준비 중인 새로운 마법 기관 같은 거. 하지만 가장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이거지만.”

버크가 해당 신문을 내밀었다.

[오염구역에서 거대 분쟁이 일어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오염구역에서 초인급 수준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올리버가 기사에 있는 사진을 보며 물었다. 참고로 사진은 지진이라도 난 듯 폐허가 된 오염구역 지상과 그 지상 가운데 생긴 거대한 구덩이가 찍혀 있었다.

“어떻게 찍은 거죠?”

“란다지 않나? 비싸게만 팔 수 있으면 어디든 가는 프리랜서 기자들이 발에 챌 듯이 넘쳐. 오염구역 내 사람이 찍은 걸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신문에 실릴 만큼 거대한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버크의 궁금한 사실을 물어보았고, 올리버는 오염구역에서 있었던 일 대부분을 보고했다.

오염구역을 청소하러 갔고,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혼란한 상황이었으며, 그 혼란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했다는.

여기서 대부분이라 표현한 이유는 보고하지 않는 사실도 있어서였다.

가령, 비소속 갱들을 지휘한 게 핑크맨 소속인 전통 가이아 학파 마법사라는 것과 그 핑크맨이 캐는 게 오염구역 지하에 있는 악마 관련 연구라는 것 같은.

이유는 간단했다. 보고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였다.

핑크맨을 이용해 악마와 관련된 거래와 연구의 흔적을 요구한 게 누군지 알 것 같았고, 또, 올리버가 오염구역 지하에 있는 악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고하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아.

그래서 올리버는 란다에서 배운 어른들의 처세술인 모른 척하기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지하에서 연구 자료를 캐는 갱들과 맞붙는 와중에 이렇게 된 거라고?”

“예, 행정부장님. 무슨 연구 자료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있던 갱들이 그렇게 설명해줬습니다.”

“갱들이 방패 형제단이라 그랬지?”

“예.”

“흠, 신기하군. 방패 형제단이라면 퇴역군인 출신 갱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조직일 텐데, 이 정도 마법을 사용하다니.”

“외부에서 마법사를 고용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으나 버크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일부 사실을 이야기 안 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사실대로 보고했으니까.

“혹시, 해당 내용이 신문에 실려선 안 됐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우리 쪽에서 원치 않았다면 아예 기사가 실리지 않았을 거야.”

“그렇습니까?”

“물론, 란다 내 신문사 대부분은 마탑에 협조적이거든. 마탑이 광고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니까.”

“아.”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올리버가 새삼 자각했다. 수많은 마법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마탑은 신문사의 최대 고객 중 하나였다.

“그냥 누가 이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뿐이야.”

“그럼, 제가 실수한 건 아니군요.”

“그렇지. 오히려 잘해준 편이지. 범죄자는 대부분 소탕했고, 불법 난민들도 대부분 통제 아래 뒀으니까. 원하는 게 뭔가?”

버크가 올리버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물었다. 올리버가 원하는 게 있는 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버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대개 놀라운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들은 그만큼 원하는 게 있거든.”

실로 합리적인 말. 올리버는 숨기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

“음······. 원하는 걸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행정부장님께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흑마법 학파를 세우려는 제 행동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왜 묻나?”

버크는 마탑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 대신 이유를 물었다.

올리버는 이 자체를 하나의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부정적이라면 이유조차 묻지 않았을 테고, 뭣보다 버크의 감정은 전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그 가운데에 걱정과 불안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올리버는 버크의 반응과 감정에 보답하기 위해 솔직히 답했다.

“행정부장님께서 도움을 주실지 안 주실지 궁금해서요.”

올리버의 솔직한 의견에 버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묵직한 침묵이 한동안 공간을 내리눌렀고, 잠시 후, 버크가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넬 돕고 싶네.”

진심.

“지금 마탑도 나쁘지 않지만, 나쁘지 않을 때야말로 자극이 필요하거든. 자칫 잘못하면 고일 테니까. 뭣보다 흑마법 학파가 생기면 행정부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까?”

“행정부는 맡은 바 역할과 권한에 비해 아직 마탑 내에서 그 존재감이 강하진 않거든.”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마탑의 탄생 배경과 그로 인한 행정부의 위상은 올리버 역시 알고 있었다.

“만약, 제논 자네를 도와 학파를 세운다면 마탑 내에서 행정부의 위상은 높아지겠지. 학파를 세울 권한이 있는 것과 실제로 세울 수 있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니. 그리고 흑마법 학파가 세워지면 건립을 승인해 준 우리 행정부에 협조적일 테니, 이 역시 행정부로서는 나쁘지 않지.”

“생각 이상으로 솔직히 말씀해 주시는군요.”

“문제 있나?”

“아뇨.”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고, 이는 진심이었다.

자신의 성과와 노력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과 협조하는 마법사도 있는 마당에, 자신이 속한 조직의 번영을 바라는 사람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건 그래서 제논 그대의 일에 도움이 되어 주고 싶긴 해. 다만, 쉽지는 않은 일이야. 이미 설명했지만, 한 개인의 주도 하에 학파를 설립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거든. 더욱이 그게 흑마법이면-”

“-더 많은 검증을 받고, 견제받고 테고요.”

과거 버크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올리버가 정확히 짚어냈다.

올리버가 침음성을 내며 생각에 빠졌다.

“음······. 혹시, 그렇다면 다른 형태로 도움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형태?”

“예, 마탑 내 지원 제도 같은 것으로요.”

올리버가 마탑 내 행정 규정과 사업 관련 규정 등을 뒤진 끝에 찾은 제도를 꺼냈다.

그것은 마탑에 소속된 직원, 교사, 학생 등을 상대로 하는 사업 지원 제도로, 사업이 가능성 있다고 판단되면 지원금과 마탑 내 혜택을 나눠주는 제도였다. 가령, 세제 혜택 같은 거 말이다.

애당초 올리버가 학파를 세우려고 한 것부터가 세제 혜택 때문. 그래서 올리버는 당장 할 수 없는 학파 건립을 뒤로 미루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사업 아이템은 뭔가?”

올리버가 품 안에서 사업 서류를 꺼냈다. 양식대로 작성하면 되는 거라 어렵진 않았다.

“드루이드 약초와 흑마법을 결합한 제약품? 드루이드 주술을 쓸 줄 안다 하더니 사실이었구만.”

“예,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에 적혀있습니다.”

버크는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봤다.

“마법은 없지 않나?”

“어차피 심사는 마탑에서 하는 거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올리버의 반론에 버크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사업에 대한 평가는 마탑에서 했고, 마탑 외에 이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은 없다 해도 무방했다.

기껏해야 란다 시(市) 사업관리감독국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사업 자체가 합법적인 건지, 불법적인 건지만 살펴볼 뿐이었다.

흑마법이 있어 불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었으나, 드루이드의 약초가 섞여 있어 다소 애매하기는 했다.

란다 시(市)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욕이 커, 드루이드의 주술을 이용한 사업을 굳이 훼방 놓을 리 없었다.

버크는 이 사실을 바로 잡아냈다.

“만약, 마탑이 이 제안마저 안 받으면 바로 란다 시(市)로 갔을 테군.”

올리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긍정했다.

학파를 세워 마탑 내에 정식으로 소속돼 세제 혜택을 받는 건 현실적으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올리버는 마탑 내 지원 제도라는 차선책을 가져왔고, 이마저 거부당하면 마탑을 건너뛰고 아예 란다 시(市)와 거래하려고 했다.

세제 혜택이란 게 쉽게 줄 수 있는 혜택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가치를 보여준다면 줄 수도 있다는 거였으니.

‘그 외에도 피의 영약이나, 드루이드의 주술, 생명학파 기술 등도 있고.’

올리버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패를 떠올렸다.

문제는 이럴 경우 마탑이 상당히 민망해질 거라는 것.

주변과 마찰 없이 원만하고 평화롭게 일을 진행하고픈 올리버에겐 피하고 싶은 상황. 그래서 올리버는 버크에게 도와줄 의지가 있는지 물어본 거였다.

“원하는 조건이 또 뭔가? 이 정도까지 이야기했으면 더 원하는 게 있을 텐데.”

“오염구역 전체를 제게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오염구역을?”

“예, 거기 난민분들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대신, 제가 오염구역을 빌리는 동안 그곳을 깔끔하게 청소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오염구역 내 사는 불법 거주민를 내쫓는 것 외에도 낙후된 건물과 오염된 땅을 청소하는 것 역시 제법 큰일이었으니까. 특히,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건 가장 골치 아픈 일에 속했다.

“오염된 곳은 드루이드의 숲을 만들어 정화해 볼 생각입니다. 성법과 결이 다르지만, 드루이드의 정화술도 강력하니. 아예, 숲을 만들어 볼 생각인데, 원하신다면 마탑과 공유하겠습니다.”

“진심인가?”

버크는 가능 여부를 묻지 않았다. 해결사 데이브로서의 명성과 마탑 직원 제논으로서의 평판. 그리고 직접 마주한 올리버의 모습을 통해 올리버가 허세를 부릴 자가 아닌가는 걸 알아.

사기꾼들이 판치는 란다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인물.

허나, 그렇기에 더욱 말의 무게가 남달랐다. 술수가 아닌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밀고 왔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좋은 게 있으면 서로 나눠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거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쉽겠군. 최대한 빨리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네. 지원금도 최대한 맞춰주도록 하고.”

버크가 확답을 줬고,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일에 들어가기 위해.

***

다행히 버크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마탑 행정부장인 버크는 얼마 가지 않아 올리버에게 지원금을 지급해 줬고, 올리버는 이를 바탕으로 오염 구역 청소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올리버는 이를 바탕으로 오염구역에 거주하던 거주민들과 약속한 임시 거처와 청소업체를 세워 그들에게 일감과 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고, 그렇게 오염구역 청소를 시작됐다.

오염구역의 크기와 상태 탓에 일이 빠르게 진행되진 않았으나, 차근차근 구역을 청소해 나갔다.

그사이 틈틈이 재개발 연합에 소속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마리에게도 흑마법을 새로이 가르쳐줬다.

올리버 때문에 기존 흑마법을 쓰지 못한 보답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올리버는 멀린을 만났고, 멀린은 올리버에게 말했다.

“조만간 란다에 왕자가 온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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