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10화 (610/633)

610. 오염구역 (3)

“그러니까 제 제안을 다시 설명해 드리자면······.”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이자, X구역의 재개발 연합의 공동대표이자, 일부에서 손가락이라 부르는 올리버가, 지저분하고 볼품없으며 머리에서 피까지 흘리는 노인에게 뭐라 공손히 설명했다.

“······.”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지금이 인류의 황금기니, 문명의 시대니 떠들어도 아직 뒷골목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공식적으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수많은 식민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여하튼, 지금 이 자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올리버의 존재에 압도돼 침묵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올리버의 위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높은 위명이라 해도 사실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와닿지 않는 법이니까.

사람들이 이토록 굳은 건 다름 아닌 올리버가 내뿜는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눈앞에서 귈림의 목을 꺾은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그 차갑고, 압도적이며, 소름 돋는 광경에 모두 침묵하는 것이었다. 행여 자신도 그렇게 될까 싶어.

그리고 그중 마리와 조는 누구보다 침묵하고 있었다.

“······.”

“······.”

겁먹은 건 아니었다. 다만, 올리버가 귈림의 목을 손가락 튕기듯 부러트리는 모습에 충격은 받았다. 이유는 그들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면 뒷세계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귈림의 목을 부러트린 건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으니까.

어차피 오염구역에 있는 범죄자들은 늦든 빠르든 해결해야 할 존재였고, 지금 상황에선 바로 죽이는 게 여러모로 편했다.

귈림은 일 자체에 방해되는 존재였고, 막 전투를 끝마친 흑마법사들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그 우두머리를 단숨에 해치워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거였으니까.

뭣보다 귈림은 강도, 살인, 강간, 약탈, 납치 등. 여러 죄를 지은 현상범이기도 했다.

그러니 올리버가 귈림을 보자마자 목을 부러트려 죽인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합리적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와 조는 막상 그 모습을 보니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것은 마치 못난 어른이 아이에게 훌륭한 어른이 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모순이었다.

물론, 올리버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여하튼 마리와 조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자기들도 귈림의 목을 꺾고 시작하긴 했을 테지만, 막상 올리버가 그러니 뭔가 불편한.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며 이기적인 감정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이거는 옳지 않다는.

그때, 마리와 조의 귀로 올리버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제 제안이 어떻습니까?”

다행히 조와 마리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올리버의 앞에 있는 추레한 노인에게 한 말이었다.

노인은 올리버에게서 받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저희가 서, 선생님? 아니, 마법사 님? 아니면-”

“-제논이라고 부르십시오. ‘님’자는 안 붙이셔도 됩니다.”

“아······. 저희가 제논 씨를 도와드리면 저희를 보호해 주고, 돈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염구역을 청소하는 동안 여러분께서 일손을 좀 보태주시는 겁니다. 가령, 다른 난민촌이 저희에게 협조할 수 있게끔요. 그럼, 저는 여러분을 보호해 주고, 일한 만큼 보수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꽤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지금 오염구역의 난민촌은 보호가 필요했고, 올리버 역시 이들의 협조가 필요했으니까. 다만-

“-오, 오염구역 청소가 끝나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추레한 외관 탓에 얼핏 어리석어 보이는 노인이 예리하게 질문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 누구의 보호도 기대할 수 없는 오염구역에서 힘이 없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건 힘을 대신할 지혜가 있다는 거였으니까.

노인은 그 지혜를 이용해 올리버가 말한 내용 중 숨겨진 사실을 간파했다.

“제논 씨의 말씀대로라면 마탑이 오염구역을 다시 가지려고 하는 것인데. 그럼, 저희는 이곳을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훌륭한 지적이었다. 애당초 올리버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다소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나, 올리버에게 있어 오염구역 청소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오염생물체든, 돌연변이든, 흑마법사든, 범죄자든 시간의 문제일 뿐 올리버 혼자서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었다. 송장인형까지 동원하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오히려 문제는 난민들이었다.

란다의 가혹한 삶을 버티지 못하고 이곳에 숨어든 난민.

오염구역 내 먹이사슬 최하층인 이들이 문제라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으나, 최소한 올리버에게는 문제였다.

가식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이곳까지 온 사람들을 힘으로 내쫓는 건 좀 그랬다.

그런 와중 올리버에게 기회가 왔다.

적절히 합의해서 내보낼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 그리고 이장은 올리버의 그러한 속셈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란다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온 이들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제안한 겁니다.”

올리버의 담담히 대답했다. 이성적이고 차분했지만,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장은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들에겐 선택지가 없음을.

“아······. 죄, 죄송합니다. 감히······. 마탑 마법사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억울하시지요?”

올리버가 이장의 감정을 읽고 대뜸 물었다. 눈치로 오염구역에서 살아남은 이장은 부정하려 했지만, 너무 정곡이 찔린 탓에 그만 부정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올리버가 계속해 말했다.

“억울해하시는 것 이해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흑마법사들이 쳐들어와 터전을 파괴했고, 웬 외부인이 와 힘자랑하더니 여러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더 심하죠. 여러분의 곤란한 상황을 이용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여러분이 느끼는 억울함은 정당한 걸 겁니다.”

모두 침묵한 채 올리버의 말에 귀 기울였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인지하고, 이를 안타까워하며, 미안해하는 진심이.

“그러나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원하는 게 있는데, 그걸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라. 정말 죄······.”

올리버는 말꼬리를 흐렸다.

“······대신 도와주시는 동안 안전과 보수를 확실히 보장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는 원래 하려던 말을 포기하고 대신 상투적인 말로 이야기를 마쳤다.

선택지가 많지 않던 난민촌의 이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용무를 마친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나 조와 마리에게 다가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마리, 조. 여기 난민촌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당장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정도 인원이 지낼 물자를 가져오지 않아서. 일단, 바깥으로 나가 물자를 가져와야 합니다.”

조의 보고에 올리버는 허리 뒤쪽에 찬 가죽케이스에서 빅마우스를 꺼냈다.

이불처럼 접혀 있던 빅마우스는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고 올리버가 부탁한 물품을 꺼냈다.

군용 식량과 칼로리바, 물, 텐트, 설치형 바리케이트 등등.

갑자기 튀어나온 엄청난 물량에 조는 입을 떡 벌리며 놀랐고, 오염구역 안 사람들은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랬다.

개중 몇몇은 올리버에게 두려움과 함께 경외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자고로 힘과 부는 존경을 부르는 만국 공통어였으니까.

올리버는 그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1시간 안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예. 이봐!”

조는 마치 군인처럼 빠릿빠릿 움직였다. 마리 역시 조를 도와 진지를 구축하려 하였는데, 올리버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마리.”

“예, 대표님.”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X구역에 여기 난민분들을 수용할만한 곳이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으나, 마리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런 분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대표님. 여기 분들이라면 몰라도, 오염구역 전체 난민을 수용할 수 없을 겁니다. 공간도 없고, 이미, 경제적 이해관계가 구축된 상태라서요. 어렵습니다.”

올리버의 심계를 꿰뚫어 본 마리가 말했다. 마리의 예상대로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죠. 음······. 시간이 좀 있으니까······. 마리.”

뭔가를 고민하듯 침음성을 내며 중얼거리던 올리버가 마리를 다시 불렀다.

“예, 대표님.”

“여기 난민분들도 마리가 잠시 맡아줄 수 있나요? 선택하는 사람들처럼요.”

“가능합니다.”

“그리고······. 어, 음······. 흑마법을 배울 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한번 살펴봐 주시겠어요?”

“흑마법요?”

“예, 아니면 글이나, 구두 닦는 법이라도요. 뭐든지요. 오염구역 청소가 하루아침에 끝날 건 아니니, 그 사이 뭐라도 배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좋네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예?”

“······그런 건 대표님께서 말씀하셔도 괜찮지 않았겠습니까?”

마리가 올리버에게 물었다. 일을 떠맡아 귀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러한 친절을 왜 굳이 직접 말하지 않고, 마리를 통해 말하냐는 거였다.

이에 대한 올리버의 대답은 단순했다.

“전 그런 걸 못 하거든요.”

“······?”

“옆에서 지켜보며 누굴 도와주는 것요. 어려움에 부닥치면 잠시 두 팔을 걷어 약간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리처럼 옆에서 도와주진 못합니다.”

올리버가 셀린을 비롯한 선택하는 사람들과 대화한 내용을 토대로 말했다.

그들은 모두 마리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이는 마리가 들인 진심과 시간, 노력의 산물이었다.

자신의 호기심과 성취 등을 포기하고 오롯이 타인에게 정성을 다하는 헌신. 비록, 그 헌신의 이유가 올리버였다 해도, 그 행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올리버에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마텔에서 로스번과 아이들을 잠시 도와줬어도, 정작 보살피는 건 멀린에게 맡겼으니까.

아마, 멀린이 없었다면 돈 좀 주고 내보내거나, 어디 고아원에 맡겼을 터였다.

“그래서 마리에게 부탁한 겁니다. 제가 할 일을 마리에게 떠넘긴 셈이죠. 말하고 나니까 약간 미안하네요.”

“어찌 그런······.”

마리가 당황해 말꼬리를 흐렸다. 올리버가 이런 말을 해줄 줄 예상하지 못해······. 뭔가 기뻤다.

“뭣보다 터전을 빼앗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아니, 이 상황 자체도 웃기긴 하네요. 결국, 제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건데요.”

올리버가 전에 보인 적 없는 복잡한 눈빛을 빛냈다.

사람이라면 응당 겪는, 스스로의 마음을 모르는 혼란 상태. 나약한 사람이기에 가지는 그 감정을 지금 올리버가 빛냈다.

마리는 그런 올리버의 모습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리가 말을 꺼낼 타이밍을 놓치자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리, 조.”

마리가 대답하고, 조는 다시 올리버 앞으로 왔다.

“예, 대표님.”

“잠시 저 혼자 주변을 좀 둘러보러 갈 생각인데, 두 분에게 여길 믿고 맡겨도 되겠습니까? 조는 주변에 진지를 구축하고, 여기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마리는 이곳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제가 말한 것도 좀 부탁드리고요.”

일을 벌인 올리버가 대뜸 자리를 비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조와 마리는 이에 관해 질문하지 않았다.

올리버를 봐온 두 사람은 올리버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일을 떠넘기는 것도 아닌 걸 알았기에, 오히려 반대일 터였다.

“물론입니다. 가셔도 됩니다.”

“네, 대표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태풍이 몰아치긴 전처럼 잔잔한 대화가 오갔다. 올리버는 빅마우스를 도로 접어 챙긴 후 떠나려 했다.

“아. 잠시만요.”

“꾸룩?”

“혹시, 모르니 그것 두 개만 꺼내놓고 가도록 하죠.”

척하면 착. 빅마우스가 올리버의 뜻을 읽은 듯 뭔지도 묻지 않고 그것을 두 개 꺼냈다.

“꾸에에에엑!”

***

톡. 톡.

마리와 조와 헤어진 후, 홀로 오염구역을 배회하던 올리버가 한 폐건물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온 올리버는 셔츠 칼라 안쪽에 부착된 초소형 통신 기기를 손가락 끝으로 두들겼다.

“이브(Eve)?”

잠시 후, 초소형 통신 기기에서 반응이 왔다.

[예, 데이브.]

올리버가 봐온 이브(판도라, 이브, 릴리스) 중 가장 무감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아주 무감각한 건 아니었다. 약간의 피로가 느껴졌다.

“괜찮으신가요?”

[모이라이 학파에서 여러 일을 돕다 보니 약간 피곤하긴 합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모이라이 학파라. 그러고 보니 이브(Eve)의 힘을 빌려 시(市)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란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다.

란다의 모든 행정을 세계수로 처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제아무리 이브라 해도 그 정도 규모라면 피로를 느낄 법도 했다.

“바쁘신 와중 불러내 죄송합니다.”

[나오는 게 힘들었으면 양해를 구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왜 그러시는지요?]

“말씀하시는 게 너무 예뻐 감동했습니다.”

[······.]

이번에는 이브가 침묵했다.

[······농담하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

“감동한 건 진심입니다.”

[왜 부르신 건지나 말씀하시죠.]

착각일 수 있었으나 이브의 목소리가 약간 냉랭해진 것 같았다.

마치, 하루 16시간 특별 노동시간을 발표했을 때의 차일드처럼. 올리버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오염구역을 좀 살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상은 이미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뇨, 지하요.”

[지하요?]

이브가 되물었다. 왜냐면 지하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올리버가 저번에 말했으니까.

“예, 그랬죠. 오염구역의 지하는 개미굴처럼 복잡하고, 규모도 너무 커서요. 그래서 일단 지상만 살펴달라고 했죠.”

[거기다 오염구역 지하에는 여러 개의 보안 마법과 흑마법이 거미줄처럼 처져 있어 시야 확보가 제한됩니다. 오염구역 내부는 세계수의 힘이 약하기도 하고요.]

이브의 말에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을 떠 집중했다.

보통의 눈으로 살펴보는 풍경은 사라지고, 세상이 심연과 같은 어둠에 물들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는 별과 같은 빛이 존재했다.

사람의 생명력과 마력, 감정으로 이뤄진 빛.

올리버를 기준으로 저 아래 깊숙한 곳에 무수히 많은 빛이 있었다.

족히 수백 개는 될법한. 아마, 지하에 둥지를 튼 흑마법사를 내쫓은 외부 세력일 터였다.

중간중간 보이는 상당한 생명력과 마력이 이를 설명해줬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상황이 좀 변해서요. 전부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가 뭘 하는지만 살펴봐 주시면 충분합니다. 일단, 제 추측이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브가 양해를 구했다. 참고로 이브가 말한 잠시는 말 그대로 잠시였다. 몇 초 채 지나지 않아 이브는 다시 말을 걸었다.

[자세히는 못 봤으나, 벽을 캐고 있었습니다.]

“벽을요?”

[예, 벽에는 웬 글씨와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역시나. 올리버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지하에 있는 자들은 오염구역 아래에 남아 있는 악마와 관련된 연구, 및 거래의 흔적을 캐러 온 이들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올리버는 곧바로 몸 안에 저장한 마력을 끌어올려 건물 바닥에 댔다.

촤르르륵!

입력된 술식에 따라 벽돌이 태엽처럼 맞물리듯 열렸고, 올리버는 수십 미터 지하로 떨어졌다.

뚜깡뚜깡.

올리버가 지하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곡괭이를 들고 벽을 뜯어내는 한 무리의 남성들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들은 건장했고 하나같이 우드랜드 패턴이 박힌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방패 형제단이군요. 여러분 대장이 누구죠? ······아, 저분이구나?”

질문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움직인 눈동자와 감정을 본 올리버는 지하 깊숙이 있는 한 남자라는 걸 파악하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저 위에서 웬 목소리가 울렸다.

“비사아앙!! 나무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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