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 오염구역 (2)
F구역 오염구역에 진입한 올리버는 당초 계획대로 주변을 수색했다.
수색은 어렵지 않았다. 이브(Eve)가 작성해 준 오염구역 내부 지도를 바탕으로 빈 곳을 채우듯 차근차근 둘러보면 됐으니까.
우선, 올리버는 입구에 가까운 한 지점을 선정했다.
이브(Eve)의 지도에서 작성된 부분과 작성되지 못한 그 중간 지점으로, 올리버는 이곳에 임시로 캠프를 설치한 후, 서른 명이라는 풍족한 인원수를 이용해 주변을 수색했다.
표시되지 않은 건물의 위치나, 도로의 형태, 불법 거주지, 오염생물체 서식지, 혹은 숨기 좋은 장소나 비밀 통로 같은 것 등을.
다행히 마리와 조가 이끄는 선택하는 사람들과 파이터 크루엔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어 일 자체는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음, 대충 이 정도면 되겠네요?”
올리버가 일행이 조사해 온 자료를 보고 말했다.
그렇게 주변 수색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같은 방식으로 주변을 수색해 지도의 여백을 서서히 채워나갔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염구역답게 불법 투기된 시체 중 일부가 좀비로 되살아나 공격해 오기도 했고. 약물과 질병, 흑마법에 오염된 오염생물체가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튀어나와 습격하기도 했다.
그어어어어어······!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물론, 그게 큰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 지긋지긋해.”
“우와 크다.”
선택하는 사람들과 파이터 크루는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좀비들과 오염생물체를 볼 때마다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별 어려움 없이 격퇴했다.
가령, 쌍권총 샘은 총을 쥔 형태의 수인을 맺어 화기계열 흑마법을 투사해 단신으로 좀비 떼를 쓸어 버렸다.
증오의 탄환과 같은 기본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기관단총, 개틀링 기관총, 산탄총 심지어 박격포 등 다양한 투사체를 쏴 놀라운 화력을 선보였다.
샘이 다룰 수 있는 흑마법은 화기계열 하나로 한정적이었지만, 혼자서 어지간한 거너의 역할을 도맡을 정도로 화기계열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올리버도 예상치 못한 형태의 성장. 허나, 감탄할 것은 쌍권총 샘만이 아니었다.
쇠몽둥이 오언은 질병계열 흑마법과 블랙 슈트를 동시에 사용해 놀라운 근접능력을 보였다. 자그마한 거인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오언은 본인의 강력한 육체에 기본 다섯 개의 질병 계열 흑마법을 때려 박은 뒤, 온몸에 블랙 슈트를 갑옷처럼 둘러 단순하지만 강력한 공세를 가했다.
집채만 한 크기의 오염 생명체를 힘으로 찍어 누른 뒤, 쇠몽둥이로 대가리를 터트린 모습이 이를 증명해줬다.
‘시체 챙겨. 저런 오염생물체는 마탑에서 비싼 값에 팔려.’
하지만 파이터 크루 중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건 다름 아닌 조였다.
현재 파이터 크루를 이끄는 실질적 수장이자, 란다의 신(新) 계급에 오른 조.
처음 조가 셰이머스와 같은 신(新) 계급이 됐다고 했을 때 다소 의아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올리버에게 직접 흑마법을 배운 조는 이제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자유자재로 다뤄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칙-! 칙-! 수색 중 좀비 떼를 만났습니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시체 골렘도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임시 캠프 안. 조용한가 싶더니 통신장치가 울렸다.
지원 요청을 들은 조는 올리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 두 다리에 블랙 슈트를 단숨에 두르더니 땅을 박찼다.
쾅!
굉음과 함께 조는 순간 이동을 하듯 사라졌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작은 실금이 생겼다.
강력한 각력(脚力)으로 땅을 박차 단숨에 이동한 거였다.
“대단하시네요.”
올리버가 조의 성장을 보며 감탄했다. 마리가 맞장구쳤다.
“데이브 님께서 신대륙으로 떠난 후부터 열심히 수련하셨는데, 드디어 빛을 본 것 같습니다.”
방금까지 대표님이라 부르던 마리가 단둘이 남게 되자 데이브 님이라고 불렀다.
올리버는 그런 마리를 보며 말했다.
“마리도 곧 조만큼 성취를 이룰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마리의 감정에서 미세한 초조함을 포착한 올리버가 위로했다.
지금의 마리도 엄청나게 강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악마가 힘을 빌려줬을 때 이야기였다.
‘마리의 머리 위에 나타난 그 검은 손. 아무리 생각해도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와 비슷해.’
온몸이 검게 물들며 엄청난 재생력과 괴력을 발휘하던 마리의 고유 흑마법.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악마가 마리에게 자신의 힘을 빌려주고 있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해당 흑마법의 사용을 금지했고, 덕분에 지금 마리의 전투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올리버가 조셉 패밀리를 떠났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상태에서도 선택하는 사람들을 잘 관리하는 거 보면, 타고난 재능이 다른 걸 수도 있겠지만.’
올리버는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잘 관리하는 마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때마침 마리가 입을 열었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데이브 님께서 직접 가르쳐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칙-! 칙-! 여기는 조. 지원을 왔으며 위험 요소인 좀비와 시체 골렘을 제거했습니다. 주변을 수색하고 복귀하겠습니다.]
때마침 지원을 나간 조가 통신장치를 통해 보고 했다.
마리는 이에 대답하고는 지도 위에 표시를 남겼다.
“일단, 이곳 좀비 출현 구역은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네요. 잘하면 수색은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올리버가 평범하게 대답했다. 허나, 마리는 올리버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잡아냈다. 흑마법사의 눈이 아닌 올리버에 대한 신앙심에 기반해.
“뭔가 걸리시는 게 있으십니까?”
마리가 질문했다. 올리버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실 하나 있습니다. 제법 주변을 둘러본 것 같은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요.”
“아······.”
“오염구역에는 좀비랑 오염생명체 외에도 제법 사람이 많다고 들었거든요. 시(市)에선 공식적으로 사람이 없다곤 하나, 청소작업을 했던 해결사와 중개인들은 많다고 했으니까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저도 이곳에 난민이나 범죄자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오염구역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게 좋은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올리버는 처음 청소에 투입됐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오염구역을 점거한 퍼펫을 만났고, 이후 듣기로 퍼펫이 오염 구역에 살던 불법 거주민과 범죄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고 했다.
그저 자기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오염구역의 특성상 그들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또, 퍼펫 님이 왔을 리는 없을 테지만, 역시 강력한 외부 세력이 나타났다고 보는 게 옳은가?’
올리버는 혼자서 오염구역을 수색할까 고민해봤다.
또 다른 외부 세력이 개입된 거면 올리버의 일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살펴봐야 했으니까.
그때, 조가 수색을 나간 일행들과 함께 돌아왔다. 한 무리의 흑마법사들을 사로잡은 채.
“끄으으읍······.”
흑마법사 중 하나가 입에 재갈을 문 채 신음했다.
올리버가 그를 가리키며 누군지 물었고, 조는 재갈을 풀며 대답했다.
“좀비가 출몰한 주변을 수색하는 도중 잡은 흑마법사들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서 데려왔습니다······. 말해.”
조의 명하자, 기가 꺾인 흑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저 밑에서 외지인들이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소. 우리도 간신히 도망쳤소.”
***
조에게 사로잡힌 흑마법사의 이름은 벤터. 오염구역에서 흔하다면 흔한 흑마법사였다.
감시가 없는 오염구역에 숨어 안전을 보장받고, 불법 투기업체가 버린 시체를 주워 해체하거나, 가공해 수입을 얻는. 란다에 흔해 빠진 흑마법 패밀리의 주인이었다. 허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수도를 통해 웬 무장병력이 들이닥쳐 벤터 씨의 아지트이던 지하를 습격해 닥치는 대로 죽였다는 거죠?”
“그렇소!”
벤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진실한 억울함을 빛냈다.
그도 그럴 게,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인들 때문에 간신히 자리 잡은 터를 순식간에 잃어버렸으니까.
조가 설명을 덧붙였다.
“추측이긴 하나 란다 밖 소도시에 터를 잡은 비소속 갱단 중 하나인 방패 형제단인 거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습격한 놈들 모두 군복을 입고 있고, 무기 종류도 들어보니 그쪽인 것 같거든요. 크라임 펌에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올리버는 납득했다. 크라임 펌에서 그들을 주시할 이유는 차고 넘쳤으니까.
크라임 펌은 비소속 갱들과 개인적인 은원관계도 있고, 뭣보다 란다 주변에 자리 잡은 갱단들은 란다의 물자를 털어 지금도 여러 계층에서 원한을 사고 있었다. 그건 크라임 펌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의문이 해소되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소도시에 터를 잡은 분들이 왜 다시 란다로 오신 건가요? 그것도 오염구역에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란다로 다시 진입하려는 건가 싶지만, 그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보통의 갱단에게 오염구역은 아무런 이득도 없는 곳이니까요.”
조의 말에 다른 파이터 크루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염구역에 적잖은 사람들이 살아 사회를 이룬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갈 곳이 없는 난민과 도망자 그리고 흑마법사 한정이었다.
일반적인 갱들에게 있어 오염구역은 터를 잡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사방은 방벽으로 틀어 막혀 확장이 용이한 것도 아니고, 있는 거라고는 고물과 시체뿐이라 흑마법사가 아니면 사업하기도 적합하지 않았다. 거기다 좀비와 오염생물체가 활보해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지하에 들이닥친 건 이곳에 자리 잡기 위한 게 아니라 뭔가를 손에 넣기 위해 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군요,”
계산을 마친 올리버가 의견을 냈고, 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그게 뭔지는 의문이지만요. 오염구역에서 돈 될만한 건 몇 년 전에 다 털린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값비싼 연구 장비 같은 거요······. 혹시 돈 될만한 거 있나?”
조가 벤터에게 물었으나, 벤터는 고개를 저었다.
“있었으면 우리가 팔아먹었을 거요.”
모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올리버만 빼고.
왜냐면 올리버는 이곳 오염구역 지하에 뭐가 있는지 알았으니까. 다만, 아직 확신하긴 이른 단계였다. 또, 지금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딱!
생각을 정리한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로 바닥을 가볍게 쳐 이목을 끈 다음 원래 할 일을 봤다.
“벤터 씨. 어쨌건 외부인들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던 중 제 일행을 공격했다는 거지요?”
“아, 아니이······. 내가 공격한 게 아니라. 그 뭐시냐? 아! 그래, 갑자기 나타나 호위로 둔 좀비가 공격한 것뿐이오. 말릴 새도 없이. 싸움이 시작되자 어쩔 수 없이 시체 골렘을 쓰긴 했지만······. 부디 이해해주시오. 습격받은 후라 예민하고, 배도 고파 정신이 없었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구멍이 있다곤 해도 개구멍은 개구멍일 뿐. 결국, 오염구역도 폐쇄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식량과 물자는 생각보다 귀한 것이었다.
당연히 습격당해 도망친 이들은 그걸 챙길 틈이 없었을 터였고.
공격당해 아지트와 식량, 물자를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뻔했다.
“오염구역 지하에 터를 잡은 다른 흑마법사분들도 다 당했을까요?”
“아, 아마 당했을 거요. 이겼으면 소문이 났을 테니까.”
“전부 당하셨으면 지상으로 나오셨겠네요?”
“아마도?”
“그분들은 그럼 뭘 할까요?”
벤터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조가 대답했다.
“지상 위에 있는 이들을 공격할 겁니다. 새 아지트가 필요하고, 식량과 물자도 필요할 테니까요. 뻔합니다. 이쪽 바닥 인간들 생각은 다 똑같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지상 위에 터를 잡은 이들은 주로 난민들이라 하던데 사실인가요?”
심상치 않은 이야기 진행에 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그 난민들이 어디 사는지 아시나요?”
***
다행히도 벤터는 난민촌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시체를 가공해 파는 벤터가 평소 난민들과 거래한 덕분이었다.
벤터는 올리버의 요청대로 길 안내를 해줬고, 모두의 예상대로 오염구역에 있는 난민촌은 지하에서 도망친 흑마법사들의 습격을 받아, 안 그래도 폐허 같은 모습이 더욱 폐허처럼 변한 상태였다.
시체가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피 얼룩이 있었으며, 아이와 여자들은 어딘가로 끌려갔다.
“일단, 이 녀석들 팔아서 자금부터 마련을······.”
험악하게 생긴 흑마법사 하나가 말을 하다 말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봤기 때문. 난민촌을 막 점거한 흑마법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보통이 아님을 눈치챘다.
입고 있는 옷이 멀끔했고, 뭣보다 맨 앞에 서 있는 삐쩍 마른 남자에게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보는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히는.
방금까지 기세가 충천해 있던 흑마법사들은 저도 모르게 길을 터줬고, 그렇게 올리버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난민촌 중심부에 있던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조가 말했다.
“현상범인 귈림입니다. 죄목은-”
-[타겟팅(Targeting)]
조가 말하는 도중 올리버는 흑마법을 사용. 현상범에 난민촌을 습격한 귈림을 끌어당겨 그대로 목을 붙잡았다.
거구는 아니나 건장한 체격의 귈림이 삐쩍 마른 올리버의 손에 붙잡힌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자, 잠-”
-우직!
올리버는 그 상태로 손아귀에 힘을 줘 귈림의 목을 부러트린 다음 바닥에 내려놓았다.
털썩.
모두 그 모습을 말없이 봤고, 올리버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한 남자 앞에 갔다.
난민촌의 이장으로 올리버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마탑의 직원 제논 브라이트라 합니다.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