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07화 (607/633)

607. 빨간 책 (3)

자본주의(資本主義).

이름 그대로 재물에 뿌리를 둔 사회체제를 뜻했다.

개인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며, 각 사회 구성원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움직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한마디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였다.

이 자본주의의 탄생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황금기를 이룬 것은 현재라 할 수 있었고. 당연히 자본주의는 공기와 물처럼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었다.

그건 올리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일드, 먹보주머니.”

올리버는 조가 준 노동자 진압용 몽둥이 FRP-105을 쥐며 차일드와 빅마우스에게 되물었다.

혁명이니, 지배 계급이니, 쇠사슬이니, 노동이니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참고로 진압봉에는 성실, 근면, 정직이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차일드가 손에 쥔 빨간책처럼 말이다.

“우, 우린 굴 하지 않는다!”

차일드-퍼스트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정확히는 세컨드, 써드, 포스, 빅마우스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난 거였지만.

“개새끼들아.”

그 모습을 본 퍼스트가 욕했고, 그사이 포레스트는 올리버에게 진지하게 귓속말했다.

“지금이야. 퍼스트의 머리를 후려치게.”

“예?”

올리버가 놀라 되물었다. 조가 건네줘 반사적으로 받긴 했지만, 이걸로 때릴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게 규칙이야. 시위가 일어나면 피로 응징해야 해.”

“거짓말하지 마라, 늙은이!”

퍼스트가 버럭 소리쳤다.

그때, 조가 끼어들었다.

“규칙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시위는 폭력으로 제압하는 게 맞긴 합니다.”

놀랍게도 조는 진심이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주길래 받았지만, 이걸로 때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짜고짜 때리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몽둥이로 때리라는 거야. 보통은 총을 쏘거든.”

“세상에 맙소사.”

“꾸루루룩.”

퍼스트와 세컨드, 써드, 포스, 빅마우스가 일동 경악했다.

허나,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시위를 대하는 란다의 방식(몽둥이찜질)이 너무해 보일 수 있었으나, 그래도 란다는 선을 지키는 편이었다.

왜냐면 란다 바깥에서는 좀 더 화끈하게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총잡이 몇 명을 고용해 시위 주동자를 쏴 죽이거나, 집에 불을 지르거나, 시위가 격하면 비싼 돈을 주고 핑크맨을 고용해 개틀링 기관총을 난사했다.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이게 싸게 먹힌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른 거였다.

“그에 비해 란다는 노동자들을 배려해 총을 쏘는 걸 지양하고, 이 특제 몽둥이로 제압하지.”

포레스트가 노동자 진압용 몽둥이 FRP-105을 들어 보였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몽둥이였으나, 겉을 고무로 마감해 외상을 최대한 줄이고 고통만 선사해주는 노동자 친화적 진압 도구였다. 수많은 공장주가 선호하는 베스트셀러답다고 할 수 있었다.

“몸이 재산인 노동자는 다치면 그대로 거리 밖으로 나앉으니까요. 나름대로 배려해 준 거라 할 수 있죠.”

“그러니 그걸로 때리는 건 부당한 폭력이 아니라 배려일세.”

“호오······.”

“설득되지 마.”

조와 포레스트의 말에 혹한 올리버에게 퍼스트가 소리쳤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일어나고 가라앉자, 포레스트가 모두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후우······. 이제 농담은 그만하지.”

“진심 아니셨습니까?”

“자고로 분위기가 심각해지면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는 걸세. 이게 어른의 대화법이지. 뭣보다 우린 중요한 주제로 모인 거 아닌가?”

그랬다. 지금 이곳 회의실에 바쁜 올리버와 포레스트, 마리, 조, 차일드, 빅마우스가 모인 건 중요한 주제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 주제란 앞으로 재개발 연합이 무슨 사업을 할 것이며, 그 사업을 어떻게 운영할지였다.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포레스트가 첫 번째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런 거로 왜 회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업을 어떻게 운영할 건지요?”

“그래 그거. 애당초, 사업의 이유가 뭔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요.”

“아냐! 돈을 벌기 위해서야.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아나?”

올리버가 어깨를 으쓱였다.

“노동자들을 최대한 값싸게 고용하는 거야.”

“혁명이다! 혁명!!”

“지배 계급들이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단결하라! 잃는 것은 쇠사슬이요! 얻는 것은 세계다!!”

“노동! 소외! 착취!”

“꾸루루룩!!”

처음과 마찬가지로 차일드와 빅마우스가 소리쳤고, 조는 올리버에게 노동자 진압용 몽둥이 FRP-105을 정중히 내밀었다.

이번에 올리버가 받기를 거부하자, 포레스트는 올리버를 설득했다.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거짓말 마라 늙은이.”

“맞아, 거짓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뜻과도 맞아.”

“제 뜻요?”

“그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잖아?”

“예.”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줘야 해.”

“이유가 뭐죠?”

“일주일에 노동자 한 명에게 10란다씩 준다고 치세.”

“예.”

“그럼, 한 명밖에 고용할 수 없지?”

“예.”

“하지만 한 명에게 5란다씩 주면 두 명을 고용할 수 있지. 일자리가 두 개 생기는 거야.”

“오.”

“3란다씩 주면 세 명과 삼 분의 일을 고용할 수 있지. 그 말은 즉 어른 세 명과 아이 한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거야.”

“오오.”

“미쳤어.”

포레스트와 올리버의 대화를 듣던 차일드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더 경악스러운 건 보통의 노동자는 일주일에 10란다도 못 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뭐라 하지 말게? 그 정도만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은 넘쳐. 수요와 공급에 따른 합리적인 가격이지.”

“역시, 혁명밖에 답이 없는 건가?”

차일드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때, 올리버가 손을 들었다. 궁금한 게 생겼다.

“뭔가?”

“포레스트 님께선 직원분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제공하고 계시지 않나요? 레스토랑 종업원분들요.”

“종업원은 단순히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직이니까. 몸가짐, 센스 같은. 레스토랑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지.”

전직 종업원인 포레스트가 주장했다.

“거기다 내 직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합리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위험수당도 포함돼 있거든.”

“바로 그거다!”

포레스트의 말을 들은 퍼스트가 빨간책을 들며 소리쳤다. 책 표지에는 무슨 글자가 쓰여 있었다. 빨갱-

“-뭐가 그건가?”

“임금, 노동시간, 대우. 높여주면 생산력 늘어난다.”

“오.”

“저 말 듣지 마, 개소리야.”

“크르르르. 개가 뭔지 보여줘?”

“여러분, 싸우지 마세요.”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노동자 진압용 몽둥이 FRP-105을 들며 부탁했다. 포레스트와 써드는 싸움을 곧바로 멈춰줬다. 역시 마음은 통하는 법이었다.

자칫 싸움으로 번질 뻔 한 상황. 이성은 되찾은 퍼스트는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놓았다.

포레스트가 레스토랑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른 곳보다 임금을 높이 주듯, 올리버가 새로 만들 사업체 역시 임금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주면 그만큼 노동자의 의욕이 높아지고, 이는 생산력과 직결될 거라는 거였다.

“빈 시티만 해도 그렇다. 그곳 흑마법사 조합. 높은 임금과 휴식 시간을 보장. 높은 품질의 제품 생산한다. 생산 의욕을 높이면 이익 생긴다.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빈 시티에서 흑마법사들과 교류한 퍼스트와 포스가 제법 그럴싸하게 주장했다.

단순히 흑마법 아이템을 구경하러 간 것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퍼스트와 포스는 아이템보다 아이템을 만드는 과정과 그 과정을 유지하는 시스템에 더 관심을 가진 듯했다.

이는 기쁜 소식이었다. 차일드의 관심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것으로 옮겨갔다는 거고, 그 말은 즉, 차일드 자체가 성장했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올리버는 해당 내용을 머리에 새겨 회의가 끝나고 차일드 관찰 일지에 기록하고자 했다. 물론, 지금은 눈앞의 회의에 더 집중해야 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퍼스트와 포스의 설명을 들은 올리버가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던 마리와 조에게 물었다.

퍼스트와 포스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생각해 물은 것으로, 올리버는 재개발 연합의 이사인 마리와 조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였다.

“퍼스트와 포스의 의견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일리가 있을 뿐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니지!”

“그에 반해 최저임금만 주면, 최소한의 노동력은 보장받습니다. 사업의 핵심은 변수를 줄이는 거니까요.”

재산을 모아 얼마 전부터 야간 대학에 다니는 조가 제법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에 차일드-세컨드가 비난했다.

“네가 그런 말해도 되냐?”

빈민가 X구역에 살던 가난뱅이 주제 그리 말해도 되는 거냐고 묻는 것. 그러나, 조는 어깨를 으쓱이며 재개발 연합의 이사로서 의견을 낸 것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조의 감정은 악의는 없었다. 그저 세상의 시류에 따라 합리적인 의견을 낸 것뿐이었다.

“마리는요?”

“저는 대표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뿐입니다.”

마리는 평소처럼 올리버가 부담가지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조언했다.

“허나, 퍼스트와 포스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불안정한 환경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더 높은 의욕을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번만큼은 조와 포레스트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선택받은 사람이란 제법 큰 교단을 운영한 마리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시도하려면 이렇게 초반에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이라면 문제가 생겨도 수습할 수 있으나, 뒤늦게 시도해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기도 어려우니까요.”

마리는 과거처럼 올리버에 대한 맹신을 보이는 대신, 합리적인 근거를 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뭐랄까. 아주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란다를 오고 나서부터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근래는 더욱 안정적인 거 같았다.

갈로스에 있는 선택하는 지부도 대리인을 세워두고 올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올리버는 마리를 빤히 바라봤다.

“대표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뇨, 아주 일리 있는 말인 것 같아서요. 확실히 시도해보고 변경해도 늦진 않겠네요.”

“이미 마음이 기울었구만.”

포레스트가 대화의 흐름을 통해 올리버의 의중을 파악했다.

차일드 역시 마찬가지인지, 퍼스트와, 세컨드, 써드, 포스, 빅마우스는 서로 손뼉을 마주쳤다.

“만세!”

“임금인상과 노동시간을 줄였다.”

“우리의 승리다!”

“크흐흐흑······!”

“구르르르르······.”

“예? 여기 언급된 노동자는 사람을 의미하는데요?”

올리버가 기뻐하는 차일드와 빅마우스에게 찬물을 뿌렸고, 차일드와 빅마우스는 진심이냐는 듯 경멸과 혐오를 담은 눈빛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농담입니다.”

자고로 훌륭한 경영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는 격언에 따라 농담을 한 것뿐이었지만, 차일드와 빅마우스는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았다.

“포레스트 님. 재미없었나요?”

“음, 농담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나는.”

“안 됩니다.”

“아, 왜?”

“그럼, 제가 매일 잠자기 전 1시간씩 유머책을 보는 이유가 뭡니까?”

“아, 글쎄 왤까? 재능도 없는데.”

“전 유머에 재능 있습니다. 노력도 하고 있고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세 번 부정했다.

꽤 충격적인 반응. 올리버가 조에게 물었다.

“조.”

“예!?”

“제가 유머에······.”

올리버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침착하던 조가 마른세수를 하는 등 눈에 띄게 초조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히 됐고, 올리버는 상처 입었다.

“마리-”

“-거, 선량한 아가씨 괴롭히지 말게!”

포레스트가 버럭 소리치며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는 걸 가르쳐줬다.

“그리고 경영자는 유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비전이 있어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묻지. 새로 할 사업이란 게 뭔가? X구역 재개발이 중반이 넘어갔으니 슬슬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긴 한데.”

마음에 상처를 입은 올리버가 정신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필거렛 사업을 변형시킨 사업을 할까 합니다.”

“필거렛?”

포레스트가 놀라 되물었다. 지금 올리버를 주축으로 흑마법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 사업은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자고로 사업이란 이미지.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거렛은 마약 사업에 속했다. 최소한 사람들은 그리 인식했다.

그 증거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란다로 정착하는 조건 중 하나가 필거렛 기프트의 제작을 멈추는 거였다.

“아뇨, 필거렛을 변형시킨 사업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사업가의 얼굴로 변한 포레스트가 물었다.

“과거 써드가 엔조이먼트의 시체에서 드루이드의 지식을 추출한 일 기억하십니까?”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X구역을 개발하려는 바로 그때,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들이 X구역에 둥지를 틀어 훼방을 놓았는데.

아니, 훼방 수준을 넘어 아예 밥그릇 자체를 빼앗으려 했다. 시작 전부터 어그러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올리버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사태를 종결시켰다.

그것도 반나절 만에.

“거기에는 여러 가지 지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드루이드의 수련법과 주술, 육체와 정신의 수양 방법론 그리고 드루이드들이 만드는 약초 같은 거요.”

“듣고 있네.”

“드루이드가 기르는 약초 중 심신을 안정화해 주는 약초가 있더군요. 정치인, 사업가, 예술가 같은 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래서인지 마약이 아니라 의약품으로 분류되고요. 이걸 생산, 가공해 팔면 어떨까 합니다.”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어떻게?”

포레스트가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다.

여느 식물처럼 드루이드가 기르는 약초는 큰돈이 됐고, 그만큼 그 약초를 빼돌려 자기들이 키우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없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드루이드가 너무 강해 약초를 빼돌릴 수 없어서였고,

두 번째는 약초를 빼돌려도 자연의 힘과 전문 재배법 없이 기를 수 없어서였다.

“설마, 종자라도 구했나?”

“아뇨, 대신 비슷한 걸 하나 구했습니다.”

올리버가 빅마우스에게 부탁하자, 빅마우스는 빈 시티에서 얻어온 약초 종자가 든 상자를 하나 꺼냈다.

“꾸에에엑!”

해적들의 약탈품으로, 동쪽 땅에서 특별히 구해온 약초라 하였다. 일을 맡긴 건 다름 아닌 드루이드. 정확히는 현재 드루이드를 통합한 개혁파 드루이드였다.

인간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자는 이들로. 자연을 숭배하는 전통파 보다 급진적이고,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엔조이먼트보다 책임감이 강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 10세와 우호적인 분들이지.’

올리버는 계속해 설명했다.

“드루이드 분들께선 자신들의 식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식물에도 관심이 있는 듯합니다. 해당 상자에 꽂힌 쪽지에는 드루이드들이 연구용으로 특별주문한 거라고 쓰여 있더군요.”

올리버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보여줬다. 이 동방의 식물은 조금만 개량하면 드루이드가 재배하는 진정제 약초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다.

“기대라면 아직은 아니란 뜻 아닌가?”

“예. 그렇기에 해볼 가치가 있죠.”

“데이브. 자네의 능력과 재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식물을 개량하는 법 아나? 섬세하고, 시간과 돈도 많이 잡아먹는 일이야.”

“그래서 제 방식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자네 방식?”

“예, 흑마법으로 약초를 가공해보려고요. 필거렛처럼요.”

포레스트는 그제야 올리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각연(刻煙/잘게 썬 담뱃잎)에 감정을 섞어 재조립하는 필거렛을, 약초 재배에 적용해 보겠다는 거였다.

단순하지만, 보통 사람은 생각도 못 할 방법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건 자연의 힘과 흑마법, 둘 다 다룰 줄 알아야만 가능한 것인데, 역사상 그런 인물은 단 한 명 빼고는 없었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미친 발상이라 할 수 있었다.

“드루이드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드루이드 힘에 특허권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포레스트는 연속으로 망치에 얻어맞는 감각을 느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드루이드의 힘이나 약초에는 특허권 따위 없었다.

특허권 따위가 없어도 문제없었으니까. 물론, 그걸 고려해도 엄청나게 골치 아픈 일에 일어날 것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특히, 드루이드와 왕가가 우호적으로 변한 지금에는 더욱.

“전 포레스트 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믿어줘서 고맙네, 조금만 더 믿어주면 잠잘 시간도 사라지겠구만.”

“그럼, 잠자는 시간도 없애도록 하죠.”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발언에 포레스트가 눈을 번쩍 떴고, 차일드들은 그런 포레스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동지를 대하듯.

포레스트는 올리버를 불렀다.

“농담이지?”

“물론, 이거 외에도 다른 사업 몇 개를 생각해두긴 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데이브? 내 눈을 봐.”

“다들 고생······. 어? 새다?”

“말 돌리지 말고.”

“아뇨, 진짜 새입니다.”

올리버가 회의실 창문에 대놓고 앉은 비둘기를 가리켰다.

보통 비둘기보다 날렵하고 야성미가 있는 비둘기로, 부리는 붉었고, 몸에서 혈마법의 기운이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올리버는 이 비둘기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현 바토리 패밀리의 주인 에르제베트 언너였다.

바토리의 제자이자 딸. 그리고 현재 올리버의 조력자.

과거 그녀는 올리버에게 귀순 의사를 밝히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올리버를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했다. 마탑 내 소식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아무래도 그 약속을 지키려는 것 같았다.

올리버는 비둘기에게 다가갔다.

푸드덕.

혈마법에 의해 정신을 빼앗긴 비둘기라 날아가지 않을 줄 알았으나, 거리가 가까워지자 비둘기는 발작했다. 올리버는 조에게 대신 비둘기를 잡아 달라 부탁했다.

“다리에 쪽지에 묶여 있습니다.”

비둘기를 잡아 상태를 확인한 조가 말했다.

조는 쪽지를 올리버에게 바로 가져왔고, 올리버는 쪽지를 펼쳐 읽어보았다.

“뭐라 적혀있나?”

“마탑에서 제게 F구역 내 있는 오염구역을 청소시킬 생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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