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04화 (604/633)

604. 변하는 란다 (5)

“이리 만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로스에 있는 한 폐농가.

“그래서 제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올리버가 뻔뻔하게 물었다.

“현상수배가 걸린 분들만 자진해 파테르교에 자수하신다면 나머지 분들은 제가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올리버의 제안에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까득! 이빨을 깨물었다.

사내의 이름은 줄리어스 로멜. 인육 요리사가 사라진 갈로스로 이주해 한탕 하려는 수많은 흑마법사 중 하나로, 유명한 노상강도이자, 오십여 명 정도 되는 마을의 이장이기도 했다.

“그딴 걸 제안이라 하는 거요?! 나더러 죽으라는 게!!”

거한의 사내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분노했음에도 존중심을 유지했다. 그 이유는 올리버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밀리유를 이끌고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얻으며, 그 과정에서 흑마법사를 닥치는 대로 도륙하고,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를 쓰러트리며, 손가락 중 하나인 퍼펫을 맞상대했다는 명성.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단신으로 빈 시티에 방문해 압도적인 힘으로 빈 시티의 시장을 무릎 꿇리고, 해적들을 평정하며, 종국에는 아카이브와 함께 바다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나하나 그 진위를 의심하게 할만한 엄청난 소문이었지만, 어쨌건 그 명성 탓에 줄리어스는 올리버에게 예를 갖췄다.

올리버가 다시 뻔뻔하게 대답했다.

“예, 죽어주십시오.”

“······!”

죽어달라는 올리버의 대답에, 접대의 관습도 무시하고 손님을 살해해 부를 축적한 줄리어스가 경악했다. 광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정도로 미친놈일 줄이야.

목숨이 경각에 이른 걸 깨달은 줄리어스가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 그때,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어려운 부탁인가요?”

“당연하지! 죽어달라는 게 가당키나 한 부탁인가?!”

“무리한 부탁이란 건 압니다. 그래도 줄리어스 씨께서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뭘 근거로 그딴 소리 하는 거요?!”

“줄리어스 씨께서 마을에 방문한 손님을 죽이고, 길 위를 지나는 나그네를 죽인 건 늘 마을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에서였지 않습니까?”

“······?!”

줄리어스는 움찔했다. 흑마법사이자, 노상강도인 그가 한 마을을 통치하는 건 자신의 약탈품을 나눠줘서였다. 가난한 마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미명 아래. 그 덕분에 그는 오십여 명이나 되는 마을 주민을 흑마법사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아는 게 줄리어스와 마을 사람뿐이라는 점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죽어 해체돼 암시장에 팔렸으니까.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알고 있었고, 그 사실에 줄리어스는 공포를 느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요?”

“어떻게 아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줄리어스 씨께서 자진해 파테르교에 가 죄를 청하면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받는 거지요.”

이브(Eve)를 통해 줄리어스에 대한 정보를 받은 올리버가 대답했다. 이브의 능력을 고려하면 별거 아니나, 이를 모르는 당사자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였다.

줄리어스가 발악했다.

“도대체 교단에서 뭘 받아 처먹었길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같은 흑마법사를 핍박하는 거요!”

“흑마법사가 양지로 나올 기회를 제안받았습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모두 원하는 게 있어 흑마법사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정중하고 잔혹한 그 말에서는 줄리어스는 도저히 타협 불가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걸 확인한 그는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리며 몸을 기댔다.

“······그대를 어찌 믿소?”

“믿어 달라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나도 원해서 여기 온 게 아니요. 더 이상 대륙 중앙에서 지낼 수 없어 밀려온 거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까드득······. 정 안 되면 그냥 보내줄 수 없겠소?”

“······.”

“갈로스로 가는 게 문제면 떠나겠소. 남쪽으로. 내가 죽는 게 무서워 그런 게 아니요. 내가 없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걱정돼 그런 거요. 갈로스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테니, 못 본 척 그냥 보내줄 수 없소?”

줄리어스가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한 마을을 책임지는 이장의 책임감과 절절함이 목소리와 감정에 묻어 나왔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노상강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살짝 숙여 줄리어스와 눈을 마주쳤다.

“거짓말하시면 안 되죠.”

“큭······!”

노상강도 특유의 연기력과 감정을 위장하는 흑마법 아이템마저 간파당한 줄리어스는 마지막 가면마저 벗으며 거대한 두 팔을 번쩍 들었고.

퉁-!

몸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송장인형-듀란스의 저격에 당한 것으로.

퉁두둥-!

뒤이어 저격총처럼 묵직하고, 기관총처럼 빠른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같은 공간 내에 있던 줄리어스의 부하들은 동시에 쓰러졌다.

정확하고 빠른 듀란스의 저격에 채 반응하지도 못하고 쓰러진 것으로, 올리버는 무감각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 이익······!”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줄리어스의 부하들이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총성을 듣고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그들은 바로 흑마법을 사용하려 했고, 올리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퉁두둥-!

무감각한 총성이 다시 울렸고, 그때마다 흑마법사들이 쓰러졌다.

그렇게 올리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줄리어스의 마을 주민이 있는 헛간으로 갔다.

탁. 탁. 탁.

흑마법사들이 다가오는 올리버를 막으려 했지만, 저 멀리서 총성이 울릴 때마다 그들은 바닥 위로 쓰러졌다.

일부 반응이 빠른 몇몇은 방어막을 펼쳐 날아오는 총알을 막으려 했으나, 그 역시 방어막이 꿰뚫리며 쓰러질 뿐이었다.

그렇게 열댓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쓰러지자 모두 전의를 상실한 채 바들바들 떨며 빈손을 들어 올렸다.

“······흡!”

헛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올리버를 보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대부분 노인과 여자, 아이들로 남자가 몇몇 있긴 했지만, 이미 전의가 꺾인 상태였다.

올리버가 그들에게 대뜸 제안했다.

“줄리어스 씨를 비롯한 전투 가능한 흑마법사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위해 일어난 일이니까요.”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줄리어스 씨를 비롯해 문제 되는 분들을 배제했으니, 이제 여러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를 따라 저희 공동체에 오시겠습니까? 오신다면 저희 규칙과 명령에 따라야겠지만,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제안에 긴 침묵이 일어났고, 한 노인이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로 가 성기사들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며, 이후, 선택하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될 겁니다.”

“성기사의 조사를 받는다고요?”

“예,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성기사는 그저 여러분을 확인하고 등록하려는 것뿐이거든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게 흑마법을 익힌 사람에게 있어 성기사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었으니까.

“여러분들께서 악마를 숭배하는 게 아니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이건 파테르교의 고위층께서 약속한 겁니다. 물론 믿고 말고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다만.”

올리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준다 해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결국, 눈앞의 상황과 고를 수밖에 없는 선택지뿐이었으니까.

“저를 따라오시지 않는다면 모두 갈로스를 떠나야 할 겁니다. 물론, 떠나시지 않고, 절 공격할 수도 있지만, 그러신다면 저도 제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올리버가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한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년은 올리버와 눈을 마주쳤고 가슴 속에 갈고 있던 칼이 부러지고 말았다.

올리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찌하시겠습니까?”

잠시 후, 트럭이 다섯 세대 오며 바닥에 쓰러진 시체와 마을 사람들, 올리버, 송장인형-듀란스를 태우고 라빌리로 이동했다.

***

말하기도 입이 아프지만, 인육 요리사의 난(亂) 이후,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는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흑마법사들의 난리는 흡사 전쟁과 맞먹는 혼란과 피해를 줬고, 으레 있는 전쟁처럼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물가, 사람들의 거주지, 부동산 가격 그리고 부동산의 소유주. 그중 가장 티가 나지 않는 변화는 부동산 소유주였다.

물가와 사람들의 거주지, 부동산 가격은 바로바로 티가 났으나, 소유주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고, 소유주 측에서 조금만 꼼수를 부리면 숨기기도 쉬웠다.

그러한 특성 탓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라빌리의 부동산 상당수가 귀족과 외국 자본가, 파테르교에 넘어간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부동산을 휩쓴 게 파테르교인 것 역시 알지 못했다. 가령, 이곳 20번 구역이라던가.

“통과.”

파테르교가 구매한 도시 한 구역. 이곳은 파테르교가 소유했다는 특성과 재상인 아르망의 후광 탓에 경찰도 출입할 수 없었는데, 그곳 입구에서 한 직원이 외치자 다섯 대의 차량이 들어갔다.

차량이 회색 건물 사이를 지나 구역 안으로 들어가자 정장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내들이 반겨주었다.

파테르교 갈로스 지부의 성기사들로, 아르망의 지휘를 받는 성기사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아르망 휘하 성기사답게 올리버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올리버 역시 그들에게 인사하며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을 소개했다.

“줄리어스 씨 휘하에 있던 마을 사람들입니다.”

“노상강도들이군요. 줄리어스는 어딨죠?”

올리버가 뒤따라오던 차를 가리켰다. 때마침 시체 가방을 내리고 있었는데, 성기사 휘하의 서번트들이 확인했다.

시체 가방 안에 있는 줄리어스와 그 부하들을 확인한 서번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확인한 성기사들은 올리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데려온 사람들은 저희가 인계받도록 하지요.”

“예.”

올리버가 대답했고, 성기사들은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을 데리고 한 건물로 들어갔다.

성기사들에게 끌려가는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으나, 올리버는 무감각하게 이를 바라봤다. 해결사 일과 비슷한 거라 스스로 생각하며.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로, 그녀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올리버가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갈로스에서 판치고 있는 흑마법사를 제압하는 건 올리버 혼자서도 충분했으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다른 영역. 이를 위해서는 흑마법사 조직을 운영해 본 마리의 도움이 필요했고, 올리버는 그녀를 데려와 대부분의 일을 맡겨버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리는 이 갑작스러운 일을 몹시도 잘 수행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성기사들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위기에 처하긴 했으나,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리는 자력으로 천 단위의 조직을 운영하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마리가 일을 쉽게 하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갈로스로 같이 온 며칠 동안 마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으니까.

뒤늦게 양심이 찔린 올리버가 물었다.

“마리야말로 괜찮으세요?”

“저는 늘 괜찮습니다. 포레스트 씨께서 저희 쪽 사람들 더 보내주겠다고 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요?”

“예, X구역. 관리를 위해 일손이 필요한 건 사실이나, 그와 별개로 이곳 일 역시 중요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올리버는 납득했다. 현재 올리버가 성기사들을 도와 흑마법사들을 소탕하고 있다는 건 이미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성기사와 협력하는 흑마법사. 반대로 성기사가 협력하는 흑마법사. 중개인이자, 사업가인 포레스트는 그 가치를 깨닫고 과감히 인력을 지원하기로 한 거였다.

마리는 품에 들고 있던 파일을 꺼내 올리버에게 보고했다.

“차일드-퍼스트와 포스께서 연락 주셨습니다. 인육 요리사의 열두 번째 유산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거기엔 대량의 금이 있다더군요.”

“다행이네요. 얼마나 있죠?”

올리버가 물었다. 금품에 필요 이상의 욕심은 없었으나, 근래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안 궁금할 수가 없었다.

“그게······.”

“솔직히 말해주세요.”

“‘존나 많이’라고 했습니다.”

마리가 파일에 적힌 문구를 그대로 읊었다. 그 말을 들은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분명, 숫자를 가르쳐줬었는데.”

“너무 많아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어쨌건 그중 25퍼센트는 저희 쪽으로 가져올 거라고 했고, 인센티브로 1퍼센트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랬다. 현재 올리버는 흑마법사를 소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육 요리사의 유산도 하나하나 찾아 회수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포스가 인육 요리사를 가공한 송장인형을 운용 중이었으니.

포스가 인육 요리사의 육체에 익숙해짐에 따라 몸의 기억을 읽었고, 그때마다 숨겨진 유산을 찾아 회수했다.

그중 사 분의 일이 올리버에게 떨어졌고, 올리버는 이를 흑마법사들의 지원금으로 쓰고 있었다.

나머지 사 분의 일은 파테르교가, 나머지 반은 갈로스 왕실이 가져갔고.

“인육 요리사 님 잔당은 어떻게 됐습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인육 요리사의 기억을 읽은 덕분에 유산뿐 아니라 그 잔당이 숨어 있는 비밀 아지트도 알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다 죽이고 있다고 합니다. 전부 인육 요리사의 규칙에 길들어진 이들이라 다시 쓰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퍼스트와 포스께 자제하라고 말을 전할까요?”

올리버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손이 부족해 올리버는 차일드들에게 맡겼다. 결정을 내린 이상 그 이상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어떻게 되셨죠. 저희 쪽으로 자발적으로 오는 분들이 있나요.”

“예, 많이 늘었습니다. 제대로 보호해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힘이 약한 패밀리는 스스로 와 의탁하고 있습니다. 모두 대표님의 공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마리도 고생 많았어요. 그 외 다른 건 없나요?”

“연락이 왔습니다. 아르망 추기사제님이 잠시 와주시길 바란다고 합니다.”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올리버 역시 아르망 추기 사제를 만나려고 했으니까. 듣자마자 올리버는 아르망 추기 사제를 향해 갔고,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났다.

“아! 그대가 데이브인가?”

바로 연합 왕국의 왕세자 에드워드 1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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