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03화 (603/633)

603. 변하는 란다 (4)

마탑 행정부의 장(長)인 버크 포스트는 총장(總長)이 아닌 행정부장(行政府長)이라고 불렸다.

그 이유는 마탑이란 거대한 조직은 한 명의 총장이 아닌, 여러 명의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으로, 이는 연합체라는 마탑의 탄생 배경에 기인한 것이었다.

전통 학파의 지부(支部)에서 독립해 하나로 뭉친 연합체.

그래서 각 학파를 조율하고, 마탑 전체의 행정을 책임지는 행정부는 마탑을 구성하는 학파에 비해 끗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파는 마탑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이나, 행정부는 이를 보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허나,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마련. 마탑 행정부는 규모와 위상은 여전히 낮은 편이나 그렇다고 실질적 권한까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보조라 해도 행정부는 마탑 전체의 일을 도맡았고, 각 학파의 협력과 반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현재에 이르러 그 권한과 영향력이 상당히 커졌다.

하는 일이 많으면 발언권이 세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 그 증거로 행정부는 마탑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집행할 권리를 얻었으며, 일을 주도하지는 못해도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문 경우긴 하지만 마탑 내에 새로운 학파를 창설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학파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 부서라는 특성 탓에 자연스럽게 얻게 된 권한으로, 세계수를 다루는 모이라이 학파가 그 대표적 예시였다.

현재 행정부장직을 맡은 버크 포스트는 이 일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세계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모이라이 학파를 출범시킴으로. 마탑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으며, 동시에 행정부 역시 상당한 힘을 가졌음을 모두에게 보여줬으니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버크 포스트는 지금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에?”

중년이라는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얼빠진 소리. 체면을 중시하는 버크는 자신이 낸 소리도 잊은 채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지금 뭐라 했나?”

“마탑에 흑마법을 가르치는 학파를 하나 세울까 합니다. 행정부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눈앞의 청년. 아니, 란다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 라이트이자, 마탑의 직원인 제논 브라이트라 불리는 청년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버크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이. 버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냈다.

“허! 진심으로 묻는 건가?”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대로 미친놈이었다.

“왜 내게 그런 것을 묻는 건가?”

“새로운 학파를 세우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서요. 행정부의 최종 승인을 내리는 것은 행정부의 장인 버크 포스트 행정부장님이시고요. 그래서 여쭤봤습니다.”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미친 대답에 버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보아하니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잘못 아는 거 같은데, 새로운 학파를 세우기 위해서는 마탑 내에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동의가 필요해.”

“압니다. 하지만 최종 승인을 할 수 있는 건 행정부이고, 또, 행정부가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올리버를 바라보는 버크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잘 아는구만.”

“마탑의 교칙과 권한에 관한 책을 읽어 봤거든요.”

“어지간히 할 일도 없었나 보네.”

“교수 개인 직원으로 일할 때 필요할 것 같아 읽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니까요. 그리고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죠. 그러니 의견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뭘?”

“마탑에 흑마법을 가르치는 학파를 세우려고 하는데 행정부장님의 생각이 어떠신지요.”

버크가 몇 번이나 말을 돌렸음에도 올리버는 뻔뻔하게 다시 물었다. 적당히 흘릴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버크는 일부러 소리를 높였다.

“진심으로 묻는 건가?”

“예,”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 이상이구만.”

“그렇습니까?”

“뭘 모르는 거 같으니 알려주지. 마탑 행정부는 마탑 전체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조직일세. 상대적으로 끗발이 떨어지는 조직이라 야심가들에겐 한직 취급당하지만, 난 이 자리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마탑의 업적은 학파의 것일지 몰라도, 번영을 이루는 데 앞장선 건 행정부거든.”

“듣고 있고, 동의합니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내게 가져왔나? 흑마법을 마탑의 학파로 세워달라는? ······일개 직원임에도 아카이브의 제자라 해 만나줬지만 아무래도 실수였던 거 같군. 이번 실수는 그냥 넘어가 줄 테니 나가보게.”

버크는 소문을 통해 들은 제논의 행실과 데이브의 명성을 바탕으로 대답했다.

항간에서는 시끌시끌한 사건에 많이 언급돼 호전적이네, 새로운 손가락이네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는 힘보다 대화를 추구하였고,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지도 않는 안일한 사람이었다.

즉, 지저분하게 굴지 않는 샌님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버크는 불쾌한 기분을 가감 없이 드러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지저분하게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 아니니 이대로 물러갈 거라 생각해. 허나, 예상 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죄송하지만 몇 가지 정정해도 되겠습니까?”

“뭐?”

“제가 듣기에 틀린 게 있어서요. 우선, 행정부장님께서 절 만나주신 건 어르신의 제자라 그런 게 아닙니다. 일부 있겠지만, 그 이전에 제가 마탑에서 몇 차례 활약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동의하시는군요.”

버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올리버는 버크의 감정을 읽어 멋대로 대답을 얻어냈다.

버크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행정직에 있다 해도 버크 역시 마탑의 고위직에 위치할 만큼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감정을 그냥 꿰뚫어 봤다.

“전 케빈 교수님과 필립 중장님 등을 도와 테어도어 님께서 일으킨 레이크 빌리지 사건에서 학생들을 구출했고, 또, 케빈 교수님과 야렐리 씨를 도와 마탑을 위해 갈로스에서 인육 요리사 님 세력과 싸웠으며. 란다 밖 타지에 있는 이브(Eve)도 확보해 왔고, 또, 마탑의 마법사분들이 관심 가질 만한 논문도 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리버는 말하지 않았다. 버크가 부정하지 못했으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니 제가 지금 행정부장님을 만난 것은 어르신의 후광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이 공간을 뒤덮었고, 잠시 후, 버크가 입을 열었다.

“······흑마법을 마탑의 학파로 삼아달라는 게 내가 대답해줘야 할 만큼 상식적인 질문이라 생각하나?”

“삼아 달라는 게 아닙니다. 세울 수 있다면 어떤지 행정부장님의 의견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대부분 마법사는 동의하지 않을 걸세.”

“일부는 동의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하긴, 소수긴 하나 흑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은 있었으니까요.”

“사람을 재료로 사용하는 학문을 마탑에 넣는 게 가당키나 한 거 같나?”

“마법도 사람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버크가 압박감에 날카롭게 말했으나, 올리버는 지지 않고 따박따박 받아쳤다. 버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탑에서 사람을 이용한 인체실험을 행하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일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현재 진행형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은 마탑의 지도계층도 알고 있었기에 반박할 말도 늘 준비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에 있는 청년을 보고 있으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아카이브의 제자라 그런 것도, 근래, 손가락이라 불릴 정도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흑마법사라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서로의 위치와 입장, 사회적 약속이 그가 여기서 자신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버크가 입을 열 수 없었다. 느낌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대하듯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적당히 핑계를 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근거는 없으나 행정부장으로 살아온 감이 그렇게 대응했다간 골치 아플 거라고 경고했다.

버크는 탄원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거래 대상을 대하는 자세로 앉은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좋아,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고, 좀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자고. 마탑에서 흑마법을 학파로 세우는 게 정녕 가능할 거 같나?”

당연히 불가능했다. 견제를 받긴 해도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인정받은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그냥 불법이었다. 법이 그랬고, 사회적 인식이 그랬다.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습니까? 사회에 흑마법이 통용될 수 있는 조건이 생성되고, 그게 마탑에 도움이 된다면 행정부장님께서는 허락해주실 겁니까? 마탑의 이익을 도모하는 입장에서요.”

버크가 펼친 논리를 토대로 올리버가 접근해왔다. 그 말이 뱀의 혓바닥처럼 버크를 옥죄어 왔지만, 버크 역시 한평생 마법을 갈고 닦고, 마탑을 위해 일한 몸. 눌러오는 압박감을 무시하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문제가 없고, 마탑에 이익이 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죄송하지만 대답이 애매한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앉으면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네. 책임져야 할 게 많은 자리니까. 남자답지 못해도, 그게 책임감 있는 대답이야.”

“음, 이해했습니다.”

올리버가 한 가지 배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버크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탑에 관심을 가지지? 그런 거에 관심 있었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요.”

망설임 없는 대답에 버크가 고개를 갸웃댔으나,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올리버가 마탑에 학파를 세우고 싶은 이유는 다름 아닌 세제 혜택이었다.

란다의 핵심 산업 중 하나는 마법과 그 관련 산업이었고, 당연히 란다는 마법 산업을 더욱 육성하기 위해 높은 수입을 올리는 마탑과 그 산하 기관에 적잖은 세금 혜택을 주고 있었다. 올리버는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 마탑에 학파를 세우려고 하였다.

“고작 그거 때문에?”

버크가 진심이냐는 듯 중얼거렸다. 물론, 자본의 도시인 란다에서 세제 혜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긴 했으나, 란다를 대표하는 해결사가 마탑에 가입하려는 이유치고는 궁색한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권력이라든가, 힘이라든가 좀 높은 목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세금을 아끼면 그만큼 그걸로 다른 걸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외에도 전 개인적으로 흑마법이 양지로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흑마법사한테?”

“흑마법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도요, 음지로만 내몰면 더욱 위험해질 뿐이고,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험하죠. 차라리 안전장치를 걸고 양지로 편입하는 게 전제적으로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군. 흑마법을 양지로 끌어내고 싶다고 마탑에 편입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마탑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흑마법이 양지로 나와야 하네. 그리고 그건 마탑에서 할 수 없는 거지.”

“압니다.”

“그런데도 그걸 묻나? 정말 비생산적인 대화군.”

“아뇨, 비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전 방금 버크 행정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탑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확실한 이익만 제공할 수 있다면 흑마법을 마탑에 편입할 수 있다는 말을 확인했으니까요.”

버크와의 대화와 감정을 통해 진심을 확인한 올리버가 말했다. 버크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냥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임을. 그게 뭔지 물어보려는 찰나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버크 행정부장님.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다음번에도 찾아올 생각인가?”

“예. 좀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주제를 가지고 찾아오겠습니다.”

올리버는 대답하며 사무실을 나갔고, 며칠 후, 란다의 뒷소문에서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란다의 대표 해결사 중 하나인 데이브가 갈로스에서 인육 요리사의 잔당과 인육 요리사의 빈 자리를 노리는 흑마법사를 격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진 후, 마탑에서 흑마법사로 이뤄진 브라이트 학파의 창설에 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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