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01화 (601/633)

601. 변하는 란다 (2)

어릴 때와 늙은 때는 다르다.

포레스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 어린 시절을 보내봤고, 지금은 늙은 시절을 누리고 있었으니까.

같은 자신이라도, 과거 어린 시절 자신과 지금 늙은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 할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어린 시절의 관절은 강철 같으나 지금은 해진 옷 같고, 어린 시절에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지만 지금은 수프만 먹어도 배가 찼다.

꿈이나 투지도 그러했다. 어린 시절에는 늘 희망에 차 있고 무엇과도 싸울 수 있을 거 같았으나, 이 나이쯤에 이르러서는 노후를 보장받는 게 최대 야망이고,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강할 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중 최고로 많이 달라지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시간의 체감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뭐든지 지루하고, 느려 더 이상 시대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나이가 드니 세상은 계속해 변해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영원히 확장될 것 같은 식민지가 정체되고, 영원히 군림할 것 같던 여왕의 건강 악화설이 퍼지는 등. 세상은 느리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기도 했다.

수십, 수백 년을 군림한 손가락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러했고, 파테르교가 흑마법사를 후원한다는 정신 나간 제안이 그러했고, X구역이 살만한 구역으로 바뀐 게 그러했다.

공교롭게도 해당 내용은 모두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와 관련 있었다.

“잘 다녀왔나?”

X구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층 사무실. 포레스트가 눈앞의 남자를 보며 물었다.

T구역, 이제는 더 나아가 란다 전체를 대표하는 해결사이자, 마탑의 직원, 재개발 연합의 공동 대표 데이브였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태도. 그러나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자리를 비운 짧다면 짧은 시간 사이 그가 많이 변했음을 직감했다.

검게 염색한 머리카락 탓이 아니었고, 양손에 안 끼던 장갑을 껴서도 아니었다. 분위기 자체가 변했다.

전에도 가끔 분위기가 변한 적은 있으나, 이번은 그 수준이 달랐다. 과거에는 일시적이고, 변동의 폭이 크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올리버의 눈에는 이채가 깃들어 있었다. 무엇인가 목표하고 집착하는 이채가.

상대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마주하는 중개인의 직업 특성 탓에 포레스트는 꿰뚫어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기대되면서도 걱정됐다.

그 데이브의 눈에 그런 빛이 깃들다니.

탁.

포레스트가 올리버는 관찰하던 도중 올리버가 옆에 놓인 길쭉한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뭔가?”

“여행 선물입니다. 멀리 갔다 오면 사는 게 예의라고 들어서요.”

포레스트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술?”

“예, 빈 시티에서 만든 밀주(密酒)입니다. 안전하게 만든 거라 건강에 문제없고 맛도 보장한다더군요.”

“밀주(密酒)에 안전이란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지만, 감사히 받지.”

“안 드십니까?”

“특별한 날 따도록 하지. 결코, 술이 시커메서 먹기 불안한 게 아니야.”

“그렇다면야 다행이고요. 오기 전 알 씨를 만났습니다. 란다에 여러 일이 있었다 하던데요.”

“나도 연락받았어. 많은 일이 있었지. 하지만 그중 최대 특종은-”

-탁.

포레스트가 미리 준비한 신문을 탁자 위에 올렸다. 다름 아닌, 대마법사 아카이브가 연합 왕국도 포기한 망각의 해를 되찾았다는 기사였다.

[대마법사 아카이브! 바다 괴물을 물리치고, 망각의 해도 되찾아 오다!!]

멋들어진 제목 밑에는 바다 괴물을 세 조각으로 찢은 사진이 박혀 있었다.

“란다는 매일 특종이 있지만, 지금 최대 특종은 바로 아카이브 멀린과 그 제자인 제논 브라이트일세. 제논 브라이트는-”

“-제가 마탑에서 쓰는 이름이죠.”

“맞아, 자네의 이중 신분. 솔직히 이중 신분이라 하기도 뭣하군. 모두가 다 아는데.”

포레스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제논 브라이트는 이미 레이크 빌리지에서 밝혀진 올리버의 이중 신분 중 하나였다. 허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 시간의 관성 탓인지 없어지지 않고 유지 중이었다.

덕분에 모두가 다 아는 이중 신분이란 어처구니없는 게 탄생했다. 완벽한 이중 신분보다 어쩌면 더 보기 드문 이중 신분이라 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군.”

“어떤 반응을 예상하셨습니까?”

“글쎄? 아, 이건 잘못된 겁니다. 사실 어르신께서 전부 다 하신 겁니다. 혹시, 정정 보도 낼 수 있겠습니까? 같은 말을 할 줄 알았지.”

과거 올리버의 모습을 토대로 완벽하게 추측했다.

올리버는 악마의 책을 얻기 위해 돈과 명성을 얻겠다고 했지만, 모순되게도 과도한 명성은 원치 않았다.

압도적으로 높은 명성이 아닌, 딱 필요한, 적당히 높은 명성을 원했다. 실로 모순적. 하긴, 모순적인 게 그뿐이겠느냐마는. 여하튼 올리버가 대답했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미리 들어서요. 각오를 다진 것 같습니다.”

“그거뿐인가?”

“마음을 달리 먹은 것도 있습니다. 지금 사업에 집중해볼까 합니다.”

“갑자기?”

“예.”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기뻐해야 할 말이긴 했지만, 오히려 걱정됐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처럼,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았다. 변하려면 그에 걸맞은 동기가 필요했다. 죽음, 출생의 비밀, 복수심과 같은 강렬한 동기가.

“이유가 뭔가?”

“흐음,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서요? 얼마 전 제인 아가씨가 납치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사히 돌아왔지.”

“예, 운이 좋게도요. 하지만 계속 운이 좋을 순 없겠죠.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서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요. 무슨 일이 생기면 슬프지 않습니까? 가난, 사고, 재앙 같은.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만 한 게 없고요.”

“그건 맞지. 삶의 토대가 단단해야 안전한 법이니까.”

“또 개인적인 욕심도 있습니다.”

“무슨 욕심?”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요. 캔트 님 같은?”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어째서인지 포레스트는 딱히 놀랍지 않았다.

“사업하는 거랑 좋은 사람인 게 무슨 상관인가?”

“포레스트 님과 폴 카버 씨께서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사업을 하는 게 곧 남을 돕는 거라고요. 일자리가 생기니까요.”

포레스트는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 있고, 란다 대부분의 상류층은 해당 생각을 품고 있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곧 남을 돕는 거라고. 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또 현실적인가?

“저도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캔트 님 방식보다는 이쪽이 좀 더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업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상한가요?”

이상했다. 생각 자체는 이상한 게 아니나, 갑자기 너무 달라져 이상했다.

올리버가 과거에도 캔트를 좋아했고, 남을 잘 돕는 것도 맞았지만, 지금 것은 과거의 그것과 결이 달랐다.

과거엔 남을 돕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수단처럼 느껴졌다.

올리버의 눈에 비치는 집착과 아마 관련이 있을 터.

그러나 포레스트는 차마 묻지 못했다. 거래처와 늘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는 포레스트의 기조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아니, 그 이전에 묻는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런 감정은 묻는다고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더욱 깊숙이 숨을 뿐.

그래서 포레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렇습니까?”

“그래. 난 오히려 기쁘군. 자네가 진짜 란다인이 된 것 같아. 그럼, 그런 의미에서 사업 이야기나 좀 할까?”

“혹시, 신(新) 계급에 관한 겁니까?”

“아, 그거 외에도 더 있지.”

***

포레스트는 설명했다. 올리버가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시작으로 란다를 비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선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면 크라임 펌과 파이터 크루에 의해 쫓겨난 비소속 갱들이 란다 주변 소도시로 흩어져 완전히 새로운 갱단을 이뤘다는 거였다.

‘생각보다 골치 아파. 란다 안팎을 오가는 물자를 약탈하는데, 란다 시(市)는 란다 밖으로 힘을 행사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게 제한되거든. 민영 단체가 감당하기에는 사이즈가 크고.’

‘그 정도입니까?’

‘그래, 분명 란다에서 버티지 못한 떨거지들이었건만, 이제는 제법 단단한 세를 구축했거든. 물론, 작정하면 한두 개 정도는 박살 낼 수 있지만 또 그럴 가치는 없어. 전쟁은 손실만 낳을 뿐이고, 중앙정치권에서 견제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 누군가 란다를 괴롭히려고 작정하고 지원한 거야.’

올리버는 그 누군가를 알 것 같았다. 아마, 퍼펫일 터였다.

납치된 이브를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로드 갱과 지방 크라임 펌 지부에게 릴리스가 장비를 지원해 준 적 있었으니. 릴리스의 뒤에는 퍼펫이 있고.

‘그분이랑 계속 엮이네.’

포레스트가 계속해 설명했다. 왕실 주도하에서 마탑과 같은 거대 마법 기관을 설립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 규모가 상당해 전통 학파에서도 관심을 보인다고 하였는데, 올리버는 이번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신대륙에서 알버트 왕자에게 들었으니까. 심지어,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까지 했다.

다음에 나온 설명도 비슷했다. 이브를 통한 란다의 행정시스템 개편과 이를 탐내는 연합 왕국의 중앙의회. 그 외 기타 등등. 전부 과거에 이미 한 번씩 들은 이야기라 썩 새롭진 않았지만. 포레스트가 더 자세히 설명해줘 유익하긴 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건 신(新) 계급 연합 뉴젠틀맨(New Gentleman)이었다.

란다에서 주로 보이는 새 계층인 신(新) 계급은 부까지 획득한 초인들을 지칭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법사와 엔조이먼트 드루이드 셰이머스가 있었다.

그리고 뉴젠틀맨(New Gentleman)은 그런 신(新) 계급 인사들이 친목 겸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조직이라고 했다.

아, 참고로 마법사. 정확히는 마탑 소속 마법사는 여기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뉴젠틀맨에 소속된 신 계급은 셰이머스와 같은 종류의 초인들로, 속되게 표현하면 길거리 출신들이었다.

해결사로 시작해 자신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 덕분에 뉴젠틀맨에 소속된 사업은 음지와 양지 혹은 그 중간 등으로 범위가 다양했다.

단순 무역업부터, 부동산, 농업, 대부업, 도박, 신문, 라디오 채널, 엔터테인먼트, 용병, 매춘, 마약, 심지어 사이비 종교까지.

허나, 란다 시(市)가 이들을 주시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했다.

‘란다 시의원들이 고작 그딴 걸 신경 쓰진 않지. 범죄도 어느 정도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세금만 잘 내면 신경 안 써. 문제는 중앙의회와 붙어먹고 있다는 점이야.’

‘근거가 있나요?’

‘저들이 뭉친 것부터가 이상해.’

포레스트가 말하길 신(新) 계급이란 계층이 나타난 건 이상한 게 아니나 그들이 뭉치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초인들의 특성 탓으로, 인간의 정신에 과도한 힘이 깃든 벼락부자들은 서로 잘 뭉치지 못한다고 했다.

대부분 강건한 육체와 짧은 시간 안에 큰 성공을 맛본 터라, 자의식이 과도하게 비대해져 비슷한 이들끼리 모이면 친분을 쌓기보단 으르렁대기 일쑤라고 했다.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문제는 초인들끼리 으르렁 대면 으르렁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그런데 갑자기 뭉쳤어. 란다 주변에 위협 요소가 생기고, 이브를 두고 란다와 중앙의회가 서로 눈치 게임을 시작하는 지금. 왜 하필 이때?’

그러더니 포레스트는 갑자기 급성장해 신(新) 계급에 들어간 이들을 언급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뉴젠틀맨이 창립됐다고 설명했다.

‘이름이 왜 뉴젠틀맨이죠?’

‘새로운 젠트리 계층이 되고 싶나 보지. 일종의 허영이랄까.’

뉴젠틀맨은 현재 연합에 소속되기 거부하는 신(新) 계급을 쳐 사업을 빼앗고, 또 내부에서도 서열 싸움을 하는 등 친목과 이익 단체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그러한 행태는 서민들은 물론 시(市)와 기존 자본가들도 불안하게 봤고, 협의해 너클 조를 투입했다고 하였다.

‘보조금도 보조금이지만, 우리도 어떤 놈들인지 궁금했거든. 또, 발언권도 얻을 수 있고.’

‘받아줬나요?’

‘때마침 크라임 펌과 경쟁하던 뉴젠틀맨 소속 초인을 조가 쓰러트렸거든. 그게 일종의 검증이 됐는지 받아줬어. 속셈은 따로 있겠지만.’

‘알아낸 건 있나요?’

‘당장은 없어. 그러니 자네도 당장 뭘 할 건 없어. 아마, 저쪽도 자네가 돌아와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테고.’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그사이 제 볼일을 보죠,’

‘무슨 볼일?’

‘대화하고 싶거든요.’

‘누구랑?’

‘모두랑요.’

포레스트와 나눈 대화를 다 떠올린 올리버는 현실로 돌아와 눈앞에 있는 선택하는 사람의 소속 셀린을 봤다.

와인햄으로 돌아갔을 때 처음 만난 선택받은 사람들의 신도. 올리버가 소녀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셀린.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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