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98화 (598/633)

598. 뒤틀린 설득 (1)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백조 교단의 신자 가비노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한 마을.

그 마을을 보자마자 메로 대위가 말했다.

이유는 간신히 도착한 마을에 망명을 신청한 왕자 후보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로는 곧바로 가비노의 어깨를 당겨 다그치듯 물었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왕자 후보는 어디 갔어?”

“나, 나도 모릅니다! 내가 떠날 때만 하더라도 왕자님이 여기 있었다고요!!”

가비노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는지 다급히 말했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땐 거짓은 아니었다.

“여기, 습격받은 흔적이 있습니다.”

때마침 주변을 살펴보던 경비대원 중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고, 메로 대위는 가비노를 던지듯 놓으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올리버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갔는데, 경비대원의 말대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습격의 흔적이 보였다.

“왕자 후보의 습격은······. 아닌 거 같군.”

잠시 사람이 지낸 흔적이 있는 한 오두막.

그 오두막의 무너진 벽면과 창문, 부서진 문짝을 보며 메로 대위가 판단했다.

올리버도 동의하는 바였다. 사람보다는 짐승이 습격한 것에 가까워 보였다.

‘뭣보다 왕자 후보가 습격한 거라면 이 정도 흔적만 남지 않을 거고.’

올리버는 과거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던 중 조우한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머리에 엉겅퀴 관을 쓰고, 살덩어리를 주조해 만든 듯한 송곳 형태의 칼을 든 그를.

차라리 흔적이 없으면 없었지, 이런 자그마한 흔적을 만들진 않을 터였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왕자 후보가 습격했다는 건 아예 배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꺼냈다. 가령-

“-괴물들이 습격한 건가?”

저주받은 땅에 출몰하는 괴물들.

올리버도 한번 본 적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인면마(人面馬).

듣기로는 저주받은 땅의 영향을 받아 출몰하는 괴물이라고 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조용히 있던 올리버가 손을 살짝 들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집중됐다.

“왕자 후보가 습격한 게 아니라, 그냥 괴물이 습격한 거면 왜 도망치신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알기로 왕자 후보는 꽤 강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올리버의 말에 동의하는지 다들 말없이 가비노를 봤다.

왕자 후보를 상대로 도망친 게 아니라, 괴물의 습격을 피하고자 마을을 떠난 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저주받은 땅에 출몰하는 괴물이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으나, 그것도 일반인들에 한정된 이야기.

훈련받은 군인만 돼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고, 초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올리버만 해도 그냥 자동차에 달린 평범한 개틀링 기관총을 쏘는 것만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우리 왕자께선 싸울 줄 모릅니다.”

가비노가 답했고, 진심이었다.

“싸울 줄 모른다고요?”

“예, 다른 왕자들과 달리 그분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 사람을 살리는 분입니다.”

가비노가 이어 설명했다.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들은 교주인 백조 공주에게 제각기 기물(奇物)을 하사받아, 거기에 걸맞은 권능을 발휘한다고 말이다.

올리버가 처음 만난 왕자 후보가 사용했던 송곳 칼도 그중 하나.

“그리고 제가 모시는 왕자께서는 사람을 치료하는 반지를 받아, 그걸로 아픈 이들을 치료했지요. 그분은 사람을 살리는 분이지, 해치는 분이 아닙니다.”

가비노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경비대원이 비아냥거렸지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주제 경건한 척하기는.”

“입 조심하시오! 제대로 된 의사라곤 없는 이곳에서 사람 하나를 희생해 열 명을 살리는 분입니다.”

이번 말 역시 꾸밈이 없는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단순히 권력 싸움에 밀려 빈 시티에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닌 듯했다.

잠깐 높아지는 언성. 이번 일에 책임자인 메로 대위가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원래 궤도로 돌렸다.

“어쨌건 그쪽 말대로면 당신 왕자는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거구만. 맞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왕자님을 모시는 신자 중 하나가 이곳 괴물들로부터 몸을 숨기는 흑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가비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나, 모르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

생각할 게 많아진 메로 대위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가비노에게 어디로 대피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없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그걸 정하긴 상황이 너무 다급해.”

“빌어먹을, 망했구만.”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답을 들은 경비대원은 메로를 보며 물었고, 메로는 생각을 정리하다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봐, 호르헤. 넌 애들 데리고 주변을 수색해봐. 도망치면서 흔적을 남겼을지 모르니까. 나머지는 최소 인원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마을을 수색해. 혹시 뭐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경비대원들은 명령을 반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번 일이 빈 시티의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

모두 지시에 따라 빠릿빠릿 움직였고, 올리버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자연히 섞여 마을을 수색했다.

개인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곳이 있어.

***

끼익······.

모두가 마을과 주변을 수색하던 중.

올리버는 마을 구석에 있는 예배당에 들러 바닥에 숨겨진 비밀 문을 찾았다.

마치, 미리 알고 있는 듯한 모습. 얼추 비슷하긴 했다.

인육 요리사의 비밀 금고에서 얻은 악마 관련 서적 중 이 저주받은 땅에 관해 기록한 서적이 있었으니까.

‘오만한 마을이었던가······.’

물론, 메로 대위가 설명해주긴 전까지만 해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텅-!

바닥에 숨겨진 두꺼운 철문을 열고 그 아래로 내려가자 책에 기록된 것처럼 또 다른 예배당이 나왔다.

신앙의 오만에 빠진 마을 사람들이 만든 뒤틀린 예배당이.

책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저주받은 땅에 살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신실한 나머지 자신들만이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오만에 빠졌고, 여러 죄악을 저질렀다고 하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지하 예배당에는 뒤틀린 신앙의 증거가 남아있었다.

커다란 제단과 고문 기구, 오랜 세월이 지나 딱딱하게 굳은 피, 찢어진 종이 등.

자발적인 건지, 악마의 농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광적인 신앙은 악마 숭배로 그 형태가 일그러졌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저주받은 땅이란 결과를 초래했다고 했다.

올리버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는, 왜 이야기가 와전된 거냐는 거였다.

메로 대위가 말하기로는 저주받은 땅이 탄생한 이유는 신실한 마을 사람들을 저주한 악마 숭배자 때문이라 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 저주받은 땅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신앙의 오만에 빠진 원래 주민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와전된 건가 싶으면서도 이야기가 너무 교묘하게 바뀌어 단순 와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교묘하게 바꿨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두 번째 의문은 악마는 도대체 무슨 존재냐는 거였다.

옛날부터 미묘하게 느낀 거지만 악마란 파테르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단순히 악한 존재인 거 같지는 않았다.

불타버린 자라든가, 악마의 서적에 적힌 내용이라든가, 이곳 저주받은 땅이라든가.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마치······.’

“아, 여기 계셨습니까?”

올리버가 생각을 정리하며 주변에 찢어진 종이와 딱딱하게 굳은 피를 채취하는 그때, 메로 대위의 목소리가 울렸다.

“메로 대위님.”

“여긴 어디죠?”

메로 대위가 아래로 내려오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올리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악마의 서적에서 읽었다고 설명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적당히 둘러댄 것뿐이었다.

그와 비슷한 이치로 올리버는 이야기를 흐름을 바꿨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요?”

“수색 나갔던 인원이 돌아왔습니다. 왕자 후보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았더군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하 예배당 밖으로 나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밀수업자 출신 경비대원인 호르헤가 인근 마을로 향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다.

“밀수업자 중 가끔씩 쉬어가는 구간이라 잘 압니다. 애당초 이쪽 방향 외에는 사람이 쉴만한 곳이 없어 좋든 싫든 여기밖에 갈 곳이 없거든요.”

경험에서 나온 주장. 메로 대위는 핵심을 바로 짚어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들키기 쉬운 장소라는 거 아니야? 다른 왕자 후보가 부하들을 이끌고 주변을 수색 중이잖아?”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합니다. 갈려면 최대한 빨리 가든가, 아니면 철수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굴었다간 얻는 것 없이 위험만 초래할 겁니다.”

메로 대위는 고민했으나, 지금까지처럼 길지 않았다.

“임무를 계속 진행한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지. 데이브 씨. 축소화 마법 풀어 차량을 원래 크기로 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은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자동차로 이동하면 소리 때문에 괴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예,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조심하는 것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올리버는 납득했다.

당초 계획은 숨어 있는 망명 왕자를 데리고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오는 거였지만, 이미 그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으니. 거기에 맞춰 계획을 재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부탁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6륜 군용 차량을 원래대로 되돌리던 올리버를 향해 메로가 말을 걸었다.

“차량을 따로 하나 드릴 테니 저희와 별도로 움직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느낌이긴 하지만, 아마 차를 타고 이동하면 얼마 가지 않아 괴물이 습격하거나, 백조 교단과 조우할 것 같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지리를 설명하던 호르헤도 백조 교단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만난다면 좋든 싫든 발목이 붙잡히고 말 겁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희가 미끼가 돼 저쪽의 이목을 끌 테니, 그 사이 데이브 씨 혼자서 마을로 가 망명 왕자가 있는지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경우 데이브 씨 혼자서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 되거든요.”

“전 상관없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진심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건은 빈 시티의 안보가 달린 일.

상황이 여의찮다지만, 올리버에게 이렇게 전부 맡겨도 되나 싶었다.

“상황이 다급하니까요. 그리고 시장님께서 여차할 경우 이리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란다에서 데이브 씨의 명성을 믿는다면서요.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만약, 중간에 일이 틀어지면 혼자서라도 가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안 되면 더 좋겠지만요.”

***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자동차로 이동하고 나서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올리버가 말했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차로 이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주받은 땅에 서식하는 각종 괴물이 작정한듯 나타나 습격하기 시작했다.

크리처나 란다의 오염체들처럼 끔찍한 형상을 한 괴물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와 차를 전복하려 하였고.

빈 시티의 도시 경비대는 각종 장비를 동원해 이를 뿌리쳐내려 했다.

처음에는 꽤 선전했다. 얼마 가지 않아 백조 교단으로 추정되는 습격자들이 가세하며 그 흐름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총기를 시작으로, 낫, 톱, 괭이 등. 잡동사니 무기로 무장한 백조 교단이 끈덕지게 달라붙어 선두에서 달리던 차를 한 대 전복했고, 그 덕분에 모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유일하게 붙잡지 못한 것은 필립이 선물해 준 맞춤형 차량을 탄 올리버뿐.

올리버는 사전에 메로와 이야기 나눈 대로 혼자 차를 몰아 마을로 향했다.

속도가 가장 중요한 지금 이것이 최선이라 판단해.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올리버는 차를 빠르게 회전하며 뒤에서 쫓아오는 저주받은 땅의 괴물들에게 개틀링 기관총을 쏴 모조리 쓸어버린 후 차에서 내렸다.

그런 다음 바로 흑마법사의 눈을 발동. 마을을 훑어봤고 어떠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됐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그곳으로 향했고.

철컥.

한 허름한 폐가 안에 있는 남성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가락이 지저분하게 잘린 시신을.

시체는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올리버는 머리에 두른 엉겅퀴 관을 보고 그 시체가 왕자 후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쪽이 늦은 것.

허나, 올리버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금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존재가 문 앞에 서 있었기에.

머리에 엉겅퀴 관을 두른 채 얼룩덜룩 피부가 탈색된 홍인.

올리버가 그를 보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굽히지 않는 무릎 씨.”

***

굽히지 않는 무릎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데이브와 싸워서 안 된다는 건지.

그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두 눈으로 봤고, 또, 팬조차 쓰러트렸다는 이야길 듣긴 했지만, 그래도 싸우는 대신 설득해야 한다는 퍼펫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이브가 강해진 만큼 굽히지 않는 무릎 역시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들을 살해해, 그 기물을 빼앗아 힘을 길렀건만.

최소한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은 들었다.

정확히는 복수하고 싶은 거였지만.

홍인들의 복수를 막고, 부족이 전멸하는 데 한 손을 거든 데이브에게 복수를.

그런데 퍼펫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싸울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 그를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데이브가 자신들을 방해하지 못하게. 최소한 망설일 수 있게끔.

굽히지 않는 무릎의 원한과 복수심, 증오, 분노를 앎에도.

그런데 놀랍게도 이리 데이브를 마주한 순간 굽히지 않는 무릎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의 종말을 대가로 악마와 거래한 백조 공주.

그런 그녀의 축복을 온전히 받는 왕자 후보인 굽히지 않는 무릎은 비로소 데이브를 제대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아니, 이 존재는 이길 수 없었다. 이겨서도 안 됐고.

그 사실을 깨달은 굽히지 않는 무릎은 방금 전 빼앗은 은혜와 징수의 반지를 발동. 시체를 조종해 자기 말을 대신 전하게 했다.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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