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 방문객 (3)
백조 교단.
흑마법사가 세운 사이비 종교 중 하나로, 올리버가 그 존재를 알게 된 건 인육 요리사 사망 후. 그의 유산을 찾는 과정에서였다.
올리버는 그때 백조 교단이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됐고, 또, 그곳의 간부라 할 수 있는 왕자 후보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인상적이긴 했다.
재생의 영역을 초월한 회복 능력과 살점으로 이뤄진 송곳 형태의 칼은 올리버가 보기에도 엄청났기에.
거기다 악마를 숭배하고, 종말을 바라며, 신도를 재료로 사용, 잠자는 숲속의 공주마저 흡수하려 한 행보 역시 퍽 인상적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인신 공양 소환술에 도움을 준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 중 하나가 갑자기 빈 시티로 망명하려고 한다라······.’
올리버는 개인적인 것 이상의 호기심을 느끼며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
“메로 대위님.”
“넵. 데이브 씨.”
빈 시티의 도시 경비대 소속인 메로 대위가 예를 갖춰 대답했다.
현재 그는 올리버와 함께 6륜 군용 차량을 타고 저주받은 땅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 이유는 저주받은 땅에 망명을 신청한 왕자 후보가 있기 때문.
“이미, 했던 질문이긴 하지만 왕자 후보가 망명을 신청한 경우가 있습니까?”
정말 궁금하다기보다는 이미 아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한 질문.
듣는 입장에선 귀찮을 법도 했지만, 메로 대위는 조금의 귀찮음도 빛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줬다.
“없습니다. 지금이 최초죠.”
최초. 그만큼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뜻. 올리버가 이어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질문 좀 더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시장님의 요청에 따라 이리 도와주러 오셨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부담 없이 말씀하십시오.”
메로가 진심을 빛내며 말했다.
뭐,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왕자 대신 망명을 신청하러 온 백조 교단의 신도와 대화를 나눈 후, 잭은 사태의 심각함을 직감하더니, 적잖은 보수를 제안하며 올리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올리버는 그 요청을 바로 수락했다.
올리버 역시 백조 교단과 이러한 행동에 어느 정도 관심이 가.
즉, 잭이 도움을 요청했건 안 했건 갔을 거라는 이야기였는데, 올리버는 구태여 해당 사실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란다에서 몇 년간 생활한 덕분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그래서 올리버는 메로의 말대로 그냥 질문했다.
“혹시, 백조 교단 내부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추측성 질문. 메로는 군인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고개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시장님이 아니라고 했고, 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망명신청을 하러 온 분께서 말씀하시길 새로운 왕자 후보가 다른 왕자 후보를 습격하고 있다 했잖습니까?”
올리버가 저 앞에 가고 있는 또 다른 6륜 군용 차량을 봤다.
저기에 도움을 요청한 백조 교단의 신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새롭게 임명된 왕자 후보가 대뜸 다른 왕자 후보를 습격한다고 주장했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때는 사실.
구체적인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백조 교단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한 정황이긴 했다.
그러나 메로의 반응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닐 겁니다. 백조 교단이 명성이 높은 조직은 아니나, 그렇다고 내부 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허술한 조직도 아닙니다.”
진심.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외부 활동은 자제해 바깥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조직이지만, 긴 세월 동안 이베리냐 공화국 뒤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조직이니까요.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랬다.
임무를 떠나기 전 잭에게 들은 사실로, 백조 교단은 저개발 농업 국가인 이베리냐의 독재자 안토니오와 거래해 이베리냐 뒤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였다.
빈 시티가 흑마법사의 도시라면, 이베리냐는 사이비 종교의 나라인 셈.
처음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납득할 수 있었다.
아주 불가능하지 않겠구나. 라는 수준으로.
그도 그럴 게, 총리인 안토니오의 목가주의와 종교주의 정책 덕분에 이베리냐 전 국토의 생산력은 란다만도 못한 수준이었고, 인프라는 훨씬 더 열악했다.
일종의 거대한 시골이랄까?
그런 배경이라면 인신 공양을 통해 악마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백조 교단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도 이상할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더 유리할지도 몰랐고.
백조 교단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도 이베리냐 전체에 백조 교단이 깊게 뿌리 내렸다고 하였고.
그래도 올리버로서는 아직 실감이 잘 안 났지만.
“빈 시티 여러분은 백조 교단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유일한 인접 국가니까요. 억지로라도 많이 알아야죠.”
지당한 말. 올리버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좀 더 생산적인 질문을 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이번 일에 참여한 건 단순히 개인의 흥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올리버 역시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백조 교단의 내부 분열이 아니면, 왜 왕자 후보가 왕자 후보를 습격하는 걸까요?”
올리버는 빈 시티의 시장인 잭도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질문을 꺼냈다.
애당초 저주받은 땅에 숨어 있는 망명 왕자를 찾아가는 이유도 그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백조 교단의 혼란이 자칫 인접해 있는 빈 시티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추측은 있습니다.”
“추측이라 하시면?”
“말 그대로 추측일 뿐입니다.”
“전 그 추측이 듣고 싶습니다.”
올리버가 부탁했다.
메로 대위가 보여준 진중한 태도를 봤을 때, 개인적인 추측이라 해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 돼.
메로 대위도 자신의 의견을 올리버에게 확인받고 싶은지 조심히 의견을 꺼냈다.
“힘을 한 점에 모으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예?”
“힘을 집중시키는 거지요. 원래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는 열한 명이었지만, 근래, 습격받은 후, 여섯으로 줄었다고 하거든요. 일곱 명이나 되는 왕자 후보가 당해서 말입니다.”
“그럼 넷 아닌가요?”
“그중 하나는 죽지 않고 부상만 입었고, 거기에 새로운 왕자가 추가됐다고 합니다.”
열하나 빼기 일곱. 거기에 하나가 살아남았고, 다른 하나가 추가됐다 라.
“이해했습니다.”
“근데 숫자가 줄어드니 오히려 왕자 후보들의 힘이 더 세졌다고 합니다. 그 흐름을 타, 아예 힘을 한점에 집중시키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여러 왕자 후보의 힘을 단 한 명의 왕자 후보에게 몰아주는 거지요······. 다만,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습니다.”
“뭐죠?”
“갑자기 백조 교단이 이토록 급진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됩니다.”
“음······. 습격받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지만, 메로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과거에도 백조 교단은 비슷한 일을 당한 적 있으나, 그때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잠시 물러나 몸을 사렸죠. 그래서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거고요.”
“그럼, 인육 요리사 님이 죽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올리버가 다른 의견을 냈다.
백조 교단과 이웃한 인육 요리사가 사망해 백조 교단이 힘을 본격적으로 키우는 게 아니겠냐는.
이 역시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인육 요리사가 사라지자 그에게 억압받았던 흑마법사와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흑마법사들이 아직까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럴듯했는지 메로는 잠시 고민했다. 얼마 가지 않아 고개를 저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백조 교단은 속세의 부와 권세는 좇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 뭐 곧 알 수 있겠지만요.”
메로가 바깥을 보며 말했고, 때마침 통신장치가 울렸다.
칙- 칙- 달칵.
메로가 통신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선두에서 연락이 왔다.
[곧 저주받은 땅에 진입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저주받은 땅.
빈 시티와 이베리냐 공화국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일종의 국경선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각종 괴물이 출몰하고, 너무 오래 있으면 병에 걸리는 등. 여러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인데,
빈 시티에 망명을 요청한 왕자가 바로 이곳에 숨어 있다고 했다.
“새로운 왕자 후보의 추격이 너무 심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왕자 대신에 도움을 요청하러 온 백조 교단의 신자 가비노가 말했다.
“왜 당신은 쫓지 않았지?”
6륜 군용 차량에서 내린 메로 대위가 물었다.
“저는 왕자 후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가비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허나, 메로의 표정은 석연치 못했다.
얼핏 가비노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했으나,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법.
이곳까지 도망쳤다는 건 빈 시티가 목적지인 게 뻔했고, 그렇다면 사전에 막을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는 거였다.
일례로 이곳 저주받은 땅을 지나는 길목만 틀어막았어도 가비노가 빈 시티로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록, 저주받은 땅 내부는 구릉과 듬성듬성하게 자란 숲이 뒤섞여 복잡하긴 했어도, 들어가고 나가는 길목은 빤했다.
이에 가비노도 지지 않고 말했다.
“새 왕자 후보는 홍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요.”
“······.”
“여기 지리는 홍인이 모르니 배치를 안 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홍인이라 거기까지 생각 못 하거나.”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무시와 경멸.
축소화 마법과 경량화 마법으로 6륜 군용 차량의 크기를 줄이던 올리버는 란다에서 느꼈던 기시감을 이 타지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포레스트의 직원 알과 멀린의 제자인 케빈을 본 사람 중 적잖은 수가 이런 감정을 빛냈기에.
어째 사람이 사는 곳은 참 비슷한 것 같았다.
‘홍인 왕자 후보라. 따라오길 잘한 것 같네.’
올리버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추가하며, 축소화한 차량을 가방 안에 담아 경비대 중 하나에게 건네줬다.
그사이 가비노와 메로의 대화도 얼추 일단락됐다.
“계속 여기서 따지기만 할 겁니까? 아니면, 도와주실 겁니까?”
빈 시티에서 지원을 보내 준 것이 단순 호의가 아닌 걸 아는지 가비노가 재촉했고, 메로는 찝찝해하면서도 일단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다.
가비노의 말대로 단순히 이타심 때문에 왕자를 도와주려는 게 아니었으니.
“데이브 씨,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예, 자동차는 모두 축소화시켰으니 이동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메로는 데리고 온 부하들에게 지시했고, 도시 경비대는 능숙하게 2열로 대열을 갖췄다.
각각 좌우측과 전후방을 경계.
도시 경비대 소속이 아닌 가비노는 선두에 서 길 안내를 맡았고, 올리버는 대열 중심에 서서 호위받았다.
가장 큰 전력이기에 가장 안전한 곳에 배치한 것.
딱히 필요한 조치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그렇게 이동하기 직전. 메로가 올리버에게 부탁했다.
“혹시 주변을 살펴보고 이상이 있으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메로가 올리버에게 부탁했다. 주변의 탐색을 올리버에게 떠넘기려는 게 아닌, 최대한 조심하기 위한 것으로, 올리버는 잭의 부탁을 수락했을 때처럼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저주받은 숲에 흥미가 갔기 때문이었는데, 다름 아닌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 바솔로뮤가 안내한 Z구역 지하. 그 안쪽에서 느껴진 기운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흥미가 동하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그곳.
지상으로 나온 지옥의 흔적이 말이다.
“······주변을 제가 감시하겠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니. 대신, 부탁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올리버의 요청에 메로가 뭐냐고 물었고, 올리버가 답했다.
“이 저주받은 땅. 원래는 어떤 곳이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러시는지요?”
“그냥, 와보니 느낌이 좀 이상해서요. 혹시 모르시나요?”
“아뇨, 남들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독실한 신자들이 모여 살던 성지였습니다. 악마숭배자들이 재앙을 일으키기 전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