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93화 (593/633)

593. 모든 걸 삼키는 괴물 (8)

올리버가 붕대 일부분을 뜯자 검지가 밖으로 나왔다.

검지는 살점이 완전히 타들어 가 뼈밖에 남지 않았고.

피부 표면은 우그러들어 곳곳에 갈라진 상처가 나 있었다.

흡사, 불타 버린 나뭇가지와 같은 모습.

올리버는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손가락을 보며 정신을 집중했고, 곧 우그러든 피부 사이로 선명한 불빛이 일기 시작했다.

불타버린 자를 상대했을 때처럼.

멀린과의 대련 도중 자극당했을 때처럼.

올리버는 그때의 기억과 감각을 떠올리며 불타오르는 대지 위에 검지를 댔고.

팍.

성냥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화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모든 걸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

백염(白炎)이 폭발하며 퍼지자 엄청난 굉음이 울렸고,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큰 소리 탓에 오히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침묵과 함께 세상은 새하얗게 탈색됐고,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봤다.

팬의 그림자가 만든 화염은 진즉에 사라졌고, 하늘을 덮은 꽃잎은 찢어지며, 대지는 불탔으나, 놀랍게도 네버랜드는 아직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로 기이했다.

백염(白炎)은 불타버린 자의 힘이건만 어떻게 버틴 건지.

물론, 불타버린 자가 직접 사용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긴 매한가지였다.

악마의 힘으로 만든 화염을 버티다니······.

제아무리 수많은 아이를 재료로 사용하고, 수십 년이란 긴 세월을 유지했다 해도 그게 어찌 가능한가 싶었다.

악마의 힘을 버티는 게 인간 세계에 존재하다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올리버는 네버랜드가 형체를 유지한 이유를 곧 추측할 수 있었다.

휘익.

올리버의 좌우로 눈을 굴렸고, 이내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팬을 잡아먹은 그림자. 놀랍게도 그림자는-

기이이이이이이이잉············!

네버랜드와 융합했다.

네버랜드에서 느껴지는 불타버린 자의 기운이 그 증거로.

그림자는 백염(白炎)이 일어나는 찰나 재빠르게 움직여 네버랜드 안으로 들어가, 네버랜드를 구성하는 아이들과 순식간에 융합했다.

둘 모두 팬의 손에 창조된 크리처라 가능한 행위.

올리버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네버랜드가 꿈틀거렸다.

[내, 내가······. 내가 왕자다······. 나야말로······. 와, 왕자다······.]

네버랜드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전음.

전음이 울리자 네버랜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섬을 기본 형태로 한 네버랜드는 점토처럼 그 모습이 뒤틀리더니, 칠성장어의 아가리 같은 형태로 변했다.

빨판과 같은 원통형 입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빨이 돋아났고.

쉴 새 없이 점액질이 뿜어져 나와 백염(白炎)에 저항. 올리버를 먹어 치우려 했다.

올리버를 양분 삼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던 팬처럼.

참으로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올리버는 오히려 위화감이 사라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를 재료로 삼아 탄생하고, 이후로도 잡아먹어 그 존재를 유지하던 네버랜드는 이 같은 모습은 더 어울렸기에.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변해버린 네버랜드에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서쪽 바다에 모든 걸 삼키는 괴물이 태동하며······.’

갑자기 거대한 아가리로 변해버리다니.

그 모습을 본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서적 사이에 끼어 있던 종말론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참으로 두려웠다.

분명, 그것을 피하고자 멀린에게까지 도움을 청했건만, 그런 올리버의 노력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 눈앞에 괴물이 나타났다.

절대 피할 수 없다는 듯이.

‘······아냐.’

올리버는 백염(白炎)을 이겨내며 서서히 닫히는 거대한 아가리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았다. 아직은. 아직은 완전히 괴물이 태동한 게 아니었다.

올리버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붕대를 더 뜯어 화력을 높이기로 했다.

자칫 붕대가 다 찢어져 통제에서 벗어날지도 몰랐으나, 종말론의 구절이 완성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올리버에게도, 세상에도.

그렇게 마음먹은 올리버는 붕대를 풀기 위해 아래를 봤고, 한 기현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

그 기현상의 정체는 그림자였다.

올리버 자신의 그림자.

분명 백염(白炎) 탓에 온 주변이 새하얗게 탈색됐건만, 무슨 이치인지 올리버의 그림자는 멀쩡히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 사라지긴커녕 더욱 선명하게 버티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존재하듯.

오싹······.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올리버는 이에 대응하려 했으나, 바로 그때, 짙게 물든 그림자 위로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눈알이 돋아났다.

눈알과 올리버는 마주쳤고.

쏴아아아악!!

그림자는 올리버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크기를 확장.

촉수와 같은 입을 이용해 아이들을 재료로 삼아 만든 작은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그림자에게 머리부터 잡아 먹힌 팬은 어둠의 바닷속에 빠져들며 보았다.

늘 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은 왕족이라 주장하던 어머니를.

고되고 위험한 굴뚝 청소 일을.

미친년의 자식이라 놀리던 동네 아이들을.

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생활을.

그러다 어머니가 죽고, 동네 어른들에게 속아 다른 굴뚝 청소부에게 팔린 일을.

참으로 끔찍한 기억.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팬은 거기서 처음으로 친구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웬디, 커비, 슬라이틀리, 닙스, 쌍둥이, 투틀즈로.

팬을 산 굴뚝 청소부가 데리고 있던 일꾼들이었다. 팬은 그때 그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들은 모두 아픈 상태였다.

모두 굴뚝 청소의 직업병인 폐병과 피부암, 눈병, 백혈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애당초 팬을 산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빈자리가 나면 바로 채우기 위해.

당연히 팬도 저리될 거였고. 그래서였을까?

늘 동네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팬이었지만, 같은 처지인 그들과는 잘 지낼 수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웬디는 스스로 엄마를 자처해 아이들을 돌봐줬고,

우둔한 커비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으며,

똑똑한 척하는 슬라이틀리는 주워들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들었고,

닙스는 그냥 닙스고,

쌍둥이는 남들이 말할 때마다 추임새를 넣어 활기를 보탰으며,

투틀즈는 귀여운 말투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워줘 모두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실로 모순적인 시간이었다.

비좁고 답답한 굴뚝에 들어가 청소하는 건 분명 죽을 만큼 힘들고 위험했으나. 일이 끝나고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너무나도 즐거웠다.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 먹고 싶은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뿐이었건만.

‘난 초콜릿 금화를 먹고 싶어. 보물상자에 가득 담아 땅속에 묻고, 먹고 싶을 때마다 파서 먹는 거지.’

‘왜 땅속에 넣는데?’

‘그래야 진짜 보물이니까. 보물은 땅에 묻는 거라고.’

‘오늘 들은 건데, 서쪽에는 사탕이 자라는 나무가 있데. 나무껍질은 베이컨이고.’

‘진짜?’

‘그래, 내가 들었어.’

‘서쪽이라니까. 난 그 이야기가 듣고 싶다. 붉은 피부의 야만인들과 싸워 탐험하는 탐험가 이야기. 웬디는 뭐 듣고 싶은 거 없어?’

‘글쎄? 인어나, 유니콘 이야기?’

망상에 가까운 헛소리의 향연. 그럼에도 팬과 친구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들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거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기에.

꿈꾸는 건 죄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팬과 친구들은 아이 특유의 상상력을 펼치며 이야기를 나눴고, 종국에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버랜드라는 섬을 만들었다.

섬 곳곳에 초콜릿 금화가 묻혀 있고, 나무에서는 사탕이 자라고, 나무껍질은 베이컨이며, 요정과 유니콘, 인어가 살며, 매일 홍인들과 싸워 승리하는. 무엇보다 어른은 단 한 명도 없는 자신들만의 작은 무형의 세상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였지만, 어느새 다들 있지 않을까 라고 믿기 시작했다.

모두 아이였고, 그래야만 힘든 현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모두 약속했다.

언젠가 네버랜드를 찾아 다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당연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지만.

처음 시작은 커비였다. 그 녀석은 어느 날 굴뚝 청소를 하던 중 끼여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다음은 슬라이틀리. 똑똑하지만, 몸이 마른 녀석은 어느 날 기침을 하더니 피를 토했고,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닙스는 청소 도중 누군가 실수로 붙인 불에 불타 죽었고.

쌍둥이들은 눈이 멀어 굴뚝 청소부의 손에 이끌려 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으며.

투틀즈는 피부가 흉하게 일그러지며 죽고 말았다.

웬디는······.

‘······아아아악!! 싫어요! 하지 마세요! 제발······! 꺄악······!!’

······그리고 어느새 팬의 차례가 찾아왔다.

고환에선 알 수 없는 멍울이 잡히고, 복통과 요통, 두통이 엄습해왔다.

팬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졌고, 새로 들어온 아이들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그렇게 살아있는 시체로 구석에 누워있던 어느 날 팬은 어머니가 했던 헛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이 세상은 잘못됐단다. 아들아······. 매일 아이들을 납치해 죽이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아. 모른 척할 뿐이지.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왕족이던 우리가······. 이 세상은 미쳤어. 죄악으로 가득 찼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봤거든. 째깍째깍 때가 오면 왕자가 나타나 이 잘못된 세상을 벌할 거야. 그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는 왕자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거야!!’

이에 팬은 답했다.

‘그만해 미친년아! 왕자는 무슨 왕자야!! 헛소리 그만해!’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는 죽었다.

끝까지 헛소리하며.

당시 팬은 어머니가 증오스러웠다. 어미 노릇도 하지 않고 알 수 없는 헛소리만 하다 죽은 게.

그러나 팬은 이젠 조금 알 것 같았다. 왜 어머니가 헛소리만 했는지.

이 원망스러운 세상을 벌할 왕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거였다.

지금의 팬처럼.

그때,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헛소리가 아니라고. 네 어머니는 정말 왕족이고, 팬은 왕자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혼탁해지는 와중 팬이 되물었다.

‘······정말?’

[그럼. 넌 왕자야.]

‘······내가 엄마가 말한 왕자인 거야? 세상을 벌할?’

[아아, 물론. 내 이름 ----을 걸고 약속할게. 넌 왕자가 될 거야. 새하얀 빛을 받는 왕자가 될 거야. 그때까지 약간 도와줄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팬의 그림자는 스스로 일어나 하인처럼 인사했고, 팬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눈 괴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촤악!!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어둠의 바닷속에 있던 팬에게 빛이 비쳤다.

팬을 집어삼킨 그림자가 찢어져 밖으로 나온 것.

제인에게 걸었던 술식이었는데, 웃기게도 팬 역시 그것에 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기억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팬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칠성장어의 아가리로 변한 네버랜드와 그 네버랜드에 반쯤 몸이 동화된 자신.

그리고 주변을 하얗게 물들이는 새하얀 화염과 그 화염에도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현실성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흑과 백의 조화.

그 중심부에는 어딘가 필사적인 데이브가 있었다.

하아······. 하아······.

백염(白炎)에 팬의 시야가 점점 멀어져 데이브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단 하나, 칠성장어의 아가리로 변한 네버랜드와 데이브의 백염(白炎)과 그림자가 싸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강렬한 백염(白炎)은 괴물의 아가리로 변한 네버랜드를 계속해 불태웠으며, 그림자는 자의식을 가진 듯 사방으로 거대한 촉수를 휘둘러 약해진 네버랜드는 한 조각씩 먹어 치웠다.

네버랜드는 먹히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 쳤고.

웃기지도 않은 농담과 같은 광경이었다. 괴물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니.

어쩌면 아직 그림자 안에서 못 벗어난 걸지도 몰랐다.

‘그래······. 그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게······.’

팬이 새하얀 화염에 눈이 멀어져 가는 와중 한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팬이 바라보는 것은 데이브. 정확히는 데이브 등 뒤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밤바다와 같은 어둠 속에 웅크린 거대한 무언가로,

그것은 태아와 같은 불안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네버랜드마저 주저앉힐 정도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리와 팔을 모은 채 웅크린 모습은 아이 같은 느낌마저 났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큰 불길함과 거부감을 자아냈다.

움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별거 아닌 듯한 몸동작이었으나, 팬은 그 동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크리처에게 잡아 먹힌 이 순간조차 팬의 심장은 요동쳤다.

쿵!

그것은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쿵!!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쿵!!!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쿵!!!!

자신을 바라봤다.

쿵!!!!!

바라봤다.

쿵!!!!!!

봤다.

쿵!!!!!!!

······.

마치 영원과도 같이 길고, 찰나와 같이 짧은 시간.

올리버의 등 뒤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고개를 들었고, 그것과 팬은 눈을 마주쳤다.

눈이 멀었음에도 팬은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알 수 있었다.

팬 자신은······. 팬을 낳은 어머니와 팬의 친구들. 그리고 팬의 손에 희생된 아이들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 것임을.

저 무언가의 양분이 되기 위해 그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딘 것임을.

그 잔혹한 진실에 팬은 울 수조차 없는 진정한 절망을 맛봤고.

그대로 다가오는 그림자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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