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1. 모든 걸 삼키는 괴물 (6)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레비아탄이 거대한 몸을 뒤틀자 바다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며 거대한 해일이 발생했다.
흡사, 악마의 아가리.
레비아탄과 공방을 주고받던 바다 거인들은 삼지창을 꼬나들어 해일을 파괴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크기 차를 이기지 못하고 넷 중 세 채가 해일에 휩쓸려 무너지고 말았다.
그나마 버틴 한 채의 바다 거인.
그러나 안도하기 무섭게 해일 속에 숨어 있던 레비아탄이 수면 밖으로 나와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콰과과광!!!
레비아탄이 아가리를 다물자 대지가 부서지는 굉음이 울리며 남은 바다 거인조차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지각 변동처럼 요동치는 바다, 그 바다 위를 덮은 허연 물거품, 이 모든 것을 만든 바다 괴물을 보며 한 남자가 소리 냈다.
“호오······.”
공포가 아닌 흥미롭다는 반응.
커허허허허허허허헝······!!
레비아탄은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사나운 울음소리를 내곤 거대한 열두 개의 용오름을 생성했다.
1시 방향에서 12시 방향까지 멀린을 포위해 덮쳐오는 용오름.
용오름 하나하나가 수십 개의 전함도 부숴버릴 정도로 거대했으나, 멀린은 한 손에 책을 든 자세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번쩍.
열두 개의 용오름이 멀린에게 닿으려는 찰나 하늘 위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짧은 시간.
뒤늦게 울리는 천둥소리 덕분에 간신히 벼락이 내리친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치 열세 개의 번개가.
쏴아아아아아아아!!
번개에 요격당한 용오름은 허공에서 붕괴. 비가 되어 바다 위로 떨어졌고, 레비아탄에 기생하는 그림자-크리처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용오름을 박살 낸 열세 개의 번개 중 하나가 레비아탄의 미간 사이에 적중한 것으로.
미간 사이에 들러붙어 있던 그림자-크리처는 충격 탓인지 그 기운이 쇠약해졌고, 그 사이 몸의 통제권을 다시 획득한 레비아탄은 멀린을 향해 도약해 다시 한번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옳은 판단이었다. 몸의 통제권을 획득했다 하더라도 멀린은 보내줄 생각이 없었으니 덤비는 게 나았다.
신의 손에 의해 태어나지도 못한 불쌍한 생명체지만 아주 똑똑했다.
“그래 봤자- 음?”
마력을 손에 집중해 거대하고 두꺼운 방벽을 만들어 레비아탄을 후려치려던 멀린이 멈칫했다.
레비아탄의 아가리 속에 대량의 바닷물이 머금어져 있는 것.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레비아탄은 입속에 든 바닷물에 통제권을 행사.
수만 개의 물의 칼날을 날려 멀린이 전개한 실드를 깎아내며 아가리를 닫았다.
수만 개의 물의 칼날에 넝마가 된 실드는 산산이 조각났고, 실드 너머 있던 멀린도 레비아탄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꽤 괜찮은 속임수였어.”
레비아탄의 아가리에 들어간 멀린의 목소리가 하늘 위에서 울렸다.
당황한 레비아탄은 세로 동공을 움직였고, 곧 더 높은 하늘 위에 서 있는 멀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비아탄이 삼킨 것은 다름 아닌 멀린이 만든 분신체로, 레비아탄은 눈앞의 본체를 향해 다시 이빨을 드러냈으나 중요한 건 본체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건 멀린의 분신체와 그 분신체에 깃든 마력량이었다.
왜냐면 분신체에 깃든 마력량은 레비아탄도 속을 만큼 그 양이 엄청났기에.
단순히 속이기 위한 것치고는 마력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속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내 솜씨가 더 좋지만······. [빅뱅(Big Bang)]”
멀린이 영창하자 레비아탄의 뱃속으로 들어간 분신체가 폭발하며 레비아탄의 내장과 뱃가죽을 터트렸다.
작은 대륙과도 맞먹는 레비아탄의 배가 터지는 광경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진풍경.
레비아탄은 바다 위로 추락하며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었고, 멀린은 솟아오른 물기둥을 이용해 바다 거인을 재창조해 레비아탄과 레비아탄을 조종하는 그림자를 없애버리려 했다.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영 찜찜했기 때문.
“······응?!”
바다 거인을 움직여 완전히 끝장내려는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시종일관 차분하던 멀린이 고개를 홱 돌릴 만큼.
이 느낌은······.
촤하하하하하하하학!!!
멀린이 시선을 돌리자마자 달군 쇳덩어리가 물속에 들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다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강력한 독기(毒氣)를 머금은 수증기가 하늘 위로 치솟아 멀린의 시야를 가렸고,
멀린은 대기를 조종, 거대한 수증기를 자신의 손에 모은 다음 으깨 소멸시켜버렸다.
덕분에 시야가 확보됐고, 멀린은 장작처럼 온몸이 불타는 레비아탄과 그 레비아탄이 내뿜는 열기에 실시간으로 증발하는 바다, 소멸하는 바다 거인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이 정도로 축복을 나눠준 건가?”
멀린이 놀란 듯 레비아탄, 정확히는 레비아탄의 미간 사이에 자리 잡은 그림자-크리처를 보며 중얼거렸다.
불타버린 자의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멀린은 목덜미가 섬뜩해졌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침묵하던 악마가 이런 축복을 준 건지, 왜 이렇게까지 개입한 건지, 그 저의가 의심됐다.
‘설마······.’
안 좋은 예감은 늘 들어맞는 법.
레비아탄의 미간 사이에 기생해 조종하던 그림자-크리처는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일어나 허공에 검붉은 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멀린은 이를 놓치지 않고 종이를 찢어 날렸으나,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온몸이 장작처럼 불타는 레비아탄이 내뿜는 화염에 재로 변했다.
멀린의 종이를 불태운 화염은 바다 위로 떨어지며 폭발했고, 삽시간에 주변 일대를 불길로 뒤덮었다.
지옥의 불바다가 강림한 듯한 풍경.
끔찍한 열기가 바다를 가득 채우며, 거대한 화염의 용오름이 수십 개 일어나는 동시에 화염의 해일이 레비아탄과 함께 멀린을 사방에서 덮쳐왔다.
열기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젊음으로 혈기를 되찾은 멀린이 익숙한 절망감에 욕지거리를 뱉었다.
“빌어먹을······. 막을 수 없는 건가?”
***
“후우······.”
울창한 숲. 인육 요리사의 비밀 금고.
그곳에서 찾은 인육 요리사의 감정으로 만든 필거렛을 피우며 올리버가 앞으로 나왔다.
필거렛을 입에 물고 들이키자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감정과 기억을 느낄 수 있었다.
신대륙에서 필거렛을 피웠을 때와 마리와 처음 재회했을 때와 비슷했다.
올리버는 감정을 흡입함으로써, 해당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뿐 아니라, 감정에 깃든 기억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인육 요리사가 어린 시절 얼마나 가난했는지.
부모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았을 때 얼마나 큰 무력감과 굴욕감을 느꼈는지.
구원자인 줄 알았던 여성이 사실 식인으로 생과 젊음을 유지하는 마녀란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그 와중 잊고 있던 여동생이 자신을 구해줬을 때, 얼마나 스스로가 못났는지 등을 말이다.
아름다운 빛이 아닌지라 올리버의 감정을 크게 요동치게 하지는 못했지만, 올리버는 필거렛을 피움으로써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왜 인육 요리사가 그토록 부와 힘을 갈망했는지,
왜 인육 요리사가 사랑하던 바토리마저 배신했는지,
왜 인육 요리사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여동생을 구하려 한 건지.
그건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속죄 그리고 진정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이러니했다.
갈로스의 뒷세계를 양분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가 이런 감정을 품는다는 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으나, 새삼 아이러니했다.
뭐랄까 사람은 참으로 모순적이고 복잡한 존재인 거 같았다.
“······.”
아름다운 빛은 아니었기에 올리버는 곧 정신을 차리며 현실로 돌아왔다.
주변은 침묵이 점거한 상태로, 정면에 있는 팬과 크리처. 뒤에 있는 제인와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올리버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바라보듯.
“······.”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기에 올리버는 살짝 뒤를 돌아 제인에게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챙기라고.
다행히 눈치 빠른 제인은 올리버의 뜻을 알아차리곤 조용히 아이들을 모았다.
팬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따라주지 않았지만.
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너희들을 위한 섬을 기껏 만들어줬더니만, 설마, 배신하고 도망칠 셈이야?”
그 말에 가뜩이나 굳어 있던 아이들이 더욱 굳고 말았다.
제인의 손길에 따라 간신히 움직이던 다리마저 멈출 정도로.
단순히 무서워 이러는 게 아니었다. 죄책감을 자극하는 팬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관심도 받지 못하던 너희를 바로 내가 데려왔다. 너희들에게 새 이름을 줬고, 너희들에게 기회를 줬다. 또, 너희들이 그 누구보다 즐겁게 지낼 곳도 마련해 줬다. 근데, 이제 와 날 떠나려는 거냐? 얌전히 있겠다 약속해 놓고.”
팬의 아이들과 잊혀진 아이들 모두 덜덜 떨었다.
팬에 대한 공포심과 죄책감에 기인해.
팬이 무서운 건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긍정적인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뭐가 됐건,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던 고아들을 거둬준 건 팬이기도 했으니, 이용하려는 거긴 했지만, 아이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올리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계기가 뭐건 도움은 도움이었으니.
“이제 와 날 배신해 떠나려 하다니, 마치 너희를 버린-”
“-팬 님.”
아이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팬에게 올리버가 다시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대화는 저와 나눠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필거렛을 마저 피우며 말했다.
그 모습에 팬의 등 뒤에 있던 뒤틀린 크리처들이 으르릉댔고, 올리버의 등 뒤에 있는 세 구의 송장인형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팬이 올리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감정에선 약간의 긴장과 기대감 그리고 각오가 엿보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팬 님께서 절 여기 초대하셨으니까요.”
올리버가 제인을 납치한 일을 언급했다. 팬은 납득했다.
“오······. 그거 말 되네. 근데, 옆구리 괜찮아? 엄청 아플 텐데.”
팬이 제인에게 찔린 왼쪽 옆구리를 가리켰다.
욱씬.
그의 말대로 올리버의 옆구리는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통해 상처를 봉합해 겉보기에는 괜찮았지만, 그림자에 깃든 불타버린 자의 힘 탓인지 칼에 찔린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인이 신경 쓸까 봐 일부러 참은 거였다.
‘뭐, 참을만한 것도 있지만.’
웃기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옆구리에 칼이 박힌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무슨 조화인지 오른팔에 작열통과 없어지지 않는 허기 탓에 제법 견딜만했다.
아슬아슬하게 고통이 분산된다고 할까?
덕분에 전보다 격하게 움직이긴 힘들어도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데이브······.”
올리버의 옆구리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사실에 제인이 멈칫했다.
팬이 노린 게 이거였다.
“제인 아가씨.”
올리버는 제인을 부르며 다시 한번 그녀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제인이 할 일이 뭔지. 제인은 눈을 꾸욱 감더니 다시 아이들을 달래며 움직였다.
제인이 움직이자, 올리버도 자기 일을 했다.
“팬 님 이야긴 들었습니다.”
“음?”
“아이들을 위해 네버랜드를 만들고, 아이들을 데려오셨다고요?”
“······뭐 그렇지.”
“그럼, 뻔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만 보내주시는 게 어떨까요? 정녕 이분들을 위한 거라면 그게 좋을 것 같은데요.”
“너······. 진짜 뻔뻔하네.”
“절 초대한 건 팬 님이시니, 감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올리버가 과거와 다르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올리버의 목소리와 등은 아이들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했고, 팬의 등장에 뻣뻣하게 굳은 아이 중 몇몇이 점차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 모습을 포착한 팬이 시험하듯 물었다.
“정말 여길 떠나길 원하는 거야?”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제인 곁으로 한 걸음씩 움직일 뿐.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좋아, 마음대로 해······. 가버리라고! 돌아가서 어른이 되어버려! 하지만 경고하겠어! 한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 절대로!”
경고를 빙자한 협박. 그러나 아이들은 더 이상 주춤거리지 않고 제인의 곁에 모였다.
“아, 맞다! 가기 전에.”
“······?”
“내가 준 선물은 돌려줘야지!”
팬이 말이 끝마치자마자 팬의 아이들이 지니고 있던 무기인 몽둥이, 나무총, 장난감 칼, 바람총, 새총이 번쩍이더니, 무기를 소유한 아이들의 몸에 뿌리 박혀 산 채로 잡아먹으려 했다.
가만 보니 아이들이 무기를 소유한 게 아닌, 무기가 아이들을 소유한 거였다.
어쩐지 따로 교육받지 않은 것 같음에도 상당한 흑마법을 사용하더라니.
촤악!
무기가 팬의 아이들을 집어삼켜 숙주로 삼으려던 찰나, 상황을 파악한 올리버가 몸을 돌려, 붕대를 두른 오른손을 이용해 해당 무기를 뜯어냈다.
놀랍게도 강제적으로 뜯었음에도 뿌리가 내린 아이들의 몸은 무사했다.
그 광경에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올리버는 그 시선을 외면한 채 팬에게 무기를 돌려주려 하였으나, 몸을 다시 돌려 팬을 바라보기도 전에 수백 마리의 뒤틀린 크리처 떼가 일제히 이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그 감정을 미리 읽은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그림자에서 마지막 송장인형을 꺼냈다.
송장인형-셰이머스.
“메에에에에에에에······!”
차일드-써드(Third)는 셰이머스가 나오자마자 그 안으로 들어갔고, 셰이머스의 머리는 염소의 그것으로 변했다.
단숨에 힘을 끌어 올린 증거.
염소 머리가 된 셰이머스는 품 안에서 가시덩굴을 꺼내 땅에 박아 대량의 자연의 힘을 투여했고,
가시덩굴은 눈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카가가가각!!
스거거겅! 스겅!!
콰직! 콰지직! 꽈직!!
팬은 크리처들은 갑작스러운 가시덩굴에 당황하긴커녕 맹공을 퍼부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파괴했다.
기껏해야 발을 묶은 수준.
이대로라면 수백 마리나 되는 크리처 떼를 상대해야 했다.
올리버의 힘이라면 본인은 괜찮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는데, 제인이 이에 관해 묻자 올리버가 괜찮다고 답했다.
“포스(Fourth)”
올리버의 부름에 인육 요리사에 들어간 포스는 몸을 웅크리더니 다시 한번 용으로 변신했다.
옷을 찢으며 나온 날렵하면서도 거대한 몸체에 아이들은 물론 제인마저 입을 벌리며 경탄했고, 올리버는 세컨드도 불러 전방에 화력을 퍼부을 것을 지시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자마자 가시덩굴 성벽이 무너지며 수백 마리의 크리처가 나타났고, 동시에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의 화염과 듀란스의 총탄 세례가 전방을 향해 쏟아졌다.
화염과 총탄의 하모니는 전방을 향해 뻗어가 크리처는 물론 크리처의 주인인 팬마저 휩쓸어버렸다.
퐈화화화화화화화화하하하아악━━━!!!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수백 마리의 크리처를 단숨에 재로 만드는 위력에 모두가 경악하는 그때, 올리버는 제인을 불렀다.
“제인 아가씨. 모두를 데리고 인육 요리사님 등 뒤로 올라타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요.”
“예?”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요.”
제인이 뭐라 채 대답하기 전에 셰이머스가 콩 줄기를 여러 갈래 만들어, 제인과 아이들을 묶어 인육 요리사 위에 올라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랐으나, 상황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왜냐면-
“-고작 이 정도냐?!!”
인육 요리사의 화염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단숨에 꺼졌다.
앞을 보자 화상을 입은 그림자와 그 등 뒤에 멀쩡히 서 있는 팬이 보였다.
“······!”
그 모습에 제인과 아이들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용의 화염이었으니.
그러나 차일드들은 묵묵히 제 일을 할 뿐이었다.
콩 줄기로 아이들을 태운 셰이머스는 이번엔 포도 덩굴을 꺼내 구 형태로 성장시켜 아이들을 보호할 보호막을 만들었고, 듀란스도 그 안에 들어가 방어막을 전개했다.
어설프게나마 하나로 합쳐지는 마력과 자연의 힘.
보호막은 인육 요리사의 몸에 고정되자마자, 인육 요리사는 땅을 박차 날아오르려 하였는데, 바로 그때 땅이 진동했다.
팬의 그림자가 땅에 손을 박은 것으로, 스페이드 모양의 네버랜드가 꿈틀거리더니, 해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꽃잎이 솟아올라 꽃봉오리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척 봐도 그냥 뚫을 수 없는 수준.
타아악······!
뭘 해보기도 전에 하늘이 닫혔고, 빛이 차단된 네버랜드는 완벽한 암실(暗室)이 되었다.
신대륙에서 본 광산 내부와 비슷했다. 불타버린 자가 소환된 그곳과.
팍!
떠오르기 무섭게 성냥이 불타오르는 소리가 퍼지며,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네버랜드에 빛이 생겼다.
팬의 그림자가 불타오른 것으로, 불타버린 자가 소환됐을 때와 아주 비슷했다.
“설마, 내가 거기서 아무것도 못 얻었다고 생각했나?!”
“퍼스트.”
“나 역시 그곳에서 악마의 축복을 받았어. 나도 받았다고!!”
올리버는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를 냈다.
“그 힘으로 레비아탄을 조종하고, 널 한번 이겼지! 너만 선택받은 게 아니야! 너만 특별한 게 아니라 이 말이야!!”
올리버는 상처를 통해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양손을 모은 퍼스트 위로 자기 피를 한 방울 떨어트려 줬다.
흡사, 왕이 신하에게 상을 하사하는 모습.
“여기서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어! 할 수 있다면 빠져나가 봐!”
“알겠습니다.”
팬의 외침에 올리버가 대답했고, 불타오르는 그림자를 광원(光源) 삼아, 자신의 그림자에서 피 풍선을 다수 꺼냈다.
퍼스트는 피 풍선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둘러 터트린 뒤 안에 든 대량의 혈액에 통제권을 행사. 허공에서 회전시켜 올리버와 피와 한데 섞었다.
“그으으으으······!”
올리버의 혈액을 섞는 게 쉽지 않은지 퍼스트는 신음을 냈으나, 올리버가 힘내라고 어깨를 두들기자 곧 하나로 섞는 데 성공.
그 상태로 바토리는 하늘로 날아올라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의 머리 위에 착지. 대량의 혈액을 인육 요리사의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얇게 코팅했다.
핏빛으로 물드는 인육 요리사는 그 상태로 생명력과 마력, 감정을 끌어올리며 바토리와 함께 영창했다.
[혈룡(血龍)]
피를 매개로 생명력과 마력, 감정이 동시에 발화.
주변의 어둠을 지우는 강렬한 폭발과 함께 인육 요리사는 불타올랐다.
팬의 그림자가 내뿜는 화염을 압도하는 수준.
인육 요리사와 인육 요리사 머리 위에 올라탄 바토리는 올리버를 바라봤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부탁을 들은 바토리와 인육 요리사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바닥에 붙이더니, 강렬한 화염을 일으키며 단숨에 하늘 위로 솟아올라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었다.
제인이 소리쳤다,
“데이브······!!”
그러거나 말거나 불기둥은 그 상태로 날아올라 하늘 위를 덮은 꽃봉오리와 충돌. 거대한 구멍을 만들며 밖으로 탈출했다.
구멍으로 인해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오며 올리버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올리버가 다 피운 필거렛을 품 안에 넣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진짜 대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