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90화 (590/633)

590. 모든 걸 삼키는 괴물 (5)

우연인지 제인과 올리버의 목표는 일치했다.

네버랜드(Neverland)에 갇힌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

각자의 이유는 다를 터였으나, 크게 상관치 않았다.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닌, 행한다는 것 그 자체였으니.

올리버는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사용해, 단검에 찔린 상처를 응급처치한 후.

“······.”

레드후드의 늑대 크리처를 흉내 낸 [미믹-울프(Mimic-Wolf)]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타, 송장인형-인육 요리사와 바토리, 듀란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다.

이동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이 제인은 섬의 지리를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해 현재 위치와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이야기해줬기에.

올리버는 제인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이동 지시만 내리면 됐다.

올리버로서는 상상도 못 할 재주였다.

그러나 제인의 재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리뿐 아니라, 각 길목의 위험과 특성에 관해서도 꿰뚫고 있었다.

“아, 여긴 홍인(紅人)-크리처의 앞마당이에요. 홍인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함정도-”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제인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장인형-듀란스가 수상쩍은 곳을 향해 총탄을 난사. 함정과 크리처가 숨어 있는 엄폐물을 파괴했다.

절그럭! 쿵!

“캬하하하학!!”

끼이이익······탕!

“아와와와와와와와-!!!”

총탄을 맞은 함정들은 허공을 향해 작동했고,

엄폐물이 파괴되자 그 뒤에 숨어 있던 각종 크리처가 튀어나와 고함을 질렀다.

문제는 없었다.

이미, 인육 요리사에 들어간 포스가 먼저 움직였으니.

포스는 전투 중 인육 요리사의 몸에 익숙해진 건지, 매끄러워진 움직임으로 단숨에 땅을 박차,

탁.

숨어 있던 크리처 떼 가운데 들어가 몸 안에 깃든 대량의 감정을 폭발. 수십 개의 거대한 참격을 사방으로 퍼트려 단숨에 크리처들을 토막 냈다.

얼핏 투박해 보이지만 그만큼 위력적이었는데.

순식간에 쓸려나간 크리처가 이를 말해주었다.

‘인육 요리사 님이 어떻게 갈로스 뒷세계를 좌지우지했는지 알겠네.’

올리버는 새삼 인육 요리사의 힘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대인전에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자신보다 약한 다수에겐 더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었다.

질병계열 흑마법의 특성과 몸에서 뿜어대는 강력한 참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인육 요리사는 참격에 토막 나 소멸하는 크리처들의 잔해를 빨아들여 자신의 양분으로 삼았다.

커다란 데미지를 입은 탓에 손실이 컸지만, 인육 요리사는 아까 전 사용한 에너지 이상을 보충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갈로스에서 일대일로 싸운 게 행운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수의 적에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질병계열과 폭력적인 추출 능력까지 있었다면 더 큰 힘을 발휘했을 테니.

‘그런 특성을 가졌음에도 그러지 않은 건······.’

올리버가 잠시 딴생각에 빠질 뻔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현실에 집중. 주변을 둘러보았다.

송장인형-듀란스는 필요한 상황 때마다 총의 종류를 바꿔, 원거리에 있는 크리처를 저격하는 동시에 함정과 엄폐물을 파괴했고,

인육 요리사는 듀란스의 빈 부분을 채워줘 근접한 크리처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대부분 한 호흡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송장인형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한 명은 로큘리 대학의 학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이었으니.

‘거기다 퍼스트는 아직 움직이지도 않고 있지. 여유가 있다는 뜻.’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한 올리버는 제인에게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인 아가씨.”

“아······! 네!”

송장인형의 위력에 잠시 넋을 놓은 제인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늑대-크리처 위에 올라타 빠르게 이동 중인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차분히 이야기해줬다.

급한 이야긴 아니었다.

그저 제인이 네버랜드에 머물며 알게 된 거였다.

네버랜드의 특성이라든가, 웬디의 역할이라든가, 팬의 아이들이라든가, 그 아이 중 결번이 나면 빈자리를 채우는 잊혀진 아이들이라든가, 그 잊혀진 아이들을 가두는 잊혀진 창고라든가, 또, 그 잊혀진 창고에서 찾게 된 일기라든가.

“······그 일기가 팬 님의 것이라고요?”

일기 내용을 대충 들은 올리버가 물었다.

“제 생각에는요. 그 창고를 비롯한 이 섬 전체가 팬의 것이니, 일기 역시 팬의 것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요?”

단순하지만, 예리한 추측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올리버가 듣기에도 그랬다.

“음······.”

“제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거라면 죄송해요.”

“아뇨, 제가 부탁드린 건데요. 그리고 도움도 됐으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덕분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뭘 정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제인은 묻지 않았다.

때마침, 거대한 나무-크리처가 앞을 막아섰기 때문.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엒!!!!!

사람 형태의 포댓자루가 무수히 매달린 나무.

그 나무들이 한데 뒤엉켜 거대한 성벽처럼 올리버 일행을 가로막았다.

참고로, 성벽처럼이란 표현은 비유가 아닌 있는 그대로로, 나무-크리처는 크기뿐 아니라 생김새 역시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나뭇가지에 목이 매달린 사람들의 원념이 깃들기라도 한 듯.

그아아아아앗!!

우직! 우직! 우지직!!

쿠오오오오오······!

쩌저저적······. 쩌저적······.

킥킥킥킥킥킥킥킥!!

파직······. 파지지직······!

나무에 돋아난 수십 개의 얼굴에서 끔찍한 울음이 새어 나왔다.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

올리버는 팬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포스······.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올리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인육 요리사에게 들어간 포스는 한쪽 다리를 뒤로 빼더니, 힘을 집중했다.

힘을 집중한 다리를 중심으로 공기가 일그러지듯 압축하더니.

콰앙!!

그대로 허공을 차버렸다.

마법도 흑마법도 섞지 않은 순수한 발차기.

그러나 그 발차기만으로 풍압이 발생하며, 눈앞의 거대한 나무-크리처를 산산조각 났다.

두 눈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올리버가 말했다.

“이제 다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인육 요리사의 압도적인 힘을 본 탓인지, 나무-크리처를 쓰러트린 뒤로는 크리처의 등장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올리버와 제인은 그 틈을 타, 목 매달린 숲 중심부에 있는 팬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제인이 말하길 팬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무조건 들려야 하는 곳.

팬을 만나면 만나는 대로, 안 만나면 안 만나는 대로 올리버는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대한 나무의 속을 파낸 듯한 팬의 아지트에는 팬은 없었다. 대신.

“적이다! 적!”

“비상사태! 비상사태!”

“삐상! 삐상!!”

몽둥이, 나무총, 장난감 칼, 바람총, 새총으로 무장한 적대적인 아이들이 있었다.

커비, 슬라이틀리, 닙스, 쌍둥이, 투틀즈로, 해당 아이들 모두 홍인의 전투 화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 팬의 직속 부하들인 팬의 아이들로, 올리버는 그중 커비와 슬라이틀리, 투틀즈의 얼굴은 알았다.

짧긴 했지만, 각각 갈로스와 신대륙에서 한 번씩 봤으니.

다만, 닙스와 쌍둥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쌍둥이 중 하나는 제가 이곳에 왔을 때 바로 죽여, 새로운 아이로 대체했어요.’

올리버는 크리처의 발에 산 채로 짓밟혀 죽었다던 쌍둥이 중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올리버를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며, 있는 적개심 없는 적개심을 끌어올린 것과 관련 있을지 몰랐다.

팬의 아이들이 올리버에게 내뿜는 적개심은 정말 싫다기보다는, 두려움에 떠밀려 생긴 적개심이었으니.

허나, 뭐가 됐건 적개심은 적개심.

얼굴에 전투 화장을 한 아이들은 장난감처럼 보이나, 강력한 흑마법이 깃든 무기를 올리버에게 겨눴다.

몽둥이와 장난감 칼을 든 커비와 닙스는 양쪽에서 달려들었고,

나무총, 바람총, 새총으로 무장한 슬라이틀리, 쌍둥이, 투틀즈는 정면에서 투사체를 쏘려 했다.

제법 능숙한 공격. 올리버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그만!”

제인의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일제히 아이들이 멈췄다.

“웨, 웬디?”

“왜 그래?!”

“맞아! 비켜! 혼내줄 거야!”

“응! 응!”

두려움과 두려움에 기인한 적개심 탓에 제인을 뒤늦게 알아본 아이들은 다급히 소리쳤다.

제인을 향한 걱정과 두려움.

아이들은 제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데이브 씨는 내가 초대한 손님이야. 그러면 안 돼.”

단호한 제인의 말에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 손님?”

“그래. 손님.”

“하, 하지만! 어른이잖아?!!”

여우 망토를 두른 슬라이틀리가 소리쳤다.

“네버랜드에 어른은 있어선 안 돼! 팬이 화낸다고!”

“애들아. 나도 어른이야.”

아이들의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제인은 어른이었다. 보통의 웬디보다 나이가 많은.

후크도 제인의 나이를 들었을 때, 이례적이다고 했다.

보통 웬디는 숙녀보다는 소녀들이 끌려간다며.

“그리고 모든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되지.”

제인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갔다.

단순히 싫은 걸 넘어, 두려워하고 있었다.

네버랜드에서 이 당연한 사실은 죽음이었으니.

제인은 뒤돌아보며 올리버에게 시간이 달라 양해를 구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대답을 들은 제인이 다시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맞췄다.

“······데이브는 적이 아니야. 내 친구지.”

“친구······?”

“그래. 친구.”

“······하, 하지만 대장이 말하길 제인을 훔치러 왔다고 했단 말이야! 아닌 거야?”

“아니, 맞아. 날 여기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와주셨거든.”

그 말에 아이들은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이 커졌다.

“시러! 시러! 웨디! 가지 마!!”

가장 나이가 어린 투틀즈가 제인의 품에 뛰어들어 외쳤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들 같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같은 게 아니었다.

팬의 아이들은 정말 고아들이었으니.

후크처럼 고아가 아닌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후크의 말에 따르면 그건 극소수. 대부분 고아라 했다.

팬의 아이들 외에, 잊혀진 아이들과 네버랜드의 재료가 된 아이들도 모두 고아였다.

그만큼 세상엔 고아가 많았다.

아이들이 제인을 설득했다.

만약, 가면 팬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팬이 화를 낼 거라고, 또, 제인이 혼자 떠나면 자기들이 몹시도 슬플 거라고 울며 말렸다.

제인이 이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을 두고 떠날 생각이 없어.”

“뭐······?”

“너희도 나랑 같이 갈 거야.”

“에엑-!!”

아이들은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네버랜드를 떠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한 것.

‘이상하진 않아.’

후크의 설명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독백했다.

네버랜드는 최소한 겉보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섬이었으니.

각종 군것질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고, 신기한 동물과 적당히 강한 악당들이 있는 꿈과 모험의 섬.

고아들이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곳이었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식충식물처럼.

‘또, 식충식물처럼 무서운 곳이기도 하지.’

올리버의 생각을 대변하듯 아이들은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고개를 저었다.

“마, 말도 안 돼! 우, 우리가 왜!!”

“맞아!”

“네버랜드는 아이들을 위한 섬! 우린 여기 평생 살 거야.”

여우 망토를 두른 슬라이틀리가 소리치며 부정했고, 곰 망토를 두른 커비는 가슴을 내밀며 네버랜드를 찬양했다.

연기하듯 과장된 어조로.

이에 제인이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물론! 팬이 우리를 위해 만든 섬인걸! 아이들을 위한 섬!!”

“팬의 마음에 안 들면 죽을지도 몰라 매일 연기만 해야 하는 이곳이?”

아이들을 관찰해 온 제인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제인이 또다시 물었다.

“설사 팬의 비위를 잘 맞춘다 해도 나이가 차면 죽는 이곳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섬 같아?!”

제인은 그동안 아이들과의 대화와 잊혀진 창고에서 찾은 일기를 토대로 알아낸 끔찍한 진실을 입 밖에 꺼냈다.

참고로, 올리버 역시 알고 있었다.

후크가 알려줬기에.

네버랜드는 아이들을 위한 섬. 당연히 어른은 살 수 없었고, 자연히 어른이 된 아이들도 살 수 없었다.

그 기준이 팬 마음대로라 들쭉날쭉했으나 최소가 12살, 최대도 16살은 넘지 않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커비와 슬라이틀리는 아슬아슬해 보였다.

뭐, 다른 아이들도 기껏해야 몇 년 차이밖에 안 났지만.

문제는 커비와 슬라이틀리도 이 사실을 안다는 거였다.

한두 해만 더 있으면 죽는 걸 앎에도,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린 안 갈 거야!!”

커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콧바람이 섞인 어딘가 우스운 목소리가 아닌,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

슬라이틀리도 울며 동조했다.

“맞아 우린 네버랜드에 살 거야! 네버랜드와 하나가 될 거라고!!”

“바깥세상은 관심 없고, 쓸모없는 어른 따위 되고 싶지도 않아!!”

아이는 네버랜드에 남고자 하는 이유······. 아니,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네버랜드가 위험한 것 이상으로 바깥세상 역시 위험했고, 또, 자신의 가치가 이곳에 묶여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바깥에 가봤자 아무것도 없는걸!”

“맞아, 엄마도 우릴 버렸고! 집도 없어! 고아원도 싫어! 쓸모없는 어른이 되기도 싫어! 그러니 난 네버랜드가 좋아!!”

아이들은 속에 담아둔 두려움을 토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이에 침묵으로 동조했다.

아이들이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네버랜드가 좋다기보다는, 바깥세상이 두려워서였다. 각종 위협과 존재가치의 부재가.

“나랑 똑같네.”

“······뭐?”

“나랑 똑같다고. 나도 엄마가 버렸거든.”

“······.”

“정확히는 팔았지. 돈을 받고······. 사실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어. 돌아갈 집이 사라진 것도 싫고, 내가 지낼 곳도 싫었거든. 매일 하기 싫은 수업을 견뎌야 해······. 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되기 위해.”

아이들과 올리버는 제인을 봤다.

모두 흑마법사였기에, 제인이 진심을 이야기하는 거 알 수 있었다.

어미의 손에 팔린 것도 사실이었고, 지내기 싫은 곳에 있었던 것도 사실, 배우기 싫은 것을 배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배운 이유는.

“그것마저 안 하면 난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될 테니까. 그래서 열심히 배웠어. 또 버림받는 건 무서우니. 그래도 어른이 되기는 또 무서웠어······. 엄마처럼 될까 봐. 난 그게 너무 싫었고. 때때로 네버랜드 같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어·····. 근데, 여기 왔네? 타이밍이 어긋난 것 같지만.”

“······.”

“정말 힘든 시간이 되고 난 어른이 됐어. 재밌는 게 뭔지 아니?”

“······.”

“처음엔 난 내가 싫어하던 어른이 됐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니 더 나은 어른이 됐다는 거야! 놀랍게도 어른이 된 후에도 바뀔 수가 있었어!”

“······대장이 말했어. 대부분의 어른은 그러지 못한다고. 힘만 든다고······. 아니야?”

아이가 물었고, 제인은 진실을 이야기해줬다.

“맞아. 대부분의 어른은 그래. 고생만 죽도록 하고 실망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원하는 어른이 되는 건 정말 힘들고 확률도 낮아.”

“······.”

“하지만······. 어른이 되길 포기한다면 그 낮은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아. 너희는 정말 그러길 원해? 정말 아이인 채로 남고 싶어?”

제인이 자신의 경험과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팬의 아이들. 겉보기엔 그저 네버랜드에서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는 게 전부인 듯했으나,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라면 응당 지니고 있는 꿈을.

공룡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꿈도 있었으나, 중요한 건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정작 이 아이들을 위한 네버랜드에서는 그저 꿈과 환상으로 끝났지만.

참으로 이중적인 단어인 거 같았다. 꿈과 환상이라는 단어는.

억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이 이 섬에 계속 있다면 확실히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바깥은-”

“-내가 도와줄게.”

제인이 약속했다.

“진짜 엄마는 못되겠지만, 너희를 보살펴 줄 거고, 새집도 구해줄게.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줄게. 난 욕심 많은 어른이라 돈이 많거든······. 아이인 채로 죽는 건······. 너무 시시하잖아?”

아이들은 제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싫어서가 아닌 믿기지 않아서.

왜냐면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다들 팬을 따라온 거였다.

공포와 두려움, 포기의 감정이 깃든 아이들의 눈에 이채가 점점 깃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팬이 화낼 텐데?”

이것이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네버랜드가 탄생한 지 대략 30년으로 추정.

그 기간 탈출에 성공한 것은 후크가 유일무이했다. 그마저도 네버랜드를 존속하려고 일부러 풀어준 것.

달리 말하면 그 외에는 모두 탈출에 실패했다는 걸 의미했다.

나이가 차 죽음에 이를 때 도망치지 않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

아마, 목 매달린 숲에 있는 부댓자루 인형은 모두 도망치다 실패한 아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 용도를 다한 아이들.

제인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이건 자신이 약속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을 통해 제인의 뜻을 읽은 올리버가 아이들을 보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평소처럼 노력해본다고 할까?

음······.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너무 무책임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짧지만 긴 침묵이 흘렀고,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팬 님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평소보다 아주 조금 낫지만 그래도 못 미더워하는 아이들. 허나, 제인은 미소 지었다. 정말 기쁘다는 듯이.

“저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분이야. 그러니, 같이 믿어줄래?”

제인의 부탁에 아이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제인이 아이들을 설득한 후, 곧바로 나와 목 매달린 숲 끝자락에 있는 잊혀진 창고로 향했다.

스페이드 모양인 네버랜드의 꼭짓점 가장 끝자락에 있는 그곳을 향해.

도착하자 방치된 듯한 창고가 있었고, 제인은 익숙하게 창고 문을 두들겼다.

끼익······.

제인이 문을 두들기자 안에 있던 잊혀진 아이들이 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이름 그대로 잊혀지고 방치된 듯한 몰골로, 제인은 그 아이들을 보자마자 팬의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네버랜드를 떠나자고 이야기했다.

잊혀진 아이들은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댔다.

마치, 네버랜드와 떠난다는 단어를 결합시키지 못한 듯.

“그, 그래도 괜찮아요······?”

아이 중 하나가 믿기지 않는 듯이 말했다.

우리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소처럼.

제인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당연히-”

“-안 괜찮지.”

제인이 아이들을 거의 설득하려던 찰나, 아이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난폭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울린 방향을 바라보자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팬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로 수많은 크리처가 있었다.

장난감 병정, 졸리 침프, 망태기 할아버지, 호두까기 인형, 부기맨, 거대한 곰 인형, 광대, 병아리 군인, 닭 장군, 웬디고, 땅을 기는 인어, 물고기 인간 등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마치 신대륙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 팬의 크리처는 동심을 떠올리게 한다면, 지금은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었다.

팬의 마음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인지 크리처의 형태가 크게 뒤틀어졌다.

그런 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아이들이 모두 흠칫하며, 잊혀진 아이들은 도로 창고로 들어갔고, 팬의 아이들은 굳어 버렸다.

모두 이를 딱딱 부딪치는 그때, 올리버가 필거렛을 하나 꺼내 입에 물며 송장인형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팬 님.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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