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 모든 걸 삼키는 괴물 (2)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개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부정.
두 번째는 분노.
세 번째는 협상.
네 번째는 우울.
다섯 번째는 수용.
재밌는 사실은 이 단계가 꼭 죽음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죽음 외에도 소송, 연인과의 이별, 예기치 못한 사고, 사업의 실패, 출생의 비밀 등. 삶을 살아가는 크나큰 고난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곤 했다.
‘지금 올리버는 세 번째 단계겠지······. 협상.’
바다 한가운데 부유한 멀린이 턱을 시작으로 얼굴, 머리까지 쓸어 넘기며 생각했다.
부정하던 사실은 인지하나, 이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미루고, 피하고자 노력하는 단계.
아마, 멀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정말, 바다 괴물을 상대하기 어려워 도움을 요청한 건가?’
‘······예, 많이 어렵고 무섭네요.’
어떻게든 예언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만 한다면 자신의 운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리석지만, 필사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었다.
멀린은 올리버가 그 단계에 들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이 있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선대 아카이브에게서 천년의 지식을 전수받았음에도 말이다.
“허허······.”
그르르르르르르르르······!!
멀린이 자신의 무지와 무능력에 자조할 때, 거대한 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바다 괴물의 울음소리.
그 소리가 어찌나 거대한지, 마력의 통제를 받는 바다 표면이 공명해 사방으로 물방울을 튀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비현실적인 성량.
그러나 멀린은 담담히 사과할 뿐이었다.
“아······. 사과하겠네. 도롱뇽 새끼라고 해서.”
주름이 사라지고, 대신 머리카락이 난 멀린이 말했다.
이십 대 꽃다운 나이로 돌아간 것.
정작 당사자인 멀린은 이 회춘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 모습이 되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말과 행동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거든. 모욕적이었다면 사과하겠네. 악어.”
커허허허허허헝············!!
멀린의 사과를 들은 바다 괴물이 불만에 찬 듯 사납게 울었다.
도롱뇽보다는 낫긴 했으나, 악어 역시 바다 괴물에겐 모욕이었으니.
뭐, 바다 괴물 입장에서는 이해 못 할 불만도 아니었다.
온몸이 청옥색으로 빛나는 바다 괴물은 비록 외형이 악어와 비슷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악어라 칭할 수 있는 생물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세상 어떤 악어가 작은 대륙과 맞먹을 크기 가지며,
세상 어떤 악어가 몸짓만으로 해일을 일으키고,
세상 어떤 악어가 팔과 다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섬을 침몰시키면서,
세상 어떤 악어가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다,
세상 어떤 악어가 한입에 배를 집어삼키킬 수 있고,
세상 어떤 악어가 국가조차 손대지 못한단 말인가?
팬의 손에 의해 탄생한 크리처. 바다 괴물 레비아탄은 결코 악어라 불릴 생명체가 아니었다.
딱 한 명만 빼고.
“미안하지만, 자네는 내 눈에 그냥 커다란 악어일세.”
바다 괴물 레비아탄과 비교하면 파리만 한 크기도 안 되는 멀린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기에 더욱 진심처럼 느껴졌다.
왜냐면 그게 진심이었으니까.
“후우······.”
멀린의 입장에서는 되려 의문이었다.
어찌해 스승님이자 선대 아카이브는 눈앞의 악어를 죽이지 않은 건지.
선대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는 아카이브라 해도 성향과 능력, 경험에 따라 받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게 그중 하나였다.
어찌해 스승께선 레비아탄을 끝장내지 않은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추측만 할 뿐.
‘예언을 건드리기 두려우셨던 걸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아카이브처럼 스승 역시 염세주의자이자 순응자.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종말론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을 터였다.
종말은 하나의 거대하고 섬세한 기계.
그런 식으로 피하거나 미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더 최악의 형태로 치달을지도 몰랐고.
멀린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저게 그 괴물일지는 모르겠단 말이지.’
멀린이 갈라진 바다 사이에 놓인 청옥색 악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명 거대한 괴물도 맞고, 서쪽 바다에 서식하는 괴물도 맞았지만, 종말론의 그 괴물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걸 삼키는 괴물.
뭐랄까?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많이 부족해 보였다.
크다곤 해도 눈 사이에 들러붙은 그림자 따위에 조종당하는 악어가 종말론의 괴물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크허허허허허허허헝!!!
표정에 멀린의 생각이 드러난 건지, 아니면, 그림자가 말해 준 건지 바다 괴물은 노호(怒號)를 터트렸다.
분노에 찬 포효에 멀린의 마력으로 붙잡고 있던 바다가 일순간 무너졌고,
바다 괴물은 그 틈을 타 바다의 통제권을 일부 확보. 거대한 용오름을 다수 만들어 멀린을 공격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용오름은 믹서기처럼 멀린을 갈아버리려 하였으나.
촤아아아악!!
물로 이뤄진 거대한 손바닥에 가로막혀 실패하고 말았다.
“······!!”
바다 괴물이 자신의 힘으로 용오름을 만들었을 때, 멀린도 바닷물을 이용해 거대한 거인을 만든 거였다.
물거품으로 이뤄진 풍성한 수염과 바닷속 바위로 이뤄진 거대한 삼지창을 지닌 바다 거인을.
바다 거인은 바다 괴물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바다 괴물과 달리 하나가 아닌 셋이나 더 있다는 점이었다.
구우우우우우우웅······!
바다 괴물을 사면으로 포위한 바다 거인은 각기 다른 자세로 삼지창을 꼬나들어 바다 괴물을 향해 내질렀다.
바다 괴물은 거대한 해일과 자신의 강력한 육신을 이용. 바다 거인에 정면으로 맞서며, 멀린을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그림자를 드리우는 거대한 아가리.
멀린은 강렬한 전류가 흐르는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일단 노력하는 제자는 도와야겠지. 괴물도 이것밖에 없고.”
그 말과 동시에 손에서 전광(電光)이 번뜩였다.
***
촤아아아아아아앙━━━━!!!
“······!”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강렬한 천둥소리에 후크가 뒤를 돌아봤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바다 거인이 자그마치 네 채나 일어서더니, 뒤이어 태양보다 강렬한 전광이 수평선 너머로 번뜩였다.
바다 괴물 레비아탄에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경이로운 광경.
후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넓디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별의별 걸 봤다고 자부했건만, 그런 후크조차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상식 밖의 광경이었다.
‘가장 상식 밖인 건 저 사람인가?’
후크가 자신과 합을 맞춰 웬디 호를 몰고 있는 데이브를 보며 생각했다.
바다 괴물을 상대할 준비를 해왔다고 해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후크는 담담히 경악했다.
상상 이상의 준비를 한 데이브 능력에.
이 와중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는 데이브의 태도에.
강력한 흑마법사라는 것도, 란다에서 급성장한 실력자인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저 정도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후크는 심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 네버랜드에 갇힌 아이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
그걸 목적으로 오긴 했지만, 솔직히 후크는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았다.
공부할 생각이 없음에도 책을 펼치는.
안 될 걸 앎에도 의무감에, 죄책감에 하는 척을 하는.
그래서 한 번도 넘지 못한 안개를 넘었을 때 감탄만 할 뿐, 정말 네버랜드에 도착할 수 있을지 계속해 의심했다.
삼십 년 동안 제자리에서 헤매기만 했으니.
그런데, 바다 괴물을 맞서는 존재를 보자 가슴 속에 서서히 희망이 싹 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삼십 년 전 웬디의 부탁을 드디어 이뤄줄 수 있지 않을까 해.
“후크 선장님.”
때마침, 데이브가 말을 걸었다.
“다수의 크리처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후크보다 훨씬 눈이 좋은 데이브의 조언.
그 조언을 들은 후크는 바로 뭔지 직감했다.
오래됐고, 초창기 버전이긴 했지만, 후크 또한 네버랜드에 살았던 주민 중 하나.
네버랜드 인근의 문지기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아아아······.”
주변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
후크는 본능적으로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인어입니다! 귀 막으십시오!”
조건반사에 가까운 말. 올리버와 퍼스트, 세컨드는 물론 웬디 호에 귀속된 선원들 모두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이를 확인하자마자 후크는 키 옆에 달린 또 다른 레버를 당겼다.
철커덩.
크고 단단한 쇠붙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리며, 웬디 호 앞에 달린 선수상(船首像)이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잘 자라앗!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기 양도오오-!!!]
고막이 찢어지는 끔찍한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고막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라는 표현은 비유가 아닌 진짜로.
웬디 호 주변에 몰려와 노래하던 인어들이 귓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입증해줬다.
“꺄아아아악!!”
“끄으으으윽!”
고막이 찢어진 인어들은 노래 대신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고, 후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부 쏴!”
핸드 캐논, 기관단총, 작살총, 대포 등. 백여 명에 달하는 웬디 호의 선원들은 무기를 겨눠 도망치는 인어들의 등을 노렸다.
개중 몇몇 인어는 특유의 기동력으로 재빠르게 회피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송장인형-듀란스에 들어간 세컨드의 총알에 몸이 꿰뚫려 소멸하고 말았다.
“인어들의 노래는 사람을 홀립니다.”
인어들을 몰아낸 후 후크가 설명했다.
“물리력은 없지만, 정신을 공략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더 위험합니다. 특히, 남자들은요. 그래서 방금처럼 노래로 대응해야 합니다.”
“웬디 님의 노래인가요? 후크 선장님께 처음 자장가를 불러주신 분?”
“예, 팬이 만든 인어들은 초기 네버랜드의 아이들도 노래로 홀려 납치했는데, 그때마다 웬디가 노래를 불러 쫓아내 줬거든요.”
“대단한 노래군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객관적으로는 뛰어난 노래가 아닐 수 있으나, 뭐든 관점이란 게 있으니.
“인어들이 외에 더 주의해야 하는 크리처는 없습니까?”
“아마도요. 팬은 네버랜드 주변에 흉흉한 걸 놔두지 않거든요.”
“아까 전에 바다 괴물은 있지 않았습니까?”
“그건 예외입니다. 애당초, 바다 괴물은 팬이 통제하는 그런 크리처가 아니거든요. 너무 힘이 강해 팬도 통제 못 합니다. 억지로 잠재운 바다 괴물이 어떻게 다시 깨어났는지는 의문이지만.”
후크의 대답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바다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불타버린 자의 기운. 거기엔 팬의 그림자-크리처가 내뿜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
바다 괴물의 힘이 너무 강력해 후크는 느끼지 못한 듯했는데, 이 사실을 알려주려는 찰나 후크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입니다! 저기가 유일하게 제가 탐사하지 못한 섬. 분명, 저기가 네버랜드일-”
-쿠우우웅!!
후크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바다 아래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솟아올라 웬디 호에 부딪혔다.
크리처로 웬디 호와 맞먹는 크기를 자랑했다.
어떤 크리처인가 자세히 살펴보려는 찰나 바다 아래에서 거대한 촉수가 튀어 올라왔다.
거대한 오징어의 다리였다.
“으아아아악!”
오징어 다리가 올라오자마자 갑판 위에 있던 선원 중 하나가 붙잡혀 바다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말 그대로 순식간.
선원이 비명을 질렀으나, 후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웬디 호만 무사하면 선원은 다시 불러들일 수 있었으니.
중요한 것은 거대한 오징어 크리처가 웬디 호를 붙잡아 발을 묶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큰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는 빠르게 이동해 네버랜드로 상륙하려는 계획 자체가 틀어졌다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바다 괴물 외에도 끔찍한 크리처가 네버랜드 앞마당을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네버랜드를 만든 팬의 기조에 어긋나는 것으로, 그 말은 즉 팬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다는 걸 뜻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좋지 못한 소식.
후크는 불안함을 느꼈고, 그 불안함을 부채질이라도 하듯 과거 네버랜드에 두지 않았던 인면조와 괴악한 바다 생물 크리처가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게 관측됐다.
이대로 간다면 네버랜드에 상륙하긴커녕 제자리걸음, 최악의 경우 침몰이었다.
후크는 결단을 내렸다. 씨알이나 먹힐지는 의문이었지만.
“데이브 씨.”
“예, 후크 선장님.”
퍼스트와 세컨드와 함께 사방으로 꾸물꾸물 기어 오는 오징어 다리를 자르던 올리버가 답했다.
하나하나의 화력이 대단해 선원 백여 명을 합친 것보다 오징어 다리를 더 많이 파괴했다.
파괴할 때마다 오징어 다리는 재생해 웬디 호를 붙잡았지만.
“보유하신 송장인형에 비행 능력이 있던데, 혼자서 네버랜드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
비행 능력을 갖춘 송장인형은 바토리를 말하는 것. 올리버가 답했다.
“예, 가능합니다.”
사실, 바토리보다 더 확실하고 강력한 비행수단이 있긴 했지만, 올리버는 굳이 말하진 않았다.
강력한 패는 그만큼 아껴야 했다.
대답을 들은 후크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제가 시선을 끌 테니, 데이브 씨 혼자서라도 네버랜드에 상륙하시겠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웬디 호 바로 아래엔 대왕오징어가 있었고, 전방에는 수백 수천 마리의 크리처가 접근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후크는 스스로 미끼를 자처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후크 역시 네버랜드에 볼일이 있음에도.
“어차피 상륙해봤자 전 딱히 쓸모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여기서 시선을 끄는 게 더 유용할 겁니다.”
웬디 호 위에서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는 후크가 답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
“친구분 외에도 거기 아이들 좀 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추가 조건을 말하기도 전에 올리버가 대답했다. 후크는 멈칫했다.
“진심입니까?”
“예.”
간결하지만 단호한 대답. 후크는 본인이 부탁하고도 믿기지 않아 물었다.
“이유가 뭐죠?”
“후크 선장님 같은 분을 좋아하거든요.”
삼십 년 동안 타인을 위해 네버랜드를 찾고, 눈앞의 목표를 두고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후크를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대답을 들은 후크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올리버는 품 안에서 종이 한 장 그리고 그림자에서 또 다른 송장인형을 하나 꺼냈다.
원래는 더 결정적일 때 꺼낼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변했다.
“그건······.”
온몸에 칼자국이 난 새 송장인형을 본 후크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인육-”
“-이거 받으세요.”
놀란 후크를 진정시키며 올리버는 포털 마법이 깃든 종이를 내밀었다.
망각의 해는 팬의 영역이라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제가 이 종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보낼 테니, 후크 선장님은 안개 밖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망각의 해 내부는 같은 영역이니 아마 작동할 겁니다.”
올리버는 후크에게서 받은 마음의 나침반을 던져줬다.
아마 마음을 굳게 먹은 지금의 후크라면 안개를 뚫을 수 있을 터.
나침반을 받아낸 후크가 물었다.
“이동하라뇨?”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을 탈출시킨다 해도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긴 하나 미끼 없이 저건 어떻게 뚫으시려고요?”
후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백 수천 마리의 크리처 떼를 가리켰다.
흡사, 벌 떼. 웬디 호가 주의를 끌지 않으면 뚫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올리버가 답했다.
“힘으로요. 포스.”
올리버의 부름을 받은 차일드-포스는 올리버의 그림자 안에 있던 송장인형-인육 요리사에게 들어갔다.
새 생명을 얻으며 삐걱삐걱 움직이는 인육 요리사.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행동이 다소 굼떴으나 상관없었다.
촤좌좌좌좌좌좍!!
그 상태로도 웬디 호를 붙잡은 대왕오징어의 다리를 모조리 베어버리기 부족함이 없었으니.
끼이이이이이이익!!
여태껏 잘 버티던 대왕오징어도 인육 요리사의 참격은 다른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재생 못 할 겁니다.”
인육 요리사의 참격에 당한 단면도가 곪으며 몸통 쪽으로 파고들었다.
더 이상 웬디 호를 붙잡지 못하고 도망치는 대왕오징어.
후크가 전방에 다가오는 크리처 떼는 어쩔 거냐 묻자, 올리버는 다시 한번 차일드-포스를 불렀고.
포스는 이에 몸을 웅크리더니 우화(羽化)하듯 변신했다.
불타는 것처럼 붉고 뜨거운 눈과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거대한 아가리, 검붉은 비늘로 촘촘히 뒤덮인 피부와 하늘을 덮을 듯한 거대한 날개, 산보다 크면서도 바람보다 날렵해 보이는 몸을 가진 용으로.
웬디 호보다 거대한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는 날개를 퍼덕여 날아올라 전방을 향해 화염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