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85화 (585/633)

585. 웬디 (4)

“자······장가요?”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올리버가 되묻자 후크가 답했다.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정작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때, 후크가 말했다.

“지금은 이래 보여도 전 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

“교양 있고, 유복한 집안이었죠. 선조께서 쌓으신 재산 덕분에 평생 돈 걱정할 일은 없고, 교류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했습니다. 사업가, 은행가, 법조인, 정치인. 모두 상당한 부와 사회적 명성을 쌓은 이들이었죠.”

진심.

해적의 집안치고는 꽤 놀라울 법했지만,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왜냐면 후크에겐 상류층 사람이 내뿜는 특유의 기운이 느껴졌기에.

물론, 그게 몸에 걸친 값비싼 제복이나 보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몸동작, 분위기, 말투 등. 소소하지만 흉내기 어려운 걸 뜻했다.

가령, 란다 내무부 장관인 폴 카버가 노력으로 쌓은 학식이라던가, 갈로스에서 만난 귀족들의 몸동작, 에티켓 같은.

그래서 올리버는 후크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어쩌다 30년 전 팬 님과 같이 계셨던 거죠? 혹시, 납치당하신 겁니까?”

아주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상류층이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후크가 어찌해 팬과 같이 있었는지.

이에 후크가 대답했다.

“아뇨, 제 의지로 따라간 겁니다.”

“······집안이 기울기라도 한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도박이나 약에 빠지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팬을 따라간 겁니다. 전 제 집안이 싫었거든요······. 나침반이 어딜 가리키죠?”

대화하던 후크는 나침반 방향을 물었고, 올리버가 알려주자 바로 키를 움직여 경로를 바로 잡았다.

자욱한 안개와 멋대로 흐르는 해류는 배를 실시간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해 계속 조정해줘야 했다.

올리버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재주.

후크가 이어 말했다.

“제가 팬을 따라간 이유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요?”

“예, 제 어머니는 전형적인 상류층 여성이었거든요······. 허영 덩어리란 뜻입니다.”

“아······.”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바라보던 올리버가 그제야 이해한 듯 탄성을 냈다.

“제 어머니가 저게 베푼 은혜라고는 낳은 것뿐이죠. 그 이후로는 제게 일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값비싼 옷과 보석 그리고 주변의 시선뿐이었거든요.”

“······.”

“어쩌다 절 찾을 때는 남들에게 자랑할 때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관심을 보인 적 없습니다. 제가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못 자는 것도 몰랐으니까요.”

“······.”

“······아, 아니다.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어느 날은 너무 잠이 안 와 어머니께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했거든요. 어머니께선 파티에 가야 한다며 거절하셨지만요.”

“······.”

“너무 배부른 이야기인가요?”

후크가 대뜸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사회의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출신이었다.

당장의 식사와 잠자리, 안전을 고민하는.

그런데 따뜻하고, 풍족하게 자란 후크가 고작 자장가 때문에 팬을 따라가 흑마법사가 됐다는 건 어찌 보면 조롱일 수도 있었다.

올리버의 생각은 달랐지만.

“아뇨. 전혀요.”

“······진심입니까?”

“예, 전 상류층으로 태어나지 못했고, 어머니도 없어서 잘은 모르니, 후크 선장님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죠.”

“아······.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딱히, 상류층이 부러웠던 적도 없고, 어머니가 없어 슬펐던 적도 없으니까요.”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상류층이란 건 고아원과 광산 시절에 알지도 못했고, 주변엔 자신과 똑같은 고아들뿐인지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도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그 덕분에 올리버는 조셉의 눈에 띄어 흑마법을 배울 수까지 있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복되게도 말이다.

“결국, 제 말은 제가 후크 선장님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니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냥,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후크는 올리버의 속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태도인 듯했는데, 올리버는 나침반을 본 뒤 다시 질문했다.

“나침반 방향이 오른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팬 님은 언제 따라가신 건지요?”

“불면증 때문에 남들 앞에서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머닌 그 때문에 제게 화를 냈고, 전 그날 가출했습니다. 그때, 팬을 만났죠. 그가 자길 따라가지 않겠냐고 제게 제안했습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품위 있는 부하가 필요하다고요.”

“수락하신 겁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갈 곳도 없고, 때마침 팬은 어른이 없는 섬을 만들 거라 했거든요. 당시 전 애였고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으로는 후크의 과거 이야기였지만, 간접적으로 네버랜드의 탄생과 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웬디를 만났습니다. 팬의 아지트에서요.”

“그 웬디라는 분이-”

“-아뇨, 그건 아닙니다.”

올리버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는 듯, 후크가 말을 잘랐다.

“제게 자장가를 불러준 소녀는 맞지만, 진짜 웬디는 아닙니다.”

“진짜 웬디가 도대체 뭐죠?”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아마, 팬이 그리워하는 소녀겠죠. 녀석은 마음에 드는 소녀를 찾을 때마다 웬디라는 새 이름을 지워주고 그 역할놀이를 시킵니다.”

올리버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후크가 이어 말했다.

“제게 자장가를 불러준 웬디도 그 대체품 중 하나였죠.”

후크는 그리움과 슬픔을 빛냈다.

품 안에 있는 벨이 후크를 걱정스럽게 바라봤고, 후크는 그런 벨을 한번 쓰다듬어 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꽤 괜찮았습니다. 비슷한 또래랑 사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밌기도 했거든요. 팬이 가르쳐 주는 흑마법도 유익했고, 뭣보다 웬디가 좋았습니다.”

후크가 은은한 애정과 깊은 슬픔을 빛냈다.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걸 알고는 자장가를 불러줬거든요. 생에 처음 듣는 자장가. 이후로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팬 님에게서 도망치신 거죠?”

“팬이 웬디를 죽였거든요.”

후크가 담담히 말했다. 별것 아닌 건 아니었다. 그저 오랜 세월 탓에 고통에 둔감해진 거였다.

“네버랜드를 만들려고 하는 걸 웬디가 극구 반대했거든요.”

“······반대한 이유는 뭐죠?”

“아이들의 섬을 만들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 그것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를 희생해야 했으니까요. 그때, 저희는 팬의 본모습을 몰랐고, 또, 너무 늦게 알았죠.”

후크가 이번에는 분노와 증오를 빛냈다. 그 대상은 팬이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어리석은 과거의 자신.

“물론, 팬이 웬디를 바로 죽인 건 아닙니다. 당시 웬디는 팬도 꽤 마음에 들어 했거든요. 아니······. 우리 모두가 웬디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정말 어머니 같은 존재였거든요.”

깊고 깊은 애정. 올리버는 당시 웬디의 얼굴조차 모름에도 후크의 감정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팬에게 대체 불가한 존재는 아니더군요. 나침반 방향은 어디죠?”

후크가 다시 방향을 물었다.

이야기에 집중한 탓에 나침반의 존재를 잠시 까먹은 올리버는 다시 확인 후 말해 주었다.

키를 돌리자 웬디 호가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네버랜드에 쓸 재료로 아이들을 계속해 데려오는 팬을 말렸고, 팬은 그녀의 존재를 점점 성가셔했죠. 처음엔 저희도 웬디를 말렸습니다.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처음 보는 애들보다는 웬디가 더 소중했으니까요.”

“······.”

“하지만 웬디는 그때마다 그래선 안 된다 했습니다. 아무리 처음 보는 아이라도 그래선 안 된다고요. 우리와 똑같이 기뻐하며 아파하는 존재라고요. 미련하지만, 그래서 우리의 웬디였던 거겠죠.”

“······.”

“그러다 결국 기어이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보다 못한 웬디가 잊혀진 아이들과 우리를 데리고 도망치려 했거든요.”

“잊혀진 아이가 뭐죠?”

“팬의 직속 졸개인 팬의 아이 중 결번이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울 대체품이자, 네버랜드를 유지하기 위한 재료입니다. 두 발 달린 가축이라 보면 됩니다······. 아름다운 네버랜드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가축처럼 대했으니.”

“웬디라는 분은······. 어떻게 됐죠?”

올리버는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앎에도 굳이 물었다.

웬디라는 분의 얼굴은 모르나, 후크의 말을 통해 볼 땐 최소한 이리 묻는 게 도리에 맞다고 생각해.

후크가 답했다.

“팬에게 걸려 결국 죽었습니다. 부댓자루에 넣어 목을 매달았죠.”

후크는 평범히 말했으나, 올리버는 그의 격정적인 감정과 꽉 문 이를 볼 수 있었다.

“죽기 전 웬디가 부탁했습니다. 자기가 잘못되면 자기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달라고요. 이곳은 거짓과 죄악으로 점철된 천국이며, 모두 영원히 아이로 살 수는 없다고요. 언젠가 어른이 돼야 한다고 했죠.”

후크가 올리버에게 다시 나침반 방향을 물으며 키를 돌렸다. 이제 안개의 절반을 넘은 듯했다.

“그런데 전 그 부탁마저도 못 들어줬습니다. 저 혼자 도망치는 것도 버거웠거든요. 나름 복수하겠다고 팬의 보물을 들고 도망쳤지만, 그마저도 이 꼴이 났죠.”

후크가 자신의 갈고리 손을 흔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벨이 도와줘 살았다는 겁니다.”

“······벨 씨는 왜 도와주신 거죠?”

올리버가 후크의 품 안에 있는 벨을 보며 물었다. 벨은 후크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역시 신기한 존재였다. 팬의 크리처인데도 불구 후크를 돕다니.

크리처의 특성을 고려해도 팬의 힘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경우였다.

“웬디 덕분입니다. 벨은 네버랜드에서 태어난 크리처 중 누구보다 팬을 따랐지만, 팬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런 벨을 웬디가 많이 위로해줬거든요.”

흑마법사의 관점에서 아주 신선한 이야기였다.

애정과 관심 등의 감정을 쏟아부어 타인의 크리처에 영향을 발휘하다니. 학술적인 관점에서도, 올리버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었다.

나름대로 흑마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건만, 어째 점점 모르는 게 더 많이 생기는 거 같았다.

“그래서 간신히 네버랜드를 탈출하고 지금까지 이러고 있던 겁니다. 뒤늦게라도 약속을 지켜보려고요.”

“대단하시군요.”

올리버가 솔직히 감탄했다.

후크가 보여준 흑마법 실력이나, 그가 해적으로 이룬 성과보다, 아직까지 네버랜드를 찾으려는 저 의지가 훨씬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후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냥 제 마음 편해지고 싶어 하는 짓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웬디에게 미안해서요. 공부할 생각도 없으면서 책을 펴놓는 것과 같은 짓이죠.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드니까 하는 척이나 할 뿐인 거죠.”

“그건-”

“-그게 아니면 나침반을 사용했겠죠.”

후크가 올리버가 든 나침반을 바라봤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나침반을 확인했고, 다시 방향을 알려주었다.

방향을 듣자마자 후크는 키를 돌려 웬디 호의 방향을 수정했다.

조금만 있으면 안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마음의 나침반. 원하는 게 있는 곳을 알려주는 유용한 아이템이지만, 동시에 사용하기 몹시도 까다로운 아이템입니다. 순수하고 확고한 마음에만 반응하거든요.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있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죠.”

그때, 격류가 거세지며, 해산물 같은 크리처 떼가 나타났다.

후크는 키를 붙잡아 흔들리는 웬디 호를 바로 세우며, 선원들에게 명령, 크리처를 상대했다.

퍼스트와 세컨드 역시 피를 매개로 한 끈적이는 화염과 바닷속도 타격할 수 있는 특수한 탄환을 쏴 이를 도왔다.

끼이이익! 웬디 호가 비명을 질렀고, 후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를 조종해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솔직히 말해 두려웠습니다! 막상 네버랜드를 찾았다 해도 제가 뭘 할 수 있을지요······! 팬과 싸워 이길 자신도 없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칠 자신도 없으며, 정말 아이들을 구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나침반이 헛돌면 답답하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 댈 수 있었으니까요······. 코미디죠.”

후크가 스스로를 조롱했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런 후크가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도 결국 포기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했으니. 이것은 정말 아름답고 대단한 거였다.

“후크 선장님.”

“잠시만요. 이제 거의 빠져나왔습니다.”

후크가 힘차게 웬디 호의 키를 조정하며, 옆에 있는 레버를 당겼다.

레버를 당기자 웬디 호는 스스로 바람을 생성해, 그 바람을 타고 앞으로 가속했다.

갑작스러운 가속에 크리처들은 모조리 떨어져 나갔고, 웬디 호는 거친 해류를 갈라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

거친 망각의 해를 가르며 나가는 웬디 호.

안개가 점점 옅어지고 시야가 확보됐다.

“여기서부터는 처음이지만, 아마, 당장 위협적인 건 없을 겁니다. 팬은 네버랜드 주변에 그리 흉한 걸······.”

후크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왜냐면 안개에서 벗어나자마자 거대한 산······. 아니, 산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파충류의 팔이 반겨줬기에.

수면을 시작으로 하늘까지 닿는, 인위적인 어둠을 만드는 거대한 파충류의 팔.

바다 괴물의 팔이었다.

삐이이이이이············!!

올리버의 귓가에 이명이 울렸고 뒤이어 환청이 들렸다.

‘레비아탄. 후려쳐.’

놀랍게도 환청이 울리자 산을 연상케 하는 파충류의 팔은 움찔움찔거리더니 처음 올리버를 덮쳤을 때처럼 움직였고, 곧이어 바다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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