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81화 (581/633)

581. 후크 선장 (5)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활활 불타오르는 웬디 호.

웬디 호의 그 강력한 열기는 여타 마법과 흑마법으로도 구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웬디 호를 중심으로 용암처럼 들끓는 바닷물이 그 증거.

그 강력한 열기에 주변에 있는 물고기는 산 채로 익어버리며,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듯 뜨거운 수증기가 발생했다.

그런 끔찍한 불길 한가운데서 올리버가 말했다.

“어······. 당황스럽네요?”

농담도, 그렇다고 후크를 배려한 말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당황스러웠다.

이 화력은 맨몸으로 맞을 시 올리버도 위험한 수준.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올리버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감각만 느낄 뿐이었다.

조금의 허세도 섞이지 않은 솔직한 심정.

신대륙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요리할 때 불이 덜 뜨겁다고 느낀 적은 몇 번 있긴 했으나, 그건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져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했다.

당황스러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멀쩡해······.’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자마자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웬디 호에 붙은 흉흉한 화염이 옷과 구두는 물론 손에 쥐고 있던 먹보주머니 조끼까지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기에.

당연히 얼굴에 쓴 ‘가짜 얼굴’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

이는 제법 큰일이었다. 데이브로 활동하는 중 맨얼굴을 보이지 않는 건 올리버가 아직까지 지키는 금기(禁忌) 중 하나.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가짜 얼굴은 멀쩡히 잘 붙어 있었다. 조금의 피해도 없이.

분명 평범한 흑마법 아이템일진데. 이게 뭔 조화인가 싶은 순간 올리버는 얼굴에 뒤집어쓴 가짜 얼굴 외에도 멀쩡한 것을 인지했다.

이제는 올리버의 신체 중 하나라 해도 다름없는 쿼터스태프와 가죽케이스에 든 빅마우스였다.

올리버는 멀쩡한 쿼터스태프를 보자 놀라면서도 동시에 역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게, 캔트에게서 선물 받은 쿼터스태프는 성기사의 공격을 물론 인육 요리사의 식칼, 멀린의 책, 불타버린 자의 공격도 버틴 든든한 물건이었으니.

그러자 올리버는 이미 진작 가졌어야 할 당연한 의문을 새삼 마주했다.

그것은 평범한 쿼터스태프가 어떻게 이토록 높은 내구성을 가졌냐는 거였다.

분명, 쿼터스태프는 올리버에게 소중한 물건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평범한 물건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가짜 얼굴과 빅마우스도 흑마법 아이템이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평범한 범주에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런데 이 강렬한 화염 속에서 멀쩡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기현상이었다.

왜 하필 이 세 물건만이······. 셋은 그저 올리버가 오랫동안 사용하고, 관리한 물건인 뿐인데.

움찔.

그 순간 올리버는 몸이 경직됐다.

나쁜 기억, 나쁜 생각 등.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사실을 어쩌다 마주한 것처럼.

올리버는 지금 그 불쾌하고, 불길하며, 불안한 무언가를 마주한 듯했는데, 그때, 후크가 올리버를 도와줬다.

“살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또 보는군······.”

올리버와 같이 불타는 웬디 호 한가운데 있는 후크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그는 지금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면서도, 동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

후크 덕분에 현실로 돌아온 올리버가 멈칫하다 오른팔에 두른 붕대를 발견했다.

멀린과 정령의 도움으로 두른 붕대는 쿼터스태프와 가짜 얼굴, 빅마우스와 더불어 불타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을 완전히 차린 올리버는 미세하게 흔들린 마음을 추스르며 평정심을 찾았다.

“그게······.”

대답을 기다리는 후크를 바라보며 입을 떼는 올리버. 어째서인지 올리버의 얼굴엔 미세한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신대륙에서 만난 분께서 주신 선물인 거 같습니다.”

올리버가 합리적인 추론을 제시했다.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힘, 불타버린 오른팔, 불이 덜 뜨겁게 느껴진 시기 등.

합리적으로 볼 때, 올리버가 화염에 내성이 생긴 건 불타버린 자의 영향인듯했다.

지금 올리버가 불 속에서 멀쩡히 있는 것과 가짜 얼굴이 불타지 않는 것, 쿼터스태프 역시······.

‘······불타버린 자 님 덕분이겠지. 그래, 그런 거로 하자.’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올리버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접어두자고 그렇게 결론 내렸다.

후크는 되물었다.

“허······. 그게 무슨 말이지? 쿨럭.”

차분히 묻던 후크는 숨쉬기 어려운지 기침했다. 가만 보니 기침만 하는 게 아닌, 땀도 적잖게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파이어쉽(Fireship)은 술사 역시 면역이 아닌 듯했다.

요정이 발화하기 전 뿌려준 붉은 가루로 강렬한 저항력만 얻었다 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듯했다.

하긴, 마법이든 흑마법이든 술사 역시 섬세한 술식으로 통제해 자신의 피해를 막을 뿐 자기 술식에 면역은 아니었으니. 하물며 이 정도 고화력의 화염이라면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긴 했다.

올리버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후크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업무와 관련된 거라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순 없지만, 어쩌다 보니 화염에 내성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몰랐네. 화염에 대한 내성이란 게 어쩌다 보니 생길 수 있는 건지······. 혹시, 용의 후손이라도 되는 거야?”

올리버의 대답에 어이없어하며 추측하는 후크.

올리버는 그런 후크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운 좋게 재능을 좀 타고난 사람일 뿐입니다.”

“······.”

화염 속에 맨몸으로 서 있는 남자가 하기엔 너무나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발언.

그러나 후크는 그 발언에서 어떠한 의지를 읽었다. 기이하게도 팬과 대비됐다.

특별한 힘을 선보이면서 스스로 특별하다고 주장한 팬.

특별한 힘을 선보이면서도 자기는 운 좋은 사람이라 주장하는 데이브.

확연히 달랐지만 동시에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편자의 양 끝이 방향은 다르지만 계속해 길어지면 맞닿는 듯이.

무슨 계시인가 싶었는데, 그 탓인지 후크의 심경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혹시나 하는 기대, 그럼에도 버리지 못한 의심.

그 감정을 읽은 올리버가 후크를 보며 물었다.

“테스트는······. 계속하는 거지요?”

화공선 위에 서서 예의 바르게 질문하는 올리버. 그런 올리버를 보며 생각을 정리한 후크는 호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투지를 불태우면서도, 무언가 기대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당연하지······. 화염 속에서도 멀쩡한 건 예상 밖이지만, 그래 봤자 쿼터스태프뿐인 맨몸. 내가 더 유리하거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배에 불이 붙자 그 강렬한 화력에 옷과 옷 안에 있던 시험관과 시험관 안에 있던 감정, 마력, 자연의 힘, 미니언까지 한 번에 탄화했으니.

지금 올리버는 맨몸이라 해도 무방했다.

물론, 맨몸이라 해도 인육 요리사의 손바닥 살점을 먹은 덕분에 맨몸 그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긴 했으나, 올리버는 단순히 그렇게 끝내고 싶진 않았다.

지금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가리는 게 아닌, 후크의 도움을 받기 위한 것.

그러니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았다.

생각을 마친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시원해서 좋······. 응?”

레이피어를 뽑아 불타는 웬디 호의 밧줄과 갈고리, 대포를 조작해 공격하려던 후크가 멈칫했다

‘계속하겠습니다.’라니? 문장이 현재 진행형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의문은 그리 길지 않았다.

후크 역시 상당한 수준의 흑마법사였기에, 저 하늘 위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곧 눈치챘기 때문.

후크가 고개를 들자, 그는 볼 수 있었다.

파이어쉽의 강렬한 열기로 바닷물이 들끓으며 생긴 대량의 수증기와 그 수증기가 한점에 모여 형성된 바위만 한 얼음덩어리를.

“오······. 이런.”

마력과 집착, 인내심이란 감정을 뒤섞은 복합 술식으로, 후크는 허공에 갑자기 생긴 얼음덩어리에 감탄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얼음덩어리는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후크가 발동한 파이어쉽에 올리버의 옷과 시험관에 든 내용물이 불탈 때,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불타고 있던 감정과 마력을 수증기와 같이 하늘 위로 날려 보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만든 거였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다고 처음부터 노린 거였냐면 그건 아니지만.

노린 거라기보단 수많은 전투를 행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대응방식에 더 가까웠다. 불리한 상황마저 이용하는 대응력.

그래도 그 효과는 철저한 안배를 짠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듯 마력을 이용해 허공에 떠, 증발한 바닷물을 흡수하던 얼음덩어리는 그대로 하늘 위에서 추락. 불타는 웬디 호 위로 떨어졌다.

“이 정도는!”

후크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위축되지 않고 불타는 웬디 호에 통제권을 발휘.

갑판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불타는 거포(巨砲)가 튀어나왔다.

처음 올리버에게 쏜 거포로, 후크는 그 압도적인 화력으로 떨어지는 얼음덩어리를 영격해 박살 내버릴 속셈이었다.

그때, 올리버가 영창했다.

[빙폭석(氷爆石)]

바윗덩어리만 한 거대한 얼음덩어리는 불타는 거포에서 탄환을 발사하기 직전 그대로 허공에서 폭발해 척 보기만 해도 등골을 서늘해지는 허연 연기를 퍼트려 불타는 웬디 호를 집어삼켰다.

허연 연기가 닿자 수증기는 식어 사라지고, 방금까지 끓고 있던 바닷물 역시 차갑게 식는 걸 넘어 얼어붙었다.

“다행이네요. 알몸으로 있기 민망했는데요.”

마력과 감정마저 불태우던 화염 탓에 술식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던 올리버는 불이 꺼지고 대신 허연 성에로 뒤덮인 웬디 호 위에서 말했다.

올리버는 주변에 널린 성에 중 일부를 마력으로 조작해 옷 형태로 가공한 뒤 몸에 둘렀다.

비록, 얼음이라 차갑긴 하나 마력으로 냉기를 차단하면 돼 잠깐 정도는 괜찮았다.

“처, 처음부터······. 노, 노린 거였나?”

빙폭석(氷爆石)에 의해 온몸이 성에로 뒤덮인 후크가 냉기에 덜덜 떨며 물었다.

흉흉한 불바다 속에서 순식간에 얼음 밭으로 환경이 바뀌자, 몸이 온도 차를 견디지 못한 것인지 후크의 피부는 쩍쩍 갈라지고, 생명력 역시 크게 깎여나갔다.

승패가 갈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

올리버가 대답했다.

“노렸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어서요. 운이 좋았습니다.”

“······크하하하하핫!!”

그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후크가 웃었다.

네버랜드에서 도망치고 해적으로 자립한 이후부터 수십 년간 공들여 키운 웬디 호를, 이렇게 하면 되겠다 같은 방법으로 제압하다니.

너무나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

후크는 그 엄청난 실력 차에 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고 기뻐했다.

이 정도 실력 차는 이미 과거에도 숱하게 겪었기에. 오히려 시간에 의해 흐릿해지고 퇴색되던 목표가 한결 선명해졌다.

그 슬프면서도 기쁜 듯한 오묘한 감정을 느낀 후크가 경탄했다.

“너. 정말 대단하네.”

“후크 선장님도 대단하십니다. 웬디 호를 본 덕분에 창조계열 흑마법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소중한 물건을 매개로 삼아 창조계열 흑마법으로 재가공하다니.

단순히 괴물(크리처)을 만드는 것보단 이쪽이 더 창조계열이란 이름에 잘 어울리는 방식. 진정한 정수(精髓) 같았다.

잠자는 숲처럼 이런 경우를 못 본 건 아니지만, 이쪽이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느껴졌다.

“근데, 넌 고작 임의적인 대응으로 이를 무력화시켰지. 내가 평생에 걸쳐 기른 크리처를.”

“음······. 양보해서 서로 대단한 거로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어쩌면 팬 그 녀석보다 더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르겠어.”

테스트 통과인지 물으려던 올리버의 말을 끊으며 후크가 중얼거렸다.

급격한 체온 저하 탓에 통제력을 떨어진 건지,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지, 그는 일방적으로 말을 뱉었다.

“보통 인간과 다른 특별한 존재······. 팬은 늘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고 그랬지. 무슨 왕자라고, 뭐 골때리는 녀석이긴 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눈엔 네가 더 골때리는 녀석인 거 같네?”

정신이 혼미해진 후크는 파이어쉽 한가운데서 맨몸으로 서 있던 올리버를 떠올렸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그 모습은 정말 사람 같지 않았다. 마치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해.

허나, 이에 관해 이미 자체적 결론을 내린 올리버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뺨을 긁적이며 후크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저벅.

후크는 자기 솔직한 심정을 계속해 지껄였다.

“다만, 걱정이야······. 이 정도에서 멈추는 그 물렁해 빠진 성격으로, 팬 그 독한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지. 잘못했다간-”

-덥썩.

후크가 말하는 도중 올리버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후크가 말을 멈췄고, 올리버는 어떠한 사심 없이 후크의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그 걱정. 제가 덜어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올리버는 조금의 사심도 없이 얼어붙은 후크를 번쩍 들어 뾰족뾰족한 성에가 가득 낀 갑판 위에 패대기쳤다.

콰앙━!!

요동치는 갑판.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올리버는 계속해 후크를 패대기쳤다.

후크의 등에 피가 나고, 팔다리가 부러지며, 옷이 찢어져 잡을 곳이 없어져도, 올리버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발목, 팔, 모가지, 등가죽 등을 붙잡아 갑판과 돛대, 난간, 계단, 문 패대기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후크를 패대기쳤다.

그 어떠한 사심 없이 순수하게 후크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오······. 저건 좀 심하지 않아?”

“그만, 그만······. 그는 이미 죽었다고.”

“오, 쉣! 어우······!”

바닥 위에 내리쳐 튕겨 나온 후크. 그런 후크의 발목을 잡아 다시 패대기치는 올리버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빈 시티의 시민과 거신의 해골 바위에 있던 해적들은 입을 가리며 경악했다.

후크와 올리버의 싸움을 보며 내기를 걸던 것과 술을 마시는 것도 잠시 잊을 정도.

그렇게 30분 가까이 후크를 패대기친 올리버는 피떡이 된 후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걱정은 더셨습니까?”

······끄덕.

피떡이 된 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는 그런 후크를 보며 사심이 아주 조금 들어갔나 고민했는데, 그때, 후크가 불어 터진 입으로 물었다.

“근데······. 믿나?”

“예? 무엇을요?”

“네 친구······. 무사할 거라고? 웬디라고······. 모두 안전한 건 아니야. 더 위험할 수도 있어.”

경험에서 나온 듯한 목소리. 올리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예, 제인 아가씨께선 무사하실 겁니다. 저보다도 강인한 분이니까요······. 그러니 길 안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크는 덜렁거리는 팔을 들어 이마에 붙이곤 말했다.

“옛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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