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 빈 시티 (5)
“와······.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빈 시티 시청 대기실.
이완이 빅마우스를 살펴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이완이 흥미를 느낀 점은 다름 아닌 잭과의 협상 직후 빅마우스가 사람의 언어를 구사한 거였다.
‘빅마우스. 금 좀 꺼내 주세요.’
‘어? 싫어.’
기절한 척 누워 있던 이완이 고개를 벌떡 들 정도로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는데, 그 호기심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실로, 장인(匠人)다운 모습이었다.
“꾸루루루.”
정작 관심의 당사자인 빅마우스는 귀찮다는 듯 올리버를 보며 좀 치워달라 부탁할 뿐이었지만.
“뭐라는 거야?”
“귀찮다고 합니다.”
“역시 흑마법 아이템답게 건방지네. 왜 사람 말을 안 하고 두꺼비 같은 소리를 내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기분이 아닌 게 아닐까요?”
“기분?”
“예······. 금괴를 꺼내달라고 했을 때 강한 거부감을 빛냈거든요.”
그랬다. 산산이 부서진 주점과 주변 건물에 대해 보상을 위해 금괴를 꺼내달라 하자, 빅마우스는 진실된 거부감을 빛냈다.
다행히 올리버가 잘 설득해 금괴를 꺼내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정이란 거군······.”
키워드를 짚은 이완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실로, 전문가다운 모습.
그는 고민의 고민을 한 끝에 전문가다운 접근을 시도했다.
“눈깔 찌르기.”
이완은 기술명을 외치며, 검지로 빅마우스의 무수한 눈알 중 하나를 냅다 찔렀다.
빅마우스의 비명이 대기실 안에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좋았어. 눈알을 찌르면- 끄아아아아악!”
이완이 손가락을 튕기며 기뻐하는 그때 빅마우스가 검지와 중지를 세워 이완의 두 눈을 찔러버렸다.
양손으로 눈을 덮으며 바닥을 나뒹구는 이완. 빅마우스는 그런 이완을 걷어찼고, 올리버는 커피를 마셨다.
“아프다! 아프다! 말려라! 말리라고!!”
여러 개의 먹보주머니와 싸워 솜씨를 갈고닦은 빅마우스의 육중한 발길질에 이완이 소리쳤다. 그제야 올리버는 빅마우스를 진정시켰다.
“꾸루루루룩!!”
“뭐라는 거야?”
간신히 일어나 눈을 비비며 시야를 회복하는 이완이 물었다.
“볼일도 끝났는데, 왜 안 집어넣고 자기를 괴롭히는 건지 물어보네요······. 빅마우스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요.”
올리버가 빅마우스에게 양해를 구했다.
빅마우스는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으나, 마지못해 참으며, 한쪽 구석에 가 앉았다.
“이완 님께서도 빅마우스를 너무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방금까지 얻어맞은 게 누군지 못 봤어? ······정말 스미스가 만든 거라고?”
스미스. 이완의 제자이자, 올리버가 그레이마켓에서 만난 흑마법 장인.
올리버는 그 스미스에게 의뢰해 빅마우스를 만들었다.
“예, 란다에 해결사로 데뷔한 초창기 때 의뢰해 만들었습니다. 물건을 좀 더 쉽게 보관하고 싶어서요.”
“허······. 그럼 더더욱 이해가 안 되네? 스미스가 저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잘은 모르지만, 스미스 씨께서는 실력 있는 장인이라 생각하는데요?”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포레스트와 제휴해 X구역에 흑마법 공방을 만들어 잘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뿐 아니라, 제자들도 여럿 생겼다고 했다.
“실력은 좋지만 특별함은 없거든. 스미스 그 자식.”
“특별함이요?”
“말 그대로야. 기본기가 좋고, 성실한 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특별함은 없어. 흑마법 역시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문이니까, 창조계열처럼. 무슨 말인지 알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에 비해 하류층이 접하기 쉬워 마법보다 재능이 덜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나, 흑마법 역시 일정 수준에 이르면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문이었다.
화기계열의 경우 투쟁심과 살의, 조작계열의 경우 지적능력과 손재주, 질병계열은 뛰어난 육체와 감각, 창조계열은 창의력, 의지, 기질 같은 것에 영향을 받았다.
“흑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것도 다르지 않아. 특별함이 필요하지. 기본적인 기능이야 어느 정도 흉내 낸다 해도, 특수한 기능은 다른 이야기거든. 먹보주머니의 용량 같은 문제라면 납득하겠지만, 사람 말을 하는 먹보주머니는 스미스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완이 말을 끝마치며 올리버를 슬며시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수상쩍어서. 만든 놈이 문제가 아니면, 가진 놈이 문제라는 건데. 솔직히 말해봐. 뭔 짓을 한 거야?”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짚이는 게 없습니다.”
“원래 범인은 부정하는 법이지.”
“빅마우스가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겁니까?”
“당연히 신기하지!”
이완이 온 마음을 담아 말했다.
“마치 날개 달린 돼지와 같지.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있을 수 없는 거거든······. 하긴, 너랑 있으니까 또 그렇게 놀랍진 않네.”
“음······. 전 잘 모르겠네요. 딱히, 별로 한 게 없어서요. 전 늘 빅마우스를 존중해주고, 필요할 때 일을 좀 부탁드린 게 전부거든요.”
이완과 빅마우스 모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의심의 감정을 빛내시는 거죠?”
“왜라고 생각하는데?”
“꾸룩!”
어느새 일심동체가 돼 올리버를 몰아붙이는 이완과 빅마우스.
올리버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건을 좀 과하게 보관시키고, 일도 좀 시키지만 그런 태도는 억울합니다. 일할 때마다 돈도 드린다고요.”
“얼마?”
“1란다 지폐 한 장요.”
“스크루지가 여기 있구만. 그리고 물건은 뭘 얼마나 보관시키길래 네가 좀 과하다는 표현까지 쓰는 거야?”
“별거 없습니다. 돈이나, 총기류, 금, 보석, 포션, 약초, 대량의 피, 테어도어 님의 살점, 크기에 따른 수조 다수, 시험관, 각종 작업 도구, 실험도구, 인육 요리사님의 시체를 비롯한 수십 구의 시체, 감정, 마력, 흑마법 서적과 마법 서적, 그 외 기타 교양서적, 악마의 책, 칼로리바 40박스, 대량의 햄과 베이컨, 육포, 고기,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가 소환한 소환수의 살점 잔해, 채소, 달걀, 캠핑용 요리도구, 초콜릿이랑 쿠키, 커피, 커피잔, 주전자-”
“-잠깐만.”
이완이 듣다 말고 갑자기 올리버의 말을 멈춰 세웠다.
“별것 아닌 듯하면서 엄청난 게 몇 개 끼어있는 것 같았는데?”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어떤 거긴 뭐가 어떤 거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 하지 마. 악마의 서적이랑, 인육 요리사의 시체, 무슨 무슨 살점 말했잖아!!”
“······아,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지는데······뭐 어쩌다 보니까······그렇게 됐습니다.”
주제와 비교하면 덤덤하다 못해 힘 빠진 말투.
이완이 씨발 이라고 외치며 양손으로 미간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말문이 막힌다는 듯 아무 말도 못 했다.
잠시 후, 이에 관해 이완이 따지려는 찰나 녹슨 경첩 소리가 들렸다.
끼기기긱.
관리가 안 된 시청 대기실 문이 열리는 소리로, 올리버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문 쪽으로 향했다.
열린 문틈 사이. 한쪽 눈에 흉터가 있는 여성이 나타났다.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공무원치고 상당히 격식 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아······. 시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
또각. 또각. 또각.
탁. 탁. 탁.
터벅. 터벅. 터벅.
쿵. 쿵. 쿵.
빈 시티(Bean City) 외곽에 위치한 시청.
그 시청 복도를 올리버가 걷고 있었다.
시청은 란다의 공공건물과 달리 아주 검소하였으며, 일하는 직원들 역시 차림이 자유롭고, 격식이 없었다.
“개씨발롬의 새끼 어디 갔어?! 그 개새끼 어디 갔냐고?!”
“과장님 올까 봐 튀었습니다.”
“이 월급 도둑놈 새끼들! 바바라 그년은!?”
“피곤하다고 잠시 쉬러 갔습니다.”
“이 미친 도시엔 제대로 일하는 새낀 없는 거야?!!”
아주 개방적이었는데, 그 모습을 구경하던 올리버에게 이완이 말을 걸었다.
“······그딴 것들을 한곳에 집어넣었으면 먹보주머니가 말하는 것도 이해가 돼. 그냥 나무상자에 넣어놨으면 나무상자도 말을 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악마의 서적이랑 깡패 놈 시체,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 교단의 소환수 살점을 어떻게 한곳에 넣어둘 생각을 했냐고 비꼬는 거야.”
“글쎄요? 왜냐고 물어보셔도 책이랑 시체는 원래 빅마우스에게 보관해둬서요.”
“책장이라는 게 있어. 책을 보관하는 놀라운 가구지. 거기 보관할 생각은 안 해봤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책장도 빅마우스에게 넣어뒀습니다.”
“······어쩌면 정말 너 때문에 먹보주머니가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답답해서.”
“빅마우스.”
“뭐?”
“이름이 빅마우스입니다. 먹보주머니요. 빅마우스라고 불러주십시오.”
이완이 뒤따라오는 빅마우스를 보더니 올리버를 다시 봤다.
“내가 왜?”
“빅마우스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도 이름을 달라고 했고요.”
올리버가 빅마우스와 처음 만난 그때를 떠올리며 설명했다.
그 사실에 이완이 다시 한번 흥미를 느끼려는 찰나, 공무원 특유의 늘어지는 목소리가 울렸다.
“하암······. 여깁니다. 시장실.”
다른 문에 비해 호화스러운 문을 가리키며 여성 공무원이 말했다.
올리버와 이완, 먹보주머니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고, 초라한 실내가 값비싼 가구로 장신 된 언밸런스한 풍경이 펼쳐졌다.
“늦어서 죄송하네요.”
언밸런스한 방 안에 있던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 다가와 대뜸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쪽으로 빗은 갈색 머리카락과 마른 체형, 나이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이십 대 초중반이었는데,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아닙니다. 잭 씨. 이리 만나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리버는 천사의 집에서 배운 악수법대로 상대가 불쾌하지 않게 손을 잡아 흔들었다.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잭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젊으신 분이라서요.”
“아······. 근데도, 제가 잭이라는 걸 알아보셨군요.”
“송장인형을 통해 본 감정과 똑같았거든요.”
잭은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적잖게 놀랐다. 이 정도로 섬세하게 감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곳 빈 시티에서도 찾기 어려웠으니.
애당초 감정이란 걸 보고 사람을 구분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점점 협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늦은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기르고 있던 거위를 잠시 살펴보느라 그쪽에 있었거든요.”
“시장님께서 거위를 직접 기르나요?”
“예······. 도시 핵심 사업 중 하나라서요.”
“······?”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거위를 기르는 게 도시 핵심 사업 중 하나라는 게 다소 이해가 안 됐다.
그 사이 잭은 이완에게도 인사했다.
“······콩 아저씨도 오랜만이네요.”
“그래, 정말 오랜만이야. 부럽게도 넌 그때 그대로구만.”
“콩 아저씨도 마찬가지네요.”
의미심장한 대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빈 시티의 역사는 대략 60년이었고, 시장직은 도시가 설립된 후부터 지금까지 잭이 도맡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잭의 나이는 노령에 접어들어야 했건만, 잭은 청년의 모습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생명력 역시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거인과 맞먹을 정도.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서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 다들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잭의 제안에 이완과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맞았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의문. 올리버는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여기 커피입니다······. 괜찮으시면 바로 일 이야기로 들어가도 될까요?”
손수 커피를 탄 잭이 제안했다. 올리버는 동의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아까 전 소란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해서, 빨리 일을 진행해야 하거든요······. 우선 거래할 것부터 다시 확인하죠. 데이브 씨께서 원하시는 건 후크 선장을 불러주는 것과 콩 아저씨와의 화해시죠?”
“예.”
“그 대가로 충분한 금전적 보상과 도시의 식량 문제도 해결해주신다고 하셨고요.”
“예.”
올리버가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러나 그 태도는 이십 대 초반에 도시를 세운 잭조차 당황케 했다.
“우선······. 보상해주신다는 말은 믿습니다. 아까 금괴를 봤으니까요.”
잭이 말한 아까란 빅마우스를 설득해 꺼낸 금괴를 주점 주인 등에게 나눠준 것으로, 올리버는 그 압도적인 재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지우고 감사의 마음을 품게 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 중 상당량을 얻으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봅니다. 하긴 X구역의 사업체도 나날이 성장 중인 분이신데······. 다만, 두 번째 제안은 의심스럽습니다.”
“식량······. 말씀입니까?”
“예, 오해는 하지 마세요. 데이브 씨의 신용을 의심하는 건 아니니. 다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도시 단위의 식량을 공급하는 건 믿기 어려워서요. 돈은 둘째치고, 그 엄청난 양의 식량을 어떻게 이곳으로 가져오실 건가요?”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돈으로 식량을 사는 것과 옮기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시간과 거리. 돈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영역.
뭣보다 지금 빈 시티의 유통망은 바다 괴물로 인해 꼬인 상태였다. 식량난의 원인이 바다 괴물 탓에 밀수업자들이 움직이지 않은 탓이니.
그러나 올리버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제게 포털 마법이 깃든 스크롤이 다수 있는데, 그걸로 사 올 생각입니다.”
“······.”
잭은 말문이 막혀 침묵했다.
공간 마법 중 하나인 포털. 이를 이용한 물자 유통은 모두가 꿈꾸고, 포기한 영역이었으니까.
그 이유는 포털을 지나는 대상의 무게와 크기, 질량이 커질 때마다 포털을 열고 유지하는 코스트가 커졌기 때문.
그런데, 올리버는 이 점을 모르는지, 아니면 해결한 건지 그런 비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그 대량의 식량을 어디다 담아 올 겁니까?”
올리버가 빅마우스를 가리키며 답했다.
“빅마우스에게 담아 올 겁니다.”
“꾸룩?!”
경악하는 빅마우스. 놀란 것은 빅마우스만이 아니었다.
잭 역시 놀란 눈치였으며, 이완도 관심을 보였다.
“저 먹보주머니 혼자서요?”
“예······. 빅마우스.”
백문이 불여일견. 올리버는 빅마우스에게 부탁했다.
빅마우스는 또 일이 생기자 귀찮아하면서도 올리버의 얼굴을 보더니 마지못해 속 안에 든 내용물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빅마우스의 울음이 아주 길게 울렸고, 울음이 울릴 때마다 시장실에 짐들이 하나둘 쌓였다.
40박스나 되는 세 가지 맛의 칼로리 바, 초콜릿, 쿠키, 베이컨, 육포, 소시지, 햄, 고기, 각종 채소, 빵, 후추, 소금, 각종 조미료 등등.
그 종류와 양이 엄청난 시장실 사 분의 일을 채울 정도였다.
먹보주머니의 크기를 고려해도 상식 밖의 양.
이완이 물었다.
“어디 피난이라도 가나?”
“근래······. 허기가 많아져서요. 어쨌건, 작정하면 이보다 더 많은 식량을 넣을 수 있으니, 부지런히 움직이면 제가 식량난을 좀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잭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민했다.
사실 따질 것은 많았다. 빅마우스를 통해 대량의 식량을 싣는다 해도 포털을 넘을 때는 그 식량에 비례한 코스트를 치러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해결할 거라든가.
허나, 잭은 그러한 사실을 일일이 지적하는 대신 좀 더 생산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저 먹보주머니······. 콩 아저씨께서 만들어 준 건가요?”
“아니, 내 제자가 만든 거야. 스미스라고.”
“실력이 뛰어난 제자분인가 보군요? 저 정도 용량을 담을 먹보주머니를 만든 거 보니까요.”
잭이 빅마우스가 꺼낸 식량과 빅마우스를 비교했다. 단순 부피만 해도 백배가 넘는 듯했는데, 아직 여유분이 있어 보였다.
먹보주머니의 크기를 고려해도 말도 안 되는 용량이었다.
“아니, 실력 있는 놈이긴 하다만, 저 정도는 아니야. 저런 수준의 먹보주머니는 나도 못 만들어. 실수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그럼······?”
“이 녀석이 알겠지.”
이완이 망설임 없이 올리버를 가리켰다.
잭은 시선은 자연스럽게 올리버에게 향했고, 올리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먹보주머니를 강화했습니다. 더 많이 담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떻게 강화했죠?”
“같은 크기의 먹보주머니를 먹게 해서요.”
움찔.
잭과 이완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올리버가 말한 방식은 흑마법 아이템을 강화하는 방식인 동시에 위험한 방법이라 터부시되는 일종의 금기였다.
동족 포식을 한 흑마법 아이템은 성능과 함께 지능과 호전성 등이 대폭 상승해 대부분 주인을 위협. 그래서 흑마법사의 도시인 빈 시티에서도 거의 행해지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 빈 시티의 시장인 잭이 물었다.
“정말 빅마우스끼리 싸우게 해 서로 잡아먹게 했나요?”
“예. 일대일과 이대일 이런 방식으로 차근차근 강화했습니다.”
그냥 싸우게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 가혹한 환경에 몰아넣었다고 올리버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렇다면 저 정도 성능도 납득이 되네. 악마 같은 자식.”
“예?”
“예? 는 무슨! 먹보주머니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서로 잡아먹게 했잖아?”
“동의한 사안입니다.”
올리버가 말했고, 빅마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완은 끔찍한 녀석이라고 올리버를 거듭 비난했고, 올리버는 자신의 무고를 항변했다. 그때, 잭이 질문했다.
“위협하진 않나요?”
“위협이라뇨?”
“흑마법 아이템은 성능이 뛰어날수록 주인의 말을 안 듣고,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죠.”
“알고 있습니다.”
“동족 포식을 통한 강화를 안 하는 이유도 그거 때문이고요. 그런 흑마법 아이템은 더욱 주인에게 호전성을 보이죠······. 어떻게 길들이신 거죠?”
잭이 이완을 봤을 때 빛냈던 탐욕을 다시 한번 더 빛냈다.
동족 포식을 통해 강화된 먹보주머니의 성능과 이를 길들인 기술이 탐나는 것. 올리버가 답했다.
“존중과 보상입니다.”
“없다는 거군.”
“진심입니다. 이완 님. 빅마우스는 처음 얻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절 위협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 도와줬죠.”
“꾸루루루······.”
빅마우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마치 어찌할 수 없는 재해라도 마주한 듯.
잭 역시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직감. 이에 안타까움을 빛냈는데, 그때, 올리버가 제안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동족포식을 한 다른 먹보주머니를 길들일 방법을 하나 알 것 같긴 합니다.”
“그게 뭐죠?”
잭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빅마우스와 싸우게 하는 겁니다.”
올리버가 엄지로 빅마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빅마우스에게 쏠렸고, 빅마우스는 이게 뭔 개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
일주일 후.
“빅마우스. 파이팅.”
빈 시티 임의로 설치된 격투장 고독(蠱毒). 그곳 관람석에 앉은 올리버가 빅마우스를 응원했다.
동족 포식을 통해 강화된 먹보주머니 열 개를 앞에 둔 빅마우스가 외쳤다.
“이런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