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75화 (575/633)

575. 빈 시티 (4)

리산드로.

그는 건물 옥상에서 한 주점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고민이란 다름 아닌 손에 든 종이를 던질지 말지였다.

스크롤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조잡한 종이.

허나, 그와 동시에 리산드로는 이 종이를 던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종이를 준 건 다름 아닌 나무꾼 데이브였으니.

학살자, 광인, 교활한 책략가, 난봉꾼 등등. 이곳 빈 시티까지 그 명성이 전해진 란다의 거물 해결사.

리산드로는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많이 위험한 겁니까?’

‘······그렇게 위험하진 않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이걸로 전 빚을 다 갚는 겁니다?’

‘빚은 오히려 제가 졌지요.’

리산드로는 이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는 종이가 어느 정도 위험하다는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종이가 데이브에게 유리한 역할을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거꾸로 해석하자면, 지금 주점에 들어간 빈 시티의 시장 잭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리산드로를 망설이게 했다.

신고하는 거야 심부름 수준이라 위험이 없다지만, 종이를 던지는 건 직접적인 개입이었고, 이는 심부름과 천지 차이였다.

자칫 잘못하면 시장의 원한을 살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도시 전체의 원한을 살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60년 가까이 빈 시티를 통치한 잭 시장에게 원한을 샀다간 죽은 목숨이었고, 빈 시티에서 쫓겨나는 것 역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비록 빈 시티가 불법적인 존재긴 하나, 무능한 독재자와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이 땅에선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그 한계가 명확한 도시기도 하다만······.’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아무리 목숨을 건져준 은인이라 해도 왜 이렇게까지 도우려는 건지. 리산드로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이미 어느 정도 할 만큼 했고, 데이브 역시 그 이상 무리하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분명, 그럴진대 왜 구태여 이 일까지 더 맡은 건지 의문이었다.

베풀어 준 친절에 마음이 약해진 건가 싶었지만, 리산드로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리산드로는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찌 됐건 자립에 성공한 상인. 고작, 친절에 이런 행동까지 했을 리 없었다.

그건 자기답지 못했다.

이는 일종의 도박으로 봐야 했다. 인생을 건 배팅 말이다.

빈민가에서 구걸로 먹고사는 게 지겨워, 스스로 호구 잡힐 걸 앎에도 밀수업자 무리에 자진해 들어가고,

이후, 자기를 속여 먹으려던 동료들을 먼저 배신해 종잣돈을 만들어, 이완의 흑마법 아이템까지 차지하려 했던 도박과 같은 거였다.

비록, 마지막 배팅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도전했고, 어찌 됐건 지금 자립했다는 사실이었다.

코찔찔이 시절 때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었고. 전체적인 배팅의 승률도 괜찮은 편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리산드로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이 지금 이 종이를 받아 든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강하고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 같은 사람에게 베팅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려는 도박이었다.

더 많은 수입,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더 비싼 술, 더 예쁜 여자 등등. 모두 자신을 위한 것.

그렇게 마음을 굳힌 리산드로는 두 눈을 감고 데이브와 잭이 있는 주점을 향해 냅다 종이를 던졌다.

리산드로의 손을 떠나간 종이.

리산드로는 바로 건물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기묘한 종이의 흐름에 한순간 눈을 빼앗겨 그러지 못했다.

‘저게 뭐야? 스크롤은 분명 아니었는데?’

리산드로가 조용히 경악했다.

밀수업자로 쌓은 안목을 걸고 방금 자신이 던진 종이는 스크롤이 아니었다.

소재, 가공방식 모두 기초도 못 갖춘 조잡한 물건에 불과했다. 상품 가치도 없는 쓰레기.

그런데, 그 종이는 웬만한 스크롤도 못 하는 자기 비행을 해 살아있는 새처럼 주점 위로 날아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계속해 돌기 시작했다. 때를 기다리는 새처럼.

흑마법 아이템을 취급하는 상인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잠시 후, 시간이 지나자 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주점 상공을 날아다니며 대기하던 종이가 강렬한 마력광을 발광하더니 보랏빛 포털이 열렸고, 그 포털 사이로 머리에 사슴뿔이 달린 한 남자가 나온 것이었다.

기다란 녹색 머리와 장신이 특징인 남자로, 그의 손에는 나뭇가지가 있었고, 그 손에서 초록빛이 빛나자 나뭇가지는 거대한 나무로 변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 질렀다.

“저, 저거 뭐야?! 나무? 나무?! 나무가 떨어진다!!”

***

“크아아아아악!!”

종이에 깃든 포털을 통해 빈 시티 상공에 써드가 나타나 고함을 질렀다.

드루이드 특유의 강력한 기운과 커다란 목소리에 그 아래 있던 마력사용자, 흑마법사, 무장 병력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들었고, 하늘 위에 대뜸 나타난 셰이머스와 두 눈이 마주쳤다.

“······!!”

몇몇 상황 판단이 빠른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불구 대응하려 했으나,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써드가 송장인형-셰이머스의 힘을 이용해 손에 든 나뭇가지를 이미 나무로 성장시킨 후였다.

셰이머스는 반대 손에 쥐고 있던 콩 줄기를 이용해 나무를 묶어 손잡이를 만든 뒤, 자연의 힘을 때려 박아 그대로 중력의 힘까지 이용해 대지를 향해 나무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우웅······!!

자연의 힘이 깃든 나무는 그 압도적인 질량을 이용. 공기를 짓누르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허옇게 찢어지고 으깨지는 공기.

흑마법사 중 일부가 빠르게 화력을 투사해 이를 막으려 했으나, 압도적인 질량과 물리력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였고, 그렇게 빈 시티 중앙에 있는 주점 위로 거대한 나무가 떨어졌다.

콰아앙━━━!!!!

자연의 힘이 깃든 나무가 떨어지자, 주점은 단숨에 무너졌고, 지면은 파도처럼 요동치며 흙먼지와 함께 주변의 사람들을 날려버리고, 대지를 뒤엎어 버렸다.

하늘 높이 날아갔다가 비처럼 떨어지는 도로의 벽돌 잔해가 그 증거.

평화롭던 빈 시티 중앙은 마른하늘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굉음과 비명이 난무했다.

“끄으으······.”

“모두 일어나······대응해야······.”

“기, 기습······?”

“으으······지원을······.”

사방에 가득 퍼진 흙먼지, 균열이 가고 내려앉은 땅, 비명과 신음 등. 혼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거라 할 수 있었다.

잭이 주점 내부뿐 아니라 주변까지 통제해 준 덕분에 갑자기 하늘 위에서 나무가 떨어진 재앙에 휩쓸린 건, 잭과 잭의 부하들뿐이었으니.

이 정도면 아직 수습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리버는 몸 안에 저장된 마력을 이용해 흙먼지를 통제하며 말했다.

방대한 마력과 섬세한 조작 덕분에 흙먼지를 하나하나 조종해 바깥에서 볼 때는 그저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부는 이미 흙먼지가 거둬져 시야 확보뿐 아니라, 숨쉬기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주변의 시야도 잘 확보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박힌 거대한 나무와 그 위에 있는 송장인형-셰이머스.

그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나 한때 주점이었던 곳과 바닥에 널브러진 이완, 가재도구, 잭의 부하가 한눈에 보였다.

참고로 의식만 잃었을 뿐 죽은 사람은 없었다.

“일부러 의식만 잃게 한 건가요?”

충격에 휩쓸려 한쪽 팔이 날아간 잭. 정확히는 잭의 송장인형이 물었다.

직접 오지 않고 송장인형을 내보낸 거였는데, 흑마법사의 도시. 빈 시티의 시장답다고 할 수 있었다.

“예, 전 협상을 하고 싶은 거지, 싸우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폭격이나 다름없는 공격을 한 올리버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충격적인 건 저게 진심이라는 점.

잭이 이를 지적했다.

“협상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오지 않았을까요? 도시 한복판에 이런 피해를 줘 놓고요?”

“그 점은 죄송합니다. 다만, 잭 씨와 대화를 나누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잭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밀히 따지면 먼저 실력 행사를 하겠단 뜻을 밝힌 건 본인이었으니.

진심이든, 허세든 그런 의사를 밝힌 시점에서 이 정도 과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올리버가 한마디 더 보탰다.

“그리고 전 아직 제대로 된 피해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예?”

잭이 물음에 올리버는 행동으로 답했다.

“써드.”

올리버의 부름에 송장인형-셰이머스에 들어간 써드가 다시 한번 자연의 힘을 끌어올려 나무에 때려 박았다.

맨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진한 자연의 힘.

그 자연의 힘이 나무에 투여되자, 그에 비례해 나무뿌리는 무섭게 성장하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우직. 우직. 촤아아악!!

혈관처럼 꿈틀대다 사방으로 쫙 뻗어 나가는 나무뿌리.

그 기세가 어찌나 드센지 나무뿌리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뻗어 나가 건물을 물론 도시 경비대까지 덮쳤다.

“이게 뭐야? 나무뿌리?!”

“시장님이 위험하다. 모두 진입 준비해!!”

“나무뿌리가 막고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잭. 올리버가 확인 사살했다.

“이 나무가 도시 전체를 뒤덮을 순 없겠지만, 일부는 덮을 수 있습니다.”

“······.”

“그 상태로 불을 붙이면 도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겠죠.”

올리버가 손에 자그마한 검은 불씨인 탐화(貪火) 쥐며 말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술식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긴 세월 동안 빈 시티를 운영해 온 잭은 그 위험성을 직감으로 간파했다.

콰앙! 쾅! 쾅!!

촤좌좌자자작!!

쿠우웅!! 쿵우웅!!

올리버와 잭이 대화를 나누는 중 나무뿌리를 파괴하기 위해 바깥에서 자르고, 부수는 소리가 울렸다.

빈 시티의 도시 경비대가 재빠르게 대응하는 것으로, 뿌리를 파괴하는 속도가 엄청나 올리버가 바로 대응해야 할 정도였다. 그걸 알아본 잭이 소리쳤다.

“모두 대기! 아직 협상 중이니까.”

방금까지 올리버와 나눈 말투와 달리 위엄이 깃든 목소리가 울리자 놀랍게도 사방에서 들리던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도시 경비대가 시장의 명에 따라 적대 행위를 일제히 멈춘 것.

올리버도 이에 화답하고자 써드에게 멈추라고 지시했다.

“······들은 것과 많이 다르시군요. 란다에 있는 저희 정보원들 말에 따르면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위인은 아니라 하던데요.”

“그만큼 제가 잭 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 충분한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도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리버가 과거와 같이 사과하는 대신, 이 바닥 룰에 맞게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충분히 협상 가능한 안을 제시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건 잭 쪽이니, 이 정도 무력행사는 정당하다는.

올리버가 잘 사용하지 않던 방식이었으나,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이 정도 힘을 지니신 분이면 받아들여야죠. 거기다 망신당할 것도 막아줬으니, 그 배려에도 보답해야 하고요.”

잭은 흙먼지를 돔 형태로 둘러 바깥의 사람들이 지금 상황을 보지 못하게 배려해 준 올리버의 행동을 언급했다.

그대로 본다면 누가 봐도 올리버의 힘에 잭이 항복한 모양새, 도시를 책임지는 시장의 체면을 깎아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흙먼지를 가림막 삼아 이 모습을 감춰줬고, 이 정도면 어떻게든 동등하게 협상한 거라 우겨서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별거 아닌 듯했지만,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에겐 몹시도 중요한 문제. 올리버도 이 점을 고려해 흙먼지로 주변을 가린 거였다.

뭐가 됐건, 올리버도 란다 뒷세계에서 몇 년을 지냈으니.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되자 올리버는 바닥에 떨어진 잭. 정확히는 지금 잭으로 이곳에 온 송장인형의 부서진 팔을 집어 들어 다가갔다.

“잠시 팔 좀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완벽하진 않겠지만, 이어 붙여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양팔이 멀쩡한 게 좀 더 보기 좋을 테니까요.”

잭의 송장인형이 빈 어깨를 내밀었다.

올리버는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발동해 급한 대로 송장인형의 부서진 팔을 이어 붙여 수리해줬다.

“언제부터 이게 송장인형이란 걸 알아보셨죠? 진짜 사람과 구분 못 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한 물건인데요.”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눈이 좋은 편이거든요.”

올리버가 담담한 대답에 잭은 감탄했다. 성기사조차도 쉽사리 구분 못 할 정도로 정교한 물건이었건만.

퍼펫과 대등하게 싸웠다는 게 허언이 아닌 듯했다.

“그럼, 나가보도록 하지요.”

수리가 끝마치자마자 잭이 수리된 팔을 살펴보며 제안했다. 이에 올리버가 잠깐 시간을 달라 부탁했다.

“빅마우스.”

올리버가 허리 뒤쪽에 찬 가죽 케이스에서 빅마우스를 꺼냈다.

이불처럼 접혀 있던 빅마우스는 여느 때와 같이 빵 반죽처럼 부풀었고, 잠시 후, 흑마법사의 도시인 빈 시티에서도 보기 드문 크기의 먹보주머니가 나타났다.

“엄청 큰 먹보주머니네요?”

잭이 사람보다 약간 큰 빅마우스를 보며 감탄했다. 안전상의 이유로 빈 시티조차 이 정도 크기의 먹보주머니는 만들지 않았기에.

올리버 역시 해당 사실을 알았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아 무덤덤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주문 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건 왜?”

“피해를 끼쳤으니, 보상은 해야죠. 이 도시 사람들 금 좋아하는 거 같던데, 맞습니까?”

“보통 금은 다 좋아하죠.”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빅마우스에게 금괴를 꺼내달라 부탁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으로 얻은 금괴를.

이에 빅마우스가 화답했다.

“어? 싫어.”

사람 말을 하는 먹보주머니. 이에 기절한 척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완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저게 왜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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