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73화 (573/633)

573. 빈 시티 (2)

“저기가 빈 시티(Bean City)입니다. 보이시죠?”

올리버 바로 뒤편 좌석에 앉은 리산드로가 관광 가이드처럼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설명해줬다.

“예······. 정말 거인의 해골 모양이군요.”

올리버는 빈 시티(Bean City) 항구에 있는 거대한 해골 형태의 바위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올리버가 여태껏 본 거인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크기의 해골 바위는, 리산드로의 말대로 거인(巨人)이 아닌 거신(巨神)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크기를 자랑했다.

죽은 거신의 신체를 팔아 빈 시티를 세웠다 하더니, 아무래도 허언이 아닌 듯했다.

“저 바위. 정말 거신(巨神)의 유해입니까?”

“글쎄요? 도시 내에서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어서요······. 그도 그럴 게, 거대한 콩나무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 거인을 살해했다는 게 믿기 쉬운 이야긴 아니지 않습니까?”

리산드로의 말에 올리버는 납득했다.

콩나무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 그곳에 사는 거인의 물건을 훔치고, 뒤쫓아오는 거인은 콩나무를 잘라 추락사시켜 빈 시티를 세웠다는 건 너무나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니.

허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의 눈에는 거대한 콩 줄기가 보였다.

빈 시티의 후면에 있는 산맥 옆에 시들해지고, 돌처럼 굳어 얼핏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콩 나무의 흔적을 말이다.

“어디 나도 좀 보지.”

올리버의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이완이 요구했다.

“아, 죄송합니다. 보시죠.”

올리버는 몸을 뒤로 빼 이완이 한결 보기 좋게 해줬다. 그럼에도 이완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추가적인 요구를 했다.

“몸에 두른 이 쇠사슬을 풀어주면 더 잘 보일 것 같은데?”

온몸에 다섯 겹의 쇠사슬을 두른 이완이 절그럭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완이 도망치려 해 어쩔 수 없이 두른 것으로, 올리버가 답했다.

“죄송합니다. 대신 보기 편하시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올리버는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로만 운전대를 잡고, 멀쩡한 왼손으로 이완을 붙잡아 창가 쪽으로 잠시 당겨주었다.

“보이십니까?”

“어, 굴욕적이지만 잘 보이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자동차에 왜 쇠사슬이 있는 건데?”

“밀리유 분들이 쇠사슬로 이완 님을 포박하는 걸 보고 저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챙겼습니다.”

“어디서부터 따져야 할지 알 수가 없구만. 지랄 말고 풀어줘.”

“도망치실 거지 않습니까?”

“날 팔아서 잭을 만나려고 하는데 당연히 도망쳐야지!”

“오해입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리고 존댓말만 한다고 예의 바른 게 아니야. 걸맞게 대접을 해줘야 예의가 바른 거지! ······젠장! 진짜 잘못 걸렸네. 이런 미친 새끼일 줄이야.”

올리버는 이완을 원래 자리에 앉히며 사과했고, 이완은 이에 대해 항의하며 절그럭 소리를 냈다.

그렇게 소란을 계속해 이어지던 중 리산드로가 끼어들었다.

“여기서부터 걸어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 차가 멋진 건 맞지만, 눈에 너무 띄거든요.”

타지에선 현지인의 말을 따라야 하는 법. 올리버는 리산드로의 말대로 차에서 내린 뒤, 축소화 마법으로 차를 작게 만들었다.

리산드로는 이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

“왜 그러시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분 다 이걸 뒤집어쓰시죠.”

리산드로는 서둘러 자신의 봇짐에 손을 넣어 낡고 색이 바랜 회색빛 망토를 꺼냈다.

꾸엑!

회색빛 망토가 나오자 리산드로의 봇짐(먹보주머니)이 토하는 소리를 냈고, 올리버는 그 망토를 건네받으며 둘렀다.

“감사합니다.”

“목숨값으로 이 정도면 싸지요.”

“맞아, 망토가 너무 싸구려라 난 입을 수 없겠어.”

쇠사슬에 꽁꽁 묶인 이완이 회색빛 망토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이래 봬도 내가 피부가 민감해 명품이 아니면 몸이 안 받거든. 뭣보다 망토 위에 망토를 두르는 건 너무 병신 같은 패션이라 난 도저히-”

“-제 눈에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완이 말하는 도중 올리버가 멋대로 망토를 둘러준 후 얼굴을 가려버렸다.

“나 너 이제 싫어.”

이완이 간신히 드러난 턱을 움직이며 말했고, 올리버는 다시 사과하며 리산드로에게 이제 뭘 하면 될지 물어봤다.

“이제부터는 그냥 저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나머진 제가 다 알아서 하죠.”

자신에 찬 리산드로. 그는 그리 말하고는 발걸음을 뗐고, 올리버는 쇠사슬에 묶인 이완과 함께 절그럭절그럭 걸어 나갔다.

“진짜 굴욕적이야.”

다행히 굴욕의 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가니 빈 시티 성문 앞에 도착했기 때문으로, 멀리서 보던 것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신기한 풍경이네. 성벽이란 걸 처음 봐 그런가?’

올리버가 성벽이 쳐진 빈 시티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란다, 갈로스에서도 본 적 없는 건축물. 흡사, 과거 중세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는데, 성벽 앞에 설치된 대량의 판자촌을 보자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근데 또 색다르네. 분명, 빈민가인 거 같지만, 란다와 결이 달라.’

올리버가 성벽 밖 판자촌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그런 올리버의 시선을 읽은 건지 리산드로가 눈치 빠르게 설명해줬다.

“난민촌입니다.”

“예?”

“여기요. 정식으로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다들 난민촌이라 부릅니다. 이름 그대로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 난민이죠. 근방의 촌락이라든가, 이베리냐에서 온.”

“아······. 그렇군요. 난민촌치고는 치안이 좋은 것 같네요?”

“예, 다들 부족하게 지내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거나,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건 아니거든요. 어느 정도의 치안과 식량은 보장받습니다.”

“이유가 뭐죠?”

“이 도시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겠지.”

절그럭 소리를 내며 걷고 있던 이완이 척 봐도 알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빈 시티. 흑마법사의 도시. 아마, 난민들의 감정과 시체 같은 걸 흑마법 재료로 공급받는 거겠지. 그 대가로 식량과 안전을 제공받고.”

“······정답입니다.”

리산드로가 인정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올리버는 와인햄에서 조셉을 도와 원료를 수급하던 일이 떠올랐다.

미혼모들에게서 모성을 추출해 필거렛으로 만든 기억이.

“······.”

“안전과 식량은 공짜가 아니니 당연한 거죠. 그래도 여긴 좀 나은 편입니다. 이베리냐의 도시는 일하다 죽을 정도로 착취가 심하고, 시골은-”

“-리산드로 씨. 그럼, 이곳 치안은 흑마법 패밀리가 관리하는 겁니까?”

자기 생각에 빠져있던 올리버가 문득 궁금해져 질문했다.

“예? 아······. 아뇨. 이 도시는 패밀리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럼?”

“조합(組合)으로 운영합니다. 흑마법사 조합요.”

“호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올리버가 관심을 보였다.

올리버가 아는 흑마법사 조직은 범죄 조직의 형태인 패밀리였고, 조금 다른 것이라 해봐야 사이비 종교였다. 이 역시 패밀리와 그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조합이라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 올리버의 상황에선.

다행히 이 도시에서 밀수업자로 경제 활동을 하는 리산드로는 제법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글쎄요. 저도 자세한 건······. 제가 아는 것만 말씀드리면, 비슷한 재주를 가진 흑마법사들끼리 모여 이익을 지키는 겁니다. 좀비를 만드는 조합, 물약을 만드는 조합 이렇게요.”

조작계열, 질병계열, 화기계열, 창조계열.

“그럼, 빈 시티에는 네 개의 조합만 있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열 개 정도 있습니다. 같은 계열도 어느 분야에 집중하냐에 따라 조합이 나뉘거든요. 가령, 좀비를 만드는 조합도 내수용, 수출용, 건축용, 전투용 특기가 다르거든요.”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흑마법은 크게 네 개의 계열로 나뉘지만 거기서도 세부 계열로 나뉘고, 사용 방식에 따라 임의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었다.

“거기다 흑마법 강화 물약이나, 필거렛, 생명의 묘약, 흑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장인들도 있어서, 조합은 꽤 많습니다.”

“그럼, 싸우진 않습니까?”

올리버는 궁금해 물었다. 와인햄만 하더라도 조금의 변동만 생기니 서로 싸울 뻔했고, 실제로 싸우기도 했기에.

란다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만 돼도 흑마법사는 혼자서도 중화기와 맞먹는 위력을 낼 수 있었고, 실력에 따라 그 이상도 낼 수 있었다.

그런 흑마법사 조직이 열 개 정도만 있어도 이 도시는 일종의 화약고라 해도 무방했다.

리산드로도 이를 부정하진 않았다.

“싸움이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다만, 대부분 크게 번지지는 않습니다. 이 도시에는 흑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라, 해적과 거물급 밀수업자들도 있으니까요. 어지간해서는 서로 좋게 좋게 해결하려 합니다. 그건 해적과 밀수업자도 마찬가지고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대, 흑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니, 자기들끼리 으르렁댈 수 없다는 것.

“거기다 대부분 이 도시를 좋아해서 도시 전체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뭔가 하려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이 도시만큼 해적과 흑마법사, 밀수업자가 살기 좋은 도시도 없으니까요.”

리산드로는 설명했다.

흑마법사가 뒷골목이 아닌 거리에 당당히 자리 잡고,

해적이 당당히 항구에서 쉬고, 보급품을 받으며,

밀수업자가 양질의 장물과 흑마법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여기뿐일 겁니다. 밥그릇 조금 더 차지하자고 이곳을 엉망으로 만드는 머저리는 아직 없었습니다. 물론, 좆 같은 도시긴 하지만요.”

리산드로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빛내며 말했다.

“아, 그리고 난민촌 치안은 도시 경비대가 맡고 있습니다. 흑마법 조합은 시청을 통해 난민과 거래하고요.”

“도시 경비대요?”

“바로, 저들입니다.”

리산드로가 거대하고 빈틈없이 건설된 붉은 성벽과 성문을 가리켰다.

그곳엔 중화기로 무장한 이들이 성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하며, 물품을 거두고 있었다.

복장과 무장 수준은 란다의 경찰 이상, 란다의 군인 이하로, 잘 훈련된 갱 혹은 민병대 수준이었다.

“잠시만 이 자리에 서서 기다려주시죠.”

리산드로는 올리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성문 쪽으로 가 경비대원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밀수업이 생업이니, 자연스러운 광경.

몇 번의 대화가 오가자 리산드로는 봇짐 아가리를 벌리더니 술 스무 박스와 설탕 스무 자루, 커피 박스 몇 개를 꺼냈다.

경비원들은 물품 목록을 작성하는 동시에 다른 한 명은 눈깔이 달린 기다란 꼬챙이를 꺼내 봇짐 아가리 사이에 억지로 쑤셔 넣어 안을 확인했다.

흑마법사의 도시답게 흑마법 아이템으로 숨겨둔 게 없는지 확인하는 것.

숨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확인되자, 경비원은 통행세로 물품을 몇 개 가져가고는 도로 봇짐에 챙길 것을 권했다.

그때, 리산드로가 올리버와 이완을 가리키더니, 경비원에게 뭐라 말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거리에서 들릴 리 없겠지만, 이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물었고, 올리버 역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자기 사업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지나가게 허락해 달라고 하네요. 대신, 물건 좀 몇 개 챙겨가도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경비원은 이쪽을 슬쩍 보더니, 술과 커피, 설탕 등을 몇 개 빼내곤 통과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올리버는 리산드로에 의해 별다른 방해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

“-잠깐만.”

경비대원이 지나가는 올리버와 이완을 근엄한 목소리로 멈춰 세웠다.

저벅저벅. 허리춤에 찬 권총에 손을 얹은 채 다가오는 경비대원. 그는 이완의 망토를 살짝 벌려 몸을 꽁꽁 묶은 쇠사슬을 확인했다.

“이게 뭐지?”

도망치려는 이완을 묶기 위해 두른 쇠사슬. 리산드로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한순간 혼란한 감정을 빛냈으나, 그때,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이분 취향입니다.”

“······.”

“······.”

“······.”

“······.”

경비대원과 리산드로, 이완 그리고 하늘이 어색하게 침묵했다.

“도시에선 자제하도록 하쇼.”

경비대원이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떠나 버렸고, 올리버는 이완에게 무사히 지나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올리버를 보며 이완이 말했다.

“나 너 싫어.”

***

성문을 지나고 한 뒷골목.

올리버와 리산드로는 대화를 나눴다.

“다섯 시간 후, 여기 주점에 계시면 제가 거기에 맞춰 시청에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시를 둘러보고 싶었거든요.”

“감사는 제 몫이죠. 목숨까지 구해주셨는데, 포상금까지 전부 절 주신다니요.”

“난 동의하지 않았는데? 내 현상금이면 내 몫도 있어야지.”

“이완 님도 이리 말씀하시니, 리산드로 씨께서 다 가지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야, 인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무시에 이완이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산드로는 시계를 보더니 마지막으로 자신의 임무를 확인했다.

“그럼, 오후 다섯 시쯤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빠르면 5시 20분에 도시 경비대가 주변을 포위할 겁니다.”

“예, 혹시 모르니 저희는 오후 4시 50분에 주점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한 올리버의 대답에 리산드로가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사실, 걱정이긴 하네요.”

리산드로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 올리버의 표정과 무덤덤한 목소리에 저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때였다.

“아, 리산드로 씨. 부탁 하나 더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시죠. 다만, 제가 도시에 사는 데 문제가 생기는 거면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도시 경비대가 주점을 포위하면 이 종이를 주점 하늘 위로 던져줄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는 공간 마법 술식이 적힌 종이를 건네며 부탁했다.

리산드로는 해당 물건이 뭔지 반사적으로 살펴봤다.

“공간마법······. 스크롤입니까?”

마지막에 물음표를 붙인 리산드로.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종이 위에 술식을 그린, 스크롤이라 하기에도 뭣한 너무나도 조잡한 물건이었으니.

“비슷합니다.”

“······던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자세한 건 저도 설명해 드리기 힘드네요. 그저 잭 시장님과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용도입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으면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올리버가 망설임 없이 종이를 거두려 했다. 그런데, 리산드로가 그 종이를 잡았다.

“······?”

“많이 위험한 겁니까?”

“······그렇게 위험하진 않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이걸로 전 빚을 다 갚는 겁니다?”

“빚은 오히려 제가 졌지요.”

리산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민을 그만두고 종이를 챙겨 떠났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땐 올리버와의 약속을 지킬 것은 확실.

리산드로가 떠난 걸 본 올리버는 이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완 님. 저희도 도시를 좀 둘러볼까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난 이제 없어도 되지 않나? 어차피 잭이 올 텐데?”

“아뇨, 이완 님과의 약속도 지켜야죠.”

“뭔 약속?”

“빈 시티와 이완 님을 화해시켜드리는 것요.”

***

올리버는 대략 다섯 시간 동안 쇠사슬에 묶인 이완과 함께 도시를 둘러봤다.

지도 따위는 없었지만, 리산드로에게 도시의 지리를 어느 정도 들은 덕분에 길을 헤매진 않았다.

해적들은 구역인 거인의 대가리 항구,

흑마법사의 구역인 검은 작업장,

밀수업자들의 구역인 신용의 거리,

해산물 시장,

중앙광장 시장.

일반인들이 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올리버는 큰길을 따라 빈 시티를 구성하는 이 여섯 구역을 대충 훑어보곤, 검은 작업장만 한번 들른 후 약속한 주점에 방문했다.

“생각보다 여유롭구만.”

다섯 시간 내내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다닌 이완이 대뜸 말했다.

“예?”

“아니, 친구 구하러 여기 왔는데, 너무 여유로운 거 같아서. 도시도 관광하고 말이야.”

“······그렇네요.”

올리버가 주문한 밀주를 마시며 답했다.

“캬아······. 독기를 제대로 먹었나 보구만.”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대는 거 보니까. 이 도시 지리 파악한 거잖아?”

이완은 쇠사슬에 묶여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 올리버의 속을 꿰뚫어 봤다.

올리버가 관광을 빙자해 도시의 지리를 파악하고, 각 구역의 역할을 두 눈으로 직접 담을 걸 알아본 것이다.

“······관광한 것도 맞습니다.”

“뭐, 거기도 흥미로운 게 많긴 했지. 정말 조합 형태로 운영할 줄이야.”

이완의 검은 작업장을 언급했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산드로의 말대로 검은 작업장은 올리버가 알던 흑마법 작업장과 그 형태를 달리했다.

감정과 사람, 동물의 사체, 질병 등 기존의 흑마법 재료를 사용하는 건 같았으나, 검은 작업장은 좀 더······. 양지의 느낌이 났다.

란다에 있는 흑마법 패밀리보다 확실히 투명하고 건전하며 법에 따라 돌아가는 느낌. 흑마법사의 새로운 형태를 본 기분이었다.

올리버가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많이 흥미롭긴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꼴로 돌아다녀도 특별히 참아준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알면 여기 음식이랑 술값 네가 계산해. 주인장 여기 술 더 줘!”

이완은 양팔이 묶인 채 입으로만 술과 음식을 먹으며 추가 주문했다.

“물론입니다. 쇠사슬을 풀 수 있는데도 절 배려해 안 푸셨으니까요.”

이완이 멈칫했다.

“······뭐라고?”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쇠사슬. 풀 수 있음에도 안 푸시지 않습니까?”

“날 과대평가해줘서 고맙긴 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올리버가 주점 창문을 통해 빈 시티의 배후를 성벽처럼 지켜주고 있는 산맥. 정확히는 그 산맥 옆에 그루터기 흔적만 남은 콩 나무를 보며 말했다.

“······공간 마법이 접목된 콩나무를 만드신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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