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 도움 요청 (4)
마리와의 대화를 끝마치고 올리버는 숲을 벗어나 바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마리가 동의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여하튼 올리버는 나무꾼의 숲으로 갈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X구역에 마련된 임시 작업장에 도착했다.
빠라바라빠라밤!!
작업장에 다다랐을 때 들리는 요란하면서도 귀에 익은 소리. 다행히 제시간에 와준 듯했다.
“네가 이젠 많이 크긴 많이 컸나 보구만······. 이제 나더러 오라 가라 하는 것 보니까.”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고, 난폭한 말투. 에디스였다.
“에디스 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자동차 옆 거대한 간이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며 인사했다. 어째 코가 좀 삐뚤어진 것 같았다.
“하긴, 거리 하나도 아니고 구역 하나를 통째로 자기 안방으로 만든 새로운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니 당연한 건가?”
“저는 그냥 이름만 빌려드린 것뿐입니다.”
“그게 핵심이지. 누가 만들었든, 누가 피똥 쌌든, 중요한 건 이름이니까. 이름을 가진 게 주인이지.”
에디스가 소시지처럼 통통한 손가락으로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얼핏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처럼 들렸으나 올리버는 맨 밑바닥에서 위까지 올라온 수완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쪽팔리구만. 똥값 된 프로메테우스 사 주식을 최고점 3배 가에 팔아치워 인생 최대 빅딜을 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한 놈이 있다니······. X구역 그 똥통을 이렇게까지 바꿔놓다니. 대단해.”
에디스는 거친 언행을 통해 올리버를 인정해줬다. 비꼬는 것도 잊진 않았다.
“혹시, 이거 자랑하려고 부른 거야?”
“아뇨, 오해입니다.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글쎄? 여태까지 안 그러던 놈이 대뜸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니까? 내가 늙고 힘없어 괄시하나 싶었지······. 어쩌겠어? 내 목숨 줄은 너한테 달렸는데?”
에디스가 피의 영약을 은근히 언급했다.
남자에겐 정력을, 여성에겐 젊음을 선물해주는 바토리 패밀리의 비약.
“아, 그러고 보니 드릴 때가 됐죠.”
날짜를 계산한 올리버는 바로 에디스에게 피의 영약이 든 통을 내밀었다.
에디스는 약통을 챙기면서도 뭔가 이상한지 물었다.
“엿 먹을, 뭐지? 평소랑 같으면서도 뭔가 이상한데. 도대체 무슨 일 있는 거야?”
“제인 아가씨가 납치당했습니다.”
멈칫.
에디스가 얼어붙었다. 비유적 표현이긴 했으나, 에디스는 정말 얼음 마법에 당한 듯 굳어 버렸다.
피의 영약으로 좋아진 혈색이 순식간에 퍼렇게 질리고, 늘 불처럼 요동치던 감정은 물에 끼얹어진 것처럼 차갑게 착 가라앉았다.
뭣보다. 욕설을 뱉을 줄 알았건만, 에디스는 욕을 하긴커녕 떨리는 동공으로 올리버를 바라볼 뿐이었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
올리버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었다.
당황, 걱정, 미세한 애정, 강령한 증오, 분노, 원망 등. 서로 맞물리지 않는 감정이 맞물려 빛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였지만, 올리버는 받아들이기도 했다.
애당초 감정이 논리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거였으니.
이미 흑마법 서적을 통해 읽은 적 있었지만, 지금은 좀 더 가슴으로 알 것 같았다.
올리버는 그런 에디스를 배려해 그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렸으나, 에디스는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런 종류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주변은 최악이었지만.
“제인 아가씨를 납치한 건 검은손의 손가락 중 하나인 영원한 아이 팬 님입니다. 갈로스에서 한 파티에 참석하셨는데, 거기서 팬 님의 습격을 받아 납치되셨습니다.”
“······.”
에디스는 침묵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눈치였으나, 그의 자존심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이를 억지로 막았다.
아이러니했다. 저렇게 걱정하면서도, 자존심이 이를 막다니······. 올리버가 계속 말했다.
“참고로 거기 저도 있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제인 아가씨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지만요····. 정말 죄송합니다.”
“······.”
“그래도 지금부터 구하려고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니,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사무적 어조로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게 올리버가 에디스를 지나치려 할 때, 그가 대뜸 입을 열었다.
“······너 친하지? 제인이랑?”
가던 길을 멈춘 올리버가 뒤를 돌아봤다.
“······전 친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거든요.”
“하······. 역시 재주도 좋은 년이라구만. 제 어미를 닮아 남자 꼬시는 건 타고났어.”
미워하는 동시에 애정이란 혼란한 감정을 빛내는 에디스가 중얼거렸다. 올리버는 침묵할 뿐이었다.
“······그럼, 이야기도 많이 나눠봤겠어?”
“예, 물론입니다.”
“그럼······. 제인. 그년의 후견인이 누군지 알아?”
후견인? 생소한 단어에 올리버는 잠시 멈칫했으나, 곧 누군지 떠올렸다.
“미란다 여사님 아닙니까?”
“아, 그건 맞긴 한데, 그거 말고, 믿을 수 있는 후견인······. 젠장맞을, 모르나 보군.”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란다. 그 여자가 사업적으로 제인의 뒤를 봐주는 건 맞지만, 달리 말하면 그건 딱 비즈니스 관계란 거야. 비즈니스 관계는 서로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성립되는 거고······. 아니면, 더 큰 이익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성립되지.”
“더 큰 이익이 있다는 겁니까?”
“아마? 제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업을 꿀꺽하는. 안 그러면 그 미친년이 왜 시스터후드 년들을 챙기겠어? ······아마, 법정 후견인이 없으면 다 빼앗길 거야.”
“······그건 큰일이군요.”
올리버는 진심으로 답했다.
비록, 지금은 제인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다급한 상황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사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제인에게 사업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으니까.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그런데 그런 사업이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면, 어떨지 올리버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올리버가 이에 관해 질문하려는 찰나, 에디스는 의자 위에서 일어났다.
육중한 그가 엉덩이를 들자 간이 의자는 비명을 질렀다.
“에디스 님. 어디 가십니까?”
“천사의 집. 엘리자베스나 코코는 알지도 모르니까. 한 번 알아봐야지. 어차피 제인 그년은 네가 구할 거잖아?”
올리버와 짧게 대화하는 사이 마음을 가라앉힌 에디스가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자동차 창문을 통해 올리버가 물었다.
“제인 아가씨의 사업을 지켜주시려는 겁니까?”
“······내 복수의 트로피가 병신처럼 당하는 건 도저히 못 보겠거든. 그럼, 내 성취도 병신이 된다는 뜻이잖아?”
에디스는 맹수처럼 사나운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런 에디스를 바라보며 올리버가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
똑. 똑.
너무 화려하지도, 또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은 한 집무실.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잠시 후, 집무실 앞을 지키던 비서가 문을 살짝 열어 들어왔다.
“전하(殿下). 성기사 갈라하우트 경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한차례 소란을 정리하느라 평소보다 많은 서류를 살펴보고 있던, 아르망이 작업을 멈추곤 기지개를 켜며 답했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우두둑하며 시원한 소리가 울렸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殿下).”
비서가 문을 열자 한 중년의 신사가 들어와 인사했다.
아르망처럼 단정한 머리에 멋들어진 콧수염, 몸매까지 완벽하게 관리한 중년의 남자였다.
“누가 보냈는지 아니까. 앉게.”
아르망은 그를 반기지도, 그렇다고 홀대하지도 않는 이도 저도 아닌 반응을 보이며 좌석에 앉을 것을 권했다.
성기사 갈라하우트 역시 이런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래, 로드릭이 무슨 일로 보냈나?”
아르망은 추기사제임에도 불구 한껏 풀어진 복장으로, 마법 주전자에서 커피를 손수 따라 갈라하우트에게 대접했다.
성기사치고 특이한 성격이라는 게 실감 났다. 하인을 쓰지 않고, 마법 기구를 쓰다니.
“아셨습니까? 전하.”
“자네 같은 사람을 보낸 거라면 로드릭밖에 없지. 로드릭도 그걸 알고 보낸 거고.”
아르망은 별거 아니라는 듯 온 사람을 본 것만으로 누가, 왜 보냈는지 추측하는 통찰력을 보였다.
그런데도 이리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다.
갈라하우트는 그 배려를 보답하는 의미에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자신을 보낸 성황청의 추기사제이자, 재무관이자, 전(前) 성기사인 로드릭의 용건을.
“로드릭 전하(殿下)께서 대단하다는 말씀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허······. 솎아내고 솎아냈는데도, 아직 쥐새끼가 있나 보군······. 뭐가 대단하다는 건가?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예의상 물어보지.”
“란다의 해결사 데이브에게 한 제안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르망은 커피를 마시며 감탄했다. 흑마법사의 합법화. 분명, 아직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건만, 로드릭은 미리 알아낸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 축하까지 해줬다.
그러나 아주 놀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아직, 축하받기 이르다고 전해. 데이브가 아직 정식으로 수락하진 않았거든.”
“로드릭 전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전하. 그리고 그분께서는 수락할 거라 예상하고 계십니다.”
“그는 예상을 좋아하지. 정확히는 자기 예상대로 흘러가는 걸 좋아하는 거지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르망이 지금 눈앞에 있는 성기사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갈라하우트는 잠시 망설였으나 대답했다.
“받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로드릭이 그리 말했다는 거 말고.”
“······그가 교활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교활?”
아르망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예, 겉보기에는 아닌 듯하나, 데이브. 그의 행적만 보면 쉬이 알 수 있습니다.”
갈라하우트는 확신을 가진 눈빛으로 말하곤 해결사 데이브의 행적을 설명했다.
어느 날 갑자기 란다에 나타나 놀라운 실력과 일 처리 솜씨를 발휘해 명성을 떨치곤, 란다 해결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린 드루이드 해결사를 살해해 모두의 이목을 모아, 자기 사업체를 세운 일화를 말이다.
“그는 단 몇 년 만에 그 탐욕의 도시에 자기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란다에서 힘과 수완이 있는 초인들이 밟는 전형적인 수순 아닌가?”
“맞습니다. 허나, 데이브는 그 결이 다릅니다. 보통 그런 식으로 움직인 초인들은 패도적인 경향을 보여 견제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나, 데이브는 다릅니다. 평소에는 야심과 물욕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그 자리를 차지했죠. 위험한 자입니다.”
아르망은 침묵으로 어느 정도 동의의 의사를 내비쳤다.
일단, 해결사치고는 특이한 행보를 보인 것도 사실이고, 결정적인 순간 때마다 몸집을 한 단계씩 차근차근 불린 것도 사실이니.
여기서 핵심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힘을 키웠다는 점이었다.
파이터 크루, 선택하는 사람들, 개발 반대 위원회와의 담판 등. 그는 비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세를 불렸고, 그렇기에 그 교활한 란다 시(市) 의회조차 그의 성장에 어떠한 견제를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성장해, 대응하기엔 늘 한 박자 늦었으니까.
그걸 전부 의도한 거라면 교활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물론, 의도한 게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운 거지만. 정해진 운명과 같다는 거니.’
“덕분에 저희 역시 그에게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란다 시의회와 마탑 등이 보호해 주고 있어서······. 허나, 전하의 지혜로 놈을 견제할 수단이 생겼습니다.”
“······어찌해 그리 생각하나? 난 그에게 이로운 제안을 했는데.”
“흑마법사의 합법화. 얼핏 엄청난 기회를 준듯하나, 기회는 동시에 위기죠. 힘을 쥐여준다면 그의 본색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란다에 틀어박힌 그의 틈을 잡기 쉬울 거고요.”
정답이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힘을 쥐여주면 됐고, 그로 인해 데이브를 손대기 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말을 많이 할수록 말실수가 많아지듯, 활동 역시 많아질수록 트집 잡을 게 많아질 건 뻔했으니.
이 점도 고려해 아르망이 데이브에게 제안한 것 역시 맞았다. 다만······.
“로드릭 전하께서는 이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일이 진행될 경우, 자신이 지지를 보낼 테니 절대 걱정하지 말라-”
“-참 대단한 사람이야. 로드릭.”
“예?”
갈라하우트가 놀라 되물었다. 로드릭과 달리 아르망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라 정평이 나 있었으니까.
“강경파의 대표인 그가, 온건파인 나에게 이리 친절하다니.”
“······로드릭 전하께서는 옳은 일을 하는데, 그런 성향은 문제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그게 아니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친한 척하는 게 대단하다고 한 거야. 먹히지 않을 걸 앎에도 이러는 뻔뻔함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아르망이 커피를 마시며 비꼬았다. 갈라하우트가 로드릭을 변호했다.
“오해입니다. 전하. 로드릭 전하께서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이러시는 겁니다. 아르망 전하와 마찬가지로요.”
“데이브. 그가 사람들에게 위험한 존재라 생각하나?”
“예. 전하.”
갈라하우트가 확신했다.
“그는 흑마법사이며, 이제는 손가락이란 칭호도 얻었습니다.”
“손가락은 아니지. 검은손 소속이 아니지 않나?”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재밌군. 유죄추정의 법칙이라니. 하긴, 한때 우리 파테르교의 특기긴 했지.”
갈라하우트는 멈칫했다.
“······전하. 그가 보니파를 살해했습니다.”
“죽을 만큼 팼다는 이야긴 들었어도 죽인 건 아니지. 안 죽였으니까. 보니파는 희생하지 않았나? 천사의 힘을 반환하기 위해. 아닌가?”
“······.”
“하긴, 어쩌면 희생당했다는 표현도 틀리지 않겠군. 24시간 내내 희생을 미화한 기도문을 읊어줬으니.”
꽈악.
갈라하우트는 탁자를 내리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눌렀다.
눈앞의 있는 이는 파테르교의 최고위층인 추기사제이자, 세속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 파테르교의 온건파 대표였으니까.
그렇다 해도 갈라하우트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울화를 완전히 없앨 순 없었다.
아마, 보니파가 희생당했다는 말에 갈라하우트 역시 어느 정도 동감하기 때문일 터였다.
아르망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근처로 가 바깥 풍경을 보며 사과했다.
“······말이 심했군. 자네 역시 그 일로 마음이 불편할 텐데.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 너무 억울해하진 말아. 로드릭을 따르기로 한 건 다름 아닌 그대니까.”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인류를 지키고자 하시는 겁니다.”
“그대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전하께서 데이브에게 거래를 제안하신 이유는 다른 뜻이 있다는 겁니까?”
갈라하우트가 질문보다는 추궁에 가깝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게, 파테르교의 추기사제가 정말 흑마법사와 거래하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내 뜻은 자네들이 조사하려는 것 그대로야. 그를 통해 흑마법사는 물론, 온갖 사이비까지 날뛰고 있는 혼란한 지금의 정세를 안정시키려는 것뿐이야. 그가 기대대로 해준다면 협력하고, 그대들 말처럼 교활한 자라면 처단할 뿐이고. 그러니 로드릭에게 똑바로 말해둬. 날 통해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
아르망의 뜻을 들은 갈라하우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전하. 제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갈라하우트가 떠나려는 찰나, 아르망이 다시 경고했다.
“내 경고 허투루 듣지 말라 해. 내가 그대들을 존중하는 만큼 그대들 역시 날 존중하라고. 괜한 수작 부린다면 내가 나서기 전에 아카이브가 나설 테니······. 뭐, 그것 때문에 지금 못 움직이고 있긴 하겠지만.”
갈라하우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 채 아르망에게 인사하고는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그를 떠나보내곤 아르망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았다.
“슬슬 도착했겠군.”
***
“여기가 빈 시티입니까?”
허공에 깨진 균열 사이로 이완과 함께 나온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붉은 흙과 구릉, 청명한 하늘. 물감으로 찍은 듯한 초록색 풀과 수풀이 듬성듬성 보였다.
갈로스의 숲처럼 푸르진 않았지만, 나름의 경치가 있었다.
이완은 대가리 분쇄기 촉 부분에 달린 사람 머리를 갈아 끼우며 대꾸했다.
“아······니? 근처인 거 같아. 좀 떨어진 근처.”
“좀 떨어진 근처요?”
“그래, 뭐 불만 있어?”
“아뇨······. 다만, 빈 시티 바로 앞으로 간 게 아닌 게 이상해서요.”
“왜? 이게 원하는 장소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는 택시인 줄 알았어?”
“아니었습니까? 원하는 곳을 떠올리면 그 장소로 균열을 내준다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원하는 조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대충 비슷한 곳에 균열을 내준다고 했거든! 끙······. 그렇게 편한 물건이었으면, 바로, 인육 요리사가 숨겨둔 성문 앞으로 갔지.”
“아······.”
올리버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는 무슨······. 왜? 아예, 팬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지 그랬어?”
“······가능한가요?”
“가능하겠냐?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쓰면 물에 빠질 수도 있어. 거기다 팬이 있는 곳이면 보통 장소가 아닐 텐데, 뭔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어.”
이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주변을 살펴봤다.
“흐음······. 다행히, 내가 기억하던 그때와 비슷하구만. 존나 촌구석이야.”
올리버는 일부 동의했다. 란다는 말할 것도 없고, 갈로스의 대도시만 돼도 마법과 산업의 시대라는 걸 느낄 수 있었건만, 이곳은 그곳에 비하면 아주 목가적이었다.
올리버는 축소화 마법으로 줄인 자동차를 꺼내며 물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아시겠습니까?”
“다행히 알겠어. 대충 저쪽으로-”
-끄아아아악.
이완이 말하려는 찰나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비명과 자그마한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거리가 상당했음에도 주변이 조용하고 소리가 큰 탓에 비명이 작지만 선명하게 들렸다.
육안(肉眼)으로는 누군지 구분이 불가.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을 떴고, 이완은 사람의 눈알과 눈꺼풀을 단 망원경을 꺼내 살펴봤다.
봇짐을 진 한 남자가 보였다.
“아시는 분입니까?”
올리버가 이완의 감정을 꿰뚫어 보며 물었다. 남자를 본 순간 반응을 볼 땐, 아는 눈치였다.
“어. 빈 시티에서 일하는 밀수업자 애송이야.”
“그럼, 가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 돼.”
“예?”
올리버가 되물었다. 아는 사람인데다, 빈 시티 관계라면 도와줄 이유는 차고 넘칠 터인데.
허나, 올리버는 곧 그 이유를 짐작했다.
“설마······. 저분한테도 빚지신 겁니까?”
이완은 침묵했고, 올리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