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67화 (567/633)

567. 주변 (2)

지금 여기서 슬픈 건 자네만이 아니야.

아르망이 그리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긴 했다. 올리버의 눈에도 보였으니까.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파충류의 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

올리버가 필사적으로 막고, 성기사들이 성법을 발동해 방어막을 펼쳤음에도 압도적인 크기와 힘에서 오는 물리력은 이를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끄아아아악····! 누, 눈이! 눈이 안 보여!”

파편에 눈을 크게 다친 청년.

“아아아아아····.”

하반신이 짜부라진 남편의 시체를 보고 얼빠진 소리는 내는 귀부인.

“저, 정신 차려. 눈 감지 마!!”

자신도 다쳤음에도 의식을 잃은 아들을 깨우는 늙은 귀족.

“제발! 여기도 도와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성기사의 바지춤을 붙잡는 경호원.

“이봐. 그 녀석은 포기해. 이미 죽었어.”

동료 성기사를 포기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라는 성기사 등. 인간의 군상극을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올리버는 아르망의 어깨너머 그 광경을 지켜봤다.

흥미롭게도 그 광경은 란다에서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빈민가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갱들의 무력충돌, 용병들 간의 대리전, 초인들의 싸움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모습과 말이다.

재난과도 같은 폭력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고귀하다고 하는 귀족이나, 성기사, 평범한 경호원과 갱, 민간인 등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그냥 사람일 뿐이었다.

아마, 평소의 올리버였다면 이 사실에 뭔가 흥미와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몰랐을 테지만, 제인이 납치당한 직후이기 때문일까?

올리버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미세하게나 귀찮음과 무관심 그리고 그보다 검은 무언가가 싹 텄다.

그래서 어쩌라는·····.

“왜 저들은 좀 죽고 다치고 죽어도 되는 거 같나?”

올리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아르망이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귀족이란 특별한 계급을 얻고 태어나고, 부유하고, 풍족하게 자랐으니, 좀 재수 없게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대와 그렇다 할 관계도 없는 이들이니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나?”

“·······.”

올리버는 침묵했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도 들었으나, 가슴 속에 축적된 뭔가가 그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막았다. 경험? 양심?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감탄스럽겠군. 그 생각은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머리를 한 대 때리는 듯한 그 말에 올리버가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르망이 진실 여부를 가늠하듯 올리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와 감정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시 한번 자네에게 사과하겠네. 자네 친구를 못 지킨 건. 허나, 재앙은 겪은 건 비단 자네뿐만이 아니야. 저기 있는 이들은 물론, 나 역시 내가 키운 성기사를 여럿 잃었어.”

올리버의 눈은 자연스레 죽은 성기사들에게 갔다. 거대한 파충류의 팔을 막기 위해 스스로 방패가 된 그들에게.

모두 산산이 부서졌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제인을 지키다 팬에게 찔려 죽은 다섯 명의 성기사였다.

“처음부터 제인 아가씨를 노린 거야····. 아니면 자넬 노렸던가.”

아르망이 죽인 성기사들의 상태를 살피며 단호히 말했고, 올리버도 부정하지 못했다.

거대한 파충류의 팔로 단숨에 승기를 잡은 팬은 여세를 몰아 모두를 죽일 수 있음에도, 제인만 납치해 갔다.

올리버의 눈앞에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목표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짐작 가는 바 있나?”

아르망의 질문에 올리버는 생각에 빠졌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신대륙 폐광산에서 팬이 직접 말했으니.

‘내가 진정한 지옥의 왕자다! 널 부른 것도 나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감히, 날 무시하다니! 그 대가를 받아라!!’

인간으로서는 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악마의 힘을 목도했음에도 팬은 스스로 왕자라 주장. 눈, 코, 입,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악마를 공격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 분노, 열망.

그렇게 팬은 왕자라는 존재이길 증명하길 갈망했다.

정작, 악마인 불타버린 자는 조롱할 뿐이었지만. 오히려 악마가 예를 표한 건·····.

·····꾸욱.

올리버는 입을 꽉 깨물었다. 제인이 납치당한 이 와중에도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은 생각하기도, 언급하기 싫다는 이기적인 감정이 솟구쳤다.

분명, 친구일진대····.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신전에서 흘렸던 웃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올리버의 입술은 역겨운 걸 삼킨 듯 비틀렸다. 그러나 아르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팬이 올리버와 제인을 노린 걸 꿰뚫어 본 통찰력이 있는 자가. 대신,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무수히 일어날 거야.”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인육 요리사의 사망 후 흑마법사 사회는 요동치고 있고. 심지어,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들도 서서히 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이건 혼란의 시작일 뿐이야.”

“사이비라면, 백조 교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대표적이긴 하나 그 외에 사이비는 많아. 신대륙에서 수백 년 만에 악마가 강림한 탓인지, 악마 숭배자들의 힘이 강세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거든. 참고로, 란다도 예외는 아니야.”

란다란 단어에 올리버는 반응했다. 왜냐면 그곳은 올리버가 사는 도시며, 선택하는 사람과 파이터 크루, 포레스트가 있는 도시였으니까.

올리버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깊이 뿌리 내린 곳.

필요하다면 떠나겠지만, 가급적 그 필요한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는 곳이기도 했다.

“란다에도 악마 숭배자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어디 란다 안에만 있겠나? 바깥에도 있지. 란다가 잡아먹은 소도시들. 그곳에도 적잖은 사이비들이 발견됐어.”

진심. 그리고 진심이었다.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어, 일개 갱에서 군벌로 성장한 세력도 발견됐지. 란다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번 건 감정을 꿰뚫어 볼 것도 없었다. 란다 주변의 위협은 앞서 들은 이야기였으니.

올리버가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말했지 않았나? 앞으로도 이런 일이 무수히 일어날 거라고. 누군가의 제인이 납치당하거나, 죽겠지. 물론, 자네는 아닐 수도 있지만, 자네일 수도 있겠지.”

협박처럼 들리는 말이었으나, 올리버는 협박하는 거냐고 묻지 못했다.

아르망에게선 협박 특유의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저 순수한 진심과 걱정만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공공(公共)에 대한 걱정.

“나 역시 싫다는 사람 억지로 일 시킬 생각은 없네, 그런 인간이 제대로 할 리도 없을 테니·····. 다만, 한 가지만 명심하게. 세상이 지옥이 되는 걸 방관하고도, 자기와 자기 주변 사람이 멀쩡하길 바라는 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란 걸. 세상은 전부 연결돼 있거든.”

그 말에 올리버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팬을 떠올렸을 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하기도 싫고, 마주하기도 싫으며,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억지로 보듯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올리버는 침묵을 깼다.

“·····제인 아가씨가 괜찮을 거라 한 이유.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팬이 여자를 데려가는 건 웬디를 보충하기 위해서네. 최소한 웬디는 바로 죽이지 않는다더군.”

“웬디가 뭐죠?”

“팬의 은신처인 네버랜드의 유일한 여자이자, 아이들을 돌봐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 그 이상은 모르네.”

올리버의 획하고 고개를 돌려 홀로 남은 너구리 망토 소년을 봤다.

아까 전 올리버에게 위협을 당한 탓인지, 소년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네버랜드는 어디 있죠?”

“모르네.”

“모른다고요?”

“그래, 이름이 네버랜드(Never Land)지 않나?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단둘뿐이네.”

“한 명은 네버랜드의 주인인 팬 님일 테고····. 다른 한 명은 누구죠?”

“후크 선장이지.”

***

아르망이 말하길 자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네버랜드(Never Land)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둘뿐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 한 명, 대략적인 위치를 아는 사람 한 명.

그중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후크 선장이라고 했다.

‘후크 선장? 배를 모는 분입니까?’

‘정확히는 배를 터는 사람에 더 가깝지.’

놀랍게도 아르망은 후크 선장이 해적이라고 했다.

흑마법사와 밀무역업자, 해적의 도시인 빈 시티(Bean City)에 근거지를 둔 악명 높은 해적.

‘그 사람은 어떻게 아는 거죠?’

‘본인이 말하길 네버랜드에서 살았다고 했지.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탈출했고···. 그가 말하길 네버랜드는 사탕과 육포가 열매처럼 나는 나무가 있고, 땅속에는 금화 초콜릿이 가득 담긴 상자가 있다 하더군.’

동화 같은 이야기였으나, 곧이어 악몽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그 외에도 사람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과 쓸모가 다한 인간을 매다는 숲, 365일 자욱한 안개, 네버랜드 근처에 다가오는 배들을 좌초시키는 인어도 있다더군.’

‘·····팬에 관한 정보는 그 후크 선장님에게 들은 겁니까?’

‘그렇네. 거대한 함선과 그 함선을 가득 채울 선원들을 고용할 돈을 주고 얻은 정보야. 최소한 거짓은 아니지.’

올리버는 후크 선장이 어떻게 해적이 됐는지 들은 것 같았다.

여러모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얼굴도 모르는 후크 선장의 수완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고, 이에 응한 아르망 역시 보통이 아님이 실감됐다.

어쨌건, 아르망의 요점은 제인은 웬디가 될 터이니, 당장은 무사할 거란 거였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나,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년 동안이나 웬디로 생존한 경우가 있다며.

‘중요한 건 처세라더군. 얼마나 웬디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제인이 납치당한 건 뼈아픈 사실이었으나, 올리버는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웬디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지 아직도 알 수 없었으나, 최소한 제인이 이를 잘 수행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인은 아주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으니, 최대한 버텨줄 터였다.

‘두 번째 요점은·····.’

촤악!

올리버가 아르망과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중 루시앙이 이완에게 물을 뿌렸다.

도박장 지하실에서 족쇄를 차고 팔자 좋게 자고 있던 이완은 때아닌 물벼락에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아-!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이이이!!!”

놀랍게도 이완은 X구역, 조에게 붙잡혔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 하긴, 그 덕분에 이리 바로 볼일을 보러 올 수 있었던 거니,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올리버가 이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완 님. 잘 주무셨습니까?”

“누가 물 뿌리기 전까지만 해도····. 쌍욕을 박아 주고 싶지만, 자네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으니, 내가 자비롭게 넘어가 주지. 난 죽는 건 무서우니까.”

실없는 농담 같으면서도 올리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본 이완의 말에 올리버가 물었다.

“제 감정이 보이십니까?”

“아니, 하지만, 그림자가 존나 요동치는구만.”

그 말에 올리버는 자신이 선 지면을 내려다보며 그림자를 살펴봤다.

지하실에 설치된 전구에 살짝 비치는 올리버의 짙은 그림자는 올리버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대변하듯 꿀렁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스스로 움직일 것처럼.

술사의 미세한 감정에 반응한 것으로, 올리버는 왜 크리처에게 가급적 먹이를 주지 않았던 건지 새삼 떠올리며, 자기 그림자를 진정시켰다.

다행히 아직 통제권을 장악했는지, 그림자는 곧 잠잠해졌다.

“후우·····. 실례했습니다.”

“실례는 무슨. 통제가 안 될 정도로 강한 크리처는 술사에게 가장 위험한 법인데, 나한테 실례일 게 뭐야? 좆되는 건 네가 좆되는 건데. 솔직히 보고 싶기도 하구만.”

“그럼, 다행입니다.”

올리버는 이완이 불쾌하지 않다는 데 초점을 둬 대답했다.

올리버다우면서도 어딘가 급한 대화법에 이완이 입을 열었다.

“흐음, 어째 나한테 부탁이 있는 거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이완 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난 들어주기 싫은데?”

“다름이 아니라 길 안내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악물고 안 듣네? 그러면 더 들어주기 싫다고.”

“빈 시티로 절 데려다주십시오.”

“이게 무슨 미친 대화법····. 잠깐, 뭐라고?”

“빈 시티. 그 도시로 절 안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올리버는 설명했다. 빈 시티로 가야 하는 이유를.

“자네 친구인 제인이란 여자를 구하기 위해, 네버랜드의 위치를 알고 있는 후크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후크 선장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빈 시티로 가야 하며, 빈 시티로 가기 위해서 그곳 위치를 아는 이완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씨발 너무 논리적이라 뭐라 할 말이 없군. 빈 시티 거기는 지형도 지랄맞은 촌구석이니까. 좋아, 질문 하나.”

“말씀하십시오.”

“네가 빈 시티의 위치를 아는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술에 취해 말한 적 있던가?”

“아뇨, 아르망 전하(殿下)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거기서 어떤 사기꾼이 콩과 소를 바꿨다고 말이죠.”

“입조심해! 사기라니! 정당한 거래였어.”

“어린애한테서 콩 세 개랑 소 한 마리를 바꾼 게요?”

“흑마법의 콩이었거든! 그걸로 지금의 빈 시티가 세워진 거야!”

이완이 소리치며 항변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으나, 이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일이 설명하면 꽤 긴 이야기가 됐으나, 요점만 설명하면 현재 농경 국가 이베리냐의 서쪽 구석에 있는 흑마법사의 도시 빈 시티는 이완의 흑마법 콩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정확히는 이완과 거래해 소와 콩을 바꾼 멍텅구리 잭이란 사람의 손에 세워진 거였지만.

“어허, 흑마법의 콩이었다니까. 그걸로 하늘 높이 날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훔치고, 거인까지 살해해 지금의 빈 시티가 세워진 거야!! 나한테 백번 절하고 매주 10억 란다씩 바쳐도 모자란 은혜지.”

“저는 이완 님께서 그 빈 시티로 절 데려다주셨으면 합니다.”

“안 돼!”

이완이 화들짝 소리쳤다.

“어째서인지요?”

“그 도시엔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특히, 시장인 잭이 날 죽이고 싶어해.”

“이완 님 덕분에 도시를 세운 거니,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가 준 흑마법의 콩이 사실 불량품이었거든. 어쩌다 보니 제대로 작동하긴 했지만, 뭐가 됐건, 불량품을 판 거라 안 돼. 날 죽이려고 할 거야. 현상금도 걸었다고.”

놀랍게도 이완은 단 한 번에 매주 10억 란다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자기가 죽을죄를 지었다고 시인했다.

뭐랄까. 정말 이완다웠다.

“거기다 거기에는 내 제자들도 있어서 안 돼.”

“그건 좋은 것 아닙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 그놈들 10년 치 일당을 미리 받고 팔았거든.”

“신이시여 맙소사.”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루시앙이 경악했다.

약탈자와 강도, 도둑의 후예인 밀리유가 보기에도 이완의 행태는 상식을 초월한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완이 고개를 저었다.

“빈 시티·····. 그 촌구석 도시는 내가 잘 알지만, 안내는 못 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이 너무 많거든. 그 부탁은 못 들어주겠어.”

이완이 근엄하게 이야기했다. 마치, 이걸로 끝이라는 듯. 허나, 올리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좀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이완 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너처럼 물렁물렁한 놈이 사회의 온갖 쓰레기들이 있는 그곳에서 날 지켜줄지 의문·····. 그 종이 뭐야?”

이완이 올리버의 손에 들린 종이 다발을 보며 물었다. 어째 생긴 게 불안했다.

“이완 님께 지신 차용증입니다. 루시앙 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에게서 받은 겁니다.”

그랬다. 팬의 습격이 끝난 후, 올리버는 루시앙을 비롯한 밀리유의 보스들에게 도움을 요청, 이완의 차용증을 얻었다.

원래는 돈으로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모두 그냥 양도해줬다.

“너 이런 성격이었어요?”

올리버의 빠르고 단호한 행동에 이완이 존댓말로 물어봤다.

“제가 좀 마음이 급해 그렇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그래도 내가 싫다 하면 어쩔 건데? 밀리유처럼 내 살점이라도 자를 건가?!”

“아뇨, 그럴 리가요? 차용증 한 장당 이빨을 하나씩만 뽑을 겁니다.”

올리버가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설득엔 이빨 뽑는 것만 한 게 없다고 말이다.

이는 사실이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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