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66화 (566/633)

566. 주변 (1)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그곳에 늘 안개가 끼는 스페이드 모양의 작은 섬이 있었다.

섬의 위치는 극비. 단 두 명을 제외하면 이 섬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고. 심지어 그중 한 명조차 구체적인 위치는 알지 못했다.

그런 비밀의 섬 꼭짓점 부분에 어둠이 이슬처럼 맺히더니, 이내, 소용돌이 형태의 거대한 포털이 열렸다.

쏴앙.

공간을 가르는 특유의 시원한 소리와 함께 그 사이로 네 명의 소년과 거대한 크리처, 그 크리처에 붙잡힌 여성이 나왔다.

검은손의 손가락 팬과 그 부하들. 그리고 제인이었다.

‘여긴····.’

기괴하게 생긴 크리처에게 붙잡힌 제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얼어붙었음에도, 정신을 놓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살펴봤다.

공기, 풍경, 분위기 모든 것이 낯설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제인은 필사적으로 눈을 굴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다.

‘섬이야. 여긴·····. 안개가 낀 섬. 주변은 나무뿐이고·····. 목이 매달린 인형들이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제인은 시야를 멀리 잡아 점점 좁히는 식으로, 주변의 정보를 모아갔다.

사면으로 보이는 해안선과 그 해안선을 따라 짙게 펼쳐진 안개, 통일성이라고는 없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 그런 나무 위에 매달린 헝겊 인형들이 보였다.

빈말로도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다.

“대장!”

제인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와중 웬 소년이 소리쳤다.

아이들이 원래 소리를 잘 내는 편이긴 하나, 시스터후드에서 자라고, 근래 고아원도 여러 곳 방문한 제인은 소년이 괜히 소리치는 게 아님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놓고 온 거 같아.”

너구리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이 아이 특유의 두서없는 말투로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이 당황했다는 것뿐. 소년을 관찰한 제인은 곧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너구리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 분명 쌍둥이였건만, 다른 한쪽이 보이지 않았다.

숲에 두고 온 거였다.

“대장. 놓고 온 거 같아? 지금 데리러 가야 해.”

너구리 망토를 뒤집어쓴 반쪽짜리 쌍둥이는 팬의 옷자락을 잡으며 부탁했다. 팬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러한 팬의 태도에 너구리 소년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깃들었고, 이윽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대장아····. 지금 데리러 가야 한다니까아!”

형제를 잃은 소년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채 팬에게 매달렸다.

방금까지 자신들을 습격한 흑마법사라는 게 의심이 될 정도로 애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애 같다는 건 어폐가 있을지도.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년들은 실제로도 애들이었으니까.

흑마법을 배운 애들.

제인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 같았다. 새삼 미친 세상이라는 게 실감이 나.

결국, 너구리 소년의 매달림에 팬이 반응했다.

“일부러 두고 온 거야.”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어찌나 차가운지 얼굴이 터질 듯 울던 너구리 소년마저 놀라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우, 우리 싸, 쌍둥이잖아····? 대장 부하? 그, 근데 왜?”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 팬이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대단하다고 했잖아? 가짜한테. 그런 놈은 내 부하가 아니지.”

무슨 말인지 제인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주변의 소년들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했다.

곰 망토를 두른 뚱뚱한 소년은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며 눈을 내리깔았고, 여우 망토 소년은 자책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오직 너구리 망토 소년만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따질 뿐이었다.

“그, 그건····. 실수인데····? 그건·····실수. 실수라고······!!”

그러나, 팬은 무감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팬을 상대로 반쪽짜리 쌍둥이가 매달렸다.

“대장 부하 쌍둥이는 쌍둥이여야 하잖아?! 근데, 없으면 쌍둥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새 쌍둥이를 뽑아야지·····. 너희처럼.”

“·····어?”

반쪽짜리 쌍둥이가 멍청하게 되물었고, 되묻자마자 제인을 붙잡고 있던 크리처가 거대한 발을 번쩍 들어 소년을 짜부라트렸다.

뿌작!

거대한 고기 풍선이 터진 듯한 소리가 울리며, 제인은 아이가 산채로 터지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아주. 더러운 기분이었다.

“으, 지저분하긴·····. 야, 커비.”

“으, 응?!”

작은 폭군의 부름에 커비가 흠칫 놀라며 답했다.

제인은 이 소년들이 왜 그토록 겁을 먹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가서 새 쌍둥이들 뽑아 놔. 이번에 제대로 된 애들로.”

“아, 알았어. 대장····. 뽀, 보, 뽑아놓을게!”

곰 망토 소년은 말을 더듬어 대답하더니, 뚱뚱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슬라이틀리. 넌 가짜 웬디 데리고 와. 이제 영 아니더라.”

여우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팬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렇게 팬과 제인은 단둘만 남게 되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둘.

먼저 입을 연 것은 팬이었다.

“웬디·····.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

“예·····. 어디죠?”

제인은 자신을 웬디라고 멋대로 부른 팬에게, 따지거나, 되묻는 대신 맞장구쳤다.

여성의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 시스터후드에서 배운 처세술의 결과.

다행히 팬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주름진 얼굴을 보이며 씨익 웃었다.

“오····. 내가 안 징그럽나 봐?”

“외모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요.”

제인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실제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나쁜 짓이거든요.”

“핫하! 그거 멋지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웬디지! 저런 거 말고 말이야.”

팬은 아이들의 손에 붙잡혀 이쪽으로 끌려오는 웬 소녀를 가리켰다.

제인보다 어린 소녀로, 벌꿀 색깔의 머리카락에 하늘빛 드레스를 입은 예쁘장한 소녀였다.

“자, 잠깐만, 어디로 가는 거야? 말 좀 해줘. 우리 좋았잖아? 응? 애들아?”

비록, 그 아름다운 외모도 피로와 두려움, 스트레스에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아이들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온 소녀는 곧 팬을 발견했다.

“팬?”

“안녕. 웬디.”

팬은 주름진 자기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맞이했고, 그 얼굴을 본 소녀는 한순간 혐오감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현재 팬의 얼굴은 아이와 노인이 합쳐진 듯한 이질적인 불쾌함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으니. 실례일진 몰라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물론, 팬은 그런 사실을 고려해 줄 생각 따위 전혀 없었지만.

“아, 실수. 다시 할게····. 넌 가짜 웬디니까. 안녕, 가짜 웬디.”

가짜 웬디. 무슨 약속된 단어라도 되는 듯 소녀는 그 단어에 흠칫 놀라며, 다급히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팬! 이러지 마세요! 제가 더 잘할게요! 제가 저 여자보다 더 잘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이, 바이.”

팬이 손을 흔들며 소녀에게 멋대로 인사했다. 그와 동시에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 위에서 한 포댓자루가 내려와 소녀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거대한 포댓자루는 소녀를 순식간에 삼켜 몸에 딱 맞게 들러붙어, 흡사 헝겊 인형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뒤이어 나무 위에서 밧줄이 내려와 소녀의 목을 둘러 홱 당겨버렸다.

팽!

밧줄이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두 다리가 허공에 뜨며, 숲에는 또 다른 인형이 나무에 매달렸다.

“웬디. 이제부터 네가 애들을 돌봐줘····. 그 엄마처럼.”

“예, 그러죠.”

웬디라는 게 대충 뭔지 파악한 제인이 대답했다. 웬디라는 것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지만, 동시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인 듯했다.

다행이었다. 당장 위험한 건 아니란 거였으니.

그런 제인의 시원한 태도에 팬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킥킥킥킥킥! 너 진짜 재밌다? 하긴, 웬디는 재밌으니까·····. 아니면, 혹시 기대하는 거야? 그 가짜가 널 구해주러 올 거라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자기 위주의 대화에 제인은 익숙하다는 듯 맞춰줬다.

“······글쎄요?”

“그렇다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나을 거야. 그 녀석이 오자마자 내가 콱 먹어 치울 거거든.”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걱정하진 않으니까요.”

“그래?”

“예.”

제인은 그리 대답하며 마지막으로 봤던 올리버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그의 모습을.

***

아직까지 흙먼지가 나부끼는 난장판 속에서 올리버는 고장 난 장난감 인형처럼 정지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눈앞에서 제인이 납치당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두 번째 친구가 말이다.

올리버는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감정을 맛봤다.

그 감정이란 다름 아닌 무력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고아원과 광산에서 자란 올리버에겐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흑마법사가 된 지금의 올리버에겐 너무나도 낯선 감정.

그 모순된 감정에 올리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한 번에 수십 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제인이 어디 갔는지, 왜 제인을 데려간 건지, 처음부터 제인을 노린 건지, 목적이 뭔지, 제인은 무사한 건지, 왜 이렇게 된 건지 말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 없었는데, 그때 눈앞에 홀로 남겨진 너구리 망토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저 소년들 때문이었다.

저 소년들로 인해 올리버의 발이 멈췄고, 종국엔 이와 같은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만약, 늑대-크리처를 타고 계속해 이동했다면, 제인을 빼앗기지 않았을 테니.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올리버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이 느낌은 과거 그것들과 같았다.

마텔에서 고해성사했을 때와 셰이머스의 부하에게 팔이 잘린 캔트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무력감. 그리고 그 무력감에 기인한 분노.

“히, 히익!”

겁에 질린 목소리에 올리버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눈앞에 소년이 있었다.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소년에게 다가간 것.

방금까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울며 팬을 부르짖던 소년은, 이젠 올리버에 대한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팬을 찾았다.

“대장····.”

소년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았다.

“대장····?”

소년은 주저앉은 채 뒤로 기어갔다.

올리버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대장····! 대장! ····때장!!”

소년은 주저앉은 채 팬을 부르짖으며 계속해 뒤로 기어갔고, 올리버는 한 걸음, 한 걸음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올리버와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술래잡기를 하였고, 어느새 소년은 한 나무 귀퉁이에 몰리고 말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은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올리버와 소년의 거리를 가까워졌고, 이윽고 올리버는 소년의 바로 코앞에 멈춰 섰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머리가 지배당하는 올리버는 천천히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고,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 순간 올리버는 소년의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비하게도 고아원 원장과 광산 감독관과 그 느낌이 비슷했다.

올리버가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들과.

이 알 수 없는 조화(造化)에 올리버는 멈칫하며, 머릿속에 과거 나눴던 여러 대화가 메아리쳤다.

‘난 자네 그런 성격이 좋네. 그러니, 부디 이런 일로 복수나 분노, 증오에 물들지 말게. 그런 감정은······. 아주 중독적이거든. 자넨 안 그랬으면 좋겠어.’

‘당신은 제······. 아니, 우리 영웅이니까요.’

‘그럼, 제가 믿을게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가 당신을 믿고 지지하며, 도울게요.’

‘데이브에게서 배운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아까 전 파티장에서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캔트, 조, 요안나, 제인과 나눴던 대화. 올리버가 일선을 넘으려 하거나, 흔들릴 때마다 다 잡아준 말.

그 말이 떠올리자, 올리버는 소년에게 닿기 직전인 손을 간신히 거둘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올리버 혼자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였으니. 그래도 말이다·····.

“-그 꼬맹이에게 분풀이해도 소용없을 거야.”

아르망이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분출되지 않는 욕구가 출구를 찾은 듯 올리버는 빠르게 고개를 획 돌렸고, 아르망의 곁을 호위하던 성기사 둘이 흠칫 놀랐다.

이해했다. 올리버가 지내던 고아원의 원장과 광산 감독관은 무서운 사람들이었으니.

그러나, 아르망은 무섭지 않은지 그렇다 할 감흥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양옆을 지키는 성기사를 물리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게.”

“허나, 전하(殿下)·····.”

“괜찮으니까. 어서.”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 아르망의 의지에 성기사 둘은 경례를 하며 물러났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소용없다니요?”

“말 그대로야. 총을 쏜 사람이 잘못이지, 총알에 무슨 잘못이 있겠나?”

“총알요?”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나, 그런데도 되물어보았다. 어떻게든 주위를 돌리기 위해.

“그래, 총알. 자네 눈에 저 꼬맹이가 그 이상으로 보이나?”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팬이 버리고 간 걸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소년은 팬에게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탁. 탁. 탁.

올리버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쿼터스태프로 바닥을 짚으며, 아르망의 앞에 다가갔다.

쿼터스태프가 지면에 닿을 때마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아르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 잘 아시는군요?”

“성기사니까. 그 정도는 알지. 어쨌건, 제인 아가씨도 당장은 괜찮을 거야.”

진심.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제인을 지켜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미안하네.”

진심.

“그런데 못 지키셨군요····. 성기사님들을 붙여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눈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구만.”

올리버의 추궁에 아르망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그 시선을 따라갔고, 단검에 찔린 듯한 상처를 입은 다섯 구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제인을 중점적으로 지키던 성기사였다.

“아냐, 그게 아니야·····. 더 넓게 봐.”

꿰뚫어 보는 듯한 아르망의 말에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시야를 넓혔고, 곧이어 남편, 친구, 동료를 잃고 비명을 지르는 귀족과 그 경호원. 그런 그들을 치료하는 성기사를 볼 수 있었다.

“자네에게 미안하고, 자네가 슬픈 것도 이해하지만·····. 지금 여기서 슬픈 건 자네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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