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60화 (557/633)

560. 제인 (2)

“호오············.”

갈로스의 안정과 흑마법의 합법화. 해당 설명을 들은 제인은 그녀답지 않게 길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가식적인 반응이 아닌 진심. 그만큼 놀랐다는 의미였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들끓는 관심, 호기심을 보니 잘 말한 것 같았다.

“하······. 확실히 아르망 추기사제님이 거물은 거물인가 보네요.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제안을 하다니요.”

“다행이네요. 저만 이상한 건가 싶었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이상하다 생각하고, 아마 대부분 사람은 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누가 흑마법사를 합법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하겠어요. 하지만-”

제인은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가능성이 있어요. 중요한 건 바로 이거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최소한 불가능하진 않아요.”

제인이 확언했다.

“아르망 추기사제님의 논리는 제법 그럴듯하거든요. 지금이 인류의 황금기, 마법과 산업의 시대라 극찬하지만, 한편으로는 흑마법사의 수도 절정에 달하고 있는 시대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흥미롭게도 역사상 가장 발전했고 부유한 지금 시대는 몇몇 지식인들에겐 또 다른 암흑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근거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 빈부격차와 빈민층, 전쟁, 그리고 폭증한 흑마법사의 수가 있었다.

“대중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흑마법사의 수는 지금이 최고조에 달했죠. 겉으로는 인정 못 해도, 무력 진압에 한계를 느끼는 전문가들이 꽤 될 거예요. 그런 상황에 아르망 추기사제님과 같은 거물이 총대를 멘다면 흑마법사의 합법화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죠.”

제인은 그렇게 말을 끝마친 다음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투자자로서 정말 그런 시대가 오면 어떤 돈벌이가 있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확실히 전에 보았을 때보다 태도나 식견 등이 더 깊어졌다.

그렇기에 놀라웠다. 이리 변했음에도 고아원과 복지시설 등에 돈을 투자한다니.

올리버가 제인을 빤히 바라보며 감탄하는 그때 제인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물어보았다.

“수락하셨나요?”

순수한 호기심. 올리버는 잠시 침묵한 뒤 대답했다.

“······아뇨.”

“아······.”

제인이 아쉬움이 뒤섞인 탄성을 뱉었다. 그러면서도 그 감정을 억누르며 올리버의 안색을 조심히 살펴보았다.

“실례가 안 되면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올리버는 제인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정작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르망과의 대화 이후, 그 정확한 이유를 올리버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했다.

그런 올리버의 모습에 제인은 어떠한 재촉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마치, 말해줘도 되고,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긴 침묵이 이어지고 이어졌고, 올리버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자신이 없어서요.”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요.”

“아뇨, 말하고 싶네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 말에 제인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 어떠한 속셈도 없는 순순한 호의로. 그 호의를 본 올리버는 아까 전보다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 거절했습니다.”

“흐음······. 솔직히 엄청난 일이긴 하죠. 말이 인육 요리사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거지, 파테르교의 후원을 받아 흑마법사 사회를 재편하라는 뜻이니까요. 그에 따르는 이권은 상상을 초월할 거고요.”

“예, 아둔한 저조차도 그건 예상되더군요.”

“그래서 거절하셨고요?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저야 돈만 넣는 사람이라 손익 계산만 하면 그만이지만, 실제로 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제인은 올리버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엄청난 이권에는 그에 걸맞은 위험과 견제도 따르고요. 가령, 아르망 추기사제님께서 도움을 준다 해도 파테르교 전체가 어떨지는 의문이고, 마법사들 역시 우호적이지는 않을 거예요. 마법사들은 흑마법사를 가짜 마법사라 경멸하니, 자신들에 대한 모욕, 어쩌면 위협으로 간주할지도 모르죠······. 전체적으로 고려하면 거절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선구자는 총 맞기 십상이니까요.”

그런 제인의 태도에 호수를 바라보던 올리버는 시선을 돌려 제인을 바라봤다.

에디스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나 그의 유산 일부를 얻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결국, 성공한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는 올리버와 참으로 다른 사람이었다.

“음······. 어쩌면 귀찮아서 거절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귀찮다고요?”

“아르망 추기사제님께선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보기에는 제가 귀찮아 거절한 거 같다고요.”

“흐음······. 본인 생각하기에는 어떤데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귀찮아서 거절한 건지 아니면, 정말 무리라고 생각해 거절한 건지요. 다만, 거북하긴 합니다.”

“왜 거북하죠?”

“너무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라 제게 맞지 않은 거 같아서요. 그런 건 좀 더······. 특별한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제 귀에는 이상하게 들리네요.”

울타리에 몸을 기댄 제인은 아까 전보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표정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럼, 데이브에게 어울리는 일 같은데요?”

“······.”

올리버는 침묵했다. 분명, 기쁜 말이긴 했지만, 그 말에서 올리버는 씁쓸함과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눈치 빠른 제인도 올리버의 그런 반응을 짚었는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 말이 기분 나쁘셨나요?”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기분 나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정말요?”

“예, 제인 아가씨 같은 분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헷갈리네요. 정말 순진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척하는 건지요.”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기쁘다면서 반응이 왜 그래요. 아는 척하긴 싫지만, 기뻐하는 기색은 아닌데요. 저 그럼 상처받아요.”

“죄송합니다······. 그저, 저랑 어울리는 단어 같지는 않거든요. 특별하다는 단어요. 맞지 않으니 듣기가 민망합니다.”

“정말 자기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심으로?”

지금까지 올리버를 배려하기 위해 강하게 묻지 않던 제인이 처음으로 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것.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올리버가 놀라면서도 답했다.

“제가 해결사로 자리 잡아 명성을 쌓고, X구역에 사업체를 세웠다지만-”

“-아아. 잠깐만요.”

제인이 양 손바닥을 내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말한 건 그거 아니거든요. 데이브가 얼마나 강하고, 수완이 좋은진 저도 알아요. 홀로 란다로 와 해결사로 자리 잡고, X구역에 당당히 사업체를 세운 건 이미 너무 유명하니까요. 아마, 제가 데이브였으면 강연을 했을 거예요. 맨손으로 란다에서 성공한 전설이라고요. 한번 강의만 해도 수백억은 들어올걸요?”

제인이 올리버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과장된 손동작을 하며 농담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갈로스에 퍼지고 있는 소문도 들었고요. 새로운 손가락의 탄생, 인육 요리사의 재림이라고요······. 정말 대단한 이야기예요. 나이를 고려하면요. 특별이란 단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죠. 하지만!”

제인이 검지를 세워 보였다.

“제가 말한 특별하다는 건 조금 결이 달라요.”

“······어떻게 다르죠?”

제인은 검지를 내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데이브가 처음이거든요. 제가 쌍욕 하는 모습을 보인 건요. 기억하시나요?”

“예. 캔트 님의 도움을 받았을 때요. 그때, 제인 아가씨께서 씨발!!!”

올리버가 당시 제인이 했던 욕설을 똑같이 따라 했다.

“······씨발! 씨발!! 빌어먹을 이런 개 좆같······! 이라고 하셨죠. 3분 동안요.”

“어머, 씨발. 그 정도로 자세히 기억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제인이 창피함을 빛내면서도 욕을 섞어가며 농담했다.

“제가 남에게 욕하는 모습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에요. 특히, 남자 앞에서는요. 왜 그런 줄 아나요?”

“글쎄요?”

“첫 번째는 그런 식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이에요. 저 같은 여자들은 유산을 못 받았을 때를 대비해 남성을 기쁘게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보통 남자들은 욕하는 여자를 안 좋아하고요.”

“전 욕하셔도 제인 아가씨가 좋습니다.”

귀가 살짝 달아오른 제인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는 제가 개인적으로 욕을 안 좋아해서예요. 욕을 하면 에디스를 닮은 거 같거든요.”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인이 욕할 때의 모습은 에디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물론 동료 여자들 앞에서도 욕한 적이 없어요. 근데, 데이브 앞에선 했어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요.”

“뭐, 그렇긴 하죠. 그래도 데이브가 편하게 해달라 한 덕분에 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살면서 그렇게 상쾌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제인은 진심을 담아 지난 일에 관해 감사를 표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제 목표는 어떻게든 에디스의 재산 중 일부를 받아 그걸 뜯어 먹으며 여생을 보내는 거라, 늘 답답하게 지냈거든요.”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투자자가 되셨죠. 대단하십니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좀 대단한 것 같아요. 적어도 제 앞에서 제 능력을 비난할 사람은 더 이상 없으니까요······. 데이브 덕분이에요.”

“저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되물으며 사양하려 찰나, 제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 이건 제가 정하는 거니까 마음대로 부정하지 마세요.”

“······왜 제 덕분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제인 아가씨. 혹시, 제가 도와드린 것 때문입니까?”

“뭐 그것도 부정할 순 없죠. 중요한 순간 때마다 절 도와줬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건 데이브가 절 인정해줬기 때문이에요.”

“제가요?”

“기억 안 나나요? 경매장에서 제가 초라하거나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것요.”

“아뇨, 기억합니다.”

제인은 웃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제가 대단하다고도 했고, 데이브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 했죠. 웃고 노력하는 모습이 예쁘다고도 했고요.”

“예, 그것도 기억합니다.”

“그런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어요. 시스터후드에서 기른 사생아 계집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요.”

“······.”

“그래서 왠지 저도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노력하면 될 것 같은. 지금 제 감정을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지.”

“······진심이군요.”

제인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 데이브는 최소한 제겐 특별한 사람이에요.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거고요······. 그러니 자신을 좀 더 특별하게 생각하세요. 자기를 존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남을 존중하겠어요.”

“좋은 말이군요.”

“데이브에게서 배운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아까 전 파티장에서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인이 마지막에 사심을 섞어 갑작스레 말했다. 참고 있던 욕구가 불현듯 튀어나온 듯.

자기가 말하고도 놀랐는지. 제인은 올리버가 채 말을 떼기도 전에 다급히 덧붙였다.

“아, 화가 난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고요.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절 위해 그래 주신 건데 어떻게 화를 내겠어요. 정말 진짜 아니에요.”

올리버가 당황한 제인을 진정시켰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방금 제 말은 잊어주세요. 그저 제 욕심 때문에 이러는 거니까요. 그냥······. 잊어주세요.”

제인의 모습을 본 올리버는 파티장에서 한 남자를 쏘아붙인 걸 떠올리며 질문했다.

“······많이 실망하셨나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솔직히 통쾌하기도 했거든요. 다만, 전 평소의 데이브가 더 좋아서요.”

제인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다급히 말했다.

“예의 바르고, 존댓말 꼬박꼬박 해주고, 저희 같은 여성에게도 편견 없이 대해주니까요. 뭣보다 늘 선을 넘지 않으시려고 하죠······. 전 그게 좋아요. 강한 힘을 가진 남자들은 늘 그걸 못하거든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근데, 전 그게 싫어요.”

“······.”

“그래서 아까 같은 말씀 드린 거예요······. 중요한 건 데이브의 의지인데. 이기적이죠?”

올리버는 대답 대신 왼손에 쥐고 있던 쿼터스태프를 이용해 제인의 허리에 둘러 그대로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제인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리버의 품 안에 안겼고, 그 사이 올리버는 한쪽 발을 들어 그대로 지면을 쾅 하고 밟았다.

“······!”

그러자 호수 쪽에서 형용하기 힘든 소리가 울리더니, 웬 인영(人影)이 물장구를 쳤다.

사람의 몸에 물고기의 머리, 손에 물갈퀴가 달린 물고기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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