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 제인 (1)
“전하는 어디 가셨나?”
“글쎄요. 잠시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습니다.”
“허······. 아쉽구만. 아직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도 못했는데.”
“죄, 죄송합니다.”
파티장 곳곳에서 아쉬움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작게 울렸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곳 파티장에 얼굴을 비춘 귀족들은 밀리유를 보러 온 사람도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아르망 추기사제를 만나러 온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선택받은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파테르교의 지배자 중 하나이자, 이곳 갈로스의 재상(宰相)까지 겸임하는 거물 중의 거물.
란다 이상으로 인맥에 많이 의존하는 갈로스의 기형적인 정치, 경제 구조 특성상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자기보다 높은 사람과 안면을 트고, 친해져야 더욱 많은 부와 안전이 보장받았으니.
민중파가 몰락하고, 다시 귀족파가 득세하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곳 갈로스에 지낸 제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조심했는데, 앞으로는 골치 아프겠네.’
제인은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제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건만, 지금은 거짓말처럼 그 반대가 되어 있었다.
호의보다는 경계, 배척 더 나아가 경멸, 적대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지만.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애송이긴 하나 귀족을 대놓고 모욕했으니.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지만 한편으로 동족 의식이 강한 갈로스 귀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터.
당연히 그 데이브의 친구인 제인 역시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방금까지 제인 곁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제인을 흘깃 보기만 할 뿐 투명 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제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 로랑 부인과 보아르네 남작 역시 마찬가지.
친분이 쌓였다 해도 비즈니스 관계였으니,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그래도 허무하긴 허무했지만.
귀족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갈로스 어를 배우고, 갈로스의 귀족 패션을 연구하며, 그들의 취미, 교양을 익히고, 코르티잔에 거금을 주고 정보를 사 현지 상황을 파악하는 등 몇 개월에 걸친 노력이 단 몇 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으니.
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애당초 이쪽 사람들이 이런 근성을 가진 건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았으니. 무엇보다 데이브는 제인을 위해 그런 것. 분명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긴 했으나, 화를 낼 순 없었다.
“훗.”
제인은 당시 올리버가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웃음을 짓더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또각또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일이 꼬인다 해도 새로운 플랜을 짜면 그만이었으니. 그렇게 제인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어머?”
별장 밖으로 나온 제인은 거대한 호수 산책로 위에 홀로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성기사를 따라갔던 올리버로, 볼일이 끝난 건지 그는 혼자서 칼로리바를 먹고 있었다.
제인은 그런 올리버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걸로 배가 차나요?”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는지 평소 주변의 접근을 빨리 눈치채던 올리버는 제인이 바로 옆에 다가와서야 그 존재를 눈치챘다.
“아······. 제인 아가씨.”
“뭐가 고민이 있는 거 같네요.”
“아······. 예, 그보다 아가씨께선 여기 무슨 일로 나오셨는지요?”
“잠시 바람 좀 쐬려고요. 안에만 있기 답답해서요.”
제인은 올리버를 배려해주기 위해 연기를 하며 둘러댔다.
힘과 재산, 학식, 능력에 비해 과할 정도로 배려심이 많은 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게 뻔했으니.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 올리버는 곧바로 상황을 눈치챘다.
“저 때문이군요.”
제인이 눈을 감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발요······. 제 감정 좀 마음대로 보지 말아 주실래요? 부끄럽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반사적인 거라.”
“미안하면 그거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주시겠나요?”
제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제를 바꿀 겸 궁금증을 해소할 겸 올리버의 탈색된 한쪽 머리와 붕대를 두른 오른쪽 팔을 가리켰다.
척 봐도 부상이었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 탓에 물어보지 못했다.
“일하는 도중 입은 부상입니다······. 자세한 건 업무 특성상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제인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사란 직종은 임무 수행 능력만큼이나, 비밀을 지키는 신용 역시 중요한 일이었으니.
제인은 곤란한 질문을 하는 대신, 좀 더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습니다.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거 다행이네요.”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올리버가 또 반사적으로 제인을 감정을 꿰뚫어 보며 물었다. 뭔가 언짢거나, 섭섭해 보였다.
“또, 감정을 읽으셨나요?”
“아뇨, 분위기와 아가씨의 표정을 읽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또 읽었습니다. 눈이 통제하기가 쉽지 않네요.”
“하아······. 솔직히 말씀하셨으니 용서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예, 괜······. 아뇨, 약간 섭섭하긴 하네요.”
제인이 거짓말 대신 진심을 말했다.
“뭐가 섭섭하신지요?”
“글쎄요? 이래 봬도 제가 데이브의 두 번째 친구인데, 다친 것도 이제야 알게 됐고, 아무것도 못 도와줬잖아요.”
“아까 전에 도와주셨지 않았습니까? 파티장에서요.”
올리버는 제인이 놓친 사실을 짚어줬다. 제인이 멈칫했다.
“그건······. 좀 더 일찍 찾아오지 그러셨어요. 그럼, 더 제대로 도와줬을 텐데요.”
“라빌리로 온 지 얼마 안 됐고, 개인적으로 할 일이 좀 있었거든요······. 뭣보다 제인 아가씨도 바쁘신 것 같았고요.”
“뭐 바쁘긴 했지요······.”
제인은 부정하지 못했다.
세간에 제인이 운 좋게 대박을 터트린 것으로 알았고,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제인이 여유롭게 보낸 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다.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걸 잡는 건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었으니.
지난 몇 개월 동안 바쁘게 보낸 제인이 그 증거.
그런 와중에 올리버가 왔다고 자신이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자 제인은 묘한 안타까움과 허무함을 느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
그런 제인을 감정을 꿰뚫어 본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때마침 궁금한 게 두 개 있거든요.”
“······뭐죠?”
제인은 반기면서도 의심했다. 올리버가 괜한 배려를 해주는 게 아닌가 싶어.
올리버는 바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한쪽 부분이 허옇게 센 머리를.
“제 머리 스타일 괜찮습니까?”
“······.”
“너무 전통 마법사들 스타일이라 촌스럽다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예······. 왜 그러시죠?”
“아뇨, 농담인가 싶어서요. 농담이었으면 약간 웃길 뻔했어요.”
올리버는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댔다. 어떻게 머리가 촌스럽다는 게 농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음······.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예,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지만, 그게 데이브와 어울리거든요.”
“칭찬인가요?”
“핫! 엄청 칭찬이죠. 그러니 두 번째 궁금한 거 말해 보세요.”
제인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파티장에서 보이던 가면 같은 미소가 아닌, 좀 더 진솔한 미소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뭔가 즐겁고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아, 붕대에 관해 묻는 거면, 그것도 꽤 괜찮은 거 같아요. 뭔가 비밀을 숨긴 것 같아 신비롭거든요. 데이브랑 어울리죠.”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걸 질문하려고 했습니다.”
“뭐죠?”
“혹시, 란다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무거나요. 변화나, 위험 같은 거요?”
올리버는 방금 전 아르망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질문했다. 처음에는 이브에게 물으려고 했지만, 이브는 마탑 업무 시간인지라 통신이 불가능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인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흐음······. 란다요?”
“예.”
“곤란하네요.”
“아, 곤란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제인 아가씨도 갈로스에 있었으니-”
“-아뇨, 아뇨. 드릴 말씀이 없어 곤란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요. 드릴 말씀이 너무 많거든요.”
“많다고요?”
“예. 비록, 갈로스에서 몇 개월간 있긴 했지만, 저도 란다 사람인걸요. 시스터후드를 통해 최신 정보는 늘 받고 있어요.”
“아······.”
올리버는 탄성을 냈다. 시스터후드는 란다에서도 손꼽히는 정보망을 가진 존재. 그런 시스터후드에 소속된 제인이라면 갈로스에 좀 있었다고 소식이 막힐 일은 없을 터였다.
이를 증명하듯 제인을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읊기 시작했다.
“우선, 좋은 소식만 해도 마탑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발표해 주가를 높이고 있죠. 의수가 아닌 완벽한 신체 복원 기술을 발표했고, 세계수의 인공 정신이자 정령인 이브(Eve)를 확보했다고요······. 모르셨어요?”
“아뇨,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알 수밖에. 완벽한 신체 복원은 올리버가 작성한 연구 논문이었고, 이브(Eve)를 마탑으로 데려간 것도 올리버였으니.
“그럼, 그건 아세요? 이 이브(Eve)를 통해 마탑과 시(市)가 손을 잡고 거대한 변혁(變革)을 일으키려는 건요?”
“변혁요?”
거창한 단어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방금 거창하다고 생각하셨죠?”
“조금요.”
“뭐, 이해해요. 하지만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저도 듣고 꽤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변혁이란 말로는 모자랄 정도로요.”
“뭐죠?”
“이브(Eve)의 도움을 받아 란다의 모든 행정시스템을 세계수로 묶으려는 작업이에요.”
올리버는 멈칫했다. 행정에 세계수를 이용하고 일부 행정시스템을 세계수로 연동하려는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행하고 있는 일이긴 했으나, 모든 행정시스템을 세계수로 묶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제인의 말대로라면 변혁이란 단어로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규모였으니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만한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그러자 곧바로 이런 급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기술력을 메꿔줄 이브(Eve)라는 존재가 지금 나타났으니까.
그렇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제가 그쪽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성공만 한다면 란다는 이전과 전혀 다른 도시가 될 거예요. 훨씬 빠르고, 체계적인······. 최소한 다른 도시보다 몇 세대는 앞서나갈 미래 도시가 되겠죠. 두근두근하지 않나요?”
제인이 정말 즐거운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올리버도 부정하지 않았다.
종이에서 세계수로 행정시스템이 옮긴다는 건 얼핏 별거 아닌 것 같았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건 못 들으셨나 보네요?”
“예, 다른 일을 좀 하고 있어서요.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거 뿌듯하네요······. 물론, 그에 따른 문제도 있지만요.”
“문제요?”
“예, 원래 달콤한 꽃에 벌레가 꼬이는 법. 왕실과 중앙의회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둥, 이브(Eve)를 넘기라는 둥. 공식,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압박을 가하고 있거든요.”
“그게 가능한가요?”
“불가능한 건 아니죠. 란다가 자치권을 가진 자유도시긴 해도 연합 왕국의 일부분. 그에 비해 저쪽은 연합 왕국 전체를 통치하니까요······. 다만, 이례적인 일이긴 해요. 란다를 못마땅하긴 했어도 이렇게 대놓고 나온 적은 없으니까요. 듣기로는 왕실에서 전통 학파와 손을 잡고 새로운 마법 조직을 세우느라 이런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하진 않네요.”
올리버는 이게 무슨 우연인가 싶었다.
신대륙에서 알버트 왕자를 통해 왕실이 마법 조직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다 건너 제인을 통해 다시 한번 듣다니.
“그래서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인데, 란다 시(市)는 왕실과 중앙의회와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죠.”
“상황이 안 좋다는 건 무슨 말씀입니까?”
“아······. 모르시나요? 지금 란다에 위험 요소가 늘고 있거든요. 란다에 자본과 사람을 빼앗긴 소도시를 중심으로 범죄 집단이 형성돼 란다를 테러하고 위협하고 있어요.”
정말 몰랐던 일이라 올리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란다의 틈바구니 안에서 견디지 못한 비소속 갱들이 소도시로 밀려났다는 이야기는 접했어도, 조직화 돼 란다를 테러하고 약탈할 줄이야.
“그게 가능한가요?”
“어렵긴 하죠. 테러와 약탈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랬다. 란다는 자유도시답게 음지, 양지 가리지 않고 각자의 보안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란다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장비와 인력, 인재가 필수 불가결. 란다의 경쟁 체제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말들이 많긴 해요. 란다를 견제하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왕실의 공작(工作)이라는······. 뭐 하나 확실한 건 없지만요. 어쨌건 이 때문에 보안국을 포함해 란다의 군비에 적잖게 돈을 쓰고 있다고 해요.”
“호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훗, 데이브답네요······. 그런데 그건 왜 그러시죠?”
“아, 아르망 추기사제님과 나눈 대화에서 해당 이야기가 나와서요. 뭔 일이 있나 싶어서요.”
제인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성기사가 데리고 가 혹시나 했지만, 설마 정말 추기사제와 따로 만났을 줄이야.
제인은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골대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을 맛봤다.
“제인 아가씨?”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설마, 그분과도 만났을 줄이야. 정말 놀랍네요.”
“어쩌다 보니까요.”
파테르교의 추기사제이자, 갈로스의 재상을 어쩌다 보니 만났다라······, 더할 나위 없이 올리버다운 대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이런 이야기가 오갔죠?”
올리버가 침묵했다. 말해도 될지 고민돼.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요. 데이브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거든요.”
제인이 배려했고, 그 배려심을 본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아르망 추기사제님께서 제게 제안을 하셨습니다. 흑마법을 합법화시켜 줄 테니, 갈로스의 혼란을 수습해 볼 생각이 있냐고요.”
***
“뭐 보여?”
“시끄러, 집중이 안 되잖아!”
“나도 볼래!!”
“나도 볼래!!”
“닥쳐! 쌍둥이! 망원경은 하나인데 너희가 어떻게 본다고 그래?!!”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인 거대한 별장에서 몹시도 떨어진 숲속 언덕.
그 언덕 위에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두른 소년들이 티격태격 싸워댔다.
곰 가죽 망토를 두른 뚱뚱한 소년은 렌즈 대신 사람의 눈알과 눈꺼풀이 달린 망원경을 통해 별장을 관찰했고, 그 주변으로 여우 망토를 두른 빼빼 마른 소년과 너구리 망토를 두른 쌍둥이들이 서로 귀찮게 조잘거렸다.
“번갈아서 보면 되지!”
“맞아! 우리도 보고 싶다고!”
“별거 없어! 재미없는 어른들이 모여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야. 그나마 좋은 소식은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거야!”
곰 망토 소년이 흑마법 아이템 눈깔 망원경을 통해 본 것을 쌍둥이에게 말했다.
쌍둥이들은 그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곧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거니까.
이때 여우 망토를 두른 빼빼 마른 소년이 끼어들었다.
“대장이 말한 건 있어? 웬디랑 가짜.”
“있어.”
“어, 음······. 그럼, 이제 대장에게 말해야 할 텐데 누가 갈래?”
여우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목표물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시간도 슬슬 됐으니, 이제 대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문제는 근래 대장의 상태가 나빠져 모두 보고하길 꺼린다는 것.
소년들은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각종 핑계를 대며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했다.
“커비. 네가 해! 너 혼자 망원경 봤잖아!”
“맞아! 맞아!”
“아니지! 망원경을 내가 봤으니, 보고는 너희가 해야지!”
“내 생각에는 본 사람이 보고하는 게 제대로 보고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니! 슬라이틀리!!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다니,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흑마법을 배웠어도 아이는 아이라는 듯 소년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목청껏 소리를 높였다. 팬의 그림자가 어둠을 매개로 방음(防音) 술식을 펼치지 않았다면 별장에도 닿을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시끄럽기만 하고 영양가 없는 대화가 한창 이어지던 중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서로 핏대를 세우며 싸우던 소년들은 일순간 침묵.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한 소년이 서 있었다.
탈색된 듯 옅어진 주황빛 머리카락과 웃음기 대신 미세한 주름이 생긴 소년이.
자신들의 대장이자, 네버랜드의 주인이자, 위대한 왕자인 팬이었다.
그가 과거와 달라진 모습, 걸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군들. 작전을 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