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6. 혓바닥 (2)
“혹시, 제인 아가씨가 무서우십니까?”
올리버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갈로스의 자랑스러운 귀족인 자신에게 그런 모욕적인 질문을 하다니······.
허나, 화를 낸다면 사실을 인정하는 꼴. 남자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억지로 표정을 풀었다. 천한 흑마법사의 말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증거로.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왜 숙녀분을 무서워한다는 겁니까? 전 그저 여러분이 어떻게 만났-”
“-두려움이 많은 편이거든요.”
올리버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두려움?”
“예, 두려움요. 공격적이거나, 잔혹한 사람들요······.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은 사실 누구보다 두려움 많습니다. 공격성과 잔혹함은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고요.”
올리버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말했다.
조셉 패밀리의 제자들과 뒷골목의 갱, 마법사 등 사람의 그 종류는 다양했으나, 근본적으로는 다 똑같았다.
잔인함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숨기고자 했다. 짐승이 몸을 부풀리듯이.
말을 하는 동안 올리버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고, 남자 역시 올리버의 눈을 바라봤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를.
이때, 남자는 올리버에게 속이 훤히 꿰뚫리는 듯한 이질적이고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그 탓이었을까? 갈로스 사교계에서 단련해온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왜 숙녀분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글쎄요? 저도 궁금합니다. 왜 두려워하시는 거죠?”
올리버가 거꾸로 물었다. 마치,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 불쾌했다.
“······하하, 전 그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수완을 가진 게 놀라워-”
“-아, 그거군요.”
올리버가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제인 아가씨의 능력이 부럽고, 두려우시군요.”
“······.”
남자의 포커페이스가 흔들렸다. 올리버가 정확히 짚어낸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제인 아가씨의 능력이 부러운 건 이해가 되지만, 두려운 이유는 모르겠네요.”
올리버가 왼손으로 뺨과 턱을 쓰다듬었다.
“보통 두려움이란 신체적, 정신적 위험 혹은 위협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인데 말이죠.”
턱을 쓰다듬던 올리버의 손이 허공을 가로저었다.
“제인 아가씨의 능력이 어떻게 선생님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네요.”
올리버가 말을 마치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순간 거부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속을 꿰뚫는 듯한 올리버의 두 눈을 마주하자 뱀 앞의 쥐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남자를 빤히 바라봤고, 남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자신의 속을 해체하듯 살펴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한없이 무력하고, 두려우며, 수치스러운.
남자를 바라보던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선 귀족으로서의 자부심이 드높지만, 한편으로 불안하신가 보군요. 보입니다.”
진실.
“하긴, 갈로스는 귀족과 민중의 갈등이 심한 편이라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군요.”
또 진실.
“진짜 불안한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 요인. 바로 자신요.”
또 진실이었다.
놀랍고 공포스럽게도 올리버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남자의 내면 깊이 있는 모든 걸 속속히 살펴보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전보다 훨씬 눈이 좋아진 것도 한몫했지만,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보여준 그림자 인형극도 한몫했다.
그 그림자 인형극을 통해 올리버는 사람의 수많은 감정과 기억을 들여다봐,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올리버의 의지에 있었다. 단순히 사람의 감정을 읽는 걸 넘어, 이 이면까지 해체해 들여보겠다는 의지. 상대의 의지와 존엄을 무시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올리버는 계속해 말했다.
“재밌네요. 귀족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은 믿지 못하다니요. 스스로 무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그러면 이해가 됩니다.”
“······그만.”
“제인 아가씨에게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거요. 본인에게 없는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는 건 크나큰 고통이죠. 저도 압니다.”
올리버가 필거렛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낀 던칸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렸다.
“······닥쳐.”
“신체적으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아니죠. 심할 경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이 생길 정도니까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제인 아가씨께 두려움을 느끼는 거고요. 다만,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런 사람을 못 봤던 것도 아닐 텐데, 왜 제인 아가씨에게만-”
“-닥치라고 했잖아!!”
올리버의 혓바닥에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 난도질당하자 남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발작하듯 소리쳤다.
인내심이 바닥 난 것.
그 고함이 어찌나 큰지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남자를 바라봤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발가벗겨진 듯 상기된 얼굴과 수치심에 촉촉해진 눈동자, 감정이 가감 없이 드러난 남자의 표정을.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올리버가 정확히 사실만 이야기했다는 증거.
허나, 남자는 더 이상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고, 억지로 숨을 고르더니, 손을 후려치듯 휘저으며 올리버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가, 감히, 천한 흑마법사 따위가 감히 누구에게 그따위로 지껄여?!!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남자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썼다. 마음속 깊이 있는, 타인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영역을 침범당한 사람의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담담할 뿐이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흑마법사는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어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선생님 같은 분이라면 더더욱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제인은 순간 흠칫 놀랐다.
성격 탓에 올리버가 때때로 무신경한 말을 할 때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악의를 가진 적은 없었다.
타인을 깎아내고, 짓밟는 악의.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올리버에 대해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하는 제인조차도 지금 올리버에게서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을 상처 주려는 의지를.
제인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사실, 당사자인 올리버도 그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몰랐다.
어쩌면 피곤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아직 여독을 제대로 풀지 못해.
그런 와중에 웬 남자가 악의를 가지고 다가와 제인을 건드리려 하자 왠지 이러고 싶어졌다.
예의 바른 퍼펫조차 싫어하고, 올리버 본인 역시 싫어하는 가슴 속 깊이 있는 민감한 부분을 사정없이 들춰내고, 욕보이고 싶었다.
좋은 행동이 아닌 걸 알지만, 뭐랄까······. 점점 절제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올리버의 악의를 받아낸 남자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크나큰 상처를 받은 듯했다.
“나 같은 사람이라고······?”
“예.”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남자의 인내심이 붕괴했다.
“이런 천한 흑마법사 놈이······!! 주, 주제도 모르고!! 고작, 매음굴 계집을 언급했다고 귀족인 날-”
“-그쪽 아가씨들을 언급할 때 유독 증오심이 강해지시네요.”
분노한 남자의 외침에 올리버는 어떠한 공감도 보이지 않은 채, 처음 보였던 담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실험동물을 관찰하듯 그 내면을 철저하게 헤집고, 그중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찌르는.
이번에도 제대로 찌른 건지 남자는 움찔하며 두려움이란 감정을 빛냈다. 결코, 들키기 싫은 사실들 들킨 것처럼.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혹시, 선생님 어ㅁㅓ-”
-텁
올리버가 다시 혓바닥을 놀리려는 찰나, 누군가 부드럽게 올리버의 입을 막았다.
제인이었다.
***
올리버는 갑자기 자기 입을 덮은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 끝엔 제인이 있었고, 올리버는 제인과 눈을 마주쳤다.
“······.”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올리버는 말없이 제인을 바라봤고, 제인 역시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눈과 감정을 통해 무어라 올리버에게 말하더니,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
올리버에 대한 걱정을 담아.
올리버는 그런 제인을 말없이 바라봤고, 곧 올리버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수많은 사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이곳에 잘 섞여 들었던 것 같았건만, 다들 어느새 경계심과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짚이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까 전, 남자와의 대화 탓일 터. 피로와 약간의 짜증 탓에 절제력을 잃은 대화.
그렇게 올리버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곳에 혼자 온 것이 아닌, 밀리유와 같이 왔건만 이런 실수를 하다니. 심지어 제인과도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기까지 했는데.
정말 큰 실수를 했다 싶은 그때, 별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갈로스의 재상이자, 추기사제인 아르망 전하(殿下)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올리버와 밀리유가 왔을 때보다 더욱 큰 목소리.
달라진 것은 비단 직원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파티장 내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도한 귀족들의 반응 역시 달랐다.
올리버와 밀리유가 왔을 때만 하더라도 호기심, 타산, 편견, 경계심, 오만 등. 각자 자기를 기준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눈치를 살피며 정문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옷을 추스르고,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이상한 건 아니었다. 성기사 출신이라 알려진 아르망 추기사제는 왕실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갈로스 국정을 운영하는 이 나라의 이인자이자, 파테르교 내에서도 한 축을 담당하는 거물이라 했으니.
이런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터였다.
물론, 올리버는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죄송해요.”
오히려 올리버는 자신의 실수를 막아주고도 미안한 듯 사과하는 제인에게 더 눈이 갔다.
허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올리버는 제인에게 사과하는 대신 일단 분위기에 맞춰, 이제 들어오려는 아르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둘러보니 파티에 초대받은 귀족뿐 아니라, 곳곳에 배치된 성기사들 역시 예를 갖춰 아르망 추기사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귀족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겉뿐 아니라 속까지 존경을 담았다는 것.
‘그런데 철갑 성기사 님은 안 보이네?’
흑마법사의 눈을 통해 건물 내부를 훑어본 올리버가 생각했다.
올리버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른 고유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었는데, 현재 이곳 별장 내부에는 울창한 숲에서 만난 성기사가 없었다.
‘철갑 성기사 님 분명 참석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끼이이이익.
올리버가 그렇게 딴생각하는 사이, 별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며 한 40대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그 중년 남성은 넓은 이마와 눈망울,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진 온화한 인상의 남성으로, 성기사 출신임을 주장하듯 넓은 어깨와 큰 키를 가졌으며, 강렬한 생명력과 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곁에서 호위하는 성기사들을 뛰어넘는 수준.
그 당당한 모습에 몇몇 사람은 감탄했는데, 개중에는 밀리유의 보스들도 있었다.
갈로스 뒷세계 거물이라 해도, 한 나라의 재상이자, 추기사제와 같은 거물을 직접 볼 일이 없었을 테니.
놀란 것은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그 이유가 다소 달랐지만.
올리버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추기사제인 아르망에게서 철갑 성기사와 같은 감정과 생명력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철갑 성기사는 아르망이었던 거였다.
“데이브 씨.”
추기사제의 곁으로 귀족들이 다가가 손 등에 키스하며 인사하는 사이, 그림자처럼 주변을 경호하던 성기사 하나가 올리버의 뒤로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그의 감정을 읽은 올리버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성기사가 말했다.
“잠시 따라오시죠.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올리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