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55화 (552/633)

555. 혓바닥 (1)

루시앙의 연락을 받은 올리버는 부탁대로, 흑마법사풍 정장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힘든 것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도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왜냐면 올리버는 정말 흑마법사가 맞았으니까.

다만, 이런 요청을 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잘 감이 안 잡힙니다.’

약속 장소로 나가 옷을 건네받은 후, 올리버가 해당 사실에 관해 묻자 루시앙이 진지하게 고심하며 대답했다.

난감한 부탁을 한 데에 따른 나름의 책임을 느낀 것이었다.

‘솔직히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귀족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저희 밀리유가 참석하는 경우는 있어도, 흑마법사가 참석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없었거든요.’

루시앙의 말은 사실이었다.

흑마법이란 학문이 시작된 지난 수백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런 경우는 없었다.

흑마법사가 뒤로 왕이나 귀족, 부호들과 밀약(密約)을 맺은 적은 있어도, 그들의 공식적인 행사에 얼굴을 비춘 적은 없었다.

왜냐면 사람의 감정과 생명력 심지어 그 육신마저 재료로 삼는 특성상 흑마법사는 그 존재 자체가 음지, 불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흑마법사풍 정장을 입고 파티에 참석해라? 그 저의가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루시앙이 올리버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올리버는 루시앙을 원망하는 대신 질문했다.

‘그런데, 철갑 성기사님. 누군지 알아내셨습니까? 부탁을 들어주시는 것 보니 아시는 것 같은데요.’

루시앙은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었다.

‘아뇨. 알아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다만, 상당히 지위가 높은 분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파견돼 성기사 중 아래 계급인 줄 알았는데, 그런 성법 아이템을 보유한 것으로 보아 파테르교 내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분인 듯합니다.’

올리버는 납득했다. 군대를 소환할 수 있는 묵주를 지녔으니.

그 정도 아이템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통 실력도, 보통 위치도 아닐 터였다.

‘그분도 파티에 참석하십니까?’

루시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참석한다고 말했거든요.’

대답에 만족한 올리버는 루시앙이 전해 준 흑마법사풍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 양복으로, 셔츠와 바지, 조끼, 구두는 평범했으나, 재킷은 그 형태가 망토에 더 가까웠다.

디자인은 세련돼 망신을 줄 용도는 아닌 듯했다. 몸에도 딱 맞아 편하기도 했고.

‘어떻게 이리 잘 맞춘 거지?’

올리버는 사소한 의문을 가진 채, 옷을 갈아입은 후 루시앙을 비롯한 밀리유 보스 피에르, 레오, 발레히, 나텅, 아론과 함께 파티 장소로 이동했다.

파티 장소는 라빌리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거대한 별장으로, 귀족들이 한창 잘나갈 때 지어진 건물이라 하였다. 실제로 보니 왜 잘나갈 때 지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자갈로 포장된 별장 주변의 도로와 큼지막한 정문은 란다의 고층 건물과 다른 웅장함을 자랑했으며, 그 거대한 문 사이로 수많은 차와 마차가 들어갔다.

정문 안에는 금실로 수놓은 정장, 연미복, 등이 파인 드레스, 보석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즐비했고,

거대한 별장 안에는 더 화려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레큘벨리 사(社)의 대표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올리버가 밀리유 보스들과 들어가자 별장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차분하지만 넓게 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이쪽에 쏠렸고, 올리버는 그 시선을 골고루 훑어보았다.

‘이게 귀족······?’

올리버는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마주 봐 그들을 관찰했다.

이번 파티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바로, 귀족을 살펴보는 것.

귀족들을 구경하려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저 자유 도시 란다의 특성상 좀처럼 귀족이라는 사람들을 볼 일이 없어, 한번 살펴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악마를 소환하는 데 왕족이나 귀족 같은 고귀한 피가 제격이란 이야기도 있어, 정말 특별한 게 있나 싶어서.

허나, 그런 올리버의 기대? 예상? 여하튼 그런 건 곧 허무하게 허물어지고 말았다.

올리버의 눈엔 파티장에 있는 사람 중 딱히 특별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일 뿐이었다.

신대륙에서 만난 연합 왕국의 왕자 알버트처럼 말이다.

그는 다른 소년들보다 옷차림이나, 위생 상태, 머릿결, 피부 등이 더 좋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악마의 서적에서 말하는 특별함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귀족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분들이 전부 귀족이라고요?”

올리버가 혹시나 싶어 루시앙에게 속삭여 질문했다. 루시앙이 대답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귀족이 맞습니다. 소매에 금실을 수놓은 분들은 귀족입니다.”

그럼 대부분 귀족 맞았다. 열 명 중 일곱 명꼴로 소매에 금실을 수놓았으니.

허나, 딱 그거뿐이었다. 금실로 수 놓은 게 특별하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뭐, 딱히 실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신대륙에서 알버트 왕자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으니. 다만, 의문은 들었다.

왜 악마의 서적에서 귀족이나 왕족이 제물로 좋다고 한 건지.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이 먹은 것으로 볼 때, 진짜 악마의 서적인 거 같기는 했는데 말이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

올리버는 자기 안목을 의심하며 다시 파티장 내 사람들을 살펴봤다.

“헤, 저렇게 생겼군.”

“소문이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상한 거랑 영 딴판인데?”

“저게 흑마법사?”

“여기 나오다니 배짱도 좋구만.”

하지만 역시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 보통 사람과 반응이 다르지 않았다.

순수한 호기심, 타산, 편견, 경계심, 오만 등.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시선으로 올리버의 첫인상을 단정 지었다.

나쁘단 뜻은 결코 아니었다. 흑마법사를 보면 보통 이런 반응이었으니.

그런 탓인지, 여느 사람들처럼 올리버에게 시선을 쉽게 떼지도, 그렇다고 다가오지도 못한 채,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라 하던데, 흑마법사였군요.”

“그것도 엄청난 흑마법사라 합니다. 생긴 것 좀 보세요.”

“무서워라······.”

파티장에 흑마법사가 왔다는 사실에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과 그 자녀들이 걱정스럽게 속닥거렸고, 파티장 곳곳에 있는 성기사들이 적의는 아니나 여차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올리버를 주시했다.

그렇다 할 흥미로운 수확도 없어, 괜히 왔나 싶은 그때, 핑크빛 머리의 한 여성이 올리버에게 다가와 처음으로 말을 걸어줬다.

“안녕하세요. 데이브.”

제인이었다.

***

“오랜만입니다. 제인 아가씨.”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제인을 만난 올리버는 잠시 멈칫했으나, 곧바로 인사를 받았다.

사실 이리 놀랄 일은 아니다. 루시앙이 말하길 이번 파티에 귀족이 대다수 참가하나, 돈 많은 부호도 참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파티장에 제인이 있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라빌리 재건 때 외국인 중 가장 독보적인 투자와 수익을 거둔 게 제인이었으니까.

그 증거로 제인이 당당히 말을 걸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뭐랄까? 경계심과 두려움은 옅어지고, 호기심과 흥미가 더 강해졌다.

그만큼 이 파티에서 제인이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진 존재라는 것일 터.

제인은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밝고 당당한, 이전보다 강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전에 봤을 때와 많이 달라졌네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제인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인육 요리사의 난(亂) 때.

몸이 삐쩍 마른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으나, 머리 한쪽에 살짝 새고, 한쪽 팔에 붕대를 두른 모습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겉으로는 당당하고, 괜찮은 척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올리버를 걱정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말이다.

“일을 좀 하다 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호오······.”

“흠······.”

“오······.”

올리버가 제인에과 평범하게 대화하자 주변의 사람들은 또 저마다 반응을 보였다.

현재 뒷세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흑마법사가 자신들과 안면이 있는 여성과 이리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니 신기한 듯했다.

나쁘지 않은 흐름. 제인 역시 이 점을 느꼈는지, 여세를 몰 듯 밀리유의 각 보스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아, 인사가 늦었네요. 레큘벨리 사(社) 여러분. 양해 부탁드립니다. 친구를 만나 반가워서요.”

유창한 갈로스어로 말하는 제인에게 루시앙이 화답했다.

“투자자분께서 별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흠······. 그런데, 데이브 씨와 친구셨습니까?”

루시앙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올리버와 제인이 친구 사이인 걸 그는 그 어떤 갈로스인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해 죽을 뻔했던 게 다름 아닌 그였으니까.

그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주변을 의식한 것으로,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아 모두 더욱 강한 흥미를 보였다.

근래 가장 눈에 띄는 외국인 투자자와 흑마법사에 관한 것이었으니.

루시앙의 그런 의도를 읽은 제인은 척하면 착 합을 맞췄다.

“예, 같은 란다 출신이고, 절 도와주신 적이 있거든요.”

“호오! 그렇습니까?”

과장된 루시앙은 태도에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는 크면서도 좁은 동네거든요.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요? 제 시시한 이야기보다, 인육 요리사의 비자금을 되찾은 영웅들을 만나고픈 사람들이 있어서요.”

제인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화제를 돌리며, 루시앙 일행을 띄워줬고, 이는 실로 영리한 행동이었다.

이곳 파티의 공식적인 목적은 라빌리 재건을 위한 기부금 조성이었으나, 실제로는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찾은 밀리유를 치하하고 모두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였다.

왕실과의 거래를 성공시킨 대가.

제인은 그런 사실을 모두에게 주지시켜주자, 자연스레 올리버에 대한 경계심이 한껏 낮아졌다.

“괜찮으시면 우선 제가 먼저 사람들을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여러분을 너무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척하면 착. 루시앙은 그런 제인의 의도에 바로 발맞춰줬다.

“물론입니다. 저희도 그러고 싶군요.”

성별도 나이도 전혀 다른 루시앙과 제인의 합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올리버를 비롯한 파티장 내 모두 그 흐름에 휩쓸렸다.

밀리유를 데리고 이동한 제인은 곧 한 귀부인과 노신사를 소개해줬다.

“인사 나누시지요. 로랑 부인과 보아르네 남작님이십니다. 고맙게도 절 도와주시는 분들이세요.”

제인은 로랑 부인의 인맥과 행정 일을 담당하는 남작의 도움으로, 외국인인 자신이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고 그들을 띄워줬다.

나쁘지 않았는지 그들은 웃었고, 루시앙은 역시 그들을 아는지 친밀하게 인사하며, 자기 동료들을 자연스럽게 소개해줬다.

사람 수가 제법 많아 인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올리버를 소개할 차례가 왔다. 그때, 제인이 자연스럽게 바통을 건네받았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와 같은 란다 출신의 데이브 씨입니다. 마탑의 직원으로 계신 분이죠.”

제인은 일부러 해결사라 소개하지 않고, 올리버가 마탑에 소속된 직원이라 소개했다.

질문을 들은 남작은 고개를 갸웃댔다.

“마탑의 직원 말이오?”

“예······. 마탑 원소학파의 평직원으로 근무 중입니다. 맞죠?”

제인이 올리버에게 물었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 직원 신분을 아직 가지고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흑마법사이자 해결사로 이미 소문이 난 탓에, 다들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함에도 불구, 제인은 올리버가 마탑의 마법사라 거듭 설명해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올리버는 자기 몸 안에 저장된 마력을 손바닥 위로 모아 작은 스파크를 만들었다.

찌지직!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는 사람들. 허나, 스파크가 바로 안정을 찾아 새 모양으로 변하자 놀람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별거 아니었다.

투자와 후원이 필요한 가난한 마법사나 마탑 학생들이 부유층의 호의를 사기 위해 하는 자그마한 쇼 중 하나였다.

“비록, 마탑에서는 제논 브라이트란 이름을 쓰지만요.”

올리버가 새 모양으로 만든 스파크를 하늘 위로 올려 폭죽처럼 터트리며 말했다.

다행히 이 정도는 괜찮은지 성기사는 가만히 있었다.

그뿐 아니라 반 발짝 뒤로 서서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다가와 제인을 통해 말을 걸었다.

“혹시, 다른 것도 할 수 있나요? 불꽃이라든가, 망아지라든가요?”

“불꽃으로 만든 망아지도 가능합니다.”

올리버는 바로 손안에서 작은 불꽃을 만들어, 망아지 형태로 불꽃을 빚었다.

작지만 힘찬 화염이 망아지 형태를 이루자 제인과 같은 나이대의 여성들은 예쁘다며 연신 감탄했다.

한결 나아진 분위기 속에서 아까 제인이 처음 소개한 보아르네 남작이 입을 열었다.

“아······. 기억나네.”

뜬금없는 말에 다들 남작을 말없이 바라봤다.

“갈로스에서 난이 일어났을 때 활약한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온 사람이지 않나? 제논 브라이트. 서류에서 봤어.”

법복귀족으로 갈로스의 행정부에서 일하는 노인의 말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같은 사실을 이야기해도 사람에 따라 다른 법.

갈로스의 귀족인 남작이 말하자 좀 더 피부에 와닿은 거였다.

“계속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내가 정말 나이를 먹었나 보군.”

“아닙니다. 비록, 다른 분들과 함께 오긴 했지만, 전 한 게 없었거든요. 기억 못 하셔도 전혀 이상한 건 아닙니다.”

인육 요리사의 난(亂) 때, 공식적으로 마탑이 큰 활약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육 요리사를 해치운 아카이브 멀린과 인명 구조에 힘쓴 테렌스, 야렐리, 케빈이었다.

“그렇다 해도 도우러 온 사람을 잊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 못 하네······. 알아보지 못한 걸 사과하겠네. 그런데, 어떻게 마탑의 마법사가 흑마법을 쓰는 건가?”

남작이 물었다. 올리버가 스스로 해명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의도로, 흑마법사의 눈으로 의도를 읽은 올리버는 이 기회를 활용하기로 했다.

때마침 적당한 변명거리도 있었고.

“마탑의 일이라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순 없으나, 마법을 배우는 와중 흑마법도 같이 배우게 됐습니다······. 마탑 차원에서 연구하기 위해서요.”

올리버는 과거 써먹은 이야기를 알차게 재사용했고, 다행히 이는 잘 먹혀들었다.

마법사가 연구를 위해 기괴한 짓을 곧잘 한다는 걸 여기 사람들도 아는지, 연구를 위해 라는 말을 붙이자 다들 수긍했다. 더 나아가 스스로 납득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아, 그럼, 해결사로 일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올리버가 또 적당히 대답하자 사람들은 다들 납득했다.

뭐, 실제로 금전적 이유든, 개인의 일탈이든 뒷세계 일을 맡는 마법사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그렇게 올리버는 단숨에 흑마법사에서, 마탑의 마법사로 신분을 갈아치울 수 있었다.

올리버는 제인에게 감탄했다. 당사자인 올리버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걸, 제인은 정확히 꿰뚫고 활용해.

그만큼 제인이 이곳 갈로스에서 쌓은 경험이 엄청나다는 증거일 터였다.

갈로스 스타일로 바뀐 외형만큼이나, 제인은 투자자로서 성장했고, 올리버는 투자자로서 그녀의 활약이 이번 한 번이 아닌 앞으로 지속될 것임을 직감했다.

운에 의해서가 아닌 실력에 의해.

제인이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데이브.”

“예, 제인 아가씨.”

“혹시, 사자도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

이후로 올리버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소소한 재주를 선보이며, 그들이 하는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줬다.

가령, 마탑에서 란다 시(市)와 손을 잡고 대단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는데, 뭔가 아는 게 있냐는 질문 같은 걸 말이다.

그때마다 올리버는 제인의 도움을 받아, 적당히 질문을 넘겼고.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통해 올리버와 밀리유 보스들은 파티장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다들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제인의 소개받는 걸 그만두고 제각기 다른 사람들과 재주껏 이야기를 나눴다.

올리버만 빼고. 올리버만은 제인의 곁에서 적당히 사람들을 상대했다.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인 아가씨.”

“저야 말로요. 처음에 여기 온다는 이야기 듣고 놀란 거 알아요?”

“저도 제인 아가씨가 신문에 나왔을 때 놀랐습니다.”

올리버가 레스토랑에서 본 신문 기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인은 쑥스러운 감정을 빛내며 답했다.

“외국인이 돈만 가져가면 위험하거든요. 착한 척 분칠할 필요가 있죠.”

“거짓말이시군요.”

올리버가 제인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것뿐이라 말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러한 이유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었지만, 그건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속이 꿰뚫린 제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 속을 함부로 꿰뚫어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아, 죄송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보여서요.”

올리버가 변명처럼 사과했으나, 사실이기도 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만난 후 눈이 더욱 좋아진 탓이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것을 넘어, 그 감정을 기반으로 의도까지 이젠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보여준 그림자 인형극 때문이리라.

다행히 제인은 믿어주는 눈치였다.

그렇게 올리버와 제인이 대화를 한창 하는 그때,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제인과 비슷한 나이로, 꽤 잘생긴 청년이었다.

“두 분 사이가 좋으시군요.”

“아, 예.”

“부럽습니다. 그런데 그분. 어떻게 만나게 된 거죠?”

자기소개도 생략한 채 남자가 질문했다.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워 따지기 뭣했는데, 제인이 대답하려는 찰나, 남자가 말을 가로챘다.

“혹시, 천사의 집이란 매음굴 아닙니까?”

“······.”

천사의 집과 매음굴이란 단어에 제인은 순간 침묵했고, 근처 사람들의 이쪽을 바라봤다.

이런 자리에서 눈에 띄는 단어였으니까.

“아, 제가 란다에 아는 사람이 있어 가끔 그쪽 소식을 듣거든요. 마탑의 직원이자, 해결사가 하루가 멀다고 천사의 집이란 퇴폐업소에 들락날락한다던가, 웬 돈 많은 사생아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말이죠? 제가 알기로-”

“-선생님.”

남자가 말하는 도중. 올리버가 그를 불렀다.

소리가 크지 않고 차분함에도 귀에 또렷이 들려 무시할 수 없었다.

“예?”

남자가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히죽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다음 올리버가 하는 말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곧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혹시, 제인 아가씨가 무서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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