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54화 (551/633)

554. 새로운 국면 (6)

“식사 시간입니다.”

올리버의 그 한마디에 에디스에게서 받은 백지투성이 책이 움찔거리더니, 표지 위로 눈 비슷한 것이 돋아났다.

사람이라고 하긴 뭣하고, 짐승의 것이라기에도 뭣한 눈이.

올리버는 해당 책을 바닥 위에 놓았고, 책은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 재주 좋게 움직여 맞은편에 쌓인 악마의 서적 더미로 달려들었다.

캬랴랴랴랴랴랼━━!!!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은 특유의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책 배면이 입처럼 쩌억 벌어져 악마의 서적을 마구잡이로 뜯어 먹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륵━━!!!

겉보기에는 그저 책이 벌려졌다 닫혔다 하는 모습에 불과했으나, 그 기세만큼은 며칠 굶은 사냥개를 방불케 했다.

인육 요리사의 금고에서 몰래 챙긴 책들은 조각조각 찢어졌고, 사방으로 찢긴 종이쪼가리가 나부꼈는데,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은 그마저도 모조리 주워 먹었다.

역시 들어오자마자 방음 마법을 걸어놓기 잘한 것 같았다.

만약 깜빡했으면 여관 주인이 뭐냐고 당장 문을 두들겼을 터였다.

올리버는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이 자기 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대량의 서적을 먹어 치우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고,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책은 식사를 끝마쳤다.

‘달려졌네······.’

올리버 식사를 마친 서적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 한번 악마의 서적을 먹인 적이 있지만, 그때는 달랑 한 권이라 그런지 그렇다 할 변화가 없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수십 권이나 되는 책을 먹은 탓인지, 보통의 책처럼 텅 비어 있던 에디스의 서적 안에는 어떠한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의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기운은 오염 구역에서 퍼펫이 보여준 지옥의 입구와 수십만 명의 사람을 재료로 한 잠자는 숲과 그 결이 비슷했다.

지옥의 힘을 가공한 듯한. 이 세상 것이 아닌 이질적인 기운.

올리버는 몸에서 검은색 증기를 뿜는 에디스의 서적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캬르르르르릉······!

에디스의 서적이 올리버를 향해 경계심을 내보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건만.

구체적인 원리는 알 수 없었으나, 수십 권이나 되는 책을 먹어 자의식이 생긴 듯했다. 흑마법 아이템처럼.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물진 않았다는 거였다. 물리면 아팠으니까.

“음······.”

예상치 못한 서적의 태도에 올리버는 침음성을 내며 손을 거뒀고, 배가 불룩 나온 빅마우스는 에디스의 서적을 응원해줬다.

“꾸룩!!”

마치, 자기는 못 하는 걸 대신해줘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올리버는 고개를 돌려 그런 빅마우스를 말없이 바라보곤.

“······.”

“······.”

다시 에디스의 서적을 바라봤다.

‘물 같은 걸 끼얹나?’

올리버가 자의식과 함께 경계심이 강해진 책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여태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개체가 없어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사람은 대화나 전투를 통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고,

동물은 하나같이 올리버만 보면 겁에 질려 뭘 할 수 있는 건더기가 없었다.

흑마법 아이템은 모두 착해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고.

“꾸루룩?”

그래서 올리버는 이런 식으로 도망치지도 그렇다고 다가오지도 않은 채 일정 거리에서 경계심만 빛내는 개체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쿼터스태프로 때려서 기절시켜야 하나?’

올리버는 들고 있던 쿼터스태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일 듯했으나, 이내 올리버는 고개를 젓고,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내렸다.

그런 다음 한쪽 무릎을 꿇어 시선을 서적과 최대한 맞추곤, 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빈손을 내보였다.

물론 그냥 때리거나, 마력을 끌어올려 공격할 순 있었지만.

다행히 뜻이 통하였는지, 서적의 경계심은 아주 살짝 낮아졌다.

올리버는 이 기세를 몰아 해할 생각이 없고, 괜찮다고 연신 설득했다.

“전 다치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악마의 책 씨.”

“······.”

그럼에도 서적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지만, 올리버는 곧 설득할 방법을 찾았다.

“아직 악마의 책 씨가 먹지 않은 악마의 책이 더 있습니다.”

응원하던 빅마우스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올리버가 먹을 것으로 유혹했다.

예상은 적중. 경계심을 보이던 악마의 서적은 곧바로 경계심을 해제. 올리버의 손으로 다가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역시, 동족 포식이 답이었다.

“빅마우스랑 비슷하네요. 동족 포식을 좋아하는 거.”

“······.”

빅마우스가 조개처럼 다닥다닥 붙은 눈을 가늘게 떠 올리버를 향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살아 있는 생물처럼 온몸이 따뜻한 악마의 책을 펼치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삑- 삑- 삑-

신호음이 울렸다.

다름 아닌 루시앙 쪽에게서 받은 통신장치였다.

머무는 숙소를 비밀로 한 탓에, 최소한의 연락이라도 주고받기 위해 받은 통신장치로, 올리버는 신호음이 울리자 바로 받지 않고 시계부터 확인했다.

오늘 저녁 파티가 있어 통신이 올 것은 예상하긴 했으나, 약속 시각까진 아직 4시간이나 남은 상태. 연락이 오긴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루시앙 님이 그냥 일찍 연락했을 리는 없고······. 무슨 일이 있나?’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한 올리버는 통신장치를 받았다.

“여보세요.”

올리버가 통신장치에 대고 인사하자, 예상대로 루시앙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시앙은 통신기기를 통해 올리버에겐 인사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꺼냈고 올리버는 이에 대답했다.

“예, 오늘 파티. 알고 있습니다······. 아뇨, 고마우실 것까지는. 이미, 약속한 거지 않습니까? 다만, 이완 님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 그쪽에 있다고요? 도박장에요? 대단하네요.”

올리버가 루시앙을 통해 이완의 소식을 들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는 정말 자신의 목표대로 인육 요리사의 천문학적인 유산을 얻어 하루아침에 탕진했다.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빚까지 졌고.

무례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올리버는 이완이 일부러 빚을 지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무슨 버킷리스트처럼 말이다.

“아, 감사합니다. 절 봐서 손가락을 안 잘라 주셔서······. 예, 당연히 제가 갚을 생각은 없습니다. 제 동업자께서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연락하신 건가요?”

올리버의 물음에 통신장치 너머 루시앙이 대답했다.

[아뇨. 맞긴 한데, 다른 것도 있습니다.]

“뭐죠?”

[혹시, 파티에 참석할 드레스 코드는 맞추셨는지요?]

“예, 준비했습니다.”

올리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평상복, 작업복, 의전복 등 올리버는 각각의 상황에 적절한 옷을 늘 빅마우스에게 먹여 서른 벌씩 챙기고 다녔다.

혹시 모를 상황에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

대답을 들은 루시앙은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그러시군요.]

통신기기를 통한 대화라 감정을 볼 순 없었으나, 숱한 사회 경험을 통해 올리버는 루시앙이 난감해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눈치챘다.

“혹시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루시앙이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흠, 혹시, 저희 쪽에서 준비한 복장으로 참석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다소 무례할 수 있는 복장이긴 합니다.]

올리버는 목소리를 통해 루시앙이 느끼는 난감함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하진 않았으나, 그는 곤란해하고 있었다.

이에 올리버는 불쾌함 대신 호기심을 느꼈다. 밀리유의 보스 중 하나인 루시앙을 곤란하게 만드는 게 뭘까 싶어서.

“상관없긴 하지만, 왜 그러시는 거죠?”

[부탁을 받았습니다.]

말은 부탁이라 했으나 어째 억양은 아닌 듯했다.

“누가 부탁한 거죠?”

[성기사입니다.]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성기사를 떠올렸다. 묵주를 이용해 군대를 단숨에 불러들였던 성기사를.

***

“신수가 훤하구만.”

“자네야말로.”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그 라빌리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궁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한 거대한 별장이 호수를 끼고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귀족들의 황금 시기 지어진 건물로, 수차례 이어진 정치적 혼란 탓에 폐허가 됐다가 근래 복구됐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지금 이곳에 화려한 정장, 연미복,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갈로스의 귀족으로. 입고 있는 옷 소매에 금실로 수놓아진 가문 문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마차는 이제 버리고 자동차를 타기 시작했나?”

한 늙은 귀족이 아들뻘 되는 남성에게 말했다. 남성은 란다의 F사에서 특별 주문한 화려한 맞춤형 차를 타고 이곳 별장을 방문했다.

“하하. 예, 백작님.”

“역시 젊은 친구답구만. 새로운 이기(利器)를 잘 받아들여.”

과거였다면 귀족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지탄받을 행위였으나 나이 든 귀족은 더 이상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왜냐면 아까 전 어떤 귀족이 말했듯이 다들 신수가 훤해질 일만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참, 누가 알았겠나? 그 건달 깡패가 그 난리를 일으킨 덕분에 우리 상황이 나아질지.”

한 중년의 남성이 포도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맞은 편 남자가 이에 맞장구쳤다.

“그렇지. 당시에 좀 소란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지. 떼쓰는 민중파도 소탕하고, 경제 주도권도 되찾았으니.”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육 요리사의 난(亂)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었지만, 라빌리를 뒤엎은 인육 요리사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갈로스의 귀족들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늘 빽빽 소리를 지르며 귀족을 비난하던 민중파 주요 인사들이 인육 요리사에게 금전적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늘 분을 삼키던 귀족들은 합법적이고 도덕적으로 그들을 처단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던 민중파의 정치적 발언권도 빼앗을 수 있었다.

그토록 참담한 범죄를 일으킨 건달과 뒤에서 관계를 맺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물론, 귀족 중 적잖은 이들이 젊음과 정력을 주는 인육 요리사의 음식과 블러디 와인을 소비한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고로 사람은 자신에게 자비로운 법이니.

“아직까지 건달 깡패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건 좀 그렇지만. 내 아내는 무서워 못 살겠다고 자식들과 함께 휴양지로 떠나겠다고 하더군.”

“잘 됐구만. 자고로 아내와 자식은 멀리 있을수록 사랑스러운 법이니.”

“하! 농담도 참.”

“진심이야. 그리고 소란이 일어나면 좋지. 한동안 부동산에 더 투자할 수 있다는 거니까.”

파티에 참석한 수많은 귀족이 그 말에 무언으로 동의를 보냈다.

인육 요리사로 엉망이 된 라빌리는 분명 큰 재앙이었지만, 그때 귀족들은 알 수 없는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수익을 누릴 수 있었다.

폐허가 돼 값이 폭락한 땅을 사들여, 복구된 지금 되팔아서 말이다.

그로 인해 아직 소란의 피해를 채 회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높은 임대료와 집값에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고 있긴 했으나, 그건 이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냐면 자신들은 그런 곤란을 겪을 염려가 없을뿐더러, 재미만 보고 있었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한 남성이 반쯤 농담 섞인 어조로 무신경하게 말했다.

“솔직히 가끔은 인육 요리사. 그 깡패가 다시 나타나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농담이지만요.”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이 웃었다. 농담이라는 걸 증언해주듯.

그러자 한 남자가 다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던데?”

“아, 자네도 들었나?”

뒷골목에서 은은히 퍼지고 있는 소문. 몇몇 발넓은 이들 역시 듣고 있었다.

인육 요리사의 재림(再臨)이란 표현을 듣는 바다 건너에서 온 한 흑마법사에 관해.

“란다의 해결사라더군.”

“난 마탑의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둘 다라 하던군.”

“뭐가 됐건, 위험한 놈처럼 들리는구만. 듣기로 오늘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던데, 괜찮은 건가? 그런 놈이 와도?”

“걱정할 게 뭐야? 이렇게 안전한데.”

한 귀족이 거대한 별장 곳곳에 은밀히 자리 잡은 성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추기사제이자 갈로스의 재상인 아르망을 보필하기 위해 파테르 교단에서 파견된 성기사들로, 아직 혼란한 와중에도 귀족들이 이런 외진 곳에서 마음 편히 모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때, 장내에 한목소리가 울렸다.

“레큘벨리 사(社)의 대표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그 소리에 파티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쏠렸다.

레큘벨리 사(社)는 인육 요리사의 비자금을 찾기 위해 왕실과 거래한 밀리유들이 뭉쳐 즉석에서 만든 회사로, 이번 파티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기도 했다.

인육 요리사가 사라지고, 그 유산을 차지해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얻은 건달들을 한번 보기 위해.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기에 따라 이익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저자가 그인가?”

한쪽 머리가 살짝 세고, 몸은 삐쩍 마르며, 한 손에는 붕대를, 다른 한 손에는 쿼터스태프를 든 남자를 보며 누군가 말했다.

척 봐도 특이한 외형이었고, 뭣보다 걸친 옷이 척 봐도 흑마법사풍이라, 그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밀리유에게 고용돼 이번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회수하는 데 가장 지대한 공을 세운 바다 건너에서 온 해결사 데이브.

소문에 따르면 혼자서 드루이드 수백 명을 살해하고, 울창한 숲에서 수십 개의 조직을 전멸시키며, 심지어 퍼펫이라는 괴인(怪人)과도 대등하게 싸운 괴물이라 하였다.

삐쩍 마르고 다친 듯한 모습 탓에 믿기지 않았으나,

몇몇 눈치 빠른 자들은 데이브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와 밀리유의 보스들의 태도에서 마냥 헛소문이 아니라는 걸 추측했다.

“헤, 저렇게 생겼군.”

“소문이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상한 거랑 영 딴판인데?”

“저게 흑마법사?”

“여기 나오다니 배짱도 좋구만.”

청년, 아가씨, 노인 모두 데이브에 대한 감상평을 남겼다.

그냥 순수하게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용할 수 있을지 계산하는 이가 있었고, 또, 몇몇은 자신의 세계에 갇힌 채, 오만하면서도 일방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공통점이라면 이런 자리에서는 처음 보는 흑마법사라는 점 탓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다들 멀찌감치 떨어져서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살피던 중 한 핑크빛 머리를 한 여성이 데이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인이었다.

“안녕하세요. 데이브.”

“오랜만입니다. 제인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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