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 새로운 국면 (4)
[란다에서 온 여성 사업가 제인. 고아원에 이어 미혼모를 위한 옷감 공장 설립에 투자. 좌초될 뻔한 공장 건설, 동력을 얻다.]
올리버의 시선은 해당 기사에 고정됐다.
자신의 두 번째 친구이자, 에디스의 딸인 제인을 설마 바다 건너 외국 신문에서 볼 줄이야.
하지만 사실 그리 놀란 일은 아니었다.
앞서 제인은 부동산 투자를 위해 이곳 라빌리를 방문한 적 있었다.
‘그리고 만났지.’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당시 제인은 인육 요리사 때문에 라빌리를 방문한 올리버와 우연히 만났고, 그것도 모자라 인육 요리사가 일으킨 난(亂)에 휩쓸리기까지 했다.
상당히 재수가 없는 편. 그러나 동시에 운이 좋은 편이기도 했다.
자칫 위험할 뻔하긴 했으나, 결국 제인은 다치지 않았고,
거기다 인육 요리사로 인해 엉망이 된 라빌리의 상황과 라빌리에서 맺은 인맥, 본인이 보유한 자본, 란다 내 투자 네트워크를 이용해 라빌리 재건 사업 초반에 투자자로 참여하였으니까.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포레스트와 천사의 집 아가씨들이 말하길 제인은 상당히 큰 성공을 이룬 듯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연합 왕국과 1, 2위를 다투는 강대국 갈로스의 수도 재건 사업 초반에 참여했으니, 성공을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그 순간 올리버의 머릿속에 포레스트가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성공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제인 아가씨가 단독으로 성공했다는 점이지. 단독.’
마지막 말을 힘주어 말하는 포레스트. 올리버가 무슨 말인지 묻자 이어 설명해줬다.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솔직히 제인 아가씨가 투자자로서 썩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 않았나? 에디스 씨에게 받은 유산과 시스터후드의 도움으로 투자자인 척 금칠했지만, 사실 투자자라 불릴 능력을 보인 적은 없지.’
냉정하지만 정확한 평가에 올리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확실히 에디스에게 받은 재산에 만족하지 않고 투자자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했으나, 그와 별개로 제인은 투자자로서 능력을 선보이진 못했다.
몇 차례 수익을 거둔 전적이 있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시스터후드가 고용한 전문 투자자와 정보력에 기인한 것. 결코, 제인의 온전한 실력이 아니었다.
제인과 같은 그룹에 속한 여성 투자자들처럼 말이다.
제인을 포함한 그녀들의 역할은 투자자보다는 배우에 더 가까웠다.
시스터후드. 정확히는 시스터후드의 가장 큰 손인 미란다 여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배우.
그것이 시스터후드에 있는 여성 투자자들의 실체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제인 아가씨는 단독으로 정말 큰 건을 성공했으니까······. 잘하면 시스터후드의 권력 구조가 바뀔 수도 있겠어.’
‘권력 구조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야. 보통 어느 조직이든 가장 입김이 센 건 돈을 쥔 쪽. 그건 시스터후드 같은 공동체라고 다르지 않아. 그리고 시스터후드에서 돈을 쥔 쪽은 다름 아닌 미란다 여사지. 일단 본인이 돈이 많고, 돈을 쥔 여성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니.’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와 상황이 달라진 것도 부정할 수 없지. 이번 투자로 제인 아가씨의 재산은 몇 배나 불었다는 소문이 있는 데다, 투자자로서 명성까지 높아졌으니······. 하고자 하면 미란다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제인 아가씨가 그럴 이유가 있나요?’
‘글쎄? 그건 모르지. 허나,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아예 할 수 없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네.’
포레스트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며 해당 이야기를 마쳤다.
어쨌건 요지는 제인이 포레스트마저 감탄할 정도로 큰 투자를 성공시켰다는 데 있었다.
제인이 목표하던 대로.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당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제인은 단순히 돈 버는 것 외에도 수많은 활동을 했다. 고아원, 미혼모를 위한 구호시설 등에 기부한 것이 가장 큰 일례.
참 대단했다. 진심으로 말이다.
자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고, 더 나아가 다른 곳에도 열정을 내보이는 게 말이다.
‘그게 비해 난······.’
올리버는 속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옛날에는 단순하고 뭐든 게 명확했던 것 같았지만, 근래에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된 기분이었다.
흐릿하고 불확실한.
분명, 과거에는 새로운 걸 배우거나 알게 되는 것만으로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배움과 앎은 기쁨이었지만, 그중 일부는 회피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알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알기 싫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모순된 감정.
그 외에도 옛날에는 아름다운 빛이란 확실한 목표가 있었으나, 지금은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름다운 빛을 원한 건 여전히 똑같았지만, 목표라 부르긴 약간 부족해졌다.
허나, 그중 과거와 가장 달라진 것은 올리버 자신에 대한 인식이었다.
옛날에는 자신이 뭔지 확실히 알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조금 헷갈렸다.
망가진 건지, 다른 건지, 사이비 신인지, 영웅인지, 아니면 그냥 남들과 같은 사람인지.
‘또, 그것도 아니면······.’
[-데이브. 괜찮으신가요?]
올리버는 깊이 사색에 빠지려는 찰나,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침묵하는 올리버를 걱정한 것.
“아, 예.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브의 부름에 올리버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방금 올리버가 하려던 고민은 X구역 개발 도중 품게 돼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한 찜찜하기 그지없는 의문.
지금 생각한다고 해도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즉, 에너지 낭비. 그런 것에 고민할 바에는 신문을 마저 읽는 게 생산적이었다.
올리버는 그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저어 아까 전 고민을 떨쳐버리곤, 다른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남은 기사라 해봐야 흑마법사가 계속해 날뛰어 치안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와 인육 요리사와 관련 있던 유력 인사들이 어디서 체포됐거나, 도망쳤다는 흥미 없는 기사뿐이었지만.
[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다방면으로 생각할 게 많은 이야기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세상 모든 문제는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서로 영향을 끼치지만 그중 사회와 관련된 문제는 그 정도가 가장 심하거든요.]
흥미로운 이브의 관점.
올리버는 그런 이브와 대화를 나누며 신문을 마저 읽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값을 치르곤,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올리버의 눈에 햇살과 함께 과거보다 좀 더 현대적······. 아니 란다적으로 바뀐 라빌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과거와 현대적인 건축물이 뒤섞인 심오하고 묘한 풍경 대신 통일성이 느껴지는 풍경이.
인육 요리사가 때려 부수고, 새로 지어진 결과물로, 달라진 것은 비단 건물 풍경만이 아니었다.
도로 위 풍경도 꽤 달라진 상태였다.
비포장도로가 띄엄띄엄 섞여 있던 도로는 어느새 포장도로로 완전히 바뀌었고, 뭣보다 마차의 비율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분명, 라빌리에서는 마차와 자동차의 비율이 비슷비슷했건만, 지금은 자동차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척 봐도 알 정도.
인육 요리사가 일으킨 난리로 수많은 말이 폐사해 마차 회사가 큰 피해를 입었다더니, 아무래도 이를 기회 삼아 대중교통을 자동차로 대체할 모양인 듯했다.
‘뭐, 나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라빌리보다는 란다에 더 오래 산 올리버는 묘한 익숙함을 느끼며 택시를 잡았다.
필립 중장이 선물해 준 자동차가 있어 차를 직접 몰아도 문제는 없었으나, 자동차가 너무 눈에 띈다는 점과 여유롭게 도시를 둘러보고 싶다는 두 가지 이유로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택시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는 포도주를 들이켜며 빠르게 차를 몰았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과장을 보태면 바깥 풍경도 살펴보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다행히 정체 구간이 나오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자동차가 갑자기 많아져 생긴 헤프닝으로, 올리버는 이 순간마저 기회 삼아, 창문을 통해 라빌리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원 중인 역사적 건축물로, 이게 란다와 다른 점이었다.
대재앙으로 완전히 새로 지어진 란다와 달리 라빌리는 그 역사와 자취를 복원 중이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라빌리가 란다와 많이 비슷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란다의 신식 건축 기술을 적용한 탓인가 싶었지만, 그것만은 아닌 거 같았다. 왜냐면.
콰아아아아앙!!
도시 중간중간에서 터지는 화염과 마력광, 흑광(黑光)이 아니라고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벌건 대낮에서 초인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말이다.
라빌리가 란다와 비슷해진 것은 비단 건축물이나 도로 위 풍경 탓이 아니었다.
란다보다 치안이 잘 잡혔던 라빌리가 어느새 란다와 비슷해졌기 때문이었다.
이권을 두고 초인들이 싸우는 란다 특유의 자유로움과 무질서.
“이런······. 손님?”
“예, 기사님.”
“죄송하지만, 좀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가 전방 수백 미터에서 피어올랐다 사그라진 화염을 보며 말했다.
인육 요리사의 빈 여백을 차지하고자 초인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으로, 이미, 몇몇 차량은 억지로 방향을 돌려 인재(人災)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걸 보니 라빌리 치안이 안 좋아졌다는 게 좀 더 와닿네.’
올리버는 아까 전 레스토랑에서 읽은 기사를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육 요리사가 사라지자,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날뛰는 흑마법사.
수많은 시민과 호사가들은 이를 해결하지 못한 왕실을 비난하고 있다 하였다.
물론, 왕실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바퀴벌레를 다 없애지 못하는 것처럼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올리버는 침음성을 내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돌아서 가지요.”
올리버가 동의하자 운전기사는 바로 핸들을 꺾어 해당 구역을 벗어나려 했다. 허나, 이미 수많은 차량이 방향을 돌린 탓에 자동차끼리 엉켜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때아닌 소란과 정체 속 운전기사들의 짜증은 고조됐고, 일부가 창문을 열어 서로를 향해 욕설을 뱉는 그때.
쾅!!
저 위 건물 상층부에서 폭발음이 울리더니 한 인형(人形)이 떨어져 올리버가 탄 차량 앞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씨발!!”
뽑은 지 얼마 안 된 자동차 지붕이 푹 가라앉자, 운전기사의 기겁하는 소리가 울리며, 익숙한 얼굴이 올리버의 눈에 들어왔다.
전투로 인해 찢어지고 그을린 양복을 입은 킴벨 패밀리의 수장. 머피 킴벨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어느새 눈앞에 닥친 인재(人災)에 택시 기사는 난감함이 뒤섞인 욕설을 뱉었고, 올리버는 그런 기사에게 지폐를 내밀었다.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예?”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뇌가 제대로 작동 안 하는 운전기사. 올리버는 그런 운전기사에게 팁을 포함한 택시비를 쥐여준 후, 차에서 내렸다.
셔츠 칼라 안쪽에 통신기기가 울리며 이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드리려는 겁니까?]
“예. 머피 씨에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올리버는 흑마법을 배우겠다고 홀로 찾아온 머피의 막냇동생 마일로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올리버는 감정을 빠르게 추출. 머피 위로 블랙 실드를 전개했고, 실드가 전개되자마자 또 다른 인형이 내려와 날카로운 식칼로 실드를 꿰뚫으려 했다.
올리버가 그 즉시 실드를 조작. 공격이 닿는 부분의 두께와 밀도를 높인 탓에 뚫지 못하고 도리어 튕겨 나갔지만.
“인육 요리사 님 제자시군요.”
실드에 튕겨 기회를 놓치고 거리를 벌린 흑마법사를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십여 명의 흑마법사들이 곧바로 합세해 올리버 주위를 포위하였다.
들고 있는 식칼과 억지로 뭉친 듯한 마력과 감정을 볼 때 인육 요리사의 잔당인 듯했다.
올리버는 우선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안녕하-”
“-삐쩍 마른 얼굴······.”
“쿼터스태프?”
“붕대 감은 팔.”
“하얗게 센 한쪽 머리!”
“데이브다. 손가락 데이브······. 작전 취소! 모두 후퇴해!!”
십수 명은 될 법한 인육 요리사의 잔당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올리버는 멍하니 도망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머피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예, 데이브 씨.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네요. 그리고······.”
“······?”
“손가락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란다의 주류왕(酒類王) 머피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