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 새로운 국면 (2)
우우우우우우웅!!
성난 파리떼가 물결을 형성해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 마을, 정확히는 백조 교단의 또 다른 근거지를 습격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
앞선 다섯 마을처럼, 마을의 주민이자 백조 교단의 신자들은 숨겨둔 화기를 꺼내 맞서 싸웠다.
당연히 소용없었지만.
탕!
총소리가 울렸으나 피해를 입은 파리는 단 몇 마리. 나머지 수많은 파리떼는 신도들을 포위해 그 살점을 산 채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끄, 끄아아아악!!”
“아파! 아파아악!!”
“가려워?!”
“누, 눈이······? 우웁!?”
“끄르르륵!!”
파리떼에 물린 사람들은 수포, 통증, 간지러움, 실명, 호흡곤란 등 제각기 상태 이상을 호소했다.
규칙성이라곤 없는 이상 증상에 다들 혼란에 빠졌으나,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이 역병 파리는 원주인(原主人)인 역병의 페트 때부터 퍼펫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 양예(養蚋)한 물건.
파리가 품고 있는 질병은 주인인 퍼펫조차 다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독하였다.
하지만 역병 파리의 진가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뭐, 뭐야?!”
절망에 빠진 단말마가 울렸다.
질병에 감염돼 산채로 몸이 썩어 가는 사람이 지른 것으로, 그의 부패한 살점에서 파리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히, 히익······!”
공포와 혐오로 점철된 비명. 이것이 역병 파리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사람을 모체로 그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번식력.
이를 증명하듯 쓰러지는 사람에 비례해 파리떼의 규모는 더욱 커져, 이윽고 마을은 파리떼에 완전히 뒤덮여 나무, 집, 사람 가리지 않고 갉아 먹히기 시작했다.
오직 퍼펫의 정신이 깃든 중년 남성과 골렘, 흑마법사-송장인형만이 안전할 뿐.
퐈화하하하하하학!!
그때, 머리에 엉겅퀴 관을 두른 한 남자가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백조 교단에서 양성하는 일곱 번째 왕자 후보로, 잠자는 숲에서 확보한 왕자 후보와 앞의 다섯 마을에서 납치한 왕자 후보와 같은 종류였다.
총수가 11명인 걸 고려하면 벌써 반절을 훨씬 넘긴 셈.
“히, 히익?! 와, 왕자님?”
파리떼에 반쯤 먹힌 남자를 일곱 번째 왕자 후보가 들어 보였다.
붙잡힌 남자의 감정은 공포로 물들었다. 종말을 바라고, 인신공양이 최대 특기인 왕자 후보가 뭘 할지 알기에.
“크학?! 끄아아아아악!!!”
일곱 번째 왕자 후보에게 붙잡힌 남자는 끔찍한 단말마를 지르며, 피부가 밀랍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산 채로 화염으로 변했다.
살점은 장작, 피는 기름이 돼.
피와 살점을 연료 삼아 피어오른 화염은 시뻘겋고 끈적끈적해 흡사 지옥의 불을 연상케 했다.
콰화화화화화화항!!!
새로운 화염은 기존의 화염과 합쳐져 그 화력을 배가하였고, 그 열기(熱氣)와 열풍(熱風)은 마을을 뒤덮은 파리떼를 불태우고 쫓아내기 시작했다.
똑똑한 방법이었다. 무수한 파리 떼에겐 총기나 몽둥이보다 화염 같은 게 더 효과적이었으니.
허나, 일곱 번째 왕자 후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화염을 여러 개의 손으로 주조해. 파리 떼의 모체가 된 신도들을 붙잡았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신도를 제물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사, 살-!”
“으허헝! 어, 엄마! 어······!”
화염의 손에 붙잡힌 신도들은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그러기가 무색하게 재가 되어버렸다.
“······!”
신자들을 제물로 바친 일곱 번째 왕자 후보는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르더니, 잠시 후, 무형의 화염을 주조해 유형의 문으로 만들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군······. 하긴, 잠자는 숲을 제외하고도 다섯이나 습격당했으니 준비할만했지.”
인상 좋은 중년 남성의 몸에 들어간 퍼펫이 높이 6.35미터, 폭 3.98미터의 거대한 화염의 문을 보며 말했다.
화염의 문은 강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열렸고, 그 문틈 사이로 온몸이 불타는 거대한 까마귀가 튀어나왔다.
━━━━━━!!
구조물처럼 거대한 까마귀는 소리 없는 굉음을 지르며 날개를 활짝 펼쳐 주변의 화염과 공명했고,
화염은 아까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날뛰며 강렬한 열기를 발산, 파도처럼 요동쳐 퍼펫을 사방에서 집어삼키려 했다.
그때였다.
뎅! 뎅! 뎅!
화염이 퍼펫을 집어삼키려는 찰나, 허수아비처럼 엮인 거대한 골렘-송장인형이 지팡이에 달린 거대한 종을 흔들어 검은색 음파를 퍼트렸다.
퍼진 검은색 음파는 불타는 까마귀의 머리를 강타. 그 기세를 꺾어버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정(否定)]
골렘-송장인형이 베일로 가린 얼굴을 통해 영창하자 불바다로 변한 마을이 홍해처럼 둘 갈래로 나누어졌고,
손가락 끝에 있던 불타는 까마귀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한순간 화염이 사그라들더니, 그 아래 있던 골격 곳곳에 실금이 생겼다.
쿠앙!!
골렘-송장인형은 그 여세를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차 하늘 위로 뛰어오르더니 지팡이를 내리쳐 불타는 까마귀를 강타했다.
날카로운 종소리와 둔탁한 타격음.
연이어진 공격에 실금이 간 까마귀의 한쪽 날개는 무너졌고, 상공을 방황하던 파리떼는 촉수 형태로 뭉쳐 까마귀의 부서진 틈새 사이를 파고들어와, 불타는 까마귀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켰다.
콰과과광!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불타는 까마귀.
일곱 번째 왕자 후보는 당황하면서도 주변에 남은 화염이라도 이용해 저항하려 했으나, 골렘-송장인형이 내리친 단순하지만 강력한 주먹질에 제압당해버렸다.
생각 이상으로 쉬웠다. 백조 교단의 왕자 후보라는 것들.
하긴, 이름만 거창할 뿐, 교주의 축복을 감당하는 것 외에는 그렇다 할 내세울 게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세상의 종말을 바라는 인간 중 건실하고 대단한 인간이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긴 하지.”
중년 남성-송장인형에 깃든 퍼펫이 저벅저벅 걸어가며, 온몸이 부러진 일곱 번째 왕자 후보를 내려다봤다.
그저 가진 건 세상에 대한 원망뿐인 싸구려들.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인지하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 참으로 불공평했다.
퍼펫은 그런 일곱 번째 왕자를 내려다보다 골렘-송장인형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골렘-송장인형의 지팡이에 달린 엉겅퀴 관이 없는 왕자 후보를.
잠자는 숲에서 노획한 놈으로, 퍼펫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누군가를 흉내 내듯 일곱 번째 왕자 후보 머리 위에 있는 엉겅퀴 관을 붙잡았다.
꽈악······!
이대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뜯어낼 수 있을 듯했지만, 힘을 주자 통증이 느껴지며 그러지 못했다.
분명, 통증은 차단했을 터인데. 역시, 악마의 힘. 그 정수로 만든 물건다웠다.
“쉽지 않구만······.”
엉겅퀴 관을 뜯는 데 실패한 퍼펫이 앞을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직 사방에는 일곱 번째 왕자가 신도를 제물로 바쳐 만든 지옥의 불이 있었다.
분명, 술사를 제압했으니, 사라져야 마땅했으나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화염의 통제권을 이어받았다는 것.
퍼펫의 추측이 정답이라는 걸 증명하듯, 곧 화염의 바다 사이로 길이 생기며 한 허름한 오두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떼와 불바다가 펼쳐진 와중에도 멀쩡한 오두막이.
그 오두막을 보며 퍼펫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이야기하실 마음이 생기셨나 보군.”
퍼펫은 골렘-송장인형에게서 지금까지 포획한 왕자 후보들과 방금 붙잡은 왕자 후보를 끌고 화염의 길을 걸어, 그 끝에 있는 오두막을 방문했다.
“왕자 후보들치고 허약하더군.”
퍼펫이 낡은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낡아 빠진 오두막 안쪽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실로 입술을 꿰매고, 피투성이 손으로 쐐기풀을 계속해 엮는 소녀가.
그 기괴한 모습은 동화 속 공주처럼 아름다운 외모도 퇴색되기 충분하였는데, 소녀는 개의치 않고 침묵하며 쐐기풀을 엮을 뿐이었다.
“······.”
철저한 무시. 그러나 퍼펫은 만족스러웠다.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거였으니.
퍼펫은 소녀의 앞에 왕자 후보들을 내려다 놓은 후, 주변에 널브러진 의자를 가져와 편히 앉으며 말을 꺼냈다.
“우선 사과부터 하겠소······. 공주.”
공주는 침묵한 채 쐐기풀을 계속해 엮었다.
“그대가 힘들게 만든 왕자 후보들을 이 꼴로 만들어서.”
공주는 침묵한 채 쐐기풀을 계속해 엮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안하진 않소. 그럴 가치가 있는 물건이냐면 그건 또 아니니까. 당연히 공주도 동의하는 바겠지?”
공주는 침묵한 채 쐐기풀을 계속해 엮었고, 간신히 숨만 붙은 왕자 후보들은 공주를 올려다보았다.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라 믿게 해준 백조 공주를.
공주는 그들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공주가 축복해준다 해도 그릇이 변변치 않으면 소용없으니······. 그대도 느끼는 바겠지? 악마가 강림하기 시작했는데도 그릇 탓에 한계가 명확한걸. 그래서 새로운 그릇을 찾고 있고.”
왕자 후보들도 모르는 사실을 퍼펫이 말했다.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공주만은 침묵한 채 쐐기풀을 계속해 엮었다.
“그래서 내가 왔소. 공주의 문제를 조금 도와줄까 하고.”
공주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신대륙에서 꽤 괜찮은 왕자 후보를 찾았거든. 여기 왕자 후보들처럼 누구보다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여기 왕자 후보들과 다르게 재능과 노력, 의지를 갖춘······.”
퍼펫이 말꼬리를 흐리자 허공이 깨지며 한 소년을 안은 홍인(紅人)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 다리가 살덩어리로 이뤄지고, 피부는 얼룩덜룩 탈색된 홍인이.
불타버린 자가 강림한 현장에서 동생과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굽히지 않는 무릎이었다.
***
달그락. 달그락.
올리버는 한창 재건 중인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참고로 인육 요리사가 일으킨 난(亂)으로 인해 라빌리는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마법과 기계공학 그리고 아카이브와 파테르교의 지원에 힘입어 단숨에 재건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챙기고 바로 란다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성기사의 권유로 잠시 갈로스에 남게 돼 재건하는 광경을 둘러볼 수 있었다.
‘좀 머물다 가시는 건 어떻겠소?’
금으로 된 묵주로 천여 명이 넘는 군대를 소환한 철갑 성기사가 말했다.
용병, 엔조이먼트 드루이드, 흑마법사, 마법사, 도굴꾼 무리를 전투 한번 없이 기세만으로 제압한 성기사가.
그 모습에 흥미가 생긴 올리버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지금 라빌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곳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몇몇 이쪽을 주시하고 있군요.]
올리버의 셔츠 칼라 안쪽에 부착된 통신기기. 그 통신기기에서 퍼져나오는 마력을 통해 주변을 파악한 이브(Eve)가 말했다.
잠자는 숲에서 벗어나고 몇 시간 후 다시 통신이 연결된 이브(Eve)는 올리버에게 휴식 시간 때마다 말을 걸었고, 올리버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든 것이 이브(Eve)에게 경험이 될 테니. 올리버도 심심하지 않아 좋았고.
“제 식사하는 모습이 이상해 그런 걸까요?”
왼손과 마력을 이용해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올리버가 물었다.
불타버린 자로 인해 오른손에 화상을 입은 올리버는 정령의 도움으로 그 통증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나이프는 쥐기 어려웠다.
그래서 올리버는 마력을 조작해 작은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만들어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꽤 특이한 모습이라 그런지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아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올리버는 스테이크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이브의 목소리에 비해 가볍게 대꾸했다.
루시앙이 알려준 레스토랑으로 음식 맛이 훌륭했는데, 늘 허기진 올리버에겐 더더욱 맛이 좋았다.
거의 다 먹어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마음 같아선 이 레스토랑 식재료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다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전에서 만족을 모르는 폭식은 죄악이라 하던데.’
올리버가 신대륙에서 요안나에게 다시 받은 성경 내용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미 한번 읽은 내용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읽었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교단 본부로 간다고 한 거 같던데.
그때, 이브가 말했다.
[소문이 퍼진 것도 한몫한 거 같습니다.]
“예?”
올리버가 식사를 잠시 멈추며 다시 물었다. 이 타이밍에서 나오는 소문이 이제 대충 뭔지 경험을 통해 알 것 같아서.
문제는 그걸 올리버가 썩 반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쁜 예감을 틀리지 않는 법. 이브가 말해줬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확보하는 과정 데이브의 활약이 퍼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갈로스 내부는 물론 바깥으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