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 유산 (1)
“진심입니까?”
“당연히 구라겠지! ······아니면 아까 전에 싸울 때 머리를 다쳤거나.”
올리버의 말을 들은 루시앙과 이완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느새 원래대로 되돌아온 울창한 숲. 그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던 올리버가 되물었다.
“제 말이 어디 이상한 게 있습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이완이 답했다.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네가 반 가진다고 했잖아?”
그랬다.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유산을 반 가지겠다고 선언했다.
“제 몫은 제가 챙겨야 할 것 같아서요.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갈로스로 떠나기 전 자기 몫을 챙기라는 포레스트의 조언과 란다 뒷세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올리버가 말했다.
“젠장, 챙긴 게 고작 그거야? 절반? 정말 자기 몫 챙길 생각이면 전부 가진다고 해야지!”
이완이 마치 자기 일처럼 버럭 소리쳤다.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전부요?”
“그래! 전부! ······저 깡패 새끼들이 씨발 뭘 했다고 절반이나 남겨주는데?! 대가리 숫자만 많았지 조또 쓸모없었다고!! 심지어 성기사도 쓸모없었지. 뭐 하는 놈이야 저거는?”
이완이 루시앙을 비롯한 밀리유의 각 보스와 그 뒤를 따라오는 간부, 단원. 온몸에 철갑을 두른 성기사를 골고루 가리키며 말했다.
참으로 모욕적이기 그지없는 언사. 허나, 아무도 이에 토를 달지 못했다.
왜냐면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잠자는 숲에서 쏟아지는 크리처, 백조 왕자, 퍼펫 등. 밀리유가 한 것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 게 전부. 자신들의 몫을 요구할 권리 따위 없었다.
거기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올리버의 존재감도 한몫했다.
밀리유도 흑마법사도, 트레저 헌터도 쓰러트리지 못한 상대들을 홀로 물리친 올리버.
마법사 혹은 흑마법사의 성취가 절정에 이르면 개인이 조직 이상의 힘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단순한 조직을 넘어 군대 그 이상 말이다.
거기다 해결사 데이브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사해본 루시앙은 경우, 올리버가 송장인형도 다룬다는 걸 알기에 그 위압감이 배가 됐다.
혼자서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를 수백 명 죽였다는 소문이 어쩌면 허언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 외에도 연이어진 전투로 피로가 쌓였고, 뭐가 됐건 이완의 도움을 받기도 한 터라 일단 묵묵히 듣고 있었다.
채무탕감 동의서에 사인을 받자마자 그는 밀리유 보스들뿐 아니라 그 부하들도 ‘서비스’로 치료해 주었기에.
원수 같은 놈이긴 했지만, 받은 도움이 있는 것도 사실. 그래서 다들 이완의 폭언을 참고 있었다. 바로, 지금도.
“난 솔직히 이 깡패들과 동행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도대체 왜 같이 가는 거야?!”
“동업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깡패와 동업한 거야?!”
“이완 님이 빚을 졌으니까요?”
“맞다! 씨발!!”
올리버 대답에 이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밀리유는 처음 이완을 만났을 때 멱을 따지 못한 걸 후회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미래를 보는 사람은 있었다. 가령, 장사꾼이란 이명(異名)을 가진 루시앙 같은.
그는 혈압이 끓어오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함을 유지. 이완 대신 올리버를 주시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를 경청하기 위해.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요컨대, 어쨌건 제가 다 가져도 불만이 없으시다는 겁니까?”
이완이 첫 번째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 몫은 곧 내 몫. 깡패 새끼들이랑은 나눠 먹을 생각 따위 추호도 없어.”
한결같은 대답. 올리버는 루시앙을 봤다.
루시앙은 밀리유를 대표해 답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저희도 불만은 없습니다.”
“진심이시군요.”
올리버가 루시앙의 감정을 꿰뚫어 봤다. 그는 아직도 인육 요리사의 유산에 욕심이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모든 권리는 올리버에게 있다고 동의했다.
“예······. 아쉽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공에 따라 배분하는 게 맞는데, 저희는 돕기는커녕 도움만 받은 게 사실이니까요······. 오히려 빚을 졌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루시앙은 순순히 말해줘도 될 이야기와 해주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모두 했다.
실제로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올리버에게 목숨을 구명(救命) 받은 거나 다름없는 처지.
그 목숨값을 요구해도 무리는 없었다. 손가락인 퍼펫과 대등하게 맞서 싸운 존재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밀리유 보스도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루시앙을 노려볼지언정 그 말 자체는 부정하지 못했다.
이런 뒷세계에서는 허튼소리도 용서받지 못하는 법이니.
허나, 루시앙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건 아니었다.
두 눈으로 봐온 올리버와 소문으로 들은 올리버의 정보를 취합해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는 대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는 얼핏 어리숙해 보이지만, 중요한 구간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과 그가 쌓은 결과물을 봤을 때 세 치 혀로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과는 거짓말을 안 하는 법이니.
뭣보다 그는 탐욕스러운 성격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지.
이 점을 고려할 때 가장 최상의 수는 진실한 태도를 취하는 거였다. 마치 신을 대하듯.
다행히 이는 적중했다.
걸어가던 올리버가 멈춰 서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멈추자 수백 명의 밀리유가 발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
단 한 사람을.
“······그래도 반만 가지겠습니다.”
“왜 씨발.”
이완이 자기 지갑이 털리는 것처럼 불평했다.
인육 요리사가 숨긴 재산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태도였지만, 올리버는 남의 일처럼 초연할 뿐이었다.
“그래도 동업자니까요? 아까 전에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퍼펫과 싸운 직후 떠나기 전 일을 올리버가 언급했다.
올리버가 동업자들과 함께 바로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백조 왕자가 소환한 잔해물과 퍼펫의 재료로 쓰인 클로드 일행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챙기기로 했다.
한쪽 팔이 불편한 올리버로서는 번거로운 일. 그때, 밀리유가 나서서 도와줬다.
백조 왕자가 소환한 잔해물과 클로스 일행의 시체를 한데 모아 챙기기 쉽게 해주었다. 쿼터스태프도 챙겨줬고.
올리버는 그것으로 이번 일에서 역할을 해줬다고 인정한 거였다.
“미쳤군.”
이완이 모두의 생각을 대변해줬다. 목숨 걸고 일하는 이쪽 바닥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 발상이었으니.
다만, 문제는 올리버가 나눠주는 쪽이라는 거였다.
“너무 빡빡한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난 빡빡한 거 좋아해.”
“······?”
올리버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댔고, 밀리유는 한결같은 씹새끼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완이 다시 말했다.
“어쨌건 난 반대야. 아무것도 안 한 짐짝들과 내 몫을 나눌 수 없어.”
“완전 개새끼네······.”
한결같은 이완의 태도에 불만이 나왔다. 그러나 올리버는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 뿐이었다.
“그런데, 이완 님.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이완 님 몫도 없지 않을까요?”
“예?”
예상치 못한 발언에 이완이 존댓말로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만, 이완 님도 하신 게 없지 않습니까?”
이완의 두 눈이 커졌다. 올리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기에.
길 가다 칼이라도 맞은 듯 이완은 당황했다.
“내, 내가 왜 한 게 없어?!”
“뭘 하셨죠?”
카운터 펀치처럼 들어오는 올리버의 질문에 이완이 다시 당황했다. 왜냐면 한 게 정말로 없었으니까.
이완이 입을 뻐끔거리다 말했다.
“······밀리유를 치료해줬지.”
“이완 님 말씀대로면 밀리유 분들은 제게 도움이 안 됐으니, 이완 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사람 면전(面前)에 대고 조또 쓸모없는 깡패 새끼들이라고 할 수 있냐고?!!”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요.”
“듣기 싫어! 진짜 사람이 변했군······. 젊고, 돈 많고, 힘세고, 번듯한 직업도 생겼다고 사람이 변했어! 그게, 전부야? 씨발, 그래 전부네!!”
이완이 자문자답했다. 그런 이완을 보며 올리버가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완은 듣지 않았고, 그러기를 잠시 이완이 떠올랐다는 듯 다시 소리쳤다.
“······아! 난 애당초 도움이 될 필요가 없어.”
뒤늦게 떠오른 사실을 이완이 꺼냈다.
“애당초 난 너랑 몫을 나누기로 하고 왔잖아? 내가 한 게 없다해도 난 내 몫이 있어. 내가 이겼다! 하이파이브!!”
이완이 손을 뻗었지만, 아무도 이완의 손을 맞장구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올리버 역시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그 말씀이 나오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엄밀히 말하면 저와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눌지 정하지 않았고, 이후, 밀리유 분들을 만나 계약을 수정했지 않습니까?”
“수정?”
이완이 순진하게 되물었다. 이해하는 바였다. 살점이 산채로 도려질 뻔한 상황이었으니.
“예, 이완 님 빚 때문에 살점을 자르는 대신 동업하고, 획득한 몫으로 빚을 변제하는 걸로요. 복리 이자 때문에 액수가 워낙 천문학적으로 커져서요. 그 말은 즉 이완 님이 빚을 변제했으면, 이완 님 몫도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적막이 감돌았다.
올리버와 이완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눌지 정하지 않은 게 사실이고, 이후, 밀리유를 만나 새로운 계약이 추가된 것도 사실이었으니.
이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안 되잖아?! 빚이 사라진 거랑 내 몫이 사라진 거랑 뭔 상관이야.”
“저와 이완 님이 맺은 계약에 밀리유와 맺은 계약이 추가되면 이렇게 됩니다. 이완 님 몫이 빚이랑 연동됐으니까요. 란다 계약법에 따르면 이렇게 됩니다.”
“네가 법을 알아?”
“예, 포레스트 님께서 기본적인 건 알려주셨거든요. 뭐가 됐건, 공동대표라고.”
“······또라이 새끼네, 이거.”
이완이 자기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진짜 또라이 같았으니까.
그때, 루시앙이 이완의 어깨를 붙잡았다.
“놓으시오. 삐지려는 중이니까.”
“미안하지만, 빚을 마저 갚고 삐지시지요.”
“뭔 개소리야. 내가 빚을 다 갚았는데?”
“옛날 우리에게 진 빚은 갚았지만, 임무 도중 우리 부하들에게 진 빚은 아직 갚지 않았습니다.”
루시앙이 증거로 차용증을 보여줬다. 루시앙의 사인과 지장이 들어가 있었다.
“빚이요?”
빚이란 단어에 올리버도 반응했다. 그사이 새로운 빚을 지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어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예, 데이브 씨가 떠나고, 이완이 우리 부하들하고 카드 게임을 했거든요.”
“이완 님 돈을 다 빼앗아 가지 않았나요? 처음 붙잡았을 때?”
“그러니까, 빚을 또 졌죠.”
“아······.”
논리적인 전개에 올리버가 감탄했고, 루시앙은 보충 설명해줬다.
“이완 씨께선 인육 요리사의 유산만 차지하면 빚을 갚고도 남는다고 해, 차용증을 쓰고 또 도박했습니다. 그 액수는 이 정도고요.”
루시앙이 차용증 액수를 올리버에게 보여줬다.
“·····부하분들이 그렇게 돈이 많습니까?”
“저희가 빌려줬거든요.”
“아······.”
올리버는 다시 탄성을 냈고, 이완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럼, 그것도 탕감해야지!”
“채무탕감 동의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몇 년 전, 진 빚만 포함되어 있어, 이건 예외요. 뭣보다 우리가 쩐주긴 해도 그 빚은 엄연히 우리 부하들에게 진 빚이라 동의서 예외 대상이요.”
그랬다. 이완은 타인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과거 빚을 포션 몇 개로 탕감하는 비장의 수를 뒀지만, 동시에 현실의 빚은 고려하지 못했다.
과거의 빚이 너무 커, 현재의 빚은 그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밀리유 보스들을 엿 먹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실수하고 만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계약서를 다 읽은 루시앙도 미친놈이었지만.
여하튼 상황이 이리 흘러가자 어느새 밀리유는 처음 이완을 만났을 때처럼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완은 전부 꺼지라고 욕을 뱉었으나,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밀리유가 단검을 뽑으려는 찰나, 올리버가 제안했다.
“그러니 제가 반만 가질 테니, 나머지는 여러분이 나눠 가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가 됐건 동업자니 좋게 해결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이번만큼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의문의 목소리가 나왔다. 뒷세계에서 그렇게 한몫 챙기는 경우는 없었기에.
“정말 괜찮겠습니까?”
“예······.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루시앙이 기쁘게 응했다. 공짜보단 조건이 있는 게 더 마음에 놓였으니까.
“제가 아둔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하나, 이런 큰돈을 획득하면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조언과 해결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다. 루시앙의 감정 상태를 보니 사실인 듯했다.
“그렇긴 하지요.”
“그걸 여러분이 저 대신 처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컨대, 뒷처리를 해달라는 거군요. 부스러기를 원하는 하이에나, 사기꾼, 세금, 갈취자 같은 것들로부터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그렇게 비싼 값을 지급해주신다면 기꺼이 그래야지요. 책임지고 데이브 씨에게 귀찮은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어떻습니까?”
루시앙은 다른 밀리유 보스를 보며 물었고, 다들 동의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경제적으로나, 위신적으로나 선택할 수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올리버가 한마디 더 했다.
“아,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인육 요리사 님의 유산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때까지 기다리신 후 들어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유는 묻지 말아 주시고요.”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루시앙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얼핏 거래처럼 진행했지만, 지금 자기들과 올리버의 관계가 위아래가 나뉜 갑을 관계라는 걸 이해한 것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게 있군요.”
“예?”
“인육 요리사의 창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가 두 개 필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있는 거라고는 하나뿐이고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머지 열쇠는 성에서 얻을 수 있거든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해줬던 말을 토대로 올리버가 대답했다.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
올리버가 떠나기 전,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말해주었다.
인육 요리사가 자신의 비자금을 어떻게 숨겼는지.
그는 자기 재산을 정말 고성(古城)에 숨기는 대신, 고성과 똑같이 꾸민 별도의 금고에 숨겼다고 하였다.
고성으로 들어가는 건, 그저 입구로 들어가는 것뿐.
이게 가능한 이유는 유사한 내부 공간을 매개로 하는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덕분이라 하였는데, 그래서 문을 통하지 않고, 힘으로 성을 억지로 부수면 유산을 얻긴커녕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주 영리한 방법으로, 안전하게 유산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이동 마법의 발동조건인 열쇠 두 개를 열쇠 구멍에 넣는 것뿐이었다.
‘돈에 관해서는 참 철저했죠. 그 아이는요. 하긴, 가난에 시달려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니, 오죽할까요? 그래서 성 외에도 울창한 숲에 결계를 걸어 달라 했을 때 수락했지요.’
‘인육 요리사를 아이라 칭하시는군요.’
‘······제 눈에는 아이였거든요. 안타까운 아이요.’
‘······.’
여하튼 인육 요리사는 자신의 재산을 그렇게 철저하게 숨겼다.
루시앙이 말한 열쇠의 소문이 사실인 것.
그리고 그 열쇠 중 하나는 지금 성에 있었다.
“이 성에 말입니까?”
루시앙과 밀리유가 울창한 숲 가운데 자리 잡은 고성(古城)을 둘러보며 말했다.
덩그러니 놓인 성채와 그 성채를 둘러싼 성벽.
세월 탓인지 당장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음산한 고성에는 병사의 모습을 본뜬 석상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수는 족히 수백 개로, 정말 성을 지키듯 그 모습이 생생했다.
올리버는 레드후드에게서 얻은 열쇠를 꺼내 성문 열쇠 구멍에 끼우며 대답했다.
“예.”
철컥.
올리버가 무쇠 열쇠를 돌리자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성을 두른 성벽 문이 저절로 열렸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녹슨 경첩이 먼지를 흘리며 움직이자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끽익익익익익······!
드드······.
드드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드드드드.
모두가 귀를 막는 와중 고개를 갸웃거렸다.
억지로 틀어막은 귓가로 칠판 긁는 소리 외, 또 다른 소리도 미세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칠판 긁는 소리가 강해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귀를 기울이면 느낄 수 있었다.
성벽 위에 촘촘히 세워진 석상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저 위에 있는 수백 개의 석상은 장식품이 아닌, 장식품으로 위장한 보안용 골렘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쿵!
쿵!
쿵!
수십 톤에 달하는 돌덩어리 병사들이 하나둘 성벽 아래로 떨어졌고, 놀란 밀리유는 다급히 전투태세를 갖췄다.
수십 톤에 달하는 돌덩어리 병사는 정면에서 붙으면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골렘들은 밀리유에게 다가왔고, 그중 일부는 성벽 위에 달린 공성 무기를 조작해 공격 준비를 했다.
마지막까지 이런 트랩을 설치한 인육 요리사의 집요함에 다들 경악하는 와중 올리버 손을 들어 인육 요리사를 흉내 낸 마력을 뿜어댔다.
마력을 감지한 골렘의 모든 시선이 올리버에게 집중됐고, 그들은 올리버의 몸에 깃든 인육 요리사를 느낄 수 있었다.
자기들의 주인.
골렘들은 일제히 적대 행위를 멈출 뿐 아니라, 올리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과시적인 인육 요리사가 설정한 대로.
올리버가 그 사실을 알기에 골렘들에게 부탁했다.
“숨겨 놓은 두 번째 열쇠를 가져와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