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 아카이브 (1)
영생의 퍼펫.
올리버가 처음 만난 손가락.
그가 올리버의 손을 붙잡았다.
손이 닿기 전까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올리버는 그의 등장에 꽤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신경을 백조 왕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주변을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신경 쓰이는 것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 송장인형······. 갈로스 하수도에서 봤던 거네.’
움푹 들어간 뺨, 지푸라기 같은 머리, 덥수룩한 수염, 넝마만 걸친 헐벗은 모습······. 지금 퍼펫이 사용 중인 송장인형은 인육 요리사가 라빌리에서 난리를 일으켰을 때 봤던 송장인형이었다.
하수도에서 제인을 돕던 중 만난 걸인.
그때도 보통 송장인형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보다 아는 게 많아진 지금은 더더욱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에서 내뿜는 고강한 마력과 손이 잡힐 때까지 인지하지 못한 존재감이 그 증거.
당황과 감탄이란 감정이 올리버의 마음에 피어올랐고, 뒤이어 의문이란 감정이 생겨났다.
퍼펫이 어떻게 여기 갑자기 나타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도 그럴 게, 울창한 숲은 물론, 공주의 권역인 잠자는 숲 어디에서도 퍼펫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퍼펫 정도의 실력자라면 숨어있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올리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불러내기 위해 자기 피를 매개로 잠자는 숲 전체를 한번 둘러봤기에.
그 덕분에 공주 기거하는 성을 끄집어낼 수 있었고. 그때만큼은 퍼펫도 숨어있을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잠자는 숲 바깥에 있다, 공간 마법을 이용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허나,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잠자는 숲 내부에서의 공간 마법은 그렇다 쳐도, 잠자는 숲 바깥에서 안으로 공간이동 마법을 쓰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결계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었고, 잠자는 숲은 그 이상이었다.
퍼펫 정도의 실력자면 강제로 잠자는 숲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해도, 이렇게 원하는 위치에 딱 나타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 잠자는 숲의 주인은 공주였으니.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퍼펫에게서 느껴지는 뒤틀린 마력을 따라가자 곧 해결됐다.
“······퍼펫 님.”
“응?”
“클로드 님. 베이 님, 역병상인 님······. 모두 퍼펫 님 제자 아니셨습니까?”
올리버는 눈코입에서 피를 흘리며 소환마법의 재료가 된 클로드, 베이, 역병상인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대량의 피를 흘리며 소리 없이 죽어있었고, 그렇게 나온 대량의 혈액은 하나의 생물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있는 마법진을 형성했다.
퍼펫은 그 마법진을 통해 이곳에 나타난 거였다.
뛰어난 흑마법사 셋을 재료로 삼은 혈마법과 인신공양술의 복합 술식을 통해.
이 정도면 퍼펫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해가 됐다.
올리버의 질문에 퍼펫이 감탄했다.
“호오······. 변했군.”
“······.”
“평소였다면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나 했을 텐데.”
짧고 간결한 대답이었지만,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올리버가 이에 대답했다.
“클로드 님, 베이 님, 역병상인 님께서 이곳에 왜 왔는지 들었거든요.”
“왜 왔다 하던가?”
“퍼펫 님께 드릴 선물을 얻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올리버가 클로드 일행과 같이 움직이려고 했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울창한 숲에 온 것은 단순히 인육 요리사의 유산 때문만이 아니었다.
유산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기들을 위한 게 아닌 퍼펫에게 줄 선물 때문에 온 것이었다.
자신의 보신을 최고 가치에 두는 흑마법사치고 이례적. 그래서 인상적이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시계라던데, 자세히는 못 물어봤지만요. 조금 바빠서요. 다만······.”
말꼬리를 흐리던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퍼펫 님을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군.”
“······?”
“뭐가 됐건, 내게 쓸모가 있었다는 거니까.”
그 순간 퍼펫의 마력이 요동쳤고, 올리버는 붙잡힌 왼팔을 뿌리치며 뒤로 당겼다. 주먹을 내지르기 위한 예비 동작.
양쪽 모두 너무나도 빨라 누가 먼저 움직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거인을 연상케 한 거대한 주먹도 부순 올리버의 주먹이 퍼펫에게 날아갔고, 퍼펫은 고강한 마력을 통해 대기를 뭉쳐 이를 막았다는 거였다.
쩌적!
올리버의 주먹과 대기를 뭉친 장벽이 부딪히자 폭발을 연상케 하는 후폭풍이 발생하며, 보이지 않는 장벽에 금이 갔다.
흡사, 허공에 균열이 생긴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을 본 수백 명의 사람은 감탄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워했다.
저런 주먹을 휘두른 올리버에게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저런 주먹을 막은 퍼펫에게 감탄해야 할지.
확실한 건 지금 퍼펫과 올리버는 같은 수준에 있다는 거였다. 동등한 흑마법사.
꾸구국······!
올리버는 휘두른 주먹에 힘을 줬고, 허공의 실금은 더욱 넓어졌다.
올리버가 블랙 슈트를 팔에 두르려는 찰나, 이상을 눈치챈 퍼펫은 마력의 출력을 높여 올리버를 밀어냈다.
바닥이 뒤집힐 정도의 출력.
그러나 올리버는 열 몇 걸음 정도로만 뒤로 날아가 두 다리로 착지했다.
“비꼰 게 아니라 진심이야.”
퍼펫이 갑자기 말했다.
“내게 쓸모가 있었다는 거. 저 녀석들이 뭘 구하러 왔는지 대충 알 거 같기는 한데, 그거 가짜거든.”
“······가짜요?”
올리버가 되물었다.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이곳에 왔고, 실제로 지금 목숨을 잃은 클로드가 노리던 물건이 가짜라니.
잔혹할 정도로 허무한 사실이었다.
“그래, 무슨 시계라고 했지? 뭔지 대충 알겠어. 근데 그거 가짜거든. 인육 요리사가 가졌을 때 한번 봐서 알아. 가짜야. 이야기는 안 해줬지만.”
“왜 이야기하지 않으셨지요?”
“인육 요리사. 그 한 성깔 하는 녀석에게 말해줘봤자 귀찮을 뿐이니까.”
“아뇨, 제가 물은 건 클로드 님에게입니다······. 그럼, 여기 오지 않았을 텐데요.”
퍼펫이 고개를 갸웃댔다.
“? 반대로 묻지. 내가 왜 이야기해야 하나?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멋대로 한 건데.”
“······퍼펫 님의 제자이고, 조직원이지 않습니까?”
“제자라면 발에 챌 만큼 많고, 내 조직원도 아니야. 난 인육 요리사처럼 빡빡하게 굴지 않거든.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냅두지. 필요하면 도움을 청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인육 요리사와 달리 퍼펫은 자기 제자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이 하게 놔둬, 거대한 점조직 형태를 유지했으니. 그래도······.
“······퍼펫 님을 위한 거였습니다.”
올리버가 퍼펫에 관해 이야기할 때, 클로드와 그 동료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겉으로는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퍼펫을 위해 이곳에 온 거였다.
문득, 과거 거지패에 있을 때 만난 인형사 글립이 떠올랐다.
퍼펫의 제자지만, 인정받지 못했고, 인정받기 위해 자력으로 검은손에 들어가려 했던 흑마법사. 비록, 그 방법이란 게 거지를 검은손에 산 제물로 상납하는 거였지만.
허나, 그러한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퍼펫은 그를 아예 기억하지 못했다. 수백 년이나 살았고, 무수히 많은 제자가 있다는 이유로.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올리버는 퍼펫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안타까움? 아쉬움? 아니면-
“-저들을 동정하나?”
퍼펫이 갑작스레 말했다.
“······.”
“그렇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지. 베이는 범죄조직이나 반정부 단체, 군벌 등에 폭탄을 팔던 놈이고, 역병상인은 폭탄 대신 질병을 팔던 놈이니까. 저들의 상품에 의해 죽은 사람만 네 자릿수는 될걸? 객관적으로 보면 동정할 가치 없는 쓰레기들이야.”
진심.
“뭐, 클로드는 폭탄이나 역병 같은 위험한 물건 대신, 여성이나 아이들을 인형으로 가공해 돈 많은 변태들에게 팔아, 그 해악이 덜하긴 했지만, 그 역시 동정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지.”
퍼펫의 말은 진심이었고, 맞는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아니, 애당초 이 숲에 온 이들 대부분 뒷세계에 종사하고, 목숨을 걸고 온 이들.
어떤 이유로 죽는다 해도 억울해할 것도 원망해할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올리버는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됐다. 지금 하는 말도.
어쩌면 퍼펫을 대할 때 감정이, 거지패 아이들이 캔트를 보는 감정과 같아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애정을 가진 보호자.
“······퍼펫 님께서 그분들을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거둬 성인이 될 때까지요.”
“그런 것도 이야기했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 자네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 녀석들 구질구질한 고아 시절 이야기는 안 좋아하는데.”
“사실이군요. 한때, 고아원을 운영해 수많은 아이를 키웠다는 거요. 그것도 잘.”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고, 그래서 했을 뿐이야. 그리고 지금 필요해 의해 그 목숨을 쓴 거고. 대답이 됐나?”
올리버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를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이럴 이유가 하등 없건만. 클로드하고도 몇 번 이야기해본 것이 전부인 관계. 다만······.
‘음······.’
올리버는 속으로 침음성을 냈다, 왜 이러는지 본인도 몰랐기에.
“정말 변했군. 전에 봤을 때보다 감정이 더 풍부해졌어.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자기감정을 볼 수 없는 올리버가 물었다.
“······제가 무슨 감정이죠?”
“모르나? 하긴, 감정이란 건 본인이 가장 모르는 법이니. 그게 감정의 묘미고. 종잡을 수 없지. 증오하는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는 말도 안 되는 거니까.”
퍼펫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어딘가 뼈가 있었다.
“그런 자네도 나쁘지 않군······. 다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잠시 미루지. 볼 일이 있어 온 거라.”
퍼펫이 말을 끝마치며 백조 왕자를 가리켰다.
“저거 내가 도로 데려가도 되겠나?”
퍼펫은 혼자서 수백 명의 초인을 흡수하고, 압도한 백조 왕자를 저거라 칭했다.
올리버가 물었다.
“백조 교단과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난 많은 사람과 친분이 있지. 저 높이에 앉아 자칭 고귀하다는 인간부터, 사회의 밑바닥 쓰레기들까지. 다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야. 백조 교단과도 안면은 있지만, 친분이랄 거까지 말할 사이는 아니거든.”
“그럼?”
“필요에 의해서지.”
“그 필요라는 게, 퍼펫 님의 연구와 관련된 겁니까? 인간을-”
“-전에도 말한 거 같지만,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말게. 자기 속은 보여주기 싫어하면서 남의 속을 함부로 들추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맞는 말이라 올리버는 일단 사과했다. 올리버의 안 좋은 버릇 중 하나였다. 좀처럼 고치진 못했지만.
그 여세를 몰아 퍼펫이 부탁했다.
“사과해줘서 고맙군. 그런 의미에서 저건 내가 챙겨가도 되겠나? 필요해서 말이야.”
퍼펫이 백조 왕자를 가리키며 다시 부탁했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포식자의 위치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까지 노렸던 그가 지금 한낮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올리버가 백조 왕자를 보며 답했다.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저분께 볼일이 있습니다.”
“그거 곤란하구만. 서로 의견이 다르면 싸워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난 자네와 싸우기 무서운데. 특히, 맨손일 때는.”
퍼펫이 부서진 괴조의 잔해 가운데 박힌 쿼터스태프를 바라봤다.
올리버 역시 퍼펫의 시선을 따라 쿼터스태프를 봤고, 그렇게 시선이 팔린 틈을 타 퍼펫은 올리버도 몇 번 느껴보지 못한 고강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낯이 익은 마력은 주변을 공기 입자를 진동시켰고, 단순한 진동을 넘어 허공에 균열을 일으켰다.
공기를 매개로 한 공간 마법. 깨진 균열 사이로 다수의 송장인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에 빠진 시체처럼 온몸이 불어 터진 흑마법사-송장인형 한 구.
수십 명의 흑마법사를 거대한 허수아비 형태로 뭉친 골렘-송장인형.
온몸에 면피(面皮)를 두르고, 효수한 사람의 머리를 목걸이처럼 두른 말을 탄 기마-송장인형 한 구.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몸이 불어 터진 송장인형은 배아래 쪽에서 목까지 칼로 자른 듯 쩍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부패하는 쥐와 구더기, 파리를 쏟아냈고,
4미터는 족히 될 듯한 골렘-송장인형은 거대한 종이 달린 지팡이를 뎅! 뎅! 흔들어 소리가 퍼지는 범위 내에 정신적, 육체적 약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조작계열 흑마법을 다수 발동했다.
면피를 뒤집어쓴 기마-송장인형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백조 왕자가 휘두르던 살점 칼을 들어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살점 칼이 새 주인에 맞춰 그 형태가 바뀐 게 이를 증명했다.
하나하나 그 외형과 깃든 힘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
허나, 그러한 송장인형의 등장에도 올리버는 걸인의 모습을 한 처음의 송장인형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왜냐면 그의 손에 멀린과 같은 마력으로 이뤄진 책이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송장인형. 아카이브로 만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