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44화 (544/633)

544. 백조 왕자 (3)

기괴한 석상이 내지르는 기도문에 의해 몇 초간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올리버.

그런 올리버의 머리 위로 수백 개의 팔을 용접해 만든 거대한 주먹이 떨어졌다.

빈틈을 파고든 위협적인 일격.

거대한 크기의 주먹은 그 압도적인 질량으로 공기를 내리눌러 아래에 있는 모두의 발을 묶었고, 그 탓에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고 주먹만 올려다봐야 했다.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올리버는 왼손을 주먹 쥐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설마······.”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올리버는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맨몸으로 주먹 쥔 왼손을 하늘 위로 내질렀다.

━━━━━━━━━!!!!!

맞부딪힌 주먹과 주먹.

형용할 수 없는 굉음이 울리며, 해일과 같은 충격파가 부서진 살점과 뼈 파편과 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놀랍게도 박살 난 살점과 뼛조각은 주인은 올리버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하늘 위에서 내리친 주먹으로, 올리버는 산산이 부서진 거대한 주먹 잔해 사이에 당당히 서 있었다.

“······.”

힘과 크기, 질량. 무엇을 고려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광경에 모두 침묵하며 올리버를 봤다.

거인과 같은 거대한 주먹을 말라빠진 흑마법사의 맨주먹에 부서지는 건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허나, 의심하고 다시 본다고 눈앞의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흑마법을 쓰지 못한 올리버는 멀쩡했고, 부서진 건 거대한 주먹뿐이었다.

“······.”

모두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경악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뿐 아니라, 올리버를 상대하던 백조 왕자 역시.

그는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흔들릴 정도로 동요했다.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흑마법사의 최대 무기인 흑마법을 몇 초간 무력화시키고, 그 타이밍에 정확히 불의의 일격을 날렸건만, 그걸 맨몸으로 이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허나, 지금 분명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당황한 백조 왕자. 그러나 그는 곧 정신을 차리며 괴조(怪鳥)에게 명령 내려 올리버를 공격하게 했다.

소환자의 명을 받은 괴조는 거대한 몸체를 움직여 올리버에게 돌진하려 했다.

쿵! 쿵! 울리는 대지. 바로, 그때 올리버가 하늘 위를 가리켰다.

“······?”

[블랙 로드(Black Rods)]

올리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량의 감정이 뭉치고 뭉친 거대한 막대기가 괴조(怪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쿵!!

거대한 막대기의 정체는 하늘 위로 날아간 쿼터스태프로.

쿼터스태프는 하늘 위로 날아간 상태에서 주변의 감정을 흡수해 그 크기를 키웠다.

하늘 역시 잠자는 숲의 권역에 포함되었기에 가능한 일.

거대한 막대기가 괴조와 충돌하자 원형 충격파가 발생하며 괴조의 몸을 부수듯 꿰뚫어 버렸다.

그 모습은 흡사 사람이 기둥에 꿰뚫린 것처럼 보였는데, 이를 본 백조 왕자는 경악하고 말았다.

하긴, 거대한 주먹을 맨몸으로 부수고, 이런 예상치 못한 반격까지 준비했으니.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격뢰(激雷)]

올리버의 영창하자 잠자는 숲 특유의 음울한 하늘에서 번쩍거리며 뇌광(雷光)이 뱀처럼 구름 사이를 헤엄치더니, 강렬한 빛과 열기를 발산하며 블랙 로드 위에 내리꽂혔다.

쾅━━!!!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서 전수 받은 지식을 토대로 올리버가 숲에 통제권을 행사한 것.

거대한 검은 벼락이 떨어지자 쿼터스태프에 감긴 감정이 화약처럼 반응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전격에 이은 대폭발.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뇌광(雷光)이 번뜩이며, 강렬한 열기가 발생해 대지뿐 아니라 거대한 문을 통해 나타난 괴조(怪鳥) 역시 시커멓게 불태워버렸다.

수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손상.

당연히 백조 왕자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모두 예상했다.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모두 어찌 된 것인가 파악하지 못하는 그때, 올리버는 잠자는 숲의 통제권을 발휘해 공간을 접어 이동. 저 멀리 도망치는 백조 왕자를 뒤를 쫓았다.

놀랍게도 백조 왕자는 그 강력한 전격을 맞고도 버틴 것인데.

단순히 버티는 걸 넘어 상황을 냉정히 파악. 자기 힘으로는 올리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곤, 공격의 여파가 가라앉기 전 빠르게 후퇴했다.

실로, 대단.

허나 올리버는 그런 백조 왕자를 흑마법사의 눈으로 포착해 잠자는 숲의 공간을 접어 그의 뒤를 잡았다.

“······!”

올리버의 그러한 움직임에 바라보던 사람들은 물론, 백조 왕자까지 경악했다.

당황한 백조 왕자. 그는 살점 칼을 휘둘러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올리버를 견제했다.

백조 왕자의 공격은 몹시도 위협적이었으나, 기본적으로 다듬어진 기술이 아닌 특이한 움직임과 힘으로 이뤄진 공격이기에 생각보다 대응하기 쉬웠다.

올리버는 한 손으로 흑마법을 준비하며, 백조 왕자의 모든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단숨에 백조 왕자의 품 안을 파고들어 술식을 발동했다.

[정결(定結)]

올리버가 영창하며 손에서 가공한 흑마법을 백조 왕자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백조 왕자의 몸통에 돋아난 따개비 형태의 얼음 조각.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올리버는 다시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리자마자 백조 왕자의 몸에 돋아난 얼음조각은 따개비처럼 그 영역을 확장했고, 백조 왕자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빛냈다.

분명 얼음이라 차갑긴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위력적이지 않아.

백조 왕자는 알 수 없는 흑마법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단 후퇴하려 했다.

비틀.

“······?!”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백조 왕자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몸에서 엄청난 속도로 기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정결(定結)의 특성이었다. 탐화(貪火)처럼 모든 것을 먹어치워 무분별하게 몸집을 키우는 게 아닌, 특정 대상. 그러니까 백조 왕자의 생명력만 흡수해 얼려버렸다.

탐화의 장점이자 단점인 무분별한 확장성과 통제 불가능한 화력을 참고해 만든 얼음으로.

당연히 탐화만큼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탐화와 같은 강력한 범위와 화력은 없었지만, 대신 정확성과 집요함이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가령, 지금 기력을 소진해 한쪽 무릎 꿇은 백조 왕자처럼.

그는 머리에 두른 엉겅퀴 관을 통해 아까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생명력을 공급받았지만, 채 사용하기도 전에 정결(定結)의 연료로 증발해 버렸다.

밑바닥이 없는 욕조에 물을 쏟아붓는 격.

그 탓이었을까? 엉겅퀴 관을 통해 주입되던 생명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했다. 재생에 필요한 재료가 다 떨어졌거나, 혹은, 생명력을 지원해주던 자가 더 이상 지원해주기를 거부하거나.

무리도 아니었다. 재생에 필요한 자원은 무한하지 않았으니.

점점 줄어드는 지원에 벼락을 맞아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백조 왕자를 흔들렸고, 백조 왕자는 상처를 내면서까지 몸에 엉겨 붙은 얼음을 떨쳐내려고 했다.

자해에 가까운 발버둥. 그러나 따개비 형태의 얼음 조각은 떨어져도 곧바로 다시 돋아났다.

탐화(貪火)와 같은 화력을 대신해 끈질김을 선택한 결과.

백조 왕자가 정결(定結)에 정신이 팔린 사이, 올리버는 살점과 갈비뼈, 해골 등을 이용해 백조 왕자에게 포격을 방불케 하는 공격을 가했다.

[핑거 건(Finger Gun)]

[본 불릿(Bone Bullet)]

[립 스티어(Rib Spear)]

[스컬 밤(Skull Bomb)]

과거 오염구역에서 만난 퍼펫이 사용했던 흑마법들은 들어간 재료만큼 놀라운 화력을 발휘하며, 백조 왕자를 타격해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가뜩이나 소멸하는 생명력이 뭉떵뭉떵 깎일 수준으로.

“······!”

엉겅퀴 관의 줄어드는 지원과 더불어 백조 왕자의 생명력 역시 점차 그 바닥을 보였고, 침착하던 백조 왕자는 어느새 초조함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에 잠식돼 판단력이 흐려졌다.

흐릿해진 판단력은 더욱 초조함을 자아냈고, 결국 그는 살점으로 이뤄진 칼을 잠자는 숲에 박아 넣고 말았다.

푹!

원래는 잠자는 숲의 뿌리이자, 근본인 공주를 찔러 도망칠 여력을 주지 않고 잠자는 숲을 한 번에 흡수할 계획이었으나,

백조 왕자는 올리버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손해를 각오. 일단, 잠자는 숲 일부분이라도 흡수하기로 했다.

자칫 잘못해 흡수해 해당 구역이 소멸.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도망칠 염려가 있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런 손해를 감수해야 할 만큼 올리버가 위협적이라 판단 내린 거였다.

하긴 이대로 있으면 패배할 게 뻔했으니.

백조 왕자는 자기가 이기는 방법은 잠자는 숲의 힘을 일부 흡수. 그 압도적인 화력으로 올리버를 단숨에 찍어 누르는 것 외에는 없다고 판단 내렸다.

그렇게 마음먹은 백조 왕자는 있는 힘껏 잠자는 숲을 흡수하려고 하였는데,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살점 칼이 아무것도 흡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악마의 지식으로 주조한 왕자의 무기가.

백조 왕자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순간 백조 왕자는 앞을 봤고, 올리버와 두 눈을 마주했다.

백조 왕자가 잠자는 숲을 찌르는 타이밍에 맞춰 왼손을 바닥에 댄 상식에 어긋난 존재.

백조 왕자는 지금 올리버가 뭘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백조 왕자가 살점 칼을 박아 넣어 흡수하려는 찰나, 잠자는 숲에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을 방해한 거였다.

백조 왕자의 포커페이스에 다시 한번 균열이 가며 무언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냐고.

감정을 통해 이를 해석한 올리버가 대답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께 가르침을 받아 잠자는 숲에 통제권을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보여준 그림자 인형극을 구경할 때, 올리버는 이 숲에 대한 지식 역시 배울 수 있었으니.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늘 위에서 거대한 격뢰(激雷)를 떨어트린 것도 같은 이치.

믿기지 않는 사실에 백조 왕자의 가면은 더욱 균열이 갔고, 올리버는 한마디 더 했다.

“덕분에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술식을 전개해 살점 칼의 흡수를 막던 올리버가 술식을 재전개해, 방어에서 공격으로 그 형태를 바꿨다.

침식해 흡수하려는 살점 칼을 막는 걸 넘어, 오히려 파고든 것.

백조 왕자는 당황해 칼을 빼려 했으나 빼지 못했고, 올리버는 그 상태로 잠자는 숲을 통해 살점 칼 내부를 침식해 들어갔다.

올리버는 잠자는 숲을 매개로 살점 칼이 그동안 흡수한 사람들을 도로 빼내 와 밖으로 끄집어냈다.

잠자는 숲 대지 위에 솟아오른 살덩어리들이 그 증거. 개중에는 만신창이가 된 레드후드도 있었다.

“······!!!”

백조 왕자는 마치 침범당하지 말아야 할 것을 침범당한 사람처럼 붕괴한 포커페이스로 무언의 비명을 지르며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이미 백조 왕자는 대부분의 생명력을 소진한 상태. 올리버가 가볍게 충격파를 쏴 백조 왕자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빈 깡통처럼 날아가는 백조 왕자.

올리버는 살점 칼이 흡수한 수백 명의 사람을 끄집어낸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마의 지식으로 만든 칼에 흡수된 탓인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토악질, 현기증, 공황, 혼절 등 부작용을 보이며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했다.

개중 몇몇 정신력이 강하거나,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의식을 잃지 않고 자기들을 꺼낸 올리버를 바라봤다.

가령, 레드후드나 인육 요리사의 제자로 추정되는 돼지머리를 한 거구 둘, 식칼을 두른 흑마법사와 같은.

올리버는 그들과 짧게 둘러보고는 저 멀리 쓰러진 백조 왕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미 정결(定結)로 인해 많이 쇠약해진 상태로, 몸에 맺힌 따개비 형태의 얼음 조각 탓에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 말은 즉 백조 왕자의 생명력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머리 위에 있던 검은 손도 사라졌네. 엉겅퀴 관에서 느껴지던 흑마법 기운도 사라졌고.’

올리버가 엉겅퀴 관을 쓴 머리 위를 보며 생각했다.

백조 교단의 교주인 백조 공주는 엉겅퀴 관을 통해 왕자 후보를 후원해 준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손을 뗀 것 같았다.

이 이상 지원해줘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 판단한 것.

백조 왕자도 그 사실을 안 것인지, 그는 고아원에 처음 온 아이처럼 절망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와 같은.

올리버는 그런 그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머리에 쓴 엉겅퀴 관을 뜯어낼지 말지 고민했다.

엉겅퀴 관을 통해 나중에 교주가 힘을 보낼 수도 있었으니, 안전을 위해 뜯는 게 맞긴 했지만, 뜯어내자니 연구 소재로서의 가치가 하락할 것 같았다.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손은 아무리 생각해도 엉겅퀴 관과 연관이 있는 듯했는데.

올리버는 말없이 고민했고, 저 멀리서 올리버의 싸움을 구경하던 수백 명의 사람과 살점 칼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수백 명의 사람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 기이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에 이끌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올리버는 결정을 내렸고, 백조 왕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천천히 뻗은 올리버의 손이 공포에 떠는 백조 왕자에게 닿으려는 찰나.

탁.

누군가 올리버의 손을 잡았다.

퍼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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